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은 자기를 실현하는 방식인가, 생계 수단인가? 전자의 경우 노동은 환희로 충만한 유희가 되지만, 후자일 경우 그것은 고역에 찌든 멍에가 된다. 보통 둘 다라고 말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누군가에게 노동은 유희가 되지만, 다른 이에게 노동은 멍에가 된다. 즐거운 노동은 높은 소득으로 보상받고, 고용이 안정적이며, 명예롭지만, 고역의 보상은 낮고, 불안정하며, 멸시와 비난을 받는다. 노동시장은 이렇게 이중구조로 분단되어 있다. 더욱이 전자의 화려함과 갈등관계는 문학과 드라마의 소재로 인기를 누리나, 후자의 신음과 비탄은 멸시와 외면 속에서 은폐되고 만다. 전자는 ‘실체’요, 후자는 ‘그림자’다! 실체들의 삶은 ‘과잉’에 번민하지만, 그림자들의 나날은 ‘결여된 기본’으로 고통받는다.
그림자 노동의 어두운 현실
『나는 얼마짜리입니까』(6411의 목소리 지음, 2024, 창비)는 이 숨은 노동과 그림자 노동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이 책은 먼저 ‘멸시받는 고역’, 곧 청소노동, 배달노동, 대리운전, 건설노동, 이주자노동처럼 적어도 이름 정도는 붙어있는 노동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동시에 이름조차 없어 부를 수 없고, 드러날 수도 없는 노동, 그래서 법전에는 나오지 않는 노동, 관료들의 서류에는 적혀 있지 않은 노동의 이야기도 함께 담겨 있다. 자활노동자, 타투이스트, 웹툰작가, 유튜브 크리에이터, 프로축구 4부리그 선수, 번역가, 기숙학원 노동자, 도축검사원, 대리운전 노동자, 소설가, 헤어디자이너, 장애인 노동자, 사회복지사, 탈북민, 예능작가, 폐지수집노동자, 캐디, 고객센터 상담원, 간호조무사, 출판노동자, 방송작가, 독립공연기획자, 배우, 주차노동자, 동네서점 대표, 학교급식노동자 등 노회찬 전 의원을 비롯해 75명이 멍에의 삶을 차분한 어조로 그려내고 있다.

“의사협회는 국민의 안전을 핑계대며 타투법제화를 막아. 지지난달에는 의사협회가 타투합법화 저지 TF도 만들었더라. 부끄러운 줄을 몰라. 정작 병•의원에서도 타투를 하는 건 의사가 아니야. 당연히 우리 같은 비의료인이지.” “병•의원이 타투를 하면 더 큰 범죄가 돼. ...... 그래도 포기할 수 없나 보더라. 1조 원 규모의 어마어마한 시장이니까.”(p.23) 불법의료행위로 낙인찍혀 양심없는 의사들로부터 고발, 착취당하거나 악성고객의 신고협박으로 갈취당해 가면서 숨죽여 밥을 버는 타투노동자들의 얘기다.
“제가 속한 K4리그에서는 몇몇 선수를 제외하곤 거의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임금을 못받고 있습니다. 대한축구협회는 리그 규정을 통해 팀마다 최소 다섯 명의 선수와 최소 2천만 원 정도를 보장하는 연봉제 계약을 체결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 나머지 선수들은 수당제 계약을 하게 돼 훈련수당과 승리수당으로 생계를 이어가야 합니다. 경기에서 이기지 못할 경우에는 훈련수당만 받게 되니 어쩔 수 없이 다른 일을 함께해야만 생활할 수 있습니다.”(p.45) 화려한 K리그에 가려져 있는 4부 리그 축구선수의 현실이다. 필자는 자신이 ‘운동선수도 노동자’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 한다. 그래야 소득과 ‘일자리’가 안정을 찾으며, ‘근로조건’도 정상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에 드러난 건 유명 일타강사지만, 그 무대 뒤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메가스터디에만 1600 명이 넘는다. 내가 일하는 기숙학원만 해도 새벽 네 시에 출근하는 식당노동자, 여섯 시에 출근하는 미화노동자, 야간팀, 주간팀, 시설지원팀 등 80여 명이 있다. 미화팀은 월급 실수령액이 지난해 150만 원에서 올해 그나마 올라서 180여만 원이라고 한다. 일타강사와 소수 임원진 등을 제외하면 이곳이 6411 버스다.”(72~73) 부당노동행위를 고용노동부에 진정한 후 낙인찍기, 모욕, 괴롭힘을 받고있는 메가스터디 기숙사 노동자의 현장이다. 메가스터디의 연간수익은 1조원에 달하고, 일타강사의 연봉은 3백억원으로 추정된다.
