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우리 사회는 명가, 명인, 명품에 특히 많은 관심과 그 대상이나 상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것 같다.
명가(名家)는 일반적으로 이름난 가문을 뜻한다. 또는 국가나 사회에 커다란 기여나 공헌을 한 가문, 혹은 다른 가문과 비교해 특별함이 있고 대대손손 이어 오는 고유한 전통, 역사, 기술 및 특출난 무엇인가가 인정되는 가문을 “명가” 라 부른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의 명가는 주로 오랜 전통과 방식을 이어온 특별한 맛집을 이야기 하는 경우도 있다.
명인은(名人)은 보통 어떤한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 그만이 가지고 있는 모방하기 어려운 비법이나 기술, 그리고 오랜시간과 노력으로 그만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명품(名品)은 사전적 의미로 오랜 기간 동안 사람들 사이에서 사용되며 상품적 가치와 경제적인 가치를 인정받는 고급품을 일컫는다. 뛰어나거나 이름난 물건 또는 그런 작품 또는 예술품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종종 같이 사용되는 비슷한 단어인 명작(名作) 또한 많은 이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을 만큼 빼어난 작품을 지칭하는 말한다. 그러나 뛰어난 작품이라도 기술적인 측면에서 뿐만아나라 그 작품이 가지는 가치가 시절과 세월을 거치고도 오랜 시간 변하지 않는 작품을 명품 혹은 명작 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라 사료 된다. 보통 명품들은 오랜시간이 지났음에도 현재의 기준으로 보아도 그 가치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에서의 명품의 의미가 우수한 작품 보다는 특정 고가의 가방류, 자동차, 보석류 등을 지칭하는 것으로 변모된 것은 소셜 미디어와 상업주의의 영향때문일 것이라 사료 된다. 그래도 명품은 작품이든 상품이든 품질과 명성, 가치 모두를 지닌 작품이라는 시각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SNS의 맛집
요즘 여행을 가거나 외지를 가게 되면 그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거나 그 지방에서만 살수 있는 물건을 사고 싶어하는 것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소위 “검색”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미 경험했던 많은 사람들의 평가 및 평점을 보고 갈 곳과 살것, 먹을 것을 결정하는 경우가 다반사 일 것이다. 나도 그런 절차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SNS에서의 평점과 평가로 유명한 곳이라도 별로 만족 스러움을 느끼지 못한 경험도 누구나 한,두번은 있을 것이다.
현대인들은 SNS(Social Networking Service)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도 드물 것이고 많은 궁굼증과 정보를 우리는 검색이라는 간편하고 신속한 기술을 활용하여 충족하고 있다. 어느 학자의 말처럼 현대의 인재는 지식과 학벌로 기준 할 것이 아니라 미디어 매체를 유능하게 이용하고 많은 연결망과 관계를 형성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예측에 큰 공감을 하게 된다. 이미 집단 지성의 형성으로 언제나 어느 장소에서나 다양한 지식과 다량의 정보를 사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정보의 수준과 질의 정도가 어떠한가에 달려 있을 뿐이다.
