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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최동원-선동열의 전설적인 명승부와 그 사회적인 의미-‘퍼펙트게임’
[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최동원-선동열의 전설적인 명승부와 그 사회적인 의미-‘퍼펙트게임’
  • 임정식(영화평론가)
  • 승인 2024.05.07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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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프로야구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하다. 벌써 1,000만 관중 달성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럴 만도 하다. 2024프로야구는 지난달 27일 148경기 만에 200만 관중을 돌파했다(202만8,999명). 지난 3일까지 관중 수는 241만4,458명이었다. 역대 두 번째로 빠른 속도라고 한다. 어린이날 경기가 우천으로 취소돼 약간의 차질이 빚어졌지만, 대세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닐 것이다. 어쨌든 프로야구가 우리나라에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종목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쯤에서 궁금증이 하나 생긴다. 1982년 출범한 국내 프로야구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는 누구일까? 혹은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무엇일까? 사실 이 질문은 우매하다. 팬에 따라서 그 대답은 천양지차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참조할 만한 기록은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2022년 한국프로야구 40주년을 맞아 팬 투표로 선정한 ‘레전드 40인’ 조사 결과다. 이 조사에서는 선동열 선수가 1위, 최동원 선수가 2위를 차지했다. 그렇다면 두 선수가 맞대결을 펼친 경기가 명승부로 기록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중에서도 세 번째 맞대결이 하이라이트이다.

<퍼펙트게임>(2011)은 한국프로야구에서 가장 뛰어난 투수로 평가받는 최동원 선수와 선동열 선수의 세 번째 맞대결 경기를 소재로 한 영화이다. 그런데 이 문장에는 오류가 있다. ‘가장 뛰어난 투수’는 한 명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대상이 최동원과 선동열이라면, 야구에 관심이 있는 팬이라면, 이 최상급 표현에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그만큼 ‘무쇠팔’ 최동원과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은 우열을 가리기 힘든 투수들이다. 최동원은 1984년 한국시리즈 4승과 통산 평균자책점 2위(2.46)에 빛나는 불꽃 같은 투수였다. 선동열은 통산 평균자책점((1.20)과 완봉승(29회), 승률(0.785) 부문에서 1위에 오른 ‘국보급 투수’이다.

최동원과 선동열 선수는 현역 시절에 세 차례 맞대결을 펼쳤다. 두 선수가 선발투수로 나선 경기는 언제나 뜨거운 이슈였다. 경상도와 전라도, 롯데 자이언츠와 해태 타이거즈, 연세대와 고려대 출신, 주무기 커브와 슬라이더 등 흥밋거리가 많았다. 두 선수는 프로야구에서 1승 1무 1패를 기록했다. 세 번째 대결은 1987년 5월 16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펼쳐졌다. 이날 경기는 연장 15회, 4시간 56분 혈투 끝에 2대2 무승부로 끝났다. 최동원 선수는 209개, 선동열 선수는 232개의 공을 던지며 나란히 완투했다.

 

<퍼펙트게임>은 최동원과 선동열 선수의 세 번째 맞대결을 다룬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두 선수의 화려한 경력과 탁월한 능력은 배경으로만 활용된다. 그 대신 두 선수의 우정과 경쟁, 뜨거운 라이벌 의식과 승부욕, 야구에 대한 열정 등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의 첫 장면을 보자. 1981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대륙간컵 대회 경기가 열리고 있다. 선배 최동원의 손톱이 찢어졌고, 후배 선동열이 그 상처에 정성스럽게 본드를 발라준다. 그 덕분일까? 최동원은 대회 최우수 투수로 선정된다. 다른 국제대회에서는 선배들이 후배들을 구타하고, 최동원이 이에 항의하자 선동열이 방패막이로 나서기도 한다. 두 선수가 국가대표 선후배로서 우정을 나누는 장면들이자 <퍼펙트게임>의 주제를 드러내는 복선이다.

<퍼펙트게임>에서 최동원 선수와 관련한 사건은 ‘일구일생 일구일사(一球一生 一球一生死)’를 강조한 은사인 경남고 감독과 후배 선수, 지독한 어깨 부상, 팀원들과의 갈등 및 화해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선동열 선수와 관련한 사건은 최동원 선배를 향한 존경과 질투, ‘독기’를 심어주기 위한 김응용 감독의 혹독한 조련, 무명 포수와의 사연 등으로 구성된다.

<퍼펙트게임>은 이러한 두 개의 플롯을 통해 최동원과 선동열 선수의 인간적인 면모, 투지, 상대 선수에 대한 존중심 등을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두 선수가 탁월한 능력을 지닌 슈퍼스타이자 인간미 넘치는 선수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연출이다.

하지만 두 선수가 아무리 우정을 나눈다고 해도, 실제 경기에서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다. 그래서 경기는 손을 대면 데일 듯 치열하게 전개된다. <퍼펙트게임>에서 두 팀 선수들은 초반부터 평범한 ‘히트 바이 피치(hit by pitch)’에도 벤치 클리어링을 할 만큼 신경이 곤두서 있다. 최동원과 선동열의 선발투수 맞대결 경기가 갖는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퍼펙트게임>은 후반 50분가량을 두 선수의 투구로 채운다. 그 과정에서 수술 자국이 거미줄처럼 엉켜 있는 최동원 선수의 오른쪽 어깨, 피가 뚝뚝 떨어질 듯이 너덜너덜해진 선동열 선수의 손가락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준다. 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대결하고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두 선수의 투혼으로 덕아웃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티격태격하던 동료 선수와의 갈등도 해소되고, 야수로 출전한 선수들의 멋진 플레이가 잇달아 펼쳐지면서 경기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른다.