“사료로 가득 찬 소의 장기는 상상 이상으로 거대하다. 성인 남성 몸무게 정도인 소의 장기를 매일같이 뒤집고 펼치고 들어올리기를 10년 넘게 반복한 결과, 왼쪽 어깨에 석회성 염증이 생겨 왼팔을 들어 올릴 수 없다. 나뿐만이 아니다. 불안정한 자세로 반복적인 업무를 하다 목, 허리 통증을 호소하는 후배들이 적지 않다. 그래도 오늘도 현장에서 허리를 숙이고 고개를 숙여가며 일한다. 몸이 망가져도 ‘공공기관직원’이라는 사명감으로 국민에게 위생적이고 안전한 축산물을 공급한다는 책임감으로 통증을 참아가며 근무한다.”(p.98~99) 정현호씨는 가축위생지원본부의 도축검사원이다. 무려 공공기관의 공무원인데, 승진도 없고, 상여금과 수당 모두 일반직과 차별대우를 받는 무기계약직이다. 그곳의 95%가 정씨와 같은 처지다.
“2차대전 전범기업이자 일본 3대 그룹인 미쓰비시 계열사인 아사히글라스는 지난 2004년 경상북도 구미시에 입주했다. 외국인투자기업으로 토지 12만평 무상 임대, 15년간 지방세 감면, 5년간 세금 면제라는 특혜를 받아 국내에 진출해 연평균 1조 원 매출을 올렸다. 그러나 아사히글라스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20분에 불과한 점심시간, 최저임금 수준의 적은 급여, 사소한 잘못에도 징벌조끼를 입고 일하도록 하는 인권침해, 잦은 권고사직 등 최악의 노동조건에서 일했다.” 필설로 다할 수 없는 부당노동행위와 파견법 위반으로 고발당한 아사히글라스는 그러나 대구지법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아사히글라스의 변호를 맡은 대형로펌은 태평양인데, 항소심 재판부 주심인 김아영 판사는 이 로펌출신이다. 이에 굴하지 않고 아사히 글라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9년째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다.
“오후 여섯 시부터 이튿날 아침 아홉 시까지 야간업무는 이용인 목욕부터 시작한다. 한명 두명 샤워실로 이동시킨 뒤 머리를 감기고 면도까지 일일이 도와주다 보면 온몸의 진이 다 빠진다. 씻기기가 끝나면 기저귀를 갈아주고, 재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오후 아홉 시가 취침 시간이지만, 모든 이용인이 잠드는 시간은 대략 밤 열한 시다. 이후로도 편히 쉴 수 없다. 중증장애인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밤새 수면 상태를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이렇게 모든 복지사가 ‘주주야휴’ 2교대로 근무하고 있는데, 수시로 뒤바뀌는 주간 야간 근무와 노동 강도를 생각하면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인지, 일하기 위해 사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 가운데 무엇보다 힘든 건, 여성 사회복지사로서 남성 성인 남자 이용인의 모든 것을 돌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목욕부터 기저귀 교체, 화장실 이용 뒤처리까지 여자인 내가 혼자 해내기란 체력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힘들 수밖에 없다. 한번은 물리치료와 병원치료를 앞두고 시간이 촉박해 장갑 낄 새도 없이 기저귀를 갈아 채웠는데, 집에 가서 보니 손톱 밑에 변이 끼어 있었던 적도 있다.”(p.166~168) 그 이름도 찬란한(!) 돌봄노동의 대명사격인 사회복지사 김보영씨가 겪고 있는 일상이다.
