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호 구매하기
[송상호의 시네마 크리티크] 필요 없는 폭력, <베테랑2>
[송상호의 시네마 크리티크] 필요 없는 폭력, <베테랑2>
  • 송상호(영화평론가)
  • 승인 2024.09.19 09: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 '베테랑2' 스틸컷. CJ ENM 제공
영화 '베테랑2' 스틸컷. CJ ENM 제공

베테랑의 후속작이라는 강박

개봉 시기로 봤을 때, 영화 <베테랑> 2편과 1편의 시차는 9년이다. 그동안 류승완도 관객들도 서도철(황정민)도 모두 나이가 들었다. 1편에는 명확한 시간대가 드러나지 않지만, 적어도 동시대라는 걸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는 있었다. <베테랑2>에서도 역시 화면 상 문구나 시공간 배경 설정 등을 통해서 시간 표지를 직접 드러내는 건 아니지만, 우리는 휴대 기기의 핵정 화면 등을 통해 영화 속 세계가 2022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고, 1편에도 나왔던 서도철의 아들 서우진이 어느덧 고등학생이 된 모습을 통해서도 시간의 경과 내지는 그 흐름을 감각할 수 있다. 어쨌든 류승완은 9년이라는 세월을 고스란히 인정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도 그런 의식은 반영된다. 어떻게든 전작과의 연결성을 강조하려는 시도 역시 그 일환일 테다.

주부도박단 검거현장을 오프닝 시퀀스로 내세우는 <베테랑 2>. 이 주부도박단 시퀀스가 배치된 이유 역시 간단명료하다. 바로 전작과의 연계를 강조하려는 것. 1편에서 사고만 치고 다니는 서도철 일당에게 윗선에서는 주부도박단 사건을 맡긴 상태였다. 이에 서도철은 선배들한테 조태오를 검거할 시간을 벌어달라고 부탁했고, 윗선에선 서도철에게 “주부도박단이 전국 곳곳에 뜨지 말란 법이 어딨냐”면서 사실상 서도철의 수사를 눈감아주던 장면이 있다. 1편에서 주부도박단 사건은 서도철의 앞길을 가로막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수사를 진행하게 해주는 일종의 사각지대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2편의 오프닝은 어떠한가. 이 오프닝 시퀀스는 사실 영화에서 아예 제거해버려도, 크게 문제가 없다. 즉 2편에서 주부도박단 사건은 전편과의 연계성을 위해 눈요기 내지는 이목을 끄는 연료로만 소비된 셈이다.

즉 영화는 시작부터 스스로가 9년 전 영화의 속편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관객들의 기억 속에서 지난 날 천만 흥행을 달성했던 <베테랑>의 잔상을 환기하고자 한다. 문제는 이 시도가 극에 녹아든 태도와 조응할 수 있냐는 것. 그 이유는 <베테랑2>가 스스로 전작에서 다뤘던 지점들에 대해 성찰하고 질문하는 태도로 둘러싸여 있다는 데에 있다. 그러니까 전작과 달라지려 하는데, 전작에 얽매여 버린 구조상의 이중성이 드러나는 셈이다.

 

영화 '베테랑2' 스틸컷. CJ ENM 제공
영화 '베테랑2' 스틸컷. CJ ENM 제공

 

폭력의 무쓸모?

류승완의 세계에서 폭력은 현실을 드러내는 일종의 창구였다. 폭력 없는 세상은 어디에도 없고, 폭력이 있다면 그걸 있는 그대로 묘사할 뿐이었다. 때때로 다채로운 액션을 통해 폭력이 표현될 때도 있지만, 그 근간을 보면 “액션은 현실을 어떤 방식으로든 드러내는 하나의 도구”라는 명제 자체가 변하진 않았다. 그러니까 류승완 영화 속 인물들이 폭력을 행사할 때면 그에 따른 연쇄 작용과 부산물들이 함께 해야 한다. 그가 다루는 폭력에는, 현실이 들러붙기 때문에 많은 요소들이 뒤따라오기 때문이다.

