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뒤늦게 신학대학원에 진학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이 호의적이지 않았다. 친한 사이에서는 “왜 나이 들어 망신살 뻗치는 직업에 들어가냐”고 대놓고 힐난했다. “쪽팔리게”라는 단어를 사용한 사람도 있었다. 사실 나도 그다지 목사라는 일에 관심이 있지는 않았다. 신학 공부를 해볼까 하는 마음이 컸다. 한데 누군가의 주선으로 상담차 만난 어느 대학 신학대학원장이 신학공부하는 석사 과정이 아니라, 같은 석사 과정이지만 성격이 다른 목사후보생 과정으로 유인(?)했다. 두 과정의 차이를 정확히 모른 채 입학했고 차이를 식별했을 땐 ‘이왕 이렇게 된 것 가보자’는 생각으로 학업을 진행했다.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신학박사 과정까지 수료했지만 목사 안수를 받을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이쪽 세계에 진출하며 목사들로부터 받은 인상은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다. 그래서 부정적이다.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특성을 비교했더니 틀린 게 없었다는 미국의 어느 사회조사가 기억이 난다. 목사는 다른 직업 세계와 비교해 얼마나 다를까. 평신도를 포함한 기독교인이 다른 사회구성원과 비교해 아무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면 직관적으로 목사는 차이가 있을 것 같다. 목사니까 어떠어떠해야 한다는 기대치를 꺾고도 그 차이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지는 않을 듯하다.
이러한 인식을 반영하는 오래된 유머가 있다. 주인공은 장로다. 사실 만큼 사시고 장로가 하늘나라에 도착하자 천사가 반갑게 맞이하며 중국집으로 안내하곤 짜장면을 시켜주었다. 천사 대신 베드로가 나오기도 하고, 예수가 나오기도 한다. 저승길을 오느라 배고픈 차여서 짜장면을 맛있게 먹는데, 비슷한 시기에 숨진 같은 교회 집사가 다른 테이블에서 탕수육을 맛있게 먹고 있는 게 아닌가. 장로는 순간 빈정이 상해 천사에게 “집사에게는 탕수육을 주고 장로인 나에게는 겨우 짜장면을 주십니까"라고 항의하자 천사가 그 장로의 귀에다 대고 이렇게 말했다. “그런 소리 하지 말아. 당신 교회 담임목사는 지금 짜장면 배달 갔어.”
내 생각에 이 유머는 현실과 동떨어졌을뿐더러 생각만큼 목사를 폄훼하는 내용이 아니다. 일단 하늘나라를 천국으로 본다면 목사는 천국에 입성한 것이 된다. 천국에서 가장 만나기 힘든 직종이 목사라는, 이 유머 못지않게 널리 퍼진 유머를 떠올리면 짜장면 배달 간 목사가 천국에는 들어간 것이니 축하할 일이다. 그러므로 짜장면 배달 간 이 목사가 아마 지상에서 훌륭한 목회자였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는데, 유머에선 지상의 행태가 천국으로 이어졌다고 봐야 한다.
이 유머에서 엿보이는 여러 문제 중 가장 큰 문제는 교회를 위계적으로 바라보며 그 위계를 특권으로 연결 지었다는 사실이다. (평신도)→집사→장로→목사로 상승하는 위계는, 유머의 위계 역전을 통해 더 강하게 확인된다. 현실의 교회에서는 목사가 류산슬을 먹고, 장로 탕수육, 집사 짜장면, 평신도 배달의 구도일 수 있다. 웃자고 한 예기에 너무 정색한다고 나무랄지 모르겠으나 현재 교회의 모습에 이런 권위주의의 사슬이 강하게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지 않은가.
종교개혁을 통해서 민희진씨 용어로 하나님과 맞다이를 요청한 개신교가 권위주의에 절은 목사를 양산한 것은 아이러니다. 가톨릭의 신부는 개신교의 목사보다 오히려 류산슬을 덜 먹는다는 것이 세간의 인식이다.
이 유머에서 등장한 직업비하를 잠정적으로 수용한다면 여기엔 의도하지 않은 일갈이 있다. 생각해보라, 장로와 집사ㆍ평신도에게 청요리와 짜장면을 대접하고 자신을 짜장면 배달을 나가는 목사의 모습을. 한국 교회에 그런 목사가 많았다면 과거 내가 신학대학원에 간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이 그렇게 냉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짜장면 배달이 쪽팔리는 게 아니라, 짜장면 배달을 하지 않는 게 쪽팔린다. 일부 그릇된 목사의 일탈 사례라는 식으로 빠져나갈 생각하지 말기 바란다. 이것이 개신교 목사의 모습이고 모든 목사가 책임을 느껴야 한다. 중국집에 불이 나면 그제야 짜장면 배달을 나설 사람. 세상이 생각하는 목사의 상이다.
안치용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ㆍ전 경향신문 기자, 한신대 M.div 및 신학박사 과정 수료. 협동조합언론 가스펠투데이 기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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