 

최동원과 선동열 선수의 치열한 경기 이면에는 1980년대 중반의 사회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먼저 군사독재 시대의 암울한 정치 상황이다. <퍼펙트게임>에서는 정보기관 수장으로 보이는 인물이 부하들에게 최동원과 선동열 선수의 경기를 추진하도록 지시하고, 구단 단장은 이를 감독에게 그대로 전달한다. 그러면서 정보기관 수장은 프로야구가 ‘각하’ 때문에 생겼으니 이제 ‘각하’에게 선물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선물’이란 프로야구를 이용해 정치적 이득을 취하는 것이다.

또 <퍼펙트게임>에는 부산과 광주의 팬들이 연고 팀인 롯데 자이언츠와 해태 타이거즈를 열광적으로 응원하고, 이 같은 열정이 지역감정으로 확산하는 장면도 반복해서 등장한다. 관중이 경기장 그물망을 기어오르거나 선수들에게 오물을 투척하는 난동 장면도 1980년대의 프로야구 응원 문화를 보여주는 에피소드이다.

하지만 이러한 부정적인 요소들은 결말에서 깔끔하게 해소된다. 최동원과 선동열 선수는 연장 15회까지 만화에나 나올 법한 완투 경기를 펼친다. 그리고 두 선수의 처절한 승부는 무승부로 끝난다. 그러자 김응용 해태감독이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동료 선수들은 아쉬운 표정으로 그라운드에 서 있는 최동원과 선동열 선수를 헹가래 친다. 이어서 두 선수가 악수하고, 손을 맞잡고,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린다.

이 순간, 최동원과 선동열 선수는 라이벌이 아니다. 마지막 땀방울까지 쥐어짜며 공을 던지고 난 후, 그들은 야구로 다시 하나가 된다. 관중석에서도 화합의 물결이 일렁인다. 두 팀 팬들이 마음을 합쳐 파도타기 응원을 한다. 정보기관 수장은 뜻밖의 상황에 당황하며 서둘러 자리를 뜬다. <퍼펙트게임>의 사회적인 메시지이기도 하다.

<퍼펙트게임>은 제작의 측면에서 보면 불리한 점이 많은 영화이다. 얼핏 최동원, 선동열이라는 슈퍼스타의 극적인 맞대결을 다루므로 장점이 많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최동원과 선동열 선수의 세 번째 맞대결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경기와 관련된 내용과 기록은 물론 선수 개인의 정보도 빠짐없이 공개돼 있다. 즉 영화 주인공 및 그들의 행적과 관련해서 비밀이 거의 없다.

 

따라서 각색 과정에서 상상력을 발휘해 새로운 에피소드를 창작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전설처럼 전해지는 최동원 선수의 커브와 선동열 선수의 슬라이더를 실제 경기처럼 재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동료 선수들의 플레이나 경기장 분위기를 전달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퍼펙트게임>은 이러한 난관에도 불구하고 한국프로야구 역사에 남아 있는 명승부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재현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퍼펙트게임>에서 인물 묘사는 다소 아쉬운 점이 있다. 선동열 선수가 다양한 사건 속에서 내면의 성장을 이뤄가는 입체적인 캐릭터로 등장하는 것과 달리 최동원 선수는 처음부터 완성된 인물로 등장하는 평면적인 캐릭터로 나온다. 또 중반까지 두 선수가 선후배 관계라는 점을 부각함으로써 최고 선수 대 최고 선수의 대결이라는 극적인 요소가 다소 무뎌진 점도 있다.

<퍼펙트게임>의 인물은 스포츠영화의 장르적인 특성에서 보면 매우 이례적이다. 일반적으로 스포츠영화의 주인공은 사회적인 타자, 낙오자, 실패자, 아웃사이더로 지칭되는 인물이 많다. 스포츠영화는 그러한 인물들이 수많은 시련과 고난을 이겨내며 꿈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반면에 최동원과 선동열 선수는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슈퍼스타이다. 2000년대 스포츠영화에서 인기 종목의 슈퍼스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은 <퍼펙트게임>이 거의 유일하다. <코리아>의 현정화를 떠올릴 수 있지만, 탁구는 프로야구만큼 인기 종목이 아니다.

<퍼펙트게임>은 이례적인 인물과 설정 속에서 스포츠 경기가 지닌 개인적인 의미와 함께 스포츠의 사회적인 역할까지 담아낸다. 최동원과 선동열 선수가 손을 맞잡고, 동료 선수들이 두 선수를 헹가래 치는 결말 장면이 다소 억지스럽다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장면은 스포츠에서 진정한 승리가 무엇인지, 경쟁을 초월한 스포츠정신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상징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더구나 그들의 악수는 스포츠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했던 세력을 향한 뜨거운 일침이기도 하다. (이 글은 인터넷신문 ‘로컬데일리’에도 실려 있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임정식
영화평론가. 영화를 신화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작업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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