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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국의 문화톡톡] 연꽃-수련 그리고 시간의 꽃
[최양국의 문화톡톡] 연꽃-수련 그리고 시간의 꽃
  • 최양국(문화평론가)
  • 승인 2024.07.01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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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우주에 공통의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사건들이 과거-현재-미래 순으로 진행되는 것도 아니고, ‘부분적’으로만 순서가 있을 뿐이다. 우리 주위에는 현재가 있지만 멀리 있는 은하에서는 그것이 ‘현재’가 아니다. 현재는 세계적이 아니라 지역적이다. 세상의 사건을 지배하는 기본 방정식에는 과거와 미래의 차이가 없다.”

-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The Order of Time》(카를로 로벨리, 2021년) -

7월의 정원에서 꽃을 만난다. 연꽃, 수련, 야생화, 그리고 시간의 꽃 등. 시간의 흐름에 따라 피어나는 꽃에 욕망이 달린다. 연꽃은 과거의 정화를 통한 현재의 깨달음, 수련은 현재의 버림을 통한 미래의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로 피어난다. 바람과 햇살의 하얀 대화 속에 야생화를 떠난 빛의 색이 흔들리고, 반짝이며, 그림자를 남긴다. 수직과 수평을 향한 시간의 꽃은 세계적이지만 지역적이다. 강가와 물의 정원에 담긴 욕망이 과거-현재-미래 순이 아닌 연꽃과 수련, 그리고 시간의 꽃으로 아름답게 흘러간다.

 

연꽃은 / 정화(淨化)와 / 깨달음 향한 / ‘해’ 바라기

헤세(Hermann Karl Hesse, 1877년~1962년)의 《싯다르타 Siddhartha》(1922년)는 부처가 아닌 주인공 싯다르타의 해탈을 얻어가는 과정을 쓴 일종의 종교적 성장소설이다. 형식상 구성은 1부(4장)와 2부(8장)로 되어 있지만 실질상 내용은 4단계로 나누어진다. 1부는 첫 단계를 나타낸다. 바라문의 아들인 싯다르타가 세속을 떠나 외부의 각성자를 통해 완전자의 길로 나아가고자 하는 시기이다. 브라만교 사문들과의 고행, 고타마와의 만남은 자아 상태의 고통과 무의미에 대해 일시적 비움은 가져올 수 있지만, 결국은 원래 자아 상태로 회귀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느끼게 한다. 이의 극복을 위해 스스로 선택한 고행의 길이 2부에서 두 번째 단계로 이어진다. 삶의 욕망을 통한 세속적 감각의 세계를 드러낸다. 기생 카말라와의 육체적 욕망~상인 카마스와미와의 물질적 욕망을 향한 개인적 체험의 길을 걸으며, 이십 년간 수행에서 벗어나 향락과 사치의 세계에 젖어 들게 된다. 2부는 이어 세 번째 단계로 나아간다. 해탈을 향해 나아가는 길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른 마지막 시련으로서, 성장한 아들에 대한 맹목적 사랑과 번뇌에 괴로워하다 그 상처에서 피어나는 꽃과 빛을 보며 느낄 수 있길 바란다. 마지막 네 번째 단계에서는 수많은 소리가 어우러진 강물의 노랫소리에 귀 기울인다. 강가에서 만난 뱃사공 바주데바와 함께, 대립이 아닌 완성이라는 의미의 옴의 소리를 들으며 깨달음의 즐거움을 꽃피운다. 해탈을 위한 개인적 체험 즉, 개인화의 필연성을 부각하며 강가를 다시 소환한다. 해탈한 현인으로서 강가의 뱃사공이 된 싯다르타는 어린 시절 출가를 같이한 오랜 친구면서 고타마의 노제자인 고빈다로부터 세존을 향한 존경과 사랑의 감정 표현과 같은 큰절을 받는다. 강가에서.