SNS에서 유명한 곳은 그야말로 무슨 성지 순례를 하는 것 처럼 꼭 가야 되는 것으로 인식할 뿐만 아니라 인증까지 해야만 하는 것이 하나의 절차로 자리잡고 있다. 찾아가서도 몇시간 줄을 서서 기다리게 되는 경우도 많다. SNS에서의 정보와 경험에 동참하지 못하면 현대인이 아니거나 뒤처진 사람 같은 기분이 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찿아간 그 SNS의 명가는 더 이상 명가가 아닌 것이 문제이다. 예를 들어 하루 100여분의 음식을 하는 맛집이 있는데 그 집은 주인과 두세명의 일을 거드는 사람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하루 만들 수 있는 음식을 위한 재료의 양과 그것의 신선도와 위생을 지키기 위한 보관 장소, 그리고 그것을 다듬고 손질해야 하는 시간과 인력이 이미 시스템화되어 효율적이고 순조롭게 운영되고 있는데 갑자기 많은 사람이 몰리게 되면 그 리듬과 방식이 달라질 것이고 한번에 가능한 조리의 시간과 화력, 요리기구의 크기가 또 달라질 것이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맛집이 가지고 있던 절차나 특성을 소홀히 하게 되고 맛과 방식과 많은 것들의 변질? 이 초래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SNS의 소문난 맛집은 얼마간의 호황을 누리다 점차 외면당하고 관심에서 멀어지며 찾지 말아야 될 집으로 SNS에 다시 소개 될 수도 있게 되어 버린다. 유행의 소용돌이에 갑자기 휘감기는 것처럼 오랜시간의 노력과 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만들어낸 맛집의 비결과 특성은 그 가치를 지속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소문 만큼 대단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그저 그런 집으로 명성을 잃어가고 일시적인 몰림을 소화하기 위한 신체적, 정신적, 물리적 무리함으로 자신마져도 잃게 되는 위험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전통과 역사, 가치
명가는 그 역사와 스토리, 비법과 기술, 특성과 독특함이 인정되고 유지되고 지속되어야 명가이다. 그렇지 못하면 오랜시간의 노력으로 일구어낸 그 가치가 그저 평범하고 유행을 타는 그런 작품으로 잊혀질 것이다. SNS의 명가들은 유명세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어 결국 더 이상 명가의 자격과 기준과 가치를 잃어버린는 경우를 가끔 보았다. 정말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유행은 고유성이나 가치적이기 보다 일시적으로 많은 사람의 선호와 기호, 취향을 맞추는데 더 중점적이다. 때로는 그 유행을 거쳐 진정한 명품으로 거듭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유행이 변함과 함께 점차 괌심에서 멀어지게 된다. 너무나 많은 정보, 인증사진을 찍기 위한 명가는 더 이상 명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단순히 맛집만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K 문화가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시점에서 역시 한국문화와 예술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정검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문화는 다른 문화와 다른 특별함과 다른 스토리, 그리고 한국만이 공유할 수 있는 전통이나 민속, 역사를 간직하고 발전해 왔다. 현대사회에서 각족 미디어 및 매체의 발달로 한국문화와 예술 또한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전달되고 수용 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국문화가 그 가치를 발(發)하는 것은 아무리 현대화 되고 매체화 되고 융.복합되었다 해도 그 안에는 한국의 그 독특한 문화와 한국이기 때문에 가지고 있던 고유성이나 특성, 원칙들이 내포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요즘 공연을 보러 가면서 자주 느끼는 것이 있다. 특히 한국무용공연을 보게 되면 세월에서 오는 차이일 수 도 있겠지만 적지 않은 이질감이나 정체를 모르는 공연을 마주하게 된다. 물론 작품은 관중의 해석을 통해 다양하게 느끼고, 인식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국무용이라는 장르이기 때문에 가져야 하는 한국춤의 고유성과 특성, 나름의 방식이 보여지지 않는다. 현대무용이라고 해도 될것 같고 다른 명칭을 써도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대에서 오는 차이일까? 스스로를 몇번이나 점검하고 경험과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긍정적으로 보려고 노력해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한국무용의 숨쉬는 방법, 발동작의 특성이나 쓰임의 방식 등 많이 변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무용은 주로 전통무용과 창작무용으로 구분 짓는다. 전통무용은 그 전통이 가지는 역사, 스토리, 이를 통한 춤의 정신 그리고 한국인의 오래된 몸짓으로 관객과 공감한다. 그러나 춤추는 사람의 마음이 느껴지지 않고 순서에 익숙한 답습에 가까운것 처럼 보여질때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창작은 도리어 한국춤이라는 전제(前提)를 무시 한것 같은 공연에서 더 많은 공허함이 생긴다. 어찌보면 그 차이가 발전일 수도 있고 현대적 재 해석일 수도 있으며 현대인들의 추세 혹은 유행일 수도 있다 그러나 속도와 방식과 동작의 변화를 넘어서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 들 정도의 무용공연은 분명 문제가 있어 보인다. 마치 K-pop이라고 부르느 우리의 노래들, 다채롭고 화려하고 보기에도 다양한 그 노래들은 따라 부르기도 힘들고 노래방에서 조차 부를 수 없는 남의 노래 같은 느낌과도 같다고나 할까?
