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6월호 구매하기
[김채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진정한 서부극의 시작, <믹의 지름길>
[김채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진정한 서부극의 시작, <믹의 지름길>
  • 김채희(영화평론가)
  • 승인 2024.09.23 09: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믹의 지름길' 포스터
'믹의 지름길' 포스터

1. 독립투사와 친구들

  1964년 플로리다 마이애미에서 태어난 캘리 라이카트(Kelly Reichardt)는 보스턴의 미술박물관 대학(School of the Museum of Fine Arts)에서 실기 석사를 취득한 후, 뉴욕에 소재한 바드 대학(Bard College)에서 레지던스 예술가 겸 영화 강사로 일했다. 1990년대 초반부터 교편을 잡고 있던 그녀는 창작에 대한 열정을 불태워 1994년 <초원의 강 River of Grass>으로 데뷔하기에 이른다. 선댄스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차지한 이 작품은 테런스 맬릭(Terrence Malick)이 연출한 <황무지 Badlands>(1973)의 주제, ‘범죄를 저지른 길 위의 남녀’를 반복하며다. 아마추어가 만든 홈무비라는 혹평을 듣기도 했다. 1만 달러 미만으로 만든 이 작품은 라이카트의 표현대로 “길이 등장하지 않는 로드무비, 사랑 없는 러브스토리, 범죄 없는 범죄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초원의 강>의 주인공 두 남녀는 결국 플로리다를 벗어나지 못하고 도망자인 그들은 애정으로 묶이지도 않는다. 게다가 그들은 우연한 오발 사고로 사람을 죽였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벌어지지도 않는다.

  <네 멋대로 해라 À bout de souffle>(1960), <우리에겐 내일은 없다 Bonnie and Clyde>(1967), <광란의 사랑 Wild at Heart>(1990)>, <트루 로맨스 True Romance>(1993), <올리버 스톤의 킬러 Natural Born Killers>(1994) 그리고 맬릭의 데뷔작까지 남녀 주인공들은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 다니면서 오늘만 살 것처럼 사랑을 나눈다. 이런 종류의 영화들과 정반대의 길을 선택한 <초원의 강>은 처음부터 장르를 뒤집어엎으려는 의도가 없었다면 세상에 제 모습을 드러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라이카트의 반골 기질은 경찰 수사관에 복무하던 아버지에게 영향 받은 것일 수도 있고, 살면서 자연스럽게 체득한 예술적 비전일 수도 있다. 이로 인해 라이카트는 미국 독립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되고있다.