최재연(가명)씨는 서른 두 살의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그녀는 지금 한 대기업 계열사에서 재택근무로 일하고 있다. 그녀의 출근길은 일반인과 다르다. 거의 사투에 가깝다! 특수한 기구에 의지해 침대에서 겨우 몸을 옮긴 후 다른 사람의 손을 잡고 엉덩이를 조금씩 움직여 노트북이 있는 책상으로 간신히 출근(!)하는 것이다. “지금 직장에서는 엑셀 파일에 검색할 기사 제목과 인터넷 주소와 출처를 기록하는 단순 업무를 하고 있다. 1년 계약해 일했고, 얼마 전 재계약이 됐다. 그렇지만 주어진 1년이 지나면 또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막막한 생각이 든다. 정부나 기업들이 ‘장애인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밝힌 기사를 접할 때마다 묻고 싶다. ‘안정적 일자리를 만들 생각은 안 하시나요?’라고. 언제쯤이면 이 지독한 고용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177~178). 대기업은 ‘장애인 고용부담금’을 내지 않기 위해, 소기업은 ‘장애인고용지원금’을 타먹기 위해 장애인고용제도를 악용하는 듯하다.
김현우(가명)씨는 한때 식당을 경영하는 사장님이었지만, 코로나 사태로 지금은 망해 한 음식점에서 요리사로 일하고 있다. 그의 삶은 치열하나 그 결과는 녹록지 않다. “참호전”을 방불케 하는 엄청난 노동을 그곳에서 수행한다. “이렇게 하루 열네 시간씩 주말 포함해 주 6일 일하고 받는 월급은 실수령액 기준 250만 원가량..... 고만고만한 규모 동네 식당 노동자들 급여는 대개 2백만 원을 갓 넘는 수준이다. 최저시급이나 주 52시간 근로를 떠올려 보지만 현실과 괴리가 크다. 장사는 잘되는 편이지만 사장님은 ‘최저시급 때문에 자영업자들 다 죽게 생겼다’고 푸념이다.”(p.205~206)
“여름날 땡볕 아래서, 쏟아지는 빗속에서, 짙은 안개 낀 새벽에도, 한겨울 영하의 눈밭에서도 항상 같은 일을 한다. 그렇게 다섯 시간 동안 18홀을 돌고 나면 고객 한 명당 3만 2500 원씩, 수고비(캐디비) 13만 원을 받는다.”(p.212) 캐디 노동자를 위해선 따로 정해진 월급이 없다. 이런 게 모여 월급이 된다. 김리현씨는 캐디의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해 힘겹게 투쟁 중이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외친다. “대한민국은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서민들이 지탱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투쟁을 외치는 조합원이든, 생계를 위해 일하는 비조합원이든 모두 절박함이 있다. 약자의 눈물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삶에 대한 절박함이 있다. 마땅히 존경받고, 존중받고 싶은 간절함이 있다고”(p.216) 말이다!
“야놀자 콜센터는 충격적으로 더럽고 냄새나는 환경에, 에어컨도 잘 안 돌아가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하는 사람이 드물었어요. 밀려 있는 대기 고객이 너무 많아서 전화 연결되자마자 고객은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냐’고 소리를 질러대고, 관리자들은 2분 간격으로 ‘계속 콜 받으라’고 소리 질러요. 팀장 자리에는 퇴사 서류가 쌓여 있고, 한쪽에서는 그럴싸한 구인광고에 낚인 신입들이 교육을 받고 있었죠. 모든 사람이 쉬지 않고 소리를 질러대서 그런지 어느 날부터 이명이 들어서 그만뒀어요. 퇴사하고 우연히 유튜브에서 본 야놀자 본사는 정말 근사하던데, 자기들 대신 욕먹는 콜센터 화장실이나 한 칸 더 지어 주지, 싶더라고요.”(p.232) 고객센터 상담 노동자의 생생한 목소리다.
“20킬로그램짜리 쌀 포대부터 거대한 캠핑 물품, 1인용 소파, 당일 배송 아이스박스까지 물품도 다양하다. 어머어마한 물품들을 네 시간 동안 가려내어 옮기다 보면 어깨는 빠질 것 같았고, 발은 동상에 걸릴 듯 얼어붙었다. 택배 물량은 요일마다 달랐는데, 물량이 가장 많은 주중 이삼일은 3백 개를 훌쩍 넘을 때도 있었고, 상대적으로 물량이 적은 주 초반과 후반은 백 개가 채 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이 택배회사 노동자는 ‘월급’으로 백만 원 남짓 손에 쥐었다.