헤세가 싯다르타를 통해 강조하는 깨달음이나 해탈을 위해 제시하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 그 첫째는 주체로서 개인의 내재화이다. 사문들이나 석가모니와의 동행을 통한 수행으로 드러나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욕망에 대한 개인적 체험의 중요성을 전해준다. 이를 위해 싯다르타는 혼자만의 수행의 길을 걸으며, 육체적・물질적 욕망을 내재적으로 체화하며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옴의 소리가 들리는 강가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둘째는 객체로서의 완성자나 해탈자가 전하는 말의 한계성을 자각하는 것이다. 싯다르타는 세존인 고타마의 가르침에 대한 완전함을 인정하면서도 깨달음이나 해탈의 순간에 몸소 겪었던 비밀이 가르침 속에는 없다는 것을 자각한다. 아울러 지혜는 아무리 현인이라 하더라도 전달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며, 초탈을 향해 홀로 걸어가는 길을 선택한다. 셋째는 시간으로서 과정의 중요성이다. 고타마의 일생은 세속적 삶-종교적 구도의 길을 통한 해탈을 추구하는 직선의 개념이다. 이와 달리 소설 속 싯다르타는 외부의 객체를 대상으로 한 수행의 길과 한계 인식~DNA 속 세속적 욕망에 대한 본성 극복~시간 흐름 속 혈연을 향한 진화적 욕망에 대한 외연 극복~개인적 체험을 통한 깨달음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하강과 상승을 동반하는 곡선의 개념이다.

수행 중 큰 도시를 찾은 싯다르타는 우연히 만난 카말라를 향해 다음과 같은 시를 읊는다.

“녹음이 우거진 정원에 아름다운 카말라가 들어섰고, 그 정원 입구에 갈색으로 그을린 사문이 서 있었네. 연꽃 같은 그녀를 보았을 때, 그가 꾸벅 몸을 숙여 절하자, 미소 지으며 카말라 답례하였네. 신들에게 자신을 바치느니, 그 젊은이 생각하였지, 차라리, 아름다운 카말라에게 자신을 바치는 편이 차라리 더 나으리.”

- 《싯다르타 Siddhartha》(민음사, 2017년) -

 

* 싯다르타-연꽃, Pixabay
* 싯다르타-연꽃, Pixabay

카말라(kamala)는 산스크리트어로 연꽃을 뜻한다. 카말라(kamala) 중 ‘카마(kama)’는 인도 신화에 나오는 애욕의 신으로서, 욕망과 에로스를 의미한다. 이는 헤세가 싯다르타를 통해 강조하는 깨달음이나 해탈을 위한 극복의 대상을 향한 정화(淨化)의 뜻도 가지고 있으리라. 진흙탕 물에서도 피어나는 연꽃의 상징성처럼, 싯다르타는 연꽃을 만나 연꽃으로 다시 태어나는것이니.

수생식물인 연꽃은 연못이나 늪의 물속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여름철 햇살을 받고 물 밖으로 나온 긴 꽃대에 꽃이 1개씩 피며 밤이 되면 꽃잎을 오므리기를 반복하다가, 보통 3~4일 정도 만에 진다. 씨앗이 꽃잎 위로 보이는 연꽃의 색에 따른 개별화는 홍련, 백련, 황련, 청련 등으로 불리며, 해바라기와 함께 태양의 꽃을 대변한다. 연꽃은 잎과 꽃이 모두 수면에서 수직으로 올라오며, 연꽃잎은 갈라짐과 광택이 없고 젖지 않는다.

연꽃은 물에 젖지 않는 잎을 가진 수직과 정화의 꽃이다. 욕망에 젖지 않는 과거의 정화를 통해 현재의 깨달음으로 향하는 ‘해’ 바라기 꽃이다.

 

