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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의 문화톡톡] 켄 로치 감독이 소환하는 타자들, 그들은 무엇으로부터 소외되고 어떻게 연결되는가?
[김소영의 문화톡톡] 켄 로치 감독이 소환하는 타자들, 그들은 무엇으로부터 소외되고 어떻게 연결되는가?
  • 김소영(문화평론가)
  • 승인 2024.08.19 1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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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한 촬영 기법이나 편집의 기교 없이 사회적 리얼리즘(Social Realism) 영화를 제작해 온 켄 로치(Ken Loach) 감독은 노동자의 일상, 빈민 계급, 난민 문제 등을 다루어 왔다. 잘 알려진바, 그의 영화는 프레임을 가득 채우며 시작되는 검은 화면이 인상적이다. 인물이나 배경을 보여주는 시각이미지 없이 보이스 오버(Voice Over)로 시작되는 도입부는 언제나 몰입을 강화한다.

 

영화 '나의 올드 오크' 스틸 컷 @ 네이버 영화 포토
영화 '나의 올드 오크' 스틸 컷 @ 네이버 영화 포토

특히 <나, 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ke)>(2016), <미안해요, 리키(Sorry We Missed You)>(2019), <나의 올드 오크(The Old Oak)>(2023)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타자를 소환하면서도, 그들과 얽힌 또 다른 타자와의 얽힘을 통해 공생을 말한다. 또한 이 작품들에서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 현장과 사회적 모순을 함께 관찰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세 영화를 통해 감독이 던지는 현실의 성찰과 영화적 사유에 다가가 보자.

 

개인과 집단의 충돌, 기술 사회로부터의 소외

<나, 다니엘 블레이크>, <미안해요, 리키>, <나의 올드 오크>는 단순히 소외된 독립적 타자의 삶에 집중하지 않으며, 개인이 속한 현대사회를 영화적으로 재구성한다. 먼저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지병으로 인해 노동할 수 없게 된 다니엘이 실업 수당과 노인 연금을 받으려 애쓰는 일상을 추적한다. 그러나 모든 절차는 온라인 시스템을 통해 이루어지며, 전화나 대면 상담 역시 만만치 않다. 때로는 주위의 도움을 얻어 컴퓨터를 사용해 보지만, 언제나 실패하고 만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다니엘이 노동으로부터 소외된 이유가 단지 개인적인 상황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디지털 기술로 재편된 현대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이로 인한 기술적 소외는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하는 노인이라는 정체성을 넘어, 기술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을 대변하는 인물인 것이다.

이러한 기술 사회의 구조적 모순은 <미안해요, 리키>에서 다른 방식으로 재조명된다. 가장으로서 강한 책임감을 지닌 리키가 선택한 직업은 택배 기사이다. 그런데 택배를 나르는 업무와 회사 시스템은 디지털 기술 중심의 노동 현장을 적나라하게 반영한다. 높은 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물량을 배달해야만 한다. 그뿐 아니라 배달하는 동안의 행동이나 물건이 인수된 시간 등, 리키의 모든 일정은 손에 쥔 작은 기계장치에 기록되고 그것에 의해 지배된다. 그가 노동하는 모든 공간을 따라가노라면,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의 판옵티콘(panopticon)에 관한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해석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리키가 위치한 모든 영화적 공간이 디지털 판옵티콘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영화 '미안해요, 리키'의 스틸 컷 @ 네이버 영화 포토
영화 '미안해요, 리키'의 스틸 컷 @ 네이버 영화 포토

두 영화와는 조금 다른 양상이지만, <나의 올드 오크>는 기술 사회로 진입하지 못한 영국의 어느 탄광촌이 등장한다. 이 영화의 주된 공간인 ‘올드 오크’는 주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그들의 일상을 나누는 일종의 안식처로 기능한다. 그곳은 주민들에게 물리적 공간을 넘어, 마을의 역사와 주민들의 삶이 축적된 상징적 장소인 것이다. 같은 마을에서 오랜 기간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취향이 맥주잔과 함께 부딪히는 곳, 달리 말해 공동체를 유지해 온 사회적 공간인 셈이다.

 

영화 '나의 올드 오크' 포스터 @ 네이버 영화 포토
영화 '나의 올드 오크' 포스터 @ 네이버 영화 포토

하지만 영화 제목에서도 나타나듯, 동네 펍인 ‘올드 오크’는 그야말로 올드해지고 있다. 목조식 건축물의 전기가 끊어지거나 방수가 되지 않는가 하면, 간판조차도 덜렁거린다. 가게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양상들은 키오스크로 주문해야 하는 디지털 시대의 레스토랑과는 거리가 멀다. 이처럼 아날로그식 마을은 디지털 사회에서 멀어져만 간다. 그런데 어느 날 그곳에 낯선 타자들인 난민이 도착한다. 감독은 늘 그래왔듯, 불현듯 나타난 타자를 건조한 프레임으로 재현한다. 그러나 난민인 야라를 환대하는 원주민 티제이를 통해 리얼리즘과 휴머니즘을 함께 성취해 낸다.  


