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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사랑과 집착, 희망과 절망 사이에 <차이콥스키의 아내>
[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사랑과 집착, 희망과 절망 사이에 <차이콥스키의 아내>
  • 송영애(영화평론가)
  • 승인 2024.05.13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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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일에 개봉한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의 영화 <차이콥스키의 아내>는 제목 그대로 차이콥스키의 아내 안토니나 밀류코바에 대한 영화다. 그러나 언뜻 예상되는 그런 유명 작곡가를 다루는 영화는 아니다. 안토니나가 차이콥스키 음악에 큰 영향을 준 숨은 공로자나 뮤즈, 혹은 희생자였다는 등의 낭만적인 상상과도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담고 있는 1877년부터 1893년, 그러니까 두 사람의 첫 만남부터 차이콥스키의 죽음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친절하게 소개하지도 않는다.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은 <레토>(2018)의 빅토르 최에 이어 이번에는 안토니나와 차이콥스키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담아냈다. 감독은 19세기 말 러시아에서 사랑과 집착,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몸부림쳤던 안토니나의 강렬한 감정을 매혹적인 시청각적 요소를 통해 극대화한다. 누군가에게는 신선할 수도, 누군가에게는 낯설 수 있는, 그 영화적 요소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 그 대신 그의 아내

<차이콥스키의 아내>라는 영화 제목 그대로, 이 영화는 차이콥스키의 아내 안토니나 밀류코바에게 집중한다. 더 정확하게는 그녀의 감정에 집중한다. 모든 장면은 그녀의 시점에서 전개되는데, 두 시간이 넘는 내내 안토니나의 모습만 볼 수 있다.

영화 초반은 안토니나가 끈질기게 차이콥스키에게 구애하는 모습으로 채워진다. 로맨틱한 설렘이 담긴 에피소드들이 등장하는 건 아니다. 안토니나가 차이콥스키를 몰래 지켜보고, 주소를 알아내고, 편지를 쓰고, 답장을 기다리고, 기도하는 등 홀로 분투하는 모습이 그녀의 불안한 호흡 소리, 실내외를 가리지 않고 난입하는 파리 소리와 함께 담긴다. 

 

결국 끈질기게 구애해 차이콥스키와 결혼에 성공한다. 그러나 결혼식 직후부터 그녀는 외롭다. 마차에도 혼자 타고, 피로연에서도 대화에서 소외된다. 그리고 몇 주 지나지 않아 차이콥스키는 출장을 핑계로 그녀를 떠난다. 그녀는 화면 가운데 위치하나 홀로 고립되어 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나는 차이콥스키의 이혼 요구를 전달받는다. 직접 마주 보고 싸우거나 화해하거나 이야기 나누지 않는다. 안토니나는 그저 그의 대리인들을 통해 그의 이야기를 전해 들을 뿐이다. 그래서 더욱 믿을 수가 없다. 그가 여자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도 모두 믿지 않는다. "신이 주신 영원한 남편이에요. 차이콥스키의 아내, 그게 내 운명이에요"라며, 이혼을 거부한다. 그녀에겐 이혼 거부가 그와의 사랑을 지키는 선택이지, 집착이 아니다.

 

 

- 어두운 갇힌 공간, 그리고 뒷모습 

<차이콥스키의 아내>는 매우 어두운 영화다. 말 그대로 어둡다. 밝은 하늘은 나온 적도 없다. 안토니나의 절망을 표현하듯, 영화는 내내 어둡고, 까맣고, 무언가로 가득 차 답답하다. 

그녀가 그에게 집착할수록, 더욱 고립된다. 그녀 혼자 등장하는 장면이 절대적으로 많고, 혼자 등장하지 않는다 해도, 어둡고 좁은 계단이나 골목의 새까만 인파 속에 고립되어 있다. 카메라는 종종 그녀의 뒤를 따르거나 위에서 내려보는데,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어 가는 그녀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 모호함과 뒤섞임

영화는 끝까지 안토니나의 우울하고, 절망적인 감정을 충실히 담아낸다. 친절한 에피소드나 대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현실인지 꿈인지, 영화인지 연극인지 오페라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모호한 뒤섞음을 통해서다.

안토니는 차이콥스키를 다시 만나기 위해 애쓰지만 쉽지 않다. 힘들게 만나 애걸하기도 하고, 협박하기도 하지만, 그녀의 희망은 절망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나마도 정말 그와 만나 대화를 나눈 건지 모호하다. 현실과 그녀의 상상 혹은 꿈이 모호하게 뒤섞여 펼쳐진다. 영화 초반, 차이콥스키의 장례식장 장면에서 벌어진 믿기 어려운 일이 그 시작이다. 

또한 갑자기 노래가 시작되고, 발레 군무가 시작되는 장면도 등장하는데, 롱테이크와 더불어 그녀가 살고 있는 세상이 더더욱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렇게 그녀가 느끼는 막막함, 기가 막힘 등이 배가된다.   

결국 그녀는 법적으로만 차이콥스키의 아내였을 뿐 그와 함께하진 못했다. 자신이 차이콥스키의 아내라는 걸 증명한다고 여긴 결혼반지, 사진 역시 허울에 불과했지만, 그녀에겐 전부였다. 

 

영화 <차이콥스키의 아내>를 통해 차이콥스키 부부의 일화를 모두 알아낼 순 없다. 그러나 사랑과 집착,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고통받았던 안토니나를 풍부한 시청각적 자극을 통해 목격할 수 있다. 매우 강렬하고 매혹적인 영화 <차이콥스키의 아내>이다. 

이미지 출처: (주)엣나인필름

 

 

글·송영애
영화평론가. 서일대학교 영화방송공연예술학과 교수. 한국영화 역사와 문화, 교육 관련 연구를 지속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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