희망과 / 위로의 수련(睡蓮) / 미래 향한 / ‘빛’ 바라기

지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프랑스의 어느 정원은 오늘도 꽃의 정원, 물의 정원 그리고 정원의 주인집마다 꽃을 향한 하얀 대화로 넘쳐난다. 주인집 거실에 있는 사진 속 화가의 수염을 닮은 듯한, 물 위의 식물 수련(睡蓮, water lilies)을 사랑한 클로드 모네(Oscar-Claude Monet, 1840년~1926년). 미술사에서 그는 '인상주의(Impressionism)'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파리 북서쪽 근교 지베르니(Giverny)에 있는 그의 집 정원 연못의 초록색 아치형 다리 아래에 시선이 머문다. 7월의 햇살 아래 하얀 수련이 피어난다. 그가 50대 초반부터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집중해서 그린 수련 연작(series)의 소재이다. 물에 떠 있는 수련과 물의 정원 속 수련의 찰나적 움직임, 물의 표면에 담긴 자연의 수런거림, 시간과 공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빛과 그림자 등을 관찰하여 250여 점의 수련 연작을 남긴다. 수련 연작은 그림을 그린 시간, 장소 및 배경 등 수련 생태계를 반영한 개별화(‘수련이 있는 연못’, ‘수련-석양’, ‘수련-구름’ 등)를 통해 새로운 수련으로 재탄생한다.

 

* 수련 연작-수련과 아치형 다리, 클로드 모네(O.C.Monet)
* 수련 연작-수련과 아치형 다리, 클로드 모네(O.C.Monet)

그에게 있어 《인상, 해돋이(Impression, soleil levant)》(1872년)가 당시 주류 미술계에 대한 젊은 화가의 치기 어린 반항의 시작이라면, 수련 연작은 ‘인상주의’의 완성을 향한 도전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수련이 모네에게 주는 의미를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는 노년의 모네에게 닥친 개인적 시련에 대한 희망과 위로의 대상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1910년 전후로 양 눈의 백내장으로 인한 시력 상실, 두 번째 부인인 알리스와 큰아들의 사망 따른 절망과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인한 공포 등으로 허무와 무기력에 갇혀 지낸다. 이때 절망과 공포의 그늘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위한 동력의 역할을 한 것이 그의 집 정원 연못에 핀 하얀 꽃 수련이다. 둘째는 사실주의 후계 사조로서 인상주의의 성공적 정착과 확산에 기여한 것이다. 1883년 지베르니로 이사 후 집 앞에 새로 구입하게 된 연못은 수련 등 다양한 꽃, 물, 수면 위에 반사되어 비치는 하늘 등 자연의 스튜디오를 가질 수 있도록 한다. 첫 번째 부인인 카미유와의 사별 후 1880년대 초부터 프랑스 시골 지역의 풍경을 주로 그리던 그에게는 대상물을 향한 공간적 이동과 화구 등의 물질적 제약이 따른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집안의 자연 스튜디오는, 빛과 계절의 변화에 따라 같은 대상을 반복적으로 관찰하며 이를 그림으로 그리는 연작의 형태로 더욱 진화하도록 한다. 이와 같이 수련 연작으로 대표되는 그의 다양한 연작 작품은 미술 사조상 인상주의의 특성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결과적으로 인상주의는 사실주의를 잇는 가장 성공한 사조로서, 20세기 이후의 미술사에 큰 영향을 미치며 서 있다.

밤에 잠들어 있는 연꽃이라는 의미인 수련은 연못이나 늪에서만 자라는 수생식물이다. 수련의 꽃은 밤이 되면 봉오리로 오므라들었다가 낮이 되면 다시 꽃잎을 활짝 펴내며 수면과 입맞춤 하듯 피어나는데, 보통 4~5일 정도 만에 진다. 연꽃과 달리 씨앗이 숨어있는 수련의 잎은 수면에 떠서 수평으로 자라며, 한쪽 부분이 V자로 갈라져 광택이 나며 물에 젖는다.

수련은 물에 젖은 잎을 가진 수평과 희망의 꽃이다. 욕망에 젖은 현재의 버림을 통한 미래의 완성을 향하는 ‘빛’ 바라기 꽃이다.

 

금리는 / 시간의 꽃 되어 / 바람・햇살 / 빛으로 어울리네

고요한 수면 위에 바람과 햇살이 나들이한다. 다른 듯 닮은 꼴의 두 식물인 연꽃과 수련이 물, 수면에 비친 하늘과 구름, 그리고 정원의 풍경들과 조화를 이루며 시간의 흐름을 좇는다. 자연과 예술을 떠나 자본을 찾은 시간은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며 시간의 꽃으로 피어난다. 시간의 꽃은 자본의 정원에서 바람과 햇살을 만난다. 자본의 개념은 목적이나 대상 등에 따라 다양하나, 일반적으로는 축적된 부(화폐, 토지·공장 등)와 같이 생산의 밑거름이 되는 생산 수단을 말한다. 이는 정중동의 특성을 갖는다. 자본의 보유가 정(靜)이라면, 자본의 흐름이 동(動)이다. 자본의 흐름에는 일정한 가치 발생이 전제되며, 이러한 자본의 가치를 금리라고 부른다.