  하지만 외로운 독립투사에게는 든든한 친구들이 몇 있다. <아임 낫 데어 I’m Not There>(2007), <캐롤 Carol>(2015)로 유명세를 떨친 토드 헤인즈(Todd Haynes)는 자신의 장편 데뷔작인 <포이즌 Poison>(1991)에서 감독과 스탭으로 라이카트를 만난 이후 그녀와 30년째 교류하고 있다. 헤인즈는 라이카트가 <포이즌>에서 소품과 의상을 준비하면서 보여준 열정에 탄복하여 친구가 되었고 이후 그녀가 연출한 대다수 영화에서 기획 혹은 제작을 맡아 친구가 편안하게 작업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둘은 마치 영혼의 단짝처럼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고 그들의 우정은 성을 초월한 공고한 관계로 영화계에서 널리 알려져 있다. 헤인즈는 오레곤의 풍광과 한적함에 반해 그 곳으로 이사를 왔고 라이카트 역시 친구를 따라 이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오레곤에서 그녀의 영화 세계는 만개했다. 라이카트는 이곳에서 또 다른 영혼의 동지를 만난다. 조나단 레이먼드(Jonathan Raymond)라는 이 새로운 조력자는 <올드 조이 Old Joy>(2006), <웬디와 루시 Wendy and Lucy>(2008), <퍼스트 카우 First Cow>(2019)의 원작자이며, <믹의 지름길 Meek's Cutoff>(2010)>과 <어둠 속에서 Night Moves>(2013)의 각본을 썼다. 레이먼드는 <믹의 지름길>의 각본으로 2011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후마니타스 상 후보에 올랐으며, <어둠 속에서>, <퍼스트 카우>는 각각 베니스와 베를린에 공식 초청되었다. 오레곤 태생인 레이먼드는 뉴욕의 뉴스쿨에서 수학하여 MFA 학위를 받았으나 그곳에 정착하지 않고 소설을 쓰기 위해 낙향했다. 그는 헤인즈의 2002년 작, <파 프롬 헤븐 Far From Heaven>에서 조감독으로 일하면서 헤인즈와 친구가 되었다. 헤인즈는 자연스럽게 십년지기 라이카트를 레이먼드와 소개해주었고 이 만남은 서로의 인생에서 가장 큰 축복이 되었다. 라이카트의 <어떤 여자들 Certain Women>(2016)은 마일 멜로이(Maile Meloy)의 세 개의 단편 『Tome』, 『Native Sandstone』, 『Travis, B』를 엮은 작품이기에 레이먼드가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하지만 <퍼스트 카우>에 이어 2022년 칸 경쟁 부분에서 상영되었던 <쇼잉 업 Showing Up>에서 두 사람은 다시 의기투합하며 영혼의 동반자임을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대개 우리는 다양한 배역을 맡을 수 있는 배우를 가리켜 천의 얼굴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마릴린 먼로, 먼지투성이 서부여자, 바람난 유부녀 그리고 마블 캐릭터를 모두 수행할 수 있는 배우는 세상에 단 한 사람, 미셸 윌리엄스(Michelle Williams)뿐이다. 1990년대 후반 최고의 드라마였던 <도슨의 청춘 일기 Dawson's Creek>(1998-2003)는 케이티 홈즈(Katie Holmes)와 주인공 도슨으로 출연했던 제임스 반 데 빅 (James Van Der Beek)을 위한 시리즈였지만, 이후 남녀 주연들은 배우로서 입지를 다지는 데는 실패했다. 그러나 조연이었던 윌리엄스는 할리우드의 가장 뛰어난 연기파 배우 중 한 사람으로 성장했다. 윌리엄스와 라이카트를 연결해 준 사람 역시 헤인즈였다. <아임 낫 데어>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그녀를 헤인즈는 친구에게 소개했고 할리우드의 대표 배우로 발돋움 중이었던 이 위대한 배우는 제작비가 고작 20만 달러에 불과했던 라이카트의 세 번째 영화 <웬디와 루시>에서 흔쾌히 메인 롤을 맡았다. 이후 <쇼잉 업>에 이르기까지, 남성들만 등장하는 <퍼스트 카우>를 제외한 전작에 출연하면서 라이카트의 진정한 페르소나가 되었다.

 

2. 오레곤 트레일과 <믹의 지름길>

  우리는 사막이라고 하면 흔히 아라비아반도를 떠올리지만, 해풍이 강하게 부는 해안가 근처나 대륙의 중심부에서도 사막이 존재한다. 미국의 사막을 떠올리면 으레 현대차의 세그먼트, 모하비가 연상되지만, 이는 4대 사막(그레이트 베이슨, 소노라, 치와와, 모하비) 중에 가장 좁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이 풍요로운 나라는 4대 사막 이외에도 공식적으로 10개 이상의 사막을 가지고 있다. 이 중에서 서부 개척사와 가장 밀접하게 관련 있는 곳은 단연 오레곤 사막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불모의 땅은 아이다호와 오레곤의 주 경계에서 시작해 왼쪽으로 드넓게 펼쳐져 있다. 미국의 사막 대부분은 남쪽에 자리하지만, 오레곤 사막은 북서부에 펼쳐져 있고 이곳을 지나야만 온화한 해양성 기후를 자랑하는 서부 해안가에 도착할 수 있다. 서부를 개척하려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사막을 횡단한 끝에 중심 도시 포틀랜드에 도착할 수 있었다. 미국인들은 이 길을 오레곤 트레일(Oregon Trail)이라고 부르며 1978년 의회에 의해 역사 유적으로 지정되었다. 오레곤 트레일 이외에도 여러 루트가 있었지만, 중남부 사막을 지나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좀 더 위쪽 길을 거쳐 서부로 가는 편이 일반적이었다. 19세기 초반 미 정부가 주도한 서부 이주 장려 정책에 이민자들이 호응한 이유는 정착민에게 토지를 무상으로 제공하겠다고 약속한 홈스테드 법(Homestead Acts) 때문이었다. 게다가 오레곤은 여성에게도 토지를 분배한 유일한 주였기에 이 트레일은 가족 단위 이주자가 주로 이용했다.

