2025년 06월호 구매하기
[김현승의 시네마 크리티크] 스스로를 부정하는 <댓글부대>와 리얼 예능 <사상검증구역 : 더 커뮤니티>의 반격
[김현승의 시네마 크리티크] 스스로를 부정하는 <댓글부대>와 리얼 예능 <사상검증구역 : 더 커뮤니티>의 반격
  • 김현승(영화평론가)
  • 승인 2024.04.08 09: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 <댓글부대>가 개봉 13일째에 들어섰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배우 중 하나인 손석구를 주연으로, 정치적인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담고 있는 제목까지. 영화는 충분히 <서울의 봄>과 <파묘>의 흥행 가도를 이어받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개봉이 2주가 지난 지금도 <댓글부대>의 관객 수는 여전히 80여만 명에 머무르고 있다. ‘용두사미’, ‘뒷심’, ‘불명확함’. 많은 리뷰가 영화의 후반부를 부진한 성적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속 시원한 ‘사이다’ 결말을 피해 간 안국진 감독의 선택은 분명 일반적인 대중 서사와 다르지만, 그것만으로 흥행 부진을 탓하기엔 다소 아쉬운 감이 있다. 물론 관객 수는 좋은 영화의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다. 이 기사는 흥행 부진의 이유가 아닌, 엔딩크레딧에서 느껴진 허탈함의 원인을 분석하는 글이다.

 

실력 있지만 허세 가득한 사회부 기자 임상진(손석구).

대기업 ‘만전’의 비리를 취재하지만, 오보로 판명되어 정직당한다.

그러던 어느 날, 온라인 여론을 조작했다는 의문의 제보자가 그를 찾아온다.

 

<댓글부대>의 시놉시스에서 첫 번째 아쉬움의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영화의 제목은 분명 확고한 정치적 메시지를 품고 있다. 한국 사람이라면 몇 년 전 정계를 뒤흔든 국가정보원과 ‘드루킹’의 여론 조작 사건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이를 알고 있는 감독은 영리하게 촛불시위의 역사로 막을 올린다. 시위대의 푸티지가 잊혀질 때쯤 여론 조작 삼 형제는 자신들을 스카우트한 집단의 정체를 ‘국가 기관’으로 의심하며 다시 한번 현실과 픽션의 연관성을 상기한다.

여기까진 모든 게 예상대로다. 그런데 시놉시스에서도 드러나듯, 돈을 주고 여론 조작을 명령한 단체는 한 대기업의 여론전담팀으로 밝혀진다. ‘만전’의 팀장(김준한)은 의미심장하게 자신들이 “정부보다 더 대단한” 집단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관객의 비웃음을 피할 수 없다. 청문회에서 “박근혜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는 이재용 부회장의 말을 들은 관객으로서는 더욱 우습다.

이로써 정경유착을 기대한 관객은 ‘사악한 대기업의 음모’라는 한층 낮은 부조리를 마주한다. 이는 영화의 몰입도를 해치는 치명적인 결함이다. 한국은 이미 현실에서 훨씬 ‘영화 같은’ 실제 상황을 겪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영화의 함의는 ‘못된 대기업 응징’보다 ‘탈진실의 시대’에 있다. 두 번의 반전 끝에 서사는 ‘어떤 것도 믿을 수 없는 시대’라는 메시지로 수렴한다. 영화의 제목과 촛불시위대의 푸티지가 간직한 뜨거운 정치적 힘은 끝내 지리멸렬하게 흩어지고 만다.