간호조무사가 되기 위해서는 의료기관에서 780시간 의료실습을 받아야 한다. 문제는 780시간 실습이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이 아니라, 온갖 허드렛일, 심부름 등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병원의 부족한 인력을 매꾸는 일을 하는데 ‘실습’이라는 이유로 임금도, 노동법의 보호도 받지 못한다. 그저 노예인 셈이다. 이에 소송을 제기한 간호조무사 임정은씨는 정부와 우리에게 외친다. “간호조무사 실습생은 정부가 허락한 병원의 노예가 아닙니다.”(p.254)
“일주일 가운데 일요일 하루만큼은 알람을 꺼놓고 잘 수 있지만, ‘혹시라도 요일을 착각해 당신에게 가지 않는다면?’하는 상상은 너무나 두려웠어요. 언젠가 일요일을 월요일로 착각하고 당신에게 달려간 적이 있어요. 새벽에도 늘 깨어 있는 보도국에 아무도 없어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일요일임을 확인하자 난 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죠.”(p.265)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의 연애담이 아니다. 10년을 이렇게 몸 바쳐 일하다 하루아침에 용도폐기된 MBC 방송작가 이현정씨의 ‘마봉춘 연가’다!
“무대에 서는 시간은 두 시간에 그칠지 모르지만, 그 두 시간을 위해 한 달, 두 달, 석 달씩 육체, 감정노동”을 하는 ‘배우 노동자’ 조영근씨의 시급은 최저임금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심할 경우 “공연 끝날 때까지 얼마 받고 일하는지 모를 때도 있어요. 사실 꽤 많은 곳이 그렇죠”(p.315). 연극이 가난한 예술이 아닌, 만드는 이도 보는 이도 마음이 풍요로운 예술이 되길 원하는 그는 독자와 함께 “창작자의 최소한의 삶이 보장되는” 소망을 공유하고 싶어 한다.
분단된 노동시장
연대는 어디 가고 차별과 배제만 남은 계룡대에서 비정규직 군무원 김호경씨는 탄식하고 말았다.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됐을까요? 2023년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은 자본과 정부가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자리다툼하고 있습니다. 정규직이 되기 위해서 죽을 둥 살 둥 스펙을 쌓고, 경쟁에서 이겨야 하며, 자리를 지키기 위해 비정규직을 용인합니다. 그리고 비정규직을 차별합니다. 그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신문이 바뀌자, 경쟁을 통해 된 것이 아니니 예전 비정규직만큼 대우하면 안 된다는 태도를 보입니다.”(p.320) 분단된 노동시장의 진면목이다.
“매년 10월이면 학교 축제가 열리는데 축제 세팅과 뒷정리는 우리 몫이었지요. 거기에 잔디밭 풀매기, 교수 사무실 이삿짐 운반, 외국인 교수 개인숙소 청소도 해야 했어요. 물론 이런 업무외 노동과 연장근무에 대한 보상은 전혀 없었지요.”(p.323) 이에 신라대 청소 노동자 박정옥씨는 노조를 결성해 ‘붉은 조끼’를 입었다. 10여 년 긴 투쟁 끝에 직접고용을 쟁취했지만, 학교는 노동 강도를 더 높였고, 최저임금의 굴레는 여전히 벗겨지지 않고 있다.
번역가는 실제 작업에 돌입하기 전, 원서를 네댓 번 꼼꼼히 읽어야 한다. 그리고 저자와 내통하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과감히 내던지고, 저자의 머릿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그는 정작 읽는 사람들에게는 잊히는 존재다. 더욱이 “작가보다 못한 존재”, “용이 못 된 이무기”쯤으로 폄하된다. 그러나 “번역가는 무엇이 못된 존재도 아니고, 번역은 무엇이 되기 위한 수단도 아니다.”(p.339) 번역가는 누구보다 가치 있고, 힘든 일을 강도높게 하고 있는 노동자일 뿐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노동자는 대부분 노동시장의 주변부에서 서성이고 있다. 경제적 약자인 셈이다. 이들이 경제적 약자인 이유는 배제되어 있으며, 무권리상태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곧, 경제적 약자는 사회적 약자이며 정치적 약자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이 ‘총체적 약자’들은 재난과 위기 상황에 가장 취약하다.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은 이들을 ‘차별적으로’ 강타했다. 자연재해라고 해서 만민에게 평등한 건 아니다! 공연예술노동에 종사하다 코로나19로 인해 생존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인디밴드의 베이스주자 안악희씨의 질문은 새겨들어 볼 만한 가치가 있겠다.
