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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주의 문화톡톡] 히브리적 인간
[김창주의 문화톡톡] 히브리적 인간
  • 김창주(문화평론가)
  • 승인 2024.10.15 1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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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의 존재

 

1.

히브리어 문법 시간, ‘히브리어 동사에는 현재형이 없다고 설명하면 당장 질문이 튀어나온다. 그러면 I Love You!’는 어떻게 표현하지요? 사람 사이에 사랑이 있고 사랑 사이에 고백이 있으니 히브리어 동사에 현재형이 없다고 해서 사랑을 표현할 수 없으랴! 히브리 동사는 동작의 종료 여부에 따라 완료와 미완료 두 시제로 나뉜다. 후자는 행위나 상황이 계속 진행되는 경우라면, 전자는 어떤 행동이나 상태가 종결된 상황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현재 시제는 동사 미완료에 포함되는 것이다. 완료와 미완료를 이미아직이라는 부사어로 단순화할 수 있다. 히브리 동사의 문법 체계에 따르면 사람은 미완료와 완료사이의 존재라고 규정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은 태어나서 미완료의 인생을 살다가 생명이 다하는 순간 완료되기 때문이다. 즉 사람은 자신의 일생을 완료하기 위해 쉬지 않고 달려가는 존재라는 점에서 히브리 동사 미완료 형태와 흡사하다.

성서학자 볼프는 구약성서의 인간을 네 낱말로 푼다. 그에 의하면 네페쉬(נֶפֶשׁ), 바사르(בָּשָׂר), 루아흐(רוּחַ), 그리고 레브(לֵב)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주요 창()으로 차례대로 갈망하는 인간,’ ‘사멸하는 인간,’ ‘영적인 존재,’ 끝으로 마음을 가진 존재를 의미한다.1) 이 글에서는 히브리 문법적 특징으로 본 구약성서의 인간을 논의한다.

2.

히브리적 인간을 완료와 미완료 사이의 존재라고 규정할 때 두 가지 측면에서 토론이 가능하다. 하나는 히브리 동사의 완료태 활용을 통한 상호적 관계에서 사이의 공간적 의미를 엿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문법의 시제는 동사를 중심으로 행위의 종결 여부에 따라 과거와 미래로 갈린다. 그러나 상태동사나 행위동사와 달리 지각동사가 완료형으로 쓰이면 그 해석은 전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아래 두 문장을 살펴보자.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다(창세기 4:1).

내가 광야 마른 땅에서 너를 알았노라(호세아 13:5).

방점이 찍힌 동사 동침하다’(יָדַע)알았노라’(יְדַעְחִּיךָ)야다의 완료형이다. 문자적으로 옮기면 과거형 알았다가 되는데 이렇게 되면 문맥의 의미가 살아나지 않는다. 여기서 야다는 단순 완료, 즉 주체가 객체를 알았다는 종료 시점이 아니라 두 사람이 심리적, 정신적으로 충분한 교감을 나누는 관계로서 철저하게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2) 결과적으로 앞 문장은 아담과 하와가 교합했다는 뜻으로, 뒤에서는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친밀성(intimacy)을 설명하는 표현이다. 이렇듯 지각동사의 완료형은 두 대상이 함께 나누는 상호적 친밀관계를 내포하기 때문에 이로부터 히브리적 인간은 주체와 객체 사이에서 정서적 교감과 서로 신뢰하는 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3)

다른 하나는 예언자들의 독특한 선포 양식에서 볼 수 있다. 뜻밖에도 예언은 과거, 즉 완료형으로 선포된 경우가 많다. 앞으로 일어날 미래의 일을 과거형으로 기록한다니 무슨 논리일까? 우선 다음 두 구절을 읽어보자. 이사야 9장의 메시아 예언에서 따온 것이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רָאוּ)(이사야 9:2a).

한 아이가 우리에게 태어났고(יֻלַּד)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다(נִחַּן)(이사야 9:6a).