 

무엇보다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기 어려워진 시대상은 새로운 통찰로 볼 수 없다. 오래전부터 ‘정보의 바다’ 혹은 ‘홍수’로 불린 인터넷의 낮은 신뢰도는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AI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방식의 스캠 범죄가 등장한 시대에 인터넷의 선동 가능성이 매력적인 담론으로 다가오긴 힘들다. 물론 같은 내용도 표현에 따라 전혀 새롭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이 영화의 특성이다. 하지만 <댓글부대>의 진부한 연출은 내용의 단점을 가리는 데 실패했다. 암전과 인터넷 푸티지로 화면을 가득 채웠지만, 플래시백과 대화에 의존하는 플롯은 따분함을 야기한다. 데뷔작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그 누구보다 개성 넘치는 리듬과 화면 구성을 선보인 감독이라 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영화가 지닌 자기 부정성은 힘을 잃은 서사의 숨통을 끊는다. <댓글부대>는 긴 시간 동안 플래시백 형태로 임상진과 찡뻤킹(김성철)의 대화를 시각화했다. 모든 것이 거짓이라는 반전 앞에 관객은 주인공보다 훨씬 고약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눈으로 목격한 모든 것이 부정되었기 때문이다. 영화가 스스로를 부정하자 그곳에는 어떤 인물도, 사건도 남아 있지 않다. 대기업이 정말로 부정을 저지르려 했는지, 촛불집회는 정말로 ‘앙마’로부터 시작되었는지, 심지어 주인공은 정말로 진실을 추구했는지. 모든 분석은 무자비한 ‘탈진실’의 이름 앞에 무력해진다.

감독이 마지막 챕터를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시간 분배를 고려한다면 주인공이 다시 진실을 찾아 헤매는 마지막 과정은 분명 사족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모든 것을 부정한 영화는 전형적인 ‘반전영화’ 꼬리표를 떼어내기 위해 관객에게 무언가를 남겨주어야만 한다. 이로써 <댓글부대>는 단순히 반전에 그치지 않고, 기어코 누구나 거짓말쟁이가 될 수 있다는 결론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일말의 분석조차 무의미해진 구렁텅이에서 아무리 진실을 외쳐도 관객의 귀에 닿지 못한다.

 

* 예능 <사상검증구역 : 더 커뮤니티>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 예능 프로그램과의 비교를 통해 <댓글부대>의 한계를 더욱 적나라하게 살필 수 있다. <사상검증구역 : 더 커뮤니티>는 올해 웨이브에서 방영된 예능으로, 정치·젠더·계급·개방성 등 서로 다른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이 출연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댓글부대>와 마찬가지로 커뮤니티 사이트와 익명 댓글과 같은 인터넷 이미지를 통해 대립과 혐오, 선동이 만연한 사회의 이면을 드러내려 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비교가 가능하다.

<댓글부대>는 우리에게 “함부로 인터넷을 믿지 말라” 말한다. <사상검증구역>은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 성향만으로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고 말한다. 두 세계 모두에서 '선'은 충분히 성공하지 못한다. 두 콘텐츠의 가장 큰 차이점은 결과보다 과정에 있다. <댓글부대>의 ‘진실게임’은 포스트 담론이 지닌 한계를 그대로 수용한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환경은 거짓이자 악, 최소한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전락한다. 그 너머는 없다. 관객은 다가오는 구렁텅이에 최대한 덜 빠지도록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비슷한 결의 결말에도 <사상검증구역>의 ‘아름다운 패배’는 바람직한 미래상을 제시하는 것에 성공한다. 세상은 분열과 혐오로 가득하지만, 공동의 목표를 위해 사람들이 마음을 한데 모으는 과정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9일간의 여정은 최종적으로 겉모습과 프로필만으로 타인을 혐오하던 습관을 벗어던지자는 메시지로 구체화된다. 참가자들이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예능과 달리, 영화감독은 스크린 위 모든 인물의 매 순간을 조종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충분한 여유에도 탈진실을 경고하는 것에 그치고 만다.

 

 

글·김현승
영화평론가. 2022 영평상 신인평론상으로 등단하였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이론과 예술전문사에 재학 중이다.

  • 정기구독을 하시면, 유료 독자님에게만 서비스되는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잡지를 받아보실 수 있고, 모든 온라인 기사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전용 유료독자님에게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모든 온라인 기사들이 제공됩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