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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그녀가 <그녀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그녀가 <그녀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 송영애(영화평론가)
  • 승인 2024.09.09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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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포스터

가끔 많은 관객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영화가 있다. 오는 9월 11일 개봉 예정인 이상철 감독의 <그녀에게>도 그렇다.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통해 미처 몰랐거나, 오해하고 있는 현실을 만났으면 한다. <그녀에게>는 자신만만하던 신문사 정치부 기자 상연(김재화)이 장애아 엄마가 되면서 겪은 10년을 담아낸 영화다. 류승연의 에세이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을 원작으로 실제 류승연 작가의 이야기가 바탕이 됐다.

<그녀에게>는 실화의 힘도 크지만, 그녀(상연)의 감정과 주변 상황에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하는 영화적 힘도 크다. 생각할수록 고민이 커지는 주제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우울하고, 비관적이지 않다. 충분히 현실적으로 희망적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힘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 그녀는 누구인가? 

처음 영화 제목을 듣고는, 단순히 우리말 제목이 같다는 이유로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그녀에게>(2003)가 떠올랐다. 물론 두 영화는 전혀 다른 영화다. 장르, 주인공, 세계관, 스타일 등등이 모두 다르지만, 그중에서도 이야기를 끌어가는 시점은 더 다르다. 알모도바르 감독의 <그녀에게>에서 그녀는 주인공 남성이 바라보는 대상화된 그녀라면, 이상철 감독의 <그녀에게>에서 그녀는 이 세상을 바라보는 주인공 그녀이다.

이상철 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원작에 있는 소제목 ‘아이의 장애를 알게 된 그녀에게’에서 영화 제목을 따 왔다고 밝혔는데, 제목 그대로 영화는 오롯이 그녀들에게 집중한다. 공개된 포스터를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위 포스터) 거리의 상연과 지우(빈주원) 모자는 고립되어 딴 세상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아래 포스터) 지우와 주변보다는 상연에게 초점이 맞춰 있다.

 

<그녀에게> 포스터

상연은 결혼, 출산, 승진 등 촘촘하게 계획한 미래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던 정치부 기자였다. 어렵게 얻은 쌍둥이 남매 중 막내 지우가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는 순간 그녀는 전혀 계획하지 않았던 현재를 살게 된다. 자신만만하던 그녀는 ‘미안합니다.’란 말이 수시로 튀어나오는 장애아 엄마가 된다. 그렇다고 이전 상연의 모습이 다 사라지는 건 아니다. 딸 지수(이하린), 지우의 학교생활을 위해 전략을 짜고 움직이지만, 편견, 이기심, 그리고 자격지심이라는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여 만만치 않은 현실이 펼쳐진다. 남편 진명(성도현)과도 늘 같은 마음일 수는 없다. 가족, 친구, 동료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마냥 비관적이지는 않다. 그들은 모두 조금씩 변화하고 성장한다.

 

- 나는, 우리는 누구일까?

<그녀에게>는 관련 법이나 제도 개선을 외치는 투사가 등장하고, 극적인 사건 사고가 터지고, 사이다 해결로 마무리되는 영화는 아니다. 그렇다고 마냥 답답하고, 우울한 건 아니다. 분명한 건 모두가 조금씩 성장하고, 함께 한다는 것이다. <그녀에게>에선 그런 가능성을 보여준다. 위 두 포스터가 상연 모자의 고립감, 상연의 외로움을 따뜻한 색감으로 보여준 것과도 비슷하다.  

영화 전체적으로도 따뜻한 색감이 유지된다. 덕분에 마냥 우울하지 않다. 중간중간 유머 코드와 울컥 코드도 등장하는데, 지나치게 극적이거나 자극적이지도 않다. 실화의 힘일까? 일상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웃음과 울음 모두가 촘촘하게 배치됐다.

영화 내내 상연이 창밖을 바라보는 뒷모습이 여러 차례 나오는데, 관객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녀의 시선에서 세상을 느끼면서, 그녀와 그녀 주변의 변화도 지켜보게 된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진다. '나는 상연에게 당혹감이나 수치심을 주는 사람일까? 지원군일까? 아니면 방관자일까?' 실화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상황들, 섬세한 감정들이 가득한 이 영화를 통해 나 자신도 돌아보게 된다. 장애인, 장애인 가족들과의 공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녀에게>는 바다에서 시작해 벌판에서 끝이 난다. 마지막엔 또 다른 이의 시선도 느낄 수 있다. 영화 안 그녀의 변화, 그녀 주변 사람들의 변화가 영화 밖 나, 우리, 세상의 변화로도 이어지길 바란다. 

 

이미지 제공: 영화로운형제/애즈필름

 

 

글·송영애
영화평론가. 서일대학교 영화방송공연예술학과 교수. 한국영화 역사와 문화, 교육 관련 연구를 지속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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