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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주의 문화톡톡] 형제 이야기
[김창주의 문화톡톡] 형제 이야기
  • 김창주(문화평론가)
  • 승인 2024.08.12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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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좋은 형제

동화 의 좋은 형제의 뿌리를 거슬러 가면 창세기의 두 형제 이야기에 닿는다. 가인과 아벨에 관한 일화다. 최초 부부 아담과 하와에게 두 아들이 태어난다. 둘은 각각 농부와 양을 치는 목자가 되었다. 갈등은 우연한 계기로 촉발된다. 둘은 생업대로 추수한 곡식과 기르던 양의 첫 새끼를 하느님께 드렸다. 하느님은 아벨의 제사를 받고 가인의 제물을 거두지 않았다. 왜 아벨이 선택되었는지 아무 설명이 없다. 이 사건으로 가인은 분개하며 급기야 아우를 죽인다. 인류 최초의 살인은 형제살해(fratricide). 형제살해는 자연계에서 흔한 현상이며 사람의 경우 교묘하다. 예컨대 15세기 오스만 제국은 법적 후계자를 제외한 모든 남성을 잠재적 경쟁자로 간주하고 살해하는 법을 제정하기도 하였다. 합법을 가장한 것이다.

 

가인에게 아벨은 부모를 사이에 두고 비교와 경쟁 대상이다. 형제 사이의 긴장과 갈등은 자연스럽다. 둘은 경쟁의 필요조건이자 갈등의 충분조건이다. 형제 사이의 다툼이 언제 어디서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이렇듯 잠재적 힘겨루기와 배타적 틈새에서 부모는 자녀들의 우애를 틈나는 대로 강조한다. ‘형제란 어려울 때 돕는 것이다’(잠언 17:17). ‘형제가 어울려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시편 133:1). 순자(荀子)의 관찰대로 현실에서 돈독한 우애를 찾기 어렵기 때문에 사람들은 의 좋은 형제를 추구하며 이상으로 내세운다. 탈무드와 이솝 우화 등에서 확인하듯 사이좋은 형제 이야기는 인류 보편적 가치이자 훌륭한 교훈 소재다.

 

에덴의 동쪽

미국 소설가 존 스타인벡의 작품이다(1952). 작가의 노트에서 밝힌 대로 창세기 에덴의 동쪽을 따온 것으로 동명의 미국 영화(1955), TV 장편 드라마(1995), 뮤지컬(1991), 연극(2015), 한국 드라마(2008), 일본 애니메이션(2009) 등으로 익숙하다. 소설 제목 에덴의 동쪽은 중의적이다. 지리적으로 소설은 미국 동부 코네티컷과 매사추세츠에서 벌어진다. 초창기 미국 이민자들에게 신대륙은 에덴동산이었다, 스타인벡은 에덴의 동쪽을 소설의 출발 지점으로 삼았다. 전체 55장 중 처음부터 14장까지 주요 무대다. 정신적으로 에덴의 동쪽이란 창세기의 처음 이야기에 기반하고 있듯 형제 사이에 벌어지는 인간의 욕망과 갈등이 얼룩진 곳을 반영한다. 스타인벡은 트래스크 가()3대에 걸친 형제의 긴장과 연민, 사랑과 용서 등을 긴 호흡으로 서술하였다, 할아버지 사이러스의 두 아들 찰스와 아담, 또한 아담의 두 아들 갈렙과 아론으로 이어지는 두 형제 이야기가 세대를 넘어 계속된다.

 

창세기에서 에덴의 동쪽(קִדְמַת־עֵדֶן)은 가인이 아우 아벨을 살해한 대가로 추방당한 곳이다(창세기 4:16). 따라서 에덴의 동쪽은 살인자의 유배지처럼 한동안 각인되어왔다. 사실 가인의 부모 아담과 하와 역시 선악과를 따먹은 후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창세기 3:23-24). 그들은 에덴동산 밖에 머물게 되었고, 하느님은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과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로 향하는 길을 막았다. 인류의 조상은 두 세대에 거쳐 에덴의 동쪽에 유배된 역사를 안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에덴동산 동쪽에덴의 동쪽을 범죄자의 생활공간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더구나 가인의 경우 살인한 후 쫓겨나 살게 된 공간이기 때문에 에덴의 동쪽에 대한 부정성이 강화되었다. 그러나 스타인벡은 에덴의 동쪽을 형벌의 장소가 아니라 에덴동산 이라고 주장한다. 정작 가인의 형벌은 ’(נוֹד), 곧 정주할 수 없는 떠돌이 삶이며, ‘방황이란 뜻이다.