  현재 미주리에서 가장 큰 도시는 세인트루이스와 캔자스 시티지만 19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Queen City of the Trails’라는 별칭으로 불렸던 인디펜던스가 가장 번성한 도시였다. 캘리포니아, 오레곤, 산타페 트레일의 시발점이기도 한 이곳은 서부 개척의 부푼 꿈을 간직한 사람들이 필수적으로 거쳐 가는 곳이었다. 인디펜던스에서 그들의 목적지인 오레곤의 포틀랜드까지는 무려 2,170마일(약 3,500킬로미터)이 넘는 거리였다. 거의 반년이 걸리는 이 트레일을 따라 서부 개척민 40여만 명이 이동했다. 그러니 이 여정에 상상할 수 없는 다양한 서사가 녹아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길을 가다가 굶어 죽은 사람이 부지기수였으며, 간혹 인디언이 나타나 일행을 위협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대규모로 이동하면 분명 여러 가지 사건이 발생한다. 존 언루(John Unruh)는 “The Plains Across the Overland Emigrants and Trans-Mississippi West 1840–1860”를 통해 이 여정에서 사망한 인원을 1만 5천 명으로 추정하며, 이 중에 절반은 질병으로 사망했다고 주장한다. 이외에 동사자(400명), 괴혈병(400명), 마차나 말이 일으킨 사고로 인한 사망자(350명). 익사자(350명), 총상(350명), 인디언 습격(3,800명), 원인 미상(350명)으로 많은 이들이 유명을 달리했다.

 

사정이 그러하니 스토리텔러라면 누구나 인류사에 기록된 가장 대규모의 자발적 엑소더스에서 드라마를 추출하려 했다. 사망 사건 이외에도 이 긴 여정에는 사랑과 모험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가 수놓아져 있을 뿐만 아니라 트레일의 길잡이들이 무지몽매한 청맹과니들을 이용한 계략에 약간의 관심만 기울여도 무수한 드라마가 쏟아질 것이 자명했다. 하지만 진정한 미국 영화의 독립투사, 캘리 라이카트는 드라마틱한 서사와 스펙터클로 눈을 돌리는 대신 오레곤 트레일에서 여성들이 작성했던 일기장에 주목했다. 그리고 명성이 자자했던 실제 길잡이 스티픈 믹(Stephen Meek)을 디제시스에 넣고 그가 개척했다는 지름길(cutoff)로 세 가족을 실려 보냈다. 라이카트의 기묘한 서부극 <믹의 지름길>에는 단 한 차례의 살인도 일어나지 않고 사람을 향해 쏘는 총성이 들리지도 않는다. 일기장, 지름길, 길잡이, 호기심 넘치지만 위협적이지 않은 인디언, 바람, 돌, 메말라 비틀어진 나뭇가지들, 그리고 우마차 몇 대로 라이카트는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서부극을 만들었다. 서부극은 고전적 양식, 초서부극, 수정주의 서부극, 스파게티(마카로니) 웨스턴을 위시한 다양한 네오 웨스턴 그리고 반(反)서부극이 명멸한, 장르의 진화를 설명하기 가장 좋은 텍스트이다. 하지만 나는 진정한 반서부극은 카이카트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한다. 2019년 작품 <퍼스트 카우>가 두 남자의 버디 무비 형식을 빌려 미국의 미시사를 다루면서 반서부극에 정점을 찍었다면, 전작 <믹의 지름길>은 <퍼스트 카우>와 시선을 공유하면서 본격적인 서부 개척사 직전의 상황에 포커스를 맞춘다. 어쨌거나 서부가 투쟁의 장이 되기 위해서는 아메리칸 원주민 외의 인간이 이 미지의 땅에 도착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서부 개척의 역사는 오레곤 트레일의 갈래이자 목적지로 향하는 지름길에서 시작되어야만 했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고단한 여정에 카메라를 들이민 라이카트의 영화는 모든 서부극의 모태라고 할 수 있다. 서부극은 장르가 시작된 지 한 세기가 지나서야 라이카트로 인해 자신의 근원에 다가갈 수 있었다.

