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조커: 폴리 아 되>는 2019년 작 <조커>의 후속작으로, 단순한 악당 이야기를 넘어 복잡한 심리적 혼란과 광기를 심도 있게 탐구하는 작품이다. 이번 작품에서 조커(아서 플렉)와 할리 퀸(리 퀸젤)의 관계는 정신의학 용어인 폴리 아 되(Folie à Deux), 즉 '공유된 광기'를 상징하며, 이들의 파괴적인 사랑과 광기 속에서 발생하는 감정적·심리적 여정을 담고 있다.
이 글은 <조커: 폴리 아 되>를 레오 까락스의 <퐁네프의 연인들>(1991)과 비교 분석하여, 두 영화 속 파괴적인 사랑이 인물들의 파멸과 구원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탐구한다. <퐁네프의 연인들>이 파국에서 구원을 선택하는 것과는 달리, <조커: 폴리 아 되>는 사랑이 광기 속에서 파국으로 치닫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는 <조커: 폴리 아 되>가 범죄 사회 고발을 다루는 반면, <퐁네프의 연인들>이 로맨스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작품임을 보여주며, 영화의 장르와 작품의 의도를 규정짓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사랑과 파멸의 이중성: <조커: 폴리 아 되>와 <퐁네프의 연인들>
두 영화에서 인물들의 신분과 계층은 관계의 중요한 요소로 작동한다. <조커: 폴리 아 되>에서 할리 퀸은 자신을 빈민가 출신이라고 속이지만, 사실 그녀는 부유한 가정 출신이며, 아버지가 의사인 기득권층 여성이다. 이러한 신분적 차이는 조커와 할리 퀸의 관계에 내재한 불안정을 상징한다. 할리 퀸은 조커와 함께 광기의 세계로 빠져들지만, 사실 그녀는 자신의 상류층 배경을 감추고 관계에 접근한다. 이 계층적 불균형은 결국 둘의 파멸로 이어지는 주요 원인 중 하나이다.
할리 퀸은 아서 플렉이 아닌 조커를 원한다. 그녀는 조커의 광기와 파괴성에 매료되었으며, 아서 플렉의 고통이나 욕망에는 진정한 관심이 없다. 리가 바란 것은 강렬한 조커이지, 무력하고 고통받는 아서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 사랑은 정체성의 충돌로 파멸에 이르게 된다.


만약 아서가 조커로 남아 있었다면, 그들의 사랑은 상류층과 하류층을 넘나드는 반사회적 연합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아서가 자신의 본래 자아로 돌아가고자 한다면, 이 관계는 유지될 수 없다. 이는 단순히 계급의 문제가 아닌, 정체성의 문제이다. 결국 이 사랑은 조커의 광기와 혼란을 기반으로 하고, 아서의 연약함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실패한다.
<퐁네프의 연인들>에서 미셸 역시 부유한 배경을 가진 인물로, 그녀의 아버지는 대령이며 눈 수술을 위해 포스터를 도시 전역에 게시할 정도의 재력을 가진 기득권층이다. 하지만 미셸은 자신의 출신을 버리고 거리 예술가 알렉스와 함께 최하층의 삶을 살아간다. 그들의 관계는 계층적 차이가 존재하지만, 사랑을 통해 서로를 치유하려 한다. 그러나 이 차이는 여전히 남아, 관계에 긴장감을 더한다.
결국 아서 플렉과 할리 퀸의 사랑은, 정체성과 계급적 차이의 해결이 불가능하기에 파멸로 이어진다. 반면 <퐁네프의 연인들>은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서로를 구원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며 로맨스 장르가 된다.


