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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래여풍 The Swift Knight>(1971) : 수직과 점강 액션의 웰 메이드 무협 영화
[김 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래여풍 The Swift Knight>(1971) : 수직과 점강 액션의 웰 메이드 무협 영화
  • 김 경(영화평론가)
  • 승인 2024.09.19 09: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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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화 감독은 <아랑곡>에 이어 직접 집필한 <래여풍>으로 ‘웰 메이드 무협영화’라는 평가를 끌어냈다. 뚝심 있는 디테일 연출이 거침없이 구사된 <래여풍>에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재치가 번뜩인다. 정창화는 홍콩 쇼 브라더스의 전유물인 정통 무협 장르에서조차 무협 액션 언어를 만들어냈다.

 

포스터
<래여풍>(1971) 포스터

 

잔혹하고 빠른 수직 액션

정창화는 와이어에 트램펄린을 결합하여 빠른 수직 액션을 즐겨 사용하였는데, 와이어 액션이 나비처럼 부드러운 유선 곡선을 그린다면, 트램펄린은 벌처럼 빠른 수직 액션을 보여준다. 파옥 장면에서 화염과 함께 화면 위에서 수직으로 내려오는 의협 로례(Lo Lieh). 수직으로 날아올라 하늘을 배경으로 펼치는 검술. 그런데, 기존의 트램펄린 액션의 빠른 속도와 수직운동에 더해, <래여풍>에서는 검술조차 수직이다. 거지로 위장한 금의위 지휘관 류현평(친한Chin Han)의 거지 지팡이 검은 빼지도 않는다. 지팡이 칼집에 넣는 모습만 등장하지만, 그가 칼을 빼거나 넣는 순간에 이미 여럿이 죽어 나가기 때문에 매우 위력적이다. <바람의 검신>(2012)의 발도제, 켄신이 연상되는 빠르고 강한 검법이다. 예컨대, 3인의 살수가 류현평을 기습하는 장면의 경우, 류현평의 눈만 강조하는 익스트림 클로즈 쇼트 다음 하이앵글 풀쇼트로 세 명의 자객이 병치되고, 류현평이 칼집에 칼을 꽂는 장면만 나오지만, 이미 자객의 숨통은 끊어졌다. 이 자객을 상대하는 것 정도는 검술 장면도 생략 가능. 그저 검을 지팡이 안에 다시 돌려놓는 것으로 간결하게 마무리한다. 나머지 두 명을 제압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한 명은 단지 지팡이를 내려다 꽂기만 했을 뿐이지만 피가 솟구치며, 다른 한 명은 칼을 수직으로 뽑으면서 목을 벤다. 발도제 다.

 

수직으로 움직이는 검법의 역동성
수직으로 움직이는 검법의 역동성

단 세 번의 수직 운동에 세 명의 자객이 죽는다. 정창화는 화면을 수직으로 가르는 액션과 이에 따라 수직으로 피가 튀는 잔혹한 영상을 통해 역동과 긴장감을 강화할 수 있었다.

 

전경과 후경을 가르는 역동적 움직임

<래여풍>에는 표창과 포탄이 카메라로 날아오는 주관적 앵글과 그래픽 인서트가 자주 사용된다. 의협 로례(Lo Lieh)가 표창을 검으로 되받아치는 장면에 번쩍이는 표창이 부딪칠 때 나오는 광선 그래픽 인서트가 들어간다. 표창이나 폭약, 주먹이 주관적 시점으로 화면 앞으로 날아온다.

 

주관적 시점의 역동성
주관적 시점의 역동성

전경에 폭탄을 클로즈업했다가 화면 후경으로 던지는 팔을 줌 아웃으로 펼쳐서 후경의 집을 폭파하는 장면 등은 프레임의 상하와 좌우뿐만 아니라 전후를 역동적으로 사용한 예다. 이는 하늘 배경 로우 앵글에서 잡은 화면을 전후좌우로 가로지르는 무사들의 움직임에서도 마찬가지다. 카메라의 부감과 앙각을 능숙하게 교차한다. 음표마다 리듬의 길이가 다르듯, 액션의 다이내믹과 리듬도 현란하게 구사된다. 액션의 기표 놀이는 음표의 기표 놀이가 된다.

 

점강법 액션

<래여풍>에서 확고히 자리 잡은 액션은 역동적 카메라 앵글과 수직 액션뿐만 아니라 액션의 강도와 규모가 점점 방대해지다가 최종 액션의 잔혹 수위가 최고조를 이루는 점강법이다. 영화 초반부, 류현평이 발도제로 검을 쓰며 미니멀한 검법을 구사하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강해지는 상대에 맞춰 점점 강한 검기를 휘두르는 횟수가 많아지는가 하면, 래여풍도 검에서 화염까지 점점 파괴력의 수위를 올린다. 파옥 장면의 경우 화염과 함께 화면 위에서 수직으로 내려오는 래여풍이 손을 뻗칠 때마다 폭발이 일어난다. 빌런도 소작민들을 수탈하던 지방 유력가, 이대인부터 주사와 주 장군(왕협, Wang Hsieh), 현왕까지 몸체가 드러나기 시작하며 액션은 강력하고 방대해진다. 숨어지내던 공주(형혜, Magaret Hwing Hui)를 죽이기 위해 암약하는 주 장군의 최후는 지금 봐도 섬뜩하다. 래여풍은 갈대에 검을 휘두르고, 잘린 갈대들이 주 장군의 전신에 꽂힌다. 래여풍은 마지막 일격으로 주 장군의 팔까지 자른다. 주 장군의 팔과 검이 함께 허공으로 솟구친다. 정창화 영화에서 갈대는 아름다운 미장센을 위해 사용되며 동시에 잔혹한 살인 무기가 된다. <래여풍>에서 수직으로 흔들리는 갈대는 아름답고 잔혹하다.

 

“대협은 정당한 일에 매진하는 것”

궁중 사극과 의협이 결합한 무협 내러티브, <래여풍>에는 정창화식 촘촘한 구성이 돋보인다. 직접 집필한 내러티브는 액션만큼 탄탄하다. 예컨대, 류현평이 거지행세 하며 절세 무공을 보여주는 장면은 매우 효율적이다. 관객에게 범상치 않은 거지, 금의위 지도자의 숨은 무공을 선보일 뿐만 아니라 공주의 모친이 남긴 유품도 이 장면 속에서 슬쩍 노출된다. 나름 정의롭고 프로 정신이 투철한 감초 캐릭터 기포두(번매생)의 허술함도 코믹하게 묘사되며, 훗날 그가 감옥에 갔기 때문에 인상적인 파옥 씬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된다.

정창화 감독이 스스로를 ‘아웃사이더’라고 자평했듯이, 정창화의 주인공 의협들 역시 그의 페르소나답게 정착하지 않고 떠나는 아웃사이더들이다. 래여풍과 공주의 애틋한 로맨스는 갈대와 노을 진 하늘을 배경으로 갈무리되고, 래여풍은 “대협은 정당한 일에 매진하는 것”이라는 말만 남긴 채 표표히 떠난다.

 

 

글·김 경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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