 

3. 고전적인 서부극(SAS)의 도식에서 길을 찾다.

  들뢰즈(Gilles Deleuze)는 노엘 버치(Noël Burch)의 큰 형식(grande forme) 개념에서 착안해, SAS(Situation-Action-Situation) 도식을 만들었다. 큰 형식의 영화에서 인물은 공기호 혹은 포괄자라고 부르는 거대한 환경에 놓인다. 이때 환경(Situation)은 주인공이 속한 어떤 세계(암흑가, 빈민가, 이민자 사회 등등)이거나 특정한 공간(감옥, 거대한 저택이나 성 등등)뿐만 아니라 때로는 주인공 주변의 인물들을 지칭할 수도 있다. 주인공은 이 환경 속에서 일련의 대결을 펼친다. 빅터 쇠스트롬(Victor Sjöström)의 <바람 The Wind>(1928)을 예시로 들뢰즈는 SAS 영화의 원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바람>의 주인공 소녀는 끊임없이 바람이 불어대는 텍사스 평원에 도착한다. 버지니아 출신인 그녀는 익숙하지 않은 이 고장에 와서 다양한 대결에 직면하게 된다. 그녀는 바람과의 육체적 대결을 펼쳐야 하고 자신을 탐탁찮게 여기는 친척과 심리적 대결을 벌여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녀는 자신을 탐내는 남자들과도 감정적 대결을 펼쳐야 한다. 환경은 그녀에게 일련의 행동(Action)을 요구한다. 그녀의 행동으로 인해 환경은 처음 상태로 봉합(S)된다.

  SAS 원리가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장르는 서부극이다. 평화로운 마을에 악당이나 인디언들이 침입하여 질서를 위협한다. 서부 사나이는 이 틈바구니에 끼어 외로운 대결을 펼친다. 영웅의 활약(Action)으로 마을은 평화를 되찾고 서부 사나이는 조용히 황혼 속으로 사라진다. 하지만 존 포드(John Ford)의 주인공들은 간혹 위협당한 질서의 회복에 만족하지 않는다.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The Man Who Shot Liberty Valance>(1962)의 주인공 랜스는 상원의원이 되어 신본이라는 소도시에서 거행된 친구 톰의 장례식에 참석한다. 랜스는 리버티 밸런스라는 유명한 악당을 정당한 결투를 통해 제거한 영웅으로 그동안 알려져 있었다. 그는 톰의 장례식에서 실제로 밸런스를 쏜 사람은 자신이 아닌 영면에 든 톰이라고 기자들에게 털어놓지만, 언론은 서부의 전설을 유지하기 위해 그의 고백록을 기사화하지 않는다.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에서도 질서는 봉합되지만, 봉합된 것은 실제 서부가 아니라 신화화된 서부, 박제된 서부의 역사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때 서부는 이전(S)과는 다른 새로운 환경(S′)이 된다. SAS 도식과 달리 인물의 행동이 상황에 변화를 유발하는 하워드 혹스(Howard Hawks) 식의 ASA 도식도 존재하지만, 토마스 인스(Thomas Ince)에서 시작하여 존 포드가 완성한 고전 서부극의 대부분은 SAS 도식 위에 이야기를 펼친다.

  환경은 어떤 방식으로든 인물의 행동을 유발한다. 서부극에서 환경은 높푸른 하늘, 드넓은 초원, 황폐한 사막 때로는 가혹한 기후나 아메리칸 원주민이 될 수도 있다. 캘리 라이카트는 오레곤의 사막을 가로지르는 가장 혹독한 환경인 믹의 지름길 위에 인물을 배치한다. 그들은 토지 무상 제공이라는 미끼를 덥석 물고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환경의 실체도 모른 채, 믹이라는 얼치기 길잡이에 의존해 사막을 횡단하는 중이다. <믹의 지름길>에는 단 세 가족(7명)과 마초 냄새 풀풀 풍기는 허풍선이 믹, 느닷없이 등장한 아메리칸 원주민 그리고 당나귀 한 마리, 말 두 마리, 소 여섯 마리, 케이지의 새 한 마리가 등장인물(?)의 전부인 단출한 영화이다. 실제 믹의 지름길에 올라선 사람들은 수백에 달하지만 라이카트는 규모를 축소해서 내러티브의 잔가지를 제거한다. 그녀는 이 기묘한 서부극을 만들면서 “함정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에 제작 기간 내내 서부극이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게다가 그녀는 서부극의 스펙터클을 축소하기 위하여 화면비를 1.37:1로 고정했고 호쾌한 액션을 삭제한 대신 빨래를 널고, 개울가에서 물을 길으며 빵을 만들거나 뜨개질하는 쇼트로 화면을 채운다.

