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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나에게도 이런 친구가 있던가?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이 남긴 여운
[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나에게도 이런 친구가 있던가?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이 남긴 여운
  • 송영애(영화평론가)
  • 승인 2024.10.07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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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일 개봉한 이언희 감독의 <대도시의 사랑법>은 유쾌한 영화다. 박상영 작가의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에서 '재희' 에피소드를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많은 일상 에피소드가 추가되었는데, 덕분에 재희(김고은)와 흥수(노상현) 캐릭터의 매력도 배가되어 긴 여운도 남는다. 이 유쾌함이 어떻게 여운으로 이어졌는지 간략하게 이야기하고 싶다. 예비 관객을 위해 자세한 이야기는 피하면서.

 

조금씩 빗나가는 예상

원작의 내용, 장르적 특성, 포스터의 분위기 등을 고려해 예상했던 장면이나 설정, 인물들이 꽤 등장하지만, 전개와 마무리는 의외로 조금씩 빗나간다. 이러한 예상의 빗나감은 재미와 유쾌함을 더해주며, 뻔함으로 인한 지루함을 피해간다.

 

재희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지만, 동시에 쉽게 무너지는 ‘유리 멘탈’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당돌하고 과감한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순간적으로 무너져 버리기도 한다. 예측할 수 없는 이 모습이 재희를 더 현실적인 인물로 만든다. 모든 사람이 늘 일관된 모습을 유지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이 영화는 재희와 흥수의 20~30대를 다루며, 그들의 시행착오를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흥수도 마찬가지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 지내려는 소극적인 모습은 그가 지키려는 비밀 때문이다. 그 비밀은 영화 초반에 재희에게 들킨다. 덕분에 관객들은 흥수가 상황에 따라 어떻게 다른 모습을 보이는지 비교하는 재미를 누릴 수 있다. 흥수의 방어적인 태도는 재희나 규호(정휘)에게도 처음엔 작동했지만, 그들에게 마음을 열면서 흥수의 또 다른 면모가 드러난다.

주변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관객들은 재희와 흥수의 시선을 통해 주변 인물들을 마주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멋져 보였던 준수(곽동연), 선우(이유진), 지석(오동민)은 반전 면모를 드러내며 관객과 재희를 놀라게 한다. 흥수의 엄마(장혜진)도 신앙생활에 충실한 인물로 묘사되지만, 알고 보면 또 다른 면이 있다. 

의외의 면모를 보이는 이들이 모여, 의외의 상황 전개를 일상에서 벌이는 과정에서 다양한 감정이 오간다.

 

 

아웃사이더의 연대

재희와 흥수는 둘 다 아웃사이더로, 주류나 리더 그룹에 속하지 않는다. 두 사람은 용감하가, 당당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성애자 여성으로서, 동성애자 남성으로서, 종종 언어적, 신체적 폭력에 노출된다. 그럴때마다 이 둘은 서로에게 가장 든든한 친구다.

 

그들이 함께 사는 집은 그들만의 은신처이자 탈출구로, 좁고 낡았지만 따뜻하고 아늑한 공간으로 그려진다. 대도시 서울의 거대함 속에서도 그들이 안전을 느낄 수 있는 그들만의 공간이다.

집, 학교, 회사, 클럽, 그리고 술과 담배와 연애와 이별이 반복되지만, 그들은 조금씩 더 당당해지고 자기다운 모습을 찾아간다. 민준(이상이)과 수호(정휘) 같은 한결같은 친구들도 생겨난다.

 

재희와 흥수를 연기한 김고은과 노상현의 입체적인 연기는 인생 캐릭터 연기라 평가해도 지나침이 없는데, 덕분에 재희와 흥수의 연대, 동거가 더욱 현실적이고, 견고하게 느껴진다.

 

나에게도 이런 친구가 있던가?

영화를 보는 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도 이런 친구가 있던가?" 흥수가 재희에게 마음을 열게 된 계기 중 하나는 “네가 너인 게 어떻게 약점이 될 수 있어?”라는 재희의 말이었다. 흥수는 자신이 비밀로 숨기고 싶었던 것을 재희에게 들키고는 "내 약점을 잡아서 좋냐?"고 묻고, 재희는 이렇게 대답한다. 이 대사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해야 한다는 우정과 사랑의 본질을 꿰뚫는다. 재희의 말은 흥수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두 사람 모두가 서로에게 더욱 진정한 친구로 다가가게 되는 계기가 된다.

한편, <대도시의 사랑법>에 대해, 미드(미국드라마)에서나 보던 주인공의 게이 친구가, 한국영화에도 등장했다고 농담처럼 이야기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중간 과정을 건너뛴 파격이라 할 수도 있는데, 이 영화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듯, 자연스럽게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대도시에 사는 수많은 사람 중 이런 사람들 없겠냐는 듯, 이전 영화나 드라마 등의 스테레오타입도 탈피하며, 우정과 사랑, 친구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여운을 남긴다. ‘내게도 이런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의 그런 친구이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이미지 제공: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글·송영애
영화평론가. 서일대학교 영화방송공연예술학과 교수. 한국영화 역사와 문화, 교육 관련 연구를 지속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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