두 문장에 쓰인 세 동사의 문맥은 미래적 상황이기 때문에 위의 사역(私譯)처럼 완료, 곧 과거형으로 번역하면 잘못이다. 그런데도 실제 히브리 성서는 동사 과거형으로 쓰인다. 상식적으로 보면 예언의 시제가 뒤바뀐 것이다. 미래적 예언이 완료형으로 기록된 이유는 무엇인가? 이 경우는 일반적인 동사 완료와 달리 예언적 완료라고 부르는 수사적 장치다.4) 예언이란 청중의 관점에서 보면 장차 있을 미완료의 상태이지만, 하느님의 관점에서는 볼 때는 어떤 결론이든 이미 완료된 상황이다. 즉 예언은 대리인 예언자를 통하여 듣기 때문에 자연히 미래적 관점이 투영되지만 정작 예언의 결과는 하느님의 절대 권능에서 비롯되어 완료된 시점을 반영한다. 예언적 완료에서 미완료와 완료 사이의 긴장감을 읽을 수 있다. 예언자들의 선포를 듣는 이스라엘은 과거에 대한 심판과 미래에 대한 소망’(所望) 사이에 서 있는 존재다.5)

3.

그렇다면 히브리어의 현재적 표현은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 이 때 분사가 활용된다. ‘아니 오헤브 르카’(אֲנִי אֹחֵב לְךָ)I Love You에 해당한다. 히브리어 오헤브는 동사 아하브의 분사형이다. 히브리어 분사는 보통 과거, 현재, 미래에 비시간적인 형태로 자유롭게 쓰인다. 실제 분사의 형태는 동사에서 비롯된 것으로 약간의 변형을 통하여 동사적으로나 명사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동사적인 용법인 경우는 미래, 즉 미완료를 상정한다.

다음 삼일 안에 파라오는 너의 머리를 들(יִשָּׂא) 것이다(창세기 40:13,19)

너희들은 요단강을 건너고(עִבְרִים) 있으며 야웨가 너희에게 주실(נֹחֵן) 땅을(여호수아 1:11).

괄호 안은 동사처럼 보이지만 형태로는 모두 분사이고, 의미상으로는 가까운 미래를 가리킨다. 특히 분사가 본동사처럼 쓰이면 대체로 가까운 미래를 뜻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분사는 시간의 제약 없이 사용되기 때문에 하고 있는,’ ‘하는,’ ‘,’ ‘하게 될등을 뜻하며 가끔, 즉각적, 혹은 지속적인 행위를 포함한다. 인용구는 앞으로 며칠 내에 발생할 상황을 현재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어 표현이지만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던(빌립보서 3:5) 바울의 인용이 도움이 된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립보서 3:12). 바울의 서신에는 히브리어의 분사적 의미가 완료되기까지의 미완료의 지속적 상황을 그리스도인의 삶에 비추어 적절하게 설명되었다. 바울의 말을 히브리어로 바꾸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바울은 복음 전파의 완료보다는 복음의 수행자로서 분사형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그가 복음을 전하는 대리인에 불과하다면 업적의 성취에 방점을 두고 기록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바울은 히브리 사상에 정통한 인물로서 미완료적인, 혹은 분사적삶에서 완료를 향해 최선을 다한다. 바울은 완료와 미완료 사이에 서 있는 존재로서 자신을 확인하고 목표를 향해 여전히 달려가고 있는분사적 존재를 보여준다.

분사는 문법적으로 과거, 현재, 미래에 자유롭게 쓰이는데 현재형이 없는 히브리어에서 현재적 묘사를 가능케 하는 표현으로 미완료적 상황을 반영한다. 그러므로 분사가 미완료적 중간적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에 역시 사이의 개념으로 볼 수 있다.

4.

히브리어 동사에 현재형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황스러운 추측일 수 있지만 그 비밀은 야웨의 이름에 있다. 출애굽기 314절에서 하느님은 나는-나다로 계시한다. 이 구절에 하야’(הָיָה) 동사의 일인칭 미완료가 세 차례 나오는데 야웨의 이름이 여기에 기인한 것으로 본다. 다음 인용에 이다’(to be) 동사가 두 번 반복된다. 아래 세 번째 줄 영어 문장에 am이 두 번 나온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개역개정)

나는 곧 나다 (공동번역)

I AM WHO I AM (New Revised Standard Version)

Ehyeh-Asher-Ehyeh (אֶהְיֶה אֲשֶׁר אֶהְיֶה: Tanakh)

위의 한글과 영어에서 하느님(I)은 현재형이지만, 원문은 미완료(will be).6) 이 구절에 관한 수많은 연구와 해석은 끝나지 않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일치되거나 만족할만한 이론을 찾을 수 없는 실정이다. 유대교 전통은 절대자보다는 영원자”(the Eternal)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부버의 절친이자 나치 수용소의 희생자인 로젠크바이크(Franz Rosenzweig)지금 함께하고 앞으로도 같이 있을분으로 설명한다.7)