 

라이카트는 SAS 원리를 적절하게 변용하여 활용한다. 말을 타고 깃발을 휘날리면서 백인을 위협하는 아메리칸 원주민 전사들 대신 대화가 전혀 통하지 않는 단 한 명의 아메리칸 원주민과 사막이라는 환경을 공기호(포괄자)로 활용한다. 그들의 여정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물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그들을 인도해야할 길잡이 믹은 지름길을 제대로 모르는 것 같다. 일행이 계속 사막 주변을 빙빙 도는 동안 식수가 바닥난다. 적의 머리 가죽을 벗긴다는 아메리칸 원주민과 식수 고갈이라는 위협(환경)은 일행을 점점 광기로 몰아간다. 게다가 밤이면 살을 에는 추위가 엄습하고 작열하는 태양에 그대로 노출된 한낮의 사막은 또 다른 포괄자가 되어 서서히 일행의 목을 조른다. 이제 일행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첫 번째 결단은 믹의 처리에 관한 문제다. 이 허풍선이 남작을 믿어야 할 것인가? 일행 중 어떤 이가 되뇐다. “그는 무지할까요? 아니면 사악할까요?” 모질지 못한 남자 일행들로 인해 이제 포괄자가 하나 더 늘어난다.

 

4. 서스펜스 구축은 이렇게.

  남자들은 조력자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포괄자였던 믹을 목매달아 죽이지 않고 여정에 동반시킨다. 믹은 결과를 예상한 듯 여유만만이다. 사막이라는 또 다른 포괄자는 그들을 점점 구석으로 몰아간다. 끝없이 이어지는 먼지바람, 극심한 일교차로 인해 사람들은 지쳐간다. 이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메리칸 원주민 남자가 나타난다. 그런데 그는 무리 속에 있지 않고 혼자 언덕 너머에서 일행을 물끄러미 바라만 본다. 남자들은 합심하여 사막에 버금가는 위협이 된다고 믿는 이 포괄자를 사로잡는다. 하지만 이 남자가 진정한 포괄자가 될지 아니면 믹과 달리 예상치 못한 조력자가 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사막의 지리를 훤히 꿰뚫고 있는 이 남자가 선의를 베푼다면 그들은 물을 찾을 수 있다. 그러니 이 남자도 살려둘 수밖에 없다. 불편한 동거는 영화 내내 계속된다. 그들이 횡단해야 하는 오레곤 사막은 모래가 아닌 메말라버린 흙과 자갈만이 가득한 곳이며 급격한 경사를 이루는 협곡이 군데군데 자리하고 있다. 이 험한 곳을 가로지르는 동안 마차 한 대가 부서진다. 사람들이 마차를 수리하는데 정신이 팔려있지만 아메리칸 원주민 사내는 백인들의 신기한 물건에 매료되어 일행의 짐을 뒤지려한다. 사람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아메리칸 원주민 사내가 짐을 헤집어놓자 건맨, 믹이 그에게 총을 겨눈다. 고집 센 아메리칸 원주민은 호기심을 멈추지 않는다. 일촉즉발의 순간, 에밀리(미셸 윌리암스)가 믹에게 장총을 겨눈다. 능글맞은 믹은 “테트로 선생, 당신 부인에게는 인디언 피가 흐르나 보군”이라고 느물거린다. 그 와중에 젊은 처자 밀리는 아메리칸 원주민이 몰려오면 다 죽을 거라고 쉴 새 없이 울부짖는다. 그들의 여정은 점차 광기로 물들어간다. 그러다가 늙은 남자가 쓰러진다. 그는 가축에게 먹이려고 물을 아끼다가 탈수증으로 정신을 놓고 만다. 일행은 얼마 남지 않은 물을 남자에게 먹이고 우마차에 그를 태운다. 앞서가던 아메리칸 원주민 사내가 이상한 노래를 부른다. 일행은 일제히 아메리칸 원주민 사내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자신들의 목줄을 쥐고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낯선 이방인은 일행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도저히 그곳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던 거대한 나무가 나타난다. 나무는 마치 신화에 나오는 생명수처럼 보인다. 모두가 어리둥절하던 중, 꼬맹이 지미가 외친다. “나무는 물 없이는 살지 못해요”

