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6월호 구매하기
[김현승의 시네마 크리티크] 왜 배우는 늘 선택받아야만 하는가? '공수교대' 단편영화 프로젝트
[김현승의 시네마 크리티크] 왜 배우는 늘 선택받아야만 하는가? '공수교대' 단편영화 프로젝트
  • 김현승(영화평론가)
  • 승인 2024.06.24 09: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배우의 감독> 프로젝트는 그날 제가 느꼈던 감정에 대한 위로로 시작되었습니다. 다만 스스로를 위로하는 건 재미없으니, 동료 배우들을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면접 한 번 떨어진 걸로 이렇게 호들갑을 떨었는데, 배우는 이런 두려움의 감정을 늘상 안고 살아가니까요. 우리 배우들은 오늘도 프로필을 돌리고, 오디션장에 발을 넣어보려고 애를 쓰며 삽니다."

 

6월 22일 열린 <배우의 감독> 프로젝트 상영회는 장재원 대표의 솔직한 심정으로 막을 올렸다. ‘공수교대’라는 콘셉트는 프로젝트가 간직한 발칙함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영화만큼 돈이 많이 드는 예술은 없다. 자본의 논리는 언제나 ‘선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만들었고, 배우는 끝이 보이지 않는 기다란 줄에 서서 하염없이 자기 차례를 기다린다.

 

"선택받아야 하는 것이 배우의 숙명이라면, 한 번쯤은 벗어나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우리가 일상에 지쳤을 때 훌쩍 여행을 떠나듯이."

 

<배우의 감독> 프로젝트는 일반적인 영화 제작 과정과 달리 배우가 주체적으로 감독과 시나리오를 선발한다. 작년 12월에 시작된 공모는 80편이 넘는 응모로 이어졌고, 열정적인 선발 과정 끝에 두 편의 시나리오가 당선되었다. 석보배 감독의 <정거장>, 여준수 감독의 <폐역>. 프로젝트의 취지를 되새기자면, 박현 배우와 안나래 배우의 <정거장>과 한도협 배우와 김예은 배우의 <폐역>으로 부르는 편이 낫다.

<정거장>은 실업자가 된 남자 친구와 그를 위로하는 여성의 사연을 경쾌하게 그려낸다. 누구나 가슴 속에 사직서 하나쯤 품고 산다는 말처럼, 취업난을 다룬 따스한 이야기는 어렵지 않게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 낸다. <폐역>은 서로 다른 죽음에 가까워진 남녀가 마주하는 순간을 다룬다. 삶과 죽음의 교차점에 선 인물들의 감정선을 절묘하게 포착하는 연출만큼이나 기찻길을 담은 감각적인 프레임이 돋보인다. 두 영화에서 나타난 독특한 앙각에 주목하여 비평적인 시선을 덧붙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두 영화가 상반된 톤으로 방황하는 청춘들을 위로한다는 점에 더 주목하고 싶다. 무능해 보이고 싶지 않아 연인에게 거짓말을 해야 했던 <정거장>의 남자는 살기 위해 아이를 내팽개치는 <폐역>의 여자와 얼마나 멀리 있을까.

 

단편 상영을 마친 뒤, 프로젝트 제작기를 담은 메이킹 필름이 상영되었다. 10분가량의 짧은 영상에도 뜨거운 고민의 흔적이 피부에 와닿은 것은 오롯이 참여한 사람들의 덕이다. 넉넉하지 않은 예산에도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예상치 못한 빗방울에도 담담하게 다음 장면으로 나아간다. ‘공수교대’라는 슬로건이 무색할 정도로 선택받지 못한 감독에게 격려의 말 또한 잊지 않는다. 관객들은 극장에 모여 친구의, 연인의, 같은 예술업계 동지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한 명 한 명의 힘이 모여서 영화는 가까스로 완성됩니다. 스포트라이트와 성과는 늘 공평하게 배분되지 않고, 감독이나 주연 배우에게 쏠리곤 하죠. 저는 이것이 참 부조리하다고 생각합니다만 …. 영화를 위해 애써주신 분들의 얼굴과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아가기. 지금으로선, 이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발버둥이 아닐까 싶어요. 발버둥 치며 살아갈 이유가 하나 더 생겨버렸네요."

 

영화만큼 돈이 많이 드는 예술은 없다. 배우는 이제 다시 줄을 설 일만이 남았다. 하지만 기다리는 사람이 어찌 배우뿐이랴. 영화만큼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예술도 없다. 그래도 오랜만에 사람에서 사람으로 완성된 영화를 보았다.

 

 

글·김현승
영화평론가. 2022 영평상 신인평론상으로 등단하였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이론과 예술전문사에 재학 중이다.

  • 정기구독을 하시면, 유료 독자님에게만 서비스되는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잡지를 받아보실 수 있고, 모든 온라인 기사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전용 유료독자님에게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모든 온라인 기사들이 제공됩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