“대중에게 잘 드러나지 않지만 공연음악은 창조적인 한편 상당히 노동집약적인 분야다. 공연과 창작을 위해 적지 않은 숙련 기간과 오랜 학습이 병행돼야 하는데, 팬데믹은 이들의 일을 빼앗아갔다. 학교, 도서관, 카페, 박물관도 문을 닫아야 했다. 심지어 공원의 벤치에도 접근금지가 붙었다. 그러나 소위 ‘핵심 생산부문’이나 큰 기업들은 팬데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던 일을 지속했다. 모두가 강제당한 것이라 생각했던 거리두기에서 누군가는 ‘예외’였다. 이름난 대기업 중 팬데믹으로 도산에 가까운 위기를 맞이한 곳이 있다는 뉴스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음악인들도 팬데믹을 함께 이겨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공연장과 음악인들은 사실상 2년간 셧다운 상태였다. 우리의 존재와 활동은 ‘삭제’됐다. 누구를 버리고 가자고 정한이는 누구일까? 모두가 견딜 줄 알았는데 버려진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p.361) ‘모든’ 사회구성원이 고통받지는 않았던 것이다.
경증 청각장애로 인해 평생 원치 않은 유목민의 삶을 살아야 하는 문세경 사회복지사의 유랑생활을 들여다 보자. “연말이면 계약이 종료되고 연초엔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불안한 노동자로 산 지 10년이 돼간다. 2015년에는 뉴딜일자리 아동독서멘토링 지도(10개월)를 시작으로 2016년부터 2018년까지는 단기 아르바이트로, 2019년에는 수도사업소 수질검사원으로(8개월), 2020년엔 여성인력개발인력 홍보마케터로(10개월), 2022년엔 50플러스센터 중장년 인턴으로(6개월), 국립공원공단사무소 직원 식당 조리원으로(3개월) 일했다. 7개월짜리 공공일자리는 계약 종료일까지 이제 한 달 반 남았다...... 계약기간은 평균 8개월이다. 12개월은 절대 넘지 않는다. 12개월 이상 근무하면 퇴직금을 줘야 하니까.”(p.369) 이보다 고용불안정의 뜻을 잘 알려주는 얘기가 세상에 또 있을까!
동료시민의 고통에 연대하는 진보
‘그림자 노동자’들은 이 책에서 자기 안에 품고 있던 기쁨과 아픔, 싸움과 패배, 그리고 희망과 절망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지은이들은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이들의 목소리에서 관심과 연대의 목소리를 들었다. ‘진보 여러분, 우리 목소리를 듣고 힘을 보태 주세요. 그리고 손 내밀어 주세요.’

우리는 비록 멸시받아 은폐되고 있지만, 바로 이 ‘고역’ 덕분에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유지되고, 이 거대한 세상이 촘촘히 떠받쳐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오로지 이 노동 덕분에 우리의 삶과 노동도 유희가 되는 것이다. 무위도식과 도박은 어마어마한 ‘과잉보상’을 받지만, 이토록 유용하고 기여도가 높은 고역이 ‘기본에 한참 못미치는 보상’을 받게 되는 세상은 실로 기이하다.
승자와 악인들의 투쟁사는 반전과 박진감이 넘쳐 재미가 있다. 하지만 그림자와 평범한 이의 생활은 지루하다. 그 지루함의 끝마저도 기대할 게 없다. 하지만 나의 재미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재미를 함께 나누는 것도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절규와 비탄에 연대하기 위해서라도 읽어야 할 책이다. 진정한 진보는 나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것 못지않게, 타인, 더욱이 약자의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한다. 이건 진보가 짊어져야 할 마땅한 의무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진보는 이렇다. 그들의 노동도 즐거워야 한다!

글·한성안
문화평론가. 경제학자. 영산대학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좋은경제연구소장'으로 활동하면서 집필, 기고, 강연 중이다. 페이스북과 블로그를 통해 진보적 경제학을 주제로 시민들과 활발히 소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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