 

 그 사이에 아메리칸 원주민 사내는 언덕 밑으로 향한다. 평원에 있는 일행에게 언덕 너머는 보이지 않는다. 그곳에는 강이 흐를 수도 있지만 아메리칸 원주민 무리가 일행의 머리 가죽을 벗기려 똬리를 틀고 기다릴 수도 있다. '인디언 혐오증'이 있는 젊은 처자 밀리는 남편에게 돌아가자고 절규한다. 일행은 믹에게 의견을 구한다. 그런데 절체절명의 순간 길잡이는 그동안의 허세를 버리고 일행의 운명을 자신에게 총을 겨누었던 에밀리에게 맡긴다. “테트로씨, 그리고 부인 우리들은 모두 당신들의 말을 따라야 할거요. 진작부터 그렇게 생각해왔소. 분부대로 하리다.” 믹의 말이 끝나자 리버스 쇼트로 잡은 것은 에밀리의 클로즈업이다. 에밀리는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려 생명수 가지 사이로 아메리칸 원주민 사내를 바라본다. 망원렌즈로 포착한 아메리칸 원주민 사내의 풀 쇼트 이후 카메라는 에밀리의 고뇌하는 표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라이카트의 카메라는 다시금 저 언덕 너머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아메리칸 원주민 사내를 55초 동안 롱테이크로 붙잡는다. “발길을 돌려 되돌아가야 하는가? 아니면 인디언 사내를 믿고 언덕 위로 올라가야 하는가?” 영화는 결론을 맺지 않고 긴장감 도는 음악과 함께 그대로 끝난다.

 

  “영화는 실제로 대본과 약간 다르게 끝납니다. 마지막 날 마지막 쇼트를 촬영하기 전에 해가 지더군요. 집에 돌아오니 너무 아쉬웠죠. 마음속으로 생각을 정리해야 했어요. 재촬영할 돈도 없었구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자금이 부족해서 원래 결말대로 끝맺지 못했지만, 이 상황이 어떻게든 제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었지만 지금은 이 결말이 영화에 더 어울리는 엔딩이라고 생각합니다.”

 

5. 라이카트식 결말, 그리고 진정한 서부극의 시작

  우리는 총 세 가지 결말을 떠올릴 수 있다. 언덕 너머에서 일행을 기다리는 아메리칸 원주민 전사들, 그들을 구원해줄 호수나 강이 펼쳐진 그림 같은 풍경, 그리고 이도 저도 아닌 다시 이어지는 끝없는 사막, 그 이상의 결말을 상상하는 것은 무리다. 재차 실제 결말을 물어보는 기자에게 라이카트는 이렇게 부연했다.

 

“원안은 누구라도 만족할 만한 결말은 아니었습니다.”

 