서사를 넘어선 감각의 영화: 사랑과 광기의 시각적·감정적 표현
<조커: 폴리 아 되>와 <퐁네프의 연인들>은 단순한 서사에 머무르지 않고, 감각적이고 서정적인 방식으로 사랑과 광기를 시각적으로 풀어낸다. 두 영화 모두 사건의 전개보다는 인물들의 감정과 심리 상태를 색채, 공간 그리고 음악을 통해 강렬하게 표현하며, ‘감각의 영화’로서 관객에게 사랑과 광기의 복잡한 면모를 전달한다.
<조커: 폴리 아 되>에서 조커와 할리 퀸의 관계는 상징적 장면들로 시각화된다. 특히 뮤지컬 장면과 계단에서의 광기 어린 춤은 서사를 뛰어넘어 이들의 혼란과 상처를 감각적으로 드러낸다. 뮤지컬 장면은 감정적 절정과 파멸을 표현하는 중요한 장치로 작용하며, 아서가 리 퀸젤의 음악과 사랑을 통해 구원받기를 바라지만, 그는 더욱 깊은 광기와 정체성 혼란으로 빠져든다.
<퐁네프의 연인들>은 파리의 밤과 퐁네프 다리 위에서 펼쳐지는 두 주인공의 외로움과 사랑을 감각적으로 묘사한다. 특히 불꽃이 터지는 강가를 배경으로 한 수상스키 장면은 서사를 넘어, 두 사람의 감정 상태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중요한 장면이다. 이 장면들과 불꽃놀이, 다리 위에서의 순간들은 현실과 단절된 그들의 사랑을 환상적으로 그려내지만, 동시에 그들이 언젠가는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는 운명을 암시한다.


뮤지컬적 요소와 환상
<조커: 폴리 아 되>는 뮤지컬적 요소로 논란이 많다. 영화 속 뮤지컬 장면은 아서의 비참함과 무기력을 더욱 부각시킨다. 이 장면들은 감정적 탈출구 대신, 그에게 주어진 ‘거짓 희망’과 환상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며, 결국 아서의 파멸을 더욱 강렬하게 강조한다.
반대로 <퐁네프의 연인들>에서는 음악과 춤이 두 주인공의 사랑을 부각시키며, 이들의 관계가 치유와 회복의 가능성을 지님을 보여준다. 퐁네프 다리 위에서의 노래와 춤은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닌, 사랑을 통한 치유와 희망을 상징하는 환상적 요소로 작용한다.
결국, <조커: 폴리 아 되>의 뮤지컬적 연출은 고통과 비극을 강화하는 반면, <퐁네프의 연인들>에서는 사랑의 가능성과 희망을 표현하는 장치로 사용된다. 두 작품의 뮤지컬적 접근은 각각의 주제를 더 풍부하게 드러내며, 사랑과 광기의 이중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마치며
<조커: 폴리 아 되>와 <퐁네프의 연인들>은 사랑과 파멸, 그리고 계층적 대비를 중심으로 각각의 인물들이 겪는 감정적·심리적 여정을 탐구한다. <조커: 폴리 아 되>는 사랑과 광기의 결합이 계층 간 파멸로 이어지는 과정을, <퐁네프의 연인들>은 이질적 계층 간의 사랑을 통한 구원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특히, <조커: 폴리 아 되>에서의 뮤지컬적 요소와 계층적 대비는 현대 사회의 계급적 불평등과 그로 인한 소외를 반영하며, 사랑이 어떻게 광기 속에서 파멸로 변질될 수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두 작품은 모두 인간의 고독과 소외 속에서 사랑이 구원과 파멸 사이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탐구하며, 관객에게 사랑의 본질과 인간 내면의 상처를 돌아보게 만든다. <조커: 폴리 아 되>는 사랑이 끝내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파멸로 치닫는 과정을, <퐁네프의 연인들>은 상처받은 인물들이 계급을 뛰어넘는 사랑을 통해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글·서성희
영화평론가, 영화학박사. 전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전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대표, 전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센터장
- 정기구독을 하시면, 유료 독자님에게만 서비스되는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잡지를 받아보실 수 있고, 모든 온라인 기사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전용 유료독자님에게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모든 온라인 기사들이 제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