소외된 타자들의 사회적 얽힘

사회적 리얼리즘 영화를 제작하는 감독인 만큼, 그가 소환하는 주인공은 소외된 타자들이다. 그러나 그들 곁에는 또 다른 타자들이 존재한다. 다니엘 곁에 나타난 케이티, 리치를 보호하려는 가족들, 그리고 야라를 보살피는 티제이. 이들에게 주체와 타자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그들 모두가 사회로부터 소외된 타자들이지만, 서로에게 도움이 되려는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타자들이다. 다니엘과 케이티도, 리치와 그의 가족들도, 야라와 티제이도, 이들은 모두 상호 배려와 협력을 통해 공생으로 나아가려 하기 때문이다.
 

영화 '나의 올드 오크' 스틸 컷 @ 네이버 영화 포토
영화 '나의 올드 오크' 스틸 컷 @ 네이버 영화 포토

이처럼 로치 감독이 한 개체로서 소외된 타자만을 프레이밍하지 않고, 그들 주변에 또 다른 타자들을 위치시키는 이유는 무엇인가? 심지어 소외된 타자들로 말이다. 주지하듯 인간은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다. 그렇기에 인간 존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인간다움의 빛을 발할 때이다. 그 인간다움의 빛은 주체와 타자의 공생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완성된다. 세 작품에서도 모든 등장인물이 사회적으로 소외되어 있지만, 자본의 소유나 계급의 상하를 넘어서는 이해와 소통이야말로 궁극적인 사랑의 성취임을 보여준다.

 
영화 '미안해요, 리키'의 스틸 컷 @ 네이버 영화 포토
영화 '미안해요, 리키'의 스틸 컷 @ 네이버 영화 포토

다니엘의 지속적인 절망과 갑작스러운 죽음, 멍투성이인 채 다시 일하려고 운전대를 잡은 리키, 그리고 여전히 난민으로 살아야 하는 야라. 비록 스크린을 통해 투영된 그들을 그저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답답함. 이 묵직한 짓누름을 자제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로치 감독의 영화에는 그것 이면에 다른 무언가가 공존한다. 정작 본인이 더 힘든 상황임에도 다니엘을 끝까지 보살피려 했던 한 여인, 리키가 일을 하지 못하도록 온몸으로 차를 가로막는 가족들, 그리고 야라를 환대하는 티제이와 그녀의 슬픔을 함께 애도하는 주민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기에 소외된 타자들의 미래는 막막하지만 한편으로는 안도하기에 이른다. 소외된 타자가 결코 홀로 있지 않음에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공생을 향하여

관객은 사회적 리얼리즘 영화를 보며 심미적인 시청각적 이미지보다 현실에 대한 감독의 비판적 의도를 파악하기 마련이다. 로치 감독은 가장 직설적인 작법으로 사회적 모순을 고발한다. 따라서 그가 재단해 낸 영화적 현실은 스크린에 머무는 가상적·미학적 이미지의 경계를 지나, 현실의 영역으로 침범하는 역동적·실천적 이미지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의 작품은 영화적으로 재구성된 공간과 현실의 물리적 공간이 넘나들며 관객의 사유를 추동하는 능동적 예술인 것이다. 

그러나 소외된 타자들끼리의 공생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물론 로치 감독도 영화 속 소외된 타자들 간의 배려와 환대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그의 영화적 목소리는 여러 방식을 통해 스크린 밖의 관객을 향해 분명하게 외친다. 다니엘이 벽에 쓴 저항의 텍스트뿐 아니라 그가 사망한 후 케이트의 낭독을 통해, 현대사회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비자발적 소외와 그 책임을 바로 우리에게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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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필자의 논문 「다르덴 형제와 켄 로치 감독의 ‘노동 영화’ - 자크 엘륄의 변증법적 사상으로 해체하기」, 『현대영화연구』 Vol. 52, 2024 중 일부 내용을 반영하였음을 밝힌다.

 

 

글·김소영
문화평론가. 한국외국어대학교 학술연구교수 겸 서울사이버대 객원교수. 한국영화학회 국제학술상임이사. 현재 홍익대학교에서 <영화의 이해>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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