그러한 공연이 유행처럼 하나의 조류를 형성하고 있는 것 같다. 또 다른 변화를 맞이하면 없어 질 수도, 더 발전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 장르가 가져야 하는 고유성과 특징은 유지 되기를 희망한다.
SNS를 통해 얻는 정보와 지식은 평준화를 가져오는 것 같다. 알고 있는 것도 비슷하고 비평이나 평가도 비슷하다. 나아가 사실과는 상관없이 더 쉽게 동조하고 더 빨리 여론을 몰아가기도 한다. 그래서 명가, 명인, 명품이 그 위치를 지켜내기는 것이 현대 사회,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쉽지 않은 일인것 같다. 유명해 지는 것은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것이고 그 유혹을 쉽게 물리치기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켜야 할 것을 지켜내지 못하고 그 가치를 놓게 된다. 마치 황금거위의 알을 더 많이 얻기 위해 황금오리의 배를 가르는 일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우리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의 전통과 문화, 특성과 기술과 비법을 간직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SNS의 명가, 명인, 명품은 어쩌면 맛의 획일화, 취향의 획일화, 질의 평준화, 즉, 한시대의 유행으로 그 가치가 희석되어 갈 것이다. 공연이나 문화예술상품 역시 문화예술소비자의 정신적인 충족과 가치의 발견, 정체성의 확신을 이끌어 내기 보다 인기나 유행에 더 관심을 가진다면 어느 누구나, 어느 국가나 다 할 수 있는 특별하지 않은 흔한 일이 될 것이다. 명가, 명인, 명품은 그 들만의 방식과 역사, 원칙, 전통과 함께 희소성으로도 그 가치를 높이 평가 하고 있기 때문이다.
명가는 그 곳의 맛과 특징이나 역사, 스토리가 좋아서 찾는 사람들이 많다. 그 맛과 특징이 몇 세대를 통해 이어지고 그 곳을 찾는 사람들도 여러 세대에 거쳐 그 집을 찾게 된다. 오래 동안 변치 않고 지켜 내는 것, 그래서 명가의 가치가 있으며 변하지 않는 진리같은 인식을 갖게 된다. 명가를 찾는 소비자가 아니라 유행을 좇아 오는 관광객들의 선호에 맞추다 보면 나만의 특징을 잃어 버림을 우리는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야 한다. 그게 나 다움이고 나를 지탱해온 우리의 역사이며 앞으로 이어갈 에너지며 자산인 것이다.
특히 수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측량이 어려운 문화, 예술, 명가, 명인은 더욱 그렇다 손에 만질 수 없지만 그 가치의 무개와 자부심, 그를 지켜나가는 명인의 한결같음과 노력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게 된다 그래서 작은 손길하나 작은 물건 하나도 귀하고 소중하게 여기게 되는 그 지켜나감의 숭고함이 어느때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이다
문화예술, 명가, 명인, 명작 등 모두 우리가 지켜왔고 지겨 나가야 할 것들이다. 우리 민족의 정서와 역사를 품은 한국이라는 명칭이 붙은 분야는 더욱 그렇다. 우리는 우수한 문화의 민족이고 어려운 역경을 극복하며 정체성을 지켜낸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진 민족이기 때문이다.
글·이인숙
문화평론가, 교육학박사, 문화예술경영전공. 현재 청주대학교 영화영상학부 초빙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면서 한국ESG위원회 공연예술위원회 위원장, 북경수도사범대학교과덕대학 공연예술대학부학장역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 한국연기예술학회이사, 국제문화예술교육교류협회회장, EINSchool대표이사, 청주시도시문화추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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