 

에덴의 동쪽에 덧씌워진 부정적 이미지는 지금껏 기독교의 교리적 해석에 기인한다. 하느님의 명령에 대한 불순종과 살인의 결과로서 마땅한 징벌이라는 견해다. 사실 가인의 입장과 서사적 맥락에서 살펴보면 자연 질서와 생명의 평화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다고 해서 결코 절망스러운 판결로 보기 힘든 측면이 있다. 왜냐하면 에덴에 동쪽에서 마주할 위협과 불안한 상황에 대비하여 하느님은 생명의 안전과 기본적인 안내를 해주었기 때문이다. ‘에덴의 동쪽에서 중요한 것은 아침 해가 떠오른 곳에 대한 은유다. 스타인벡은 이 점을 파고든다. 아래는 소설 에덴의 동쪽과 창세기의 두 형제를 비교한 것이다.

 

에덴의 동쪽1: 찰스와 아담

창세기: 가인과 아벨

에덴의 동쪽2: 갈렙과 아론

찰스는 아버지 사이러스로부터 상당한 재산을 물려받지만, 여전히 열심히 땅을 일군다.

가인은 농부가 되었고, 아벨은 양치기였다 (4:2).

갈렙은 콩 농사에 힘을 쏟고 아론은 사제의 길을 준비한다.

사이러스는 찰스의 비싼 칼보다 아담이 준 유기견을 더 좋아한다.

하나님은 아벨의 첫 새끼를 받고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는다(4:3).

아담은 갈렙의 돈을 반기지 않고 아론처럼 착하게 살라고 잔소리한다.

거절감을 느낀 찰스는 아담을 심하게 폭행한다. 찰스가 도끼를 가지러 간 사이 아담은 가까스로 탈출한다.

가인은 화가 나서 아벨을 죽인다(4:8).

아버지의 거부에 갈렙은 아론에게 어머니가 매춘부라고 폭로한다. 충격에 아론은 자원하여 입대한다.

찰스는 바위를 옮기려다 이마를 다쳐서 검은 흉터가 생긴다.

하느님은 가인에게 표식을 주어 살해를 면하게 한다(4:15).

아담은 갈렙에게 너는 죄를 다스릴 수 있다는 뜻으로 팀셀을 언급한다.1

아담의 두 아들은 사실 찰스의 친자일 가능성이 크다.

인간은 모두 가인의 후예.

아론은 전사하고, 갈렙이 자녀를 낳아 가문을 잇는다.

 

스타인벡의 팀셀(חִּמְשָׁל)은 소설에서 에덴의 동쪽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다.2 왜냐하면 에덴의 동쪽이 범죄자로 낙인찍힌 자의 제한된 공간이 아니라 하느님이 동쪽이 어디인지 안내하였을뿐더러 작가가 여러 차례 팀셀을 언급함으로써 인간의 내면에 꿈틀거리는 사악한 본성을 알아차리고 극복할 수 있도록 갈렙을 다독이는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동쪽(קֶדֶם)

성서의 에덴은 단지 이상적인 공간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 3월 호에 소개한 <에덴동산>을 참조하라. <“에덴le Mond diplomatique 2024.3 참조.> 이 논의는 동쪽에 초점이 있다. 모든 생명체는 본능적으로 태양의 빛과 열에 반응한다. 따라서 사람은 해가 뜨는 곳을 중요시했고 동쪽을 삶의 기준으로 삼았다. 특히 고대 히브리인들에게 동쪽은 단순히 네 방위 중의 하나가 아니다. 아침의 해가 올라오는 곳으로 새로운 시작과 관련된다. 예컨대 베들레헴에 예수가 태어날 때 동방’(άνατολή)의 박사들이 찾아왔다(마태복음 2:1). 한편 아브라함은 서자들에게 재산을 분배하며 이삭을 떠나 동쪽으로 가서 살게 한다(창세기 25:6). 특히 이스라엘에서 동쪽은 성막의 제작과 예루살렘 성전 건축(955 B.C.E.)에서 중요한 기준이자 방향이 된다. <초기 교회와 일부 기독교에서 동향(東向) 건축을 전승해왔다> 지어 유대인들이 뿌리를 내려 사는 곳이면 어디나 동쪽에 맞추어 회당을 건축하였다.

 

위 그림은 중국 개봉시에 세워진 유대교 회당의 스케치(1722). 기록에 의하면 청진사(淸眞寺)는 성막의 구도대로 1163년 건축된 디아스포라 회당이다. 아래쪽 숫자 1이 적힌 문이 동쪽이며 출입구로 예배 방향은 서쪽이다. 유교 사당과 흡사하나 훨씬 공간이 넓고 입구의 세 겹 구조가 눈에 띈다. 예루살렘에서 수천 리 떨어진 중국의 유대교 회당에서도 동쪽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다.