나는-나다구문이 모세의 소명설화에서 기인한다면 하느님의 현재적인 성격과 직접적인 측면이 강조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하느님 자기 계시가 문법적으로는 미완료지만 의미상으로는 현재적이다. 그리하여 예언자 이사야는 나는 처음과 마지막’(이사야 44:6, 44:1)으로, 요한계시록은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오실 전능하신 분’(요한계시록 1:8)으로 선포한다. 즉 변함없이 지금 여기에 항상 계시는 분이다. 히브리어 문법에 따르면 오늘은 미완료에 해당하지만 야웨 하느님에게 오늘은 어제도 오늘이고 내일도 오늘이다. 어제와 내일이 오늘에 융합되어 있는 분이 곧 야웨다. 따라서 유대교에서는 나는-나다영원하신 분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히브리어 현재는 하느님의 영역이다. 실상 야웨 이외의 모든 것은 이전에 있었거나(완료) 앞으로 있을 것으로서 지금 생성 중이다(미완료). 오직 야웨만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다니엘 7:22)로서 변함없이 현재하고 그렇기에 그분은 영원하다. 히브리적 인간은 영원히 현재하시는 분에게 부분적으로 편승하여 (하느님의 형상을 닮은) 미완료적 현재를 살아가는 셈이다.

5.

히브리어 동사의 시제가 완료와 미완료의 구분만 된다고 해서 동사의 활용을 두 가지 형태로만 한정하면 잘못이다. 동사의 형태와 쓰임에 따라 변화가 다양하여 현재시제를 비롯하여 과거와 미래 사이를 묘사하는 방식은 여럿이다. 히브리 동사의 관점에서 사람을 완료와 미완료 사이의 존재라고 말할 때 그 사이 또한 다양하다. 그리하여 유대 현자들은 히브리적 인간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단계별로 설명한다.

5세에 성서, 10세에 미시나, 13세에 계명, 15세에 탈무드를 공부할 수 있고, 18세에 결혼하며, 20세에 생계를 책임지고, 30세에 강건하며, 40세에 이해가 생기고, 50세에 조언하며, 60세에 장로가 되어, 70세에 흰머리가 나고, 80세에 특별한 힘을 얻으며, 90세에 노쇠하니, 100세에 죽어도 좋다. <선조들의 어록 5:21>

히브리적 인간을 사이의 존재라고 규정한다면 시간상으로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며, 내용상으로 완료와 미완료 사이의 모든 행위와 변화를 포함한다. 즉 시간적으로나 내용상으로 사이는 양쪽에 과거와 미래가 놓여있는 중간이며 사람에게 허용되는 공간이다. 이 사이에 태어나고 장성하며 활동하는 동안 히브리적 인간은 줄곧 변화한다. 히브리어 동사의 기준이 완료와 미완료라면, 히브리적 인간은 태어나 죽을 때까지사이의 존재다. 사람은 모두 그사이의 존재로서 쉬지 않고 새롭게 생성되어 간다.*

 

 

1) H. W. 볼프. 문희석 옮김, 『舊約聖書의 人間學』 (왜관: 분도출판사, 1976) 28-116. 
2) E. 프롬. 최혁순 옮김, 『너희도 신처럼 되어라』 (서울: 범우사, 1980) 38.
3) M. 부버. 남정길 옮김. 『預言者의 信仰』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77) 180-81. 
4) Paul 주옹/T. 무라오까, 김정우 역, 『성서 히브리어 문법』 (서울: 기혼, 2012) 395. 
5) ‘소망’이란 이성이 아니라 계시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확신이자 표식을 뜻한다. 
6) Ellen J. van Wolde, "Not the Name Alone: A Linguistic Study of Exodus 3:14–15." Vetus Testamentum 71.4-5 (2021): 784-800.;  K. J. Cronin, "The Name of God as Revealed in Exodus 3:14: An Explanation of Its Meaning" 2013. www.exodus-314.com.
7) Franz Rosenzweig, "The Eternal: Mendelssohn and the Name of God," in Scripture and Translation (Bloomington & Indianapolis, Indiana University Press, 1994) 99.

 

 

글·김창주
한신대 신학부 교수. 히브리 유산을 인문학으로 푸는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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