 

* 시간의 꽃-금리, Pixabay
* 시간의 꽃-금리, Pixabay

따라서 금리는 대상 기간에 따른 위험을 산정한 대가(보상)의 지급을 의미하는 것이다. 금리의 종류는 계산 방법에 따른 단리와 복리, 기간 장단에 따른 단기금리와 장기금리, 자본 유출입에 따른 예금금리와 대출금리, 기간별 변동 가부에 따른 고정금리와 변동금리, 거래 주체(시장)에 따른 시장금리와 기준금리로 나눌 수 있다.

다른 꼴의 두 식물인 연꽃과 수련은 시공간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는 바람, 햇살을 만나며 물에 비치는 모습을 바꾼다. 물에 비친 연꽃과 수련이 흔들림, 반짝임, 그림자의 속성을 내재화하며 닮아간다. 연꽃과 수련이 핀 공간에서 시간의 꽃인 금리가 공통의 속성으로 피어난다. 금리의 흔들림은 기준(정책)금리에서 두드러진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RB:Federal Reserve Board)가 지난 5월 1일(현지 시각) 추가 금리 인상에 선을 그었지만, 여전히 인하에도 신중한 태도를 보이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역시 이달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연 3.50%로 유지하기로 한다. 기준금리를 2021년 8월부터 2023년 1월까지 총 3.0%포인트 올린 뒤 지금까지 11차례 연속 동결 중이다. 우리 통화정책은 미국의 금리 정책에 따라 흔들릴 수밖에 없는 동조화 현상을 보인다. 또한 다양한 종류의 금리에 따른 시장 수요와 공급 및 국가 정책에 따라 금리는 오늘도 반짝반짝 그 색깔의 숫자를 드러낸다. 단리가 부처의 해탈 과정을 거치는 직선이라면, 복리는 뱃사공 싯다르타의 깨달음 과정을 나타내는 곡선으로 다가온다. 예금금리가 미래를 위한 가치의 창출에 중점을 둔다면, 대출금리는 과거 탐색을 통한 위험 최소화를 우선으로 한다. 이제 대출금리는 과거 탐색적 위험 정화의 소재인 연꽃과 미래 희망과 위로의 이미지인 수련 간 균형으로 피어나는 시간의 꽃 중 하나이어야 하지 않을까.

흔들리며 반짝이는 금리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그림자 금리(Shadow Rate, 잠재 금리)란 금리를 수단으로 한 전통적 통화정책뿐만 아니라 양적 완화(QE:Quantitative Easing, 중앙은행 정책으로 금리 인하를 통한 경기부양 효과에 한계가 있을 때, 중앙은행이 국채 매입 등을 통해 유동성을 시중에 직접 푸는 정책)나 선제 안내(Forward Guidance, 구두 개입) 등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의 부양 효과까지 감안한 기준금리 추정치를 말한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지난 6월 6일(현지 시각) 글로벌 경제주체 중 첫 시도로 약 2년 만에 기준금리 인하를 결정하면서 인플레이션과 금리의 상관성 따른 각국의 금리 인하 경쟁에 어느 정도 속도감을 주고 있는 듯하다.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금리 인하 따른 시행착오를 최소화 하기 위해 그림자 금리에 대한 시선이 정겨워진다.

시간의 꽃인 금리를 과거-현재-미래의 바람과 햇살을 반영한, 신(新)인상주의 사조에 맞춘 화풍으로 그려보는 것은 어떨까? 정화와 깨달음의 연꽃과 희망과 위로의 수련으로 피어나는 금리 연못은 자본의 정원을 부분적으로도 더욱 아름답게 한다.

 

 

글·최양국
격파트너스 대표 겸 경제산업기업 연구 협동조합 이사장
전통과 예술 바탕하에 점-선-면과 과거-현재-미래의 조합을 통한 가치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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