<베테랑>에서 류승완은 선악을 가른 뒤, 악인에게 분노를 쏟아냈다. 어쩌면 포커스는 응징보다도 분노를 발산하는 데 있었다. 응징이 목표였다면, 서도철이 조태오에게 수갑을 채울 게 아니라, 의식을 잃을 정도로 폭력을 휘둘렀어야 했다. 마석도가 펀치로 강해상의 얼굴을 작살내고(<범죄도시 2>), 백창기의 안면부에 니킥을 강타(<범죄도시 4>)했듯이. 그렇지만 서도철은 재벌을 상대할 때나 중고차 딜러 사기꾼을 검거할 때도 모두 똑같이 정당방위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경찰이 먼저 맞아서 때릴 수밖에 없었다’는 식으로 폭력의 오남용을 경계하고 또 의식했다. 우리가 1편에서 만났던 서도철은 그런 경찰이었다.

그런 서도철의 근성이 가장 크게 발휘되는 때는, 누군가를 검거하거나 때리는 게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박선우를 살리는 순간이다. 그럼 서도철은 왜 박선우를 살려냈나? 그가 박선우의 가슴팍을 절실하게 압박한 이유는 박선우를 향한 연민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박선우를 법의 심판대에 올리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서도철한테 사회의 규범과 제도는 아직 유효한 체계다. 앞서 1편에서 서도철은 조태오와의 결투에서도 그의 손목에 몰래 수갑을 채우는 데 집중했지, 조태오를 폭력으로 응징하는 일은 자신의 소관이 아니라고 여겼지 않았나.

여기서 <베테랑 2>의 딜레마가 포착된다. 류승완은 ‘분노’를 응시한다. 이 분노는 바로 법의 빈틈이 해소해줄 수 없는 감정이다. 이때 우리는 류승완의 다른 영화들은 제쳐놓고서라도, 적어도 이 <베테랑> 두 편에서 폭력이 어떤 지위에 머무르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서도철의 폭력은 그 자체로 유효할 수 없으며, 그저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잘 쳐줘야 잠시 상대를 무력화하는 기술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베테랑의 폭력은 그 자체로 해결 수단이 될 수 없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그러니 베테랑은 어쩔 수 없이 현실과 연동되는 세상을 다룰 수밖에 없다. 우리는 문명 사회에서 무분별한 폭력만으로 해결되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지 않나. 그렇다면 1편을 다시 떠올려 보자. 1편의 핵심은 ‘정의를 구현하는 방식’을 다룬다는 데 있었다. 간부급도 아닌 그저 일개 형사에 불과한 정의감 넘치는 경찰이 재벌을 상대로 어떤 가치를 지켜내고, 어떻게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지 들여다보는 과정이었던 셈이다. 이제 2편에서 류승완은 서도철이 안간힘을 써서 지키려고 했던, 그 정의를 구현하는 방식에 관해 질문한다.

그렇다면 <베테랑2>는 폭력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과연 이 폭력에 어떤 가치를 부여해야 할지 확신에 찬 선택을 내렸나? 여기서 영화는 갈피를 못잡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자.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폭력이 유효한지, 또 내가 정의라고 여겼던 게 과연 정의가 맞는지 전부 재고와 점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결국 서도철은 박선우를 살린다. 이건 폭력의 ‘무쓸모’를 선언하는 장면인가? 아니면 <범죄도시>의 마석도를 향한 류승완의 대답인가? <베테랑>이라는 프랜차이즈에 얽매인 이상, 이 불분명한 몸부림은 영영 구체화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영화 '베테랑2' 스틸컷. CJ ENM 제공
영화 '베테랑2' 스틸컷. CJ ENM 제공

 

