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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챌린저스> 독특한 삼각관계
[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챌린저스> 독특한 삼각관계
  • 서성희(영화평론가)
  • 승인 2024.06.10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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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히어로물 <범죄도시4>가 천만 관객을 끌어 모으는 동안, 아쉽게 묻힌 영화가 있다. 그건 바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챌린저스>이다.

루카 구아다니노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감독이다. 이 영화는 티모시 샬라메를 지금의 위치에 오르게 한 작품이기도 하다. 한여름의 터질 듯한 욕망과 숨 막히는 관능을 일관되게 탐구해 온 감독으로, <챌린저스>에서도 그의 인장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구아다니노 감독은 심리 묘사나 감정 표현에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가 스포츠를 소재로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많은 기대와 설렘이 있었다. <챌린저스>는 이런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킨 작품이다. <챌린저스>는 루카 구아다니노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감각의 탐구를 가뿐히 넘어서는 역작이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이탈리아 출신으로, 단편과 다큐멘터리를 연출하다가 틸타 스윈튼 주연의 <아이 엠 러브>(2011)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의 대표작인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8)은 제90회 아카데미 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각색상을 받기도 했다. 사랑과 욕망을 세심하게 다루며, 사건의 설명보다 인물의 감정 묘사에 집중하는 것이 그의 영화의 핵심이다.

<챌린저스> 역시 이러한 연장선에 있다. 이번에는 스포츠, 특히 테니스를 소재로 삼아 이야기를 풀어간다. 영화를 보다 보면 테니스 경기가 사랑 이야기로 해석될 수 있는 순간들이 많다.

 

 

테니스 속 삼각관계와 감정의 심리전

세 남녀의 미묘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 테니스가 이렇게 잘 어울릴 수 있나하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 먼저 <챌린저스>는 젠데이아의 매력이 한껏 발휘된 영화이다. 그녀는 이번 작품에서 열정적이고 통제적이며 스크린을 휘어잡는 관능적인 매력을 증명한다. 이 섹시함은 노출이 유발하는 관능미가 아니라, 자신감과 당당함에서 나오는 태도 때문이다. 젠데이아는 '타시' 역을 맡아 코트 안팎에서 관계의 주도권을 쥐고, 경기도 사랑도 쥐락펴락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목표 설정과 성취에 대한 집념이 대단한 캐릭터로, 그녀의 연기는 영화에 깊이를 더한다.

타시의 남편 '아트'는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에서 리프로 나왔던 마이크 파이스트, '패트릭'은 <더 크라운>에서 찰스 왕세자 역으로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받은 조쉬 오코너가 연기한다. 아트는 성실하고 헌신적인 성향으로, 패트릭은 본능적이고 열정적인 인물로 대비되며, 두 배우의 매력이 영화 전반을 장악하고 있다.

<챌린저스>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전형적인 삼각관계에서 벗어나, 아트와 패트릭 사이에도 묘한 감정이 있다는 것이다. 구아다니노 감독의 장기인 퀴어 코드를 넣어 아주 독특한 삼각관계를 그리고 있다. 타시 없이는 아트와 패트릭의 감정도 불타오르지 않는다. 테니스 코트에서의 승부욕도, 침대에서의 승부욕도 결국 타시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영화는 초반 타시의 입을 빌어 이야기의 주제를 함축한다. "테니스는 관계야." <챌린저스>는 스포츠 영화의 구조를 띠고 있지만, 관계의 역학을 그린 로맨스 영화이다. 감독은 주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사람들, 그리고 그걸 어떻게 가져야 할지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챌린저스>에서도 이러한 테마가 잘 드러난다. 세 주인공은 각자의 욕망과 목표 사이에서 갈등하며, 자신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탐색한다.

결국 영화에서 승부의 결과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영화가 끝나면 이들의 새로운 전성기가 시작되리라는 것이 짐작되는 정도이다. 팽팽한 긴장과 경쟁이 살아있는 삼각관계 속에서 중요한 것은 과정이다. 각자의 욕망과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승패를 넘어, 인생의 복잡한 감정을 탐구하는 여정이다.

테니스는 두 선수와 하나의 공에 집중되는 구조로, 서브와 리시브만으로 긴박한 편집 속도와 스릴을 동시에 만들어낸다. <챌린저스>에서는 경기 세트별로 다양한 시간대를 오가는 플롯과 편집, 타시의 시선에 따라 역동하는 카메라, 경기 스코어가 주는 긴장감이 영화를 더욱 박진감 있게 만든다. 특히 후반부의 시점숏(POV 숏)은 인상적이다.

 

엔딩은 해석하는 재미가 있다. 세트를 나눠 가지며 팽팽한 경쟁을 이어가던 패트릭과 아트는 최후의 일격을 위해 맹렬하게 돌진한다. 경기 내내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두 남자가 벌이는 승부의 추에 오르락내리락하던 타시는 매치 포인트의 순간 비명을 지른다. 승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가자!"라는 타시의 외침은 무슨 의미인지 관객에 따라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누가 이길까에 관심을 집중하고 관전하던 관객들에게 갑자기 끝나버리는 결말은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내 이 영화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깨닫게 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챌린저스>는 이야기가 어떻게 맺어졌는지에 대한 완결성보다는, 주인공 세 사람의 치열한 감정의 격동기를 가슴 졸이며 보게 만드는 데 전심을 다한다. <챌린저스>는 영화의 이러한 열린 결말을 통해 우리에게 이러한 인생의 진실을 선사한다. 그것은 누가 승리했는지가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열망을 따르며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가치에 관한 이야기이다.

인생은 한 번뿐이며, 우리는 언제나 진정한 열정을 따라가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챌린저스>는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자신의 꿈을 추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용기를 주며, 자신의 삶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어 나갈 수 있는 힘을 심어준다. 그리고 이러한 메시지는 언제나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꿈을 향한 여정에서 큰 용기를 주는 이야기가 되리라 믿는다.

 

* 사진 출처 : 네이버

 

 

글·서성희
영화평론가, 영화학박사. 전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전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대표, 전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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