하긴 그럴 법하다. 아메리칸 원주민 전사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장면이 결말이었다면 이 영화가 남성성 가득한 서부 사나이 대신 여성에게 일행의 운명을 결정할 권한을 준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수원지를 발견하는 또 다른 결말은 아메리칸 원주민과 백인 사이의 우정을 말하는 수정주의 웨스턴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끝없이 이어지는 사막으로 마지막을 장식하는 결말을 선택한다면 일행이 갈증으로 죽는 장면을 삭제한 재난극 그 이상 이하도 아니게 된다. 그러므로 서스펜스를 유지한 채, 결말을 디제시스 내부에 숨겨놓은 것은 비겁한 선택이 아니다. 원래 의도대로 재촬영을 했더라도 라이카트는 편집과정에서 지금의 버전을 다시 선택했을 것이다. 라이카트는 총과 화살이라는 무기를 통하지 않고 특별한 사건에 기대지 않으면서도 극에 서스펜스를 유지하는 재주를 시종일관 선보였다. 그녀가 선보인 서스펜스는 피폐해지는 사람들의 심리와 더불어 포괄자로서 환경을 활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좌우 폭이 좁은 화면 비율은 자연을 스펙터클로 소비하지 않으면서 포괄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게 만든 일등 공신이다. 사건을 해결하고 석양을 향해 말을 달리는 건맨은 오레곤 트레일에서 필수적인 인물이 아니다. 그와 같은 캐릭터가 등장하려면 몇 년은 더 흘러야 하며, 길잡이 믹은 겉으로는 모든 서부 영웅의 이미지로 덧칠된 인물이다. 그는 존 웨인(John Wayne)과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와 같은 '거칠고 남성적인' 서부극의 아이콘을 떠올리게 한다. 길을 잃은 것이 분명하지만 믹은 자존감을 버리지 못한 채,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찾고 있다.”라고 항변한다. 믹은 이 세계의 지배자인 백인이자 남성이지만 기존 서부극의 주인공들과는 달리 그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인물이다. 믹을 대신한 인물은 빨래하고 뜨개질하던 흙먼지를 뒤집어쓴 여성이다. 결말에서 석양으로 걸어가는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의 주체가 여성이라는 점은 여느 서부극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뒷모습으로 각인된 자는 <수색자 The Searchers>(1956)의 존 웨인이나 <셰인 Shane>(1953)의 알런 래드(Alan Ladd)가 아닌 아메리칸 원주민이다. <믹의 지름길>에는 고전 서부극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컨벤션과 아이콘이 영화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포괄자로 등장하는 자연이 존재하며, 말 탄 건맨과 아메리칸 원주민이 등장한다. 게다가 곤경에 빠진 서부 개척민도 빠지지 않는다. SAS의 전형적인 공식으로 축성된 <믹의 지름길>의 플롯은 점차 관객의 숨을 차오르도록 만든다. 그런데 그 모든 공식은 뒤틀려있다. 스펙터클과 결별한 자연이라는 포괄자, 서부극의 클리셰를 뒤집은 아메리칸 원주민과 건맨 그리고 결론 내리지 못한 엔딩을 통해 라이카트는 진정한 반서부극이자 어떤 의미에서는 진정한 서부 이야기를 완성한다. 미국의 정신으로 추앙받는 테렌스 맬릭은 <트리 오브 라이프 The Tree of Life>(2011)에서 '생명수' 한 그루를 보여주기 위해 188분(감독판 기준)이라는 시간과 순제작비 3,200만 달러를 소비했다. 라이카트는 맬릭 영화의 10분의 1도 안 되는 200만 달러와 104분이라는 러닝 타임만으로 서스펜스의 핵심인 ‘생명수’를 포착하는데 성공한다. 온갖 특수 효과로 성경의 욥기를 재현한 맬릭을 미국의 정신이라고 떠받드는 현상은 엘리트주의가 만든 허상이다. 그는 타르코프스키(Andrei Tarkovsky), 안토니오니(Michelangelo Antonioni), 베르히만(Ingmar Bergman), 브레송(Robert Bresson)과 같은 유럽영화의 위대한 아버지들이 부재한 미국 영화계가 억지로 옹립한 가짜 아버지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성경 속 이야기를 거대 자본과 인적 네트워크로 얽어맨 <트리 오프 라이프>는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라이카트의 아름다운 영화는 어떤 상도 받지 못했다. “길이 등장하지 않는 로드무비, 사랑 없는 러브스토리, 범죄 없는 범죄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던 라이카트는 “총성, 살인, 스펙터클”이 부재한 반서부극 혹은 고전주의 서부극 이전의 서부극을 만들었다. 그러므로 <믹의 지름길>은 모든 서부극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다. 먼 훗날 미국 영화계는 어쩌면 부재한 아버지 대신 자신들의 근원을 가장 잘 아는 라이카트를 진정한 어머니로 내세우게 될까?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우리는 영원히 미국 영화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 이 글은 필자가 쓴 「순환론적 관점으로 바라본 동시대 서부영화의 미학적 경향」(『디지털영상학술지』 21(2), 2024)의 일부 내용을 가져와 수정한 것임을 밝힙니다.

 


글·김채희
영화평론가

  • 정기구독을 하시면, 유료 독자님에게만 서비스되는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잡지를 받아보실 수 있고, 모든 온라인 기사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전용 유료독자님에게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모든 온라인 기사들이 제공됩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