현실에 앞설 수 없는 폭력

악인을 응징하는 일종의 히어로물처럼, 관객들의 갈증과 염원을 대리 해소해주는 <범죄도시> 시리즈가 인기를 얻었던 과정을 떠올려 보자. <공공의 적>의 강철중이 2000년대를 지배했다면, 2010년대는 <베테랑>의 서도철이 다시 한국 형사물 계보에 불을 지핀 상황이었다. 그 가운데 <베테랑> 이후 2017년 등장한 <범죄도시>는 1편을 통해 관객의 반응을 살폈고, 이후 2020년대 들어서자 경찰을 제도 안에 머무르게 내버려두지 않고 세상을 구하는 히어로로 조각해내지 않았나. 말하자면 도구로서의 폭력이 아니라 주체로서의 폭력을 구현해낸 셈이다.

<범죄도시> 시리즈의 연착륙 이후, <베테랑>은 쏟아져 나온 형사물 콘텐츠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직면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상을 고려하다 보니 후속작의 개봉 시기가 늦어졌을 수도 있지 않나. 결국 <베테랑2>는 그걸 방증하듯, 영화 속 세계를 동시대의 장면들로 가득 채웠다. 유튜버와 렉카들은 악질 범죄자 출소 현장에 가서 여론 몰이에 몰두하고, 법이 충분히 심판해주지 않은 악인들에게 응징해야 한다는 대중들의 울분이 커져가고 있는 세태가 그대로 담겼다. 문제는 <베테랑2>에 배어 있는 혼란 그 자체다. 현실을 반영하고는 싶은데, 그 현실을 돌아보며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 것처럼 느껴진다.

<범죄도시>에서 이따금씩 조성되는 ‘진실의 방(CCTV 등 감시체계를 무력화한 뒤, 압도적인 폭력을 행사해 용의자를 강압 취조하는 마석도 특유의 수사 방식)’을 떠올려 보자. <베테랑>에서도 1편에서 비슷한 장면이 나왔다. 서장을 비롯한 형사들은 막내에게 칼침을 놓은 용의자에게 분풀이를 위해 CCTV를 가렸지 않았나. 그러니까 무력 행사를 위해 불법쯤은 눈감는 <범죄도시>와는 다르게, <베테랑>에서는 사회 규범이 됐든 도덕적인 선이 됐든 ‘경계’를 넘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다. 동기와 명분이 명확해도, 눈치를 살피고 상황을 살펴야 한다.

그렇기에 <베테랑>에 여러 층위로 표현되는 폭력은 어쩔 수 없이 현실에 앞설 수 없다. 늘 현실에 뒤따라서 현실과의 연동 가능성을 가늠해야 한다. 이제 따라오는 질문. 응징할 수 없다면, 사회의 규범 속에서 인물들은 무엇을 할 수 있는 걸까. 그냥 살려서 법의 심판대로 올리면 그만인가? 서도철의 말마따나 살인에 정당한 살인이 없고, 그 자체로 다 나쁜 거라고 일갈해버리면 그만일까? <베테랑2>는 이에 관한 소재를 환기하는 데엔 성공하지만, 정작 질문에 스스로 답은 하지 못한 채 관객들에게 바톤을 넘겨 버렸다. 이 행위에 대한 호오를 가리거나 잘잘못을 따지고 싶지는 않다. 어쩌면 답을 제시할 수 없는 이 환경 자체가 곧 우리네 사회의 단면을 드러내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영화 '베테랑2' 스틸컷. CJ ENM 제공
영화 '베테랑2' 스틸컷. CJ ENM 제공

 

 

글‧송상호
영화평론가, 경기일보 기자로 활동하며 글을 쓰고 있다. 2021년 박인환상 영화평론 부문 수상. 2023년 영평상 신인평론상 우수상 수상.

  • 정기구독을 하시면, 유료 독자님에게만 서비스되는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잡지를 받아보실 수 있고, 모든 온라인 기사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전용 유료독자님에게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모든 온라인 기사들이 제공됩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