 

오리엔트/ 오리엔테이션

이쯤에서 오리엔트(Orient)라는 개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흔히 동양을 오리엔트라고 일컫는데 라틴어 오리엔스(oriens)에서 비롯되었다. 히브리어 케뎀(קֶדֶם), 프랑스어 레반트(Levant), 러시아어 보스톡(Boctok), 그리스어 아나톨레(άνατολή), 한자어 동()은 모두 일출과 관련된다(창세기 32:32; 신명기 33:2; 시편 104:22; 이사야 60:2).3 해가 뜨는 곳을 지칭하는 라틴어 오리엔트에서 오리엔테이션이 파생되었다. 지금은 오리엔테이션이 외래어가 아니라 일반명사처럼 쓰인다. 사전적으로 방향제시나 성향을 뜻하며 보통 새내기를 위한 안내 및 설명회를 가리킨다. 성전 건축에서 간혹 예루살렘 방향을 가리키는 전문적인 술어처럼 활용되기도 한다. 그 핵심은 해가 올라오는 쪽으로 성전 입구를 지칭한다(민수기 3:38; 에스겔 11:1; 43:4). 여기에 가인이 동산을 떠나 에덴의 동쪽에 살았다는 실질적인 의미가 미래적 시점으로 제시된 것이다. 히브리어 동쪽이 동사 카담(קָדַם)으로 쓰이면 마주하다, 앞에 서다, 만나다는 뜻이다. 그러니 가인에게 에덴의 동쪽이란 미지의 공간에서 그가 새로 마주할삶을 위한 안내, 곧 오리엔테이션이란 의미다.

 

에덴동산 동쪽이나 에덴의 동쪽은 둘 다 하느님이 직접 창조한 최초 이상적인 공간이 아니라는 점에서 불순종과 살인의 결과다. 그렇다고 알카츠라 섬이나 시베리아 형무소 같은 고립무원의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하느님은 그곳에서도 가인과 인류에 대한 배려심을 잃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가인을 에덴의 동쪽에 살게 하였다는 것은 삶의 최소 조건, 또는 기본적인 안내를 포함한다. 이를테면 오리엔테이션이다.

 

헤테로토피아

푸코의 개념을 빌면 에덴의 동쪽은 헤테로토피아(hétérotopie).4 균질한 에덴에 비하여 에덴의 동쪽은 이질적이고 폐쇄적인 공간이다. 그곳에서 가인은 자신을 숨기며 보호하고 떠돌아다닐 것이다. 유토피아의 일상과 질서가 정지한다. 대표적으로 아이들의 놀이터, 정원, 박물관, 클럽, 영화관, 휴양지, 묘지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헤테로토피아는 흐르는 시간 속에 생성하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제한된 곳에서 작동하고 특정 부분이나 시간이 파편처럼 느껴진다. 따라서 헤테로토피아는 삶을 정화하거나 중화하는 공간으로 작동한다.

 

푸코에 의하면 유토피아 에덴의 균질적인 이상이 가능한 것은 이질적이며 파괴적인 대척점 헤테로토피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헤테로토피아가 없으면 일상 또는 유토피아의 의미를 찾을 수 없고 희망도 가질 수 없게 된다. 에덴의 동쪽은 물리적 공간이라기보다는 에덴동산의 논리와 문법이 통용되지 않는 곳이다. 태초에 아담과 하와가 누리던 삶의 공간 에덴에서 보자면 균질한 에덴의 평화와 질서가 무너진 가인의 현실이다. 두 형제의 이야기는 헤테로토피아에서 계속된다. 우리는 가인의 후예. 우리 역시 에덴의 동쪽에 살아간다.*

 

 

1. “죄가 너를 지배하려고 한다. 너는 그 죄를 잘 다스려야 한다”(창세기 4:7 <새번역>). 정확하게는 ‘팀셀’보다 ‘팀숄’이며 갈렙의 사악한 마음을 극복하도록 격려하는 말이다.
2. Daniel Levin, "John Steinbeck and the Missing Kamatz in East of Eden: How Steinbeck Found a Hebrew Word but Muddled Some Vowels." The Steinbeck Review 12, no. 2 (2015): 190–98를 보라. https://doi.org/10.5325/steinbeckreview.12.2.0190.
3. 한편 옥시덴트(Occident)는 ‘지다, 내려가다’는 라틴어 occido에서 왔다. 아시아는 아카드어 (w)aṣû(m), 페니키아어 asa에서 비롯된 것으로 ‘밖으로 나가다, 오르다’ 등을 뜻하며 역시 태양이 뜨는 쪽을 가리킨다. 한편 유럽은 아시아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들어가다, 지다’를 뜻하는 아카드어 erēbu(m)와 관련된다. 그리스 신화에서 아시아(Άσίη)는 프로메테우스의 아내, 요정, 또는 리디아의 타이탄 여신을 뜻한다.
4. Peter Johnson, "The Geographies of Heterotopia," Geography Compass 7 (Nov. 2013): 790–803.

 

 

글·김창주
한신대 신학부 교수. 히브리 유산을 인문학으로 푸는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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