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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필립의 시네마 크리티크] 44년 전통과 권위의 영평상, 2024년 평론가들의 선택
[윤필립의 시네마 크리티크] 44년 전통과 권위의 영평상, 2024년 평론가들의 선택
  • 윤필립(영화평론가)
  • 승인 2024.11.04 1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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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의 창발적 진화에 주목
파격적 결과로 조망하는 한국 영화의 희망 찬 미래
제44회 영평상 최우수 작품상 수상작 '괴인'의 한 장면(네이버 영화)
제44회 영평상 최우수 작품상 수상작 '괴인'의 한 장면(네이버 영화)

지난 10월 23일 대한성공회 강남교회 지하 식당에 스무 명 남짓의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박태식, 이하 영평) 회원들이 함께 모였다. 제44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이하 영평상) 본심을 위해서다. 이미 100여 명의 모든 영평 회원을 대상으로 예심이 치러진 상태로, 이날은 예심 투표 결과를 바탕으로 본심 대상자(작)를 추려내 수상자(작)를 가리는 최종 투표의 날이었다. 참고로, 심사 대상작은 지난해 영평상 예심 이후부터 올해 예심 직전까지 개봉한 작품들이다. 이렇게 따지면 제44회 영평상 심사 대상작은 2023년 8월부터 2024년 9월까지 개봉한 영화들이 된다. 따라서 작년에 심사 대상작으로 들지 못했던 여름 텐트폴 영화 '더문'(김용화 감독), '비공식 작전'(김성훈 감독, 이상 2023.8.2. 개봉), '콘크리트 유토피아'(엄태화 감독, 2023.8.9. 개봉)와 명절 기대작 '거미집'(김지운 감독, 2023.9.27. 개봉), 천만영화 '서울의 봄'(김성수 감독, 2023.11.22. 개봉) 등은 올해 심사 대상작 리스트에 포함되었다.

 

제44회 영평상 기술상(미술) 수상작 '거미집' 포스터(네이버 영화)
제44회 영평상 기술상(미술) 수상작 '거미집' 포스터(네이버 영화)

영평상 본심 투표 방식은 비교적 간단하고도 선명하다. 예심 결과로 올라온 3~5명(편)의 대상자(작)를 놓고 무기명 투표가 이루어지며 그 가운데 본심 참석자 과반 이상의 다득표자(작)를 선정하는 방식이다. 만약 과반 이상의 다득표자(작)가 없을 경우 최다득표자(작)를 대상으로 결선 투표가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 시간은 영평상 본심의 핵심이자 꽃이라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영평상 심사 중에 이루어지는 평론가 집단 특유의 난상토론과 논쟁이 대부분 이루어지는 시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영평상 본심에서는 참석자 투표로 수상자(작)가 결정되는 주요 부문 가운데 절반 이상의 부문에서 지지 발언과 난상토론이 오가는 결선 투표가 진행됐다. 그러한 부문에는 최우수작품상,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남우조연상, 신인감독상, 신인남우상, 촬영상 등이 있다. 이러한 긴장감 넘치고도 결과적으로 파격을 불러온 결선 투표 이야기는 11월 20일 수요일 오후 7시에 예정된 제44회 영평상 시상식 이후에 다시 한번 정리하고자 한다. 

 

제44회 영평상 각본상 수상작 '막걸리가 알려줄 거야' 포스터(네이버 영화)
제44회 영평상 각본상 수상작 '막걸리가 알려줄 거야' 포스터(네이버 영화)

참고로, 영평에서는 협회가 예시한 등단 경로로 영화평론가로 데뷔하였거나 기타 경로로 영화평론가 등단 이후 평단에서 일정 햇수 이상 활동한 자에게만 정회원 입회 심사 자격이 부여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는 어디까지나 '심사 자격'일 뿐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기본 자격을 갖추었어도 심사를 통과해야 정회원으로 입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일종의 엄격하고도 엄정한 테스트 통과한 평론가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당연히 각자의 예리한 관점을 설파하는 논쟁의 장이 펼져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렇게 길고 긴 논쟁과 고민의 결과로 제44회 영평상에서는 아래와 같은 수장자(작)를 선정했다.

 

제44회 영평상 본심 최종 투표 결과(직접 촬영)
제44회 영평상 본심 최종 투표 결과(직접 촬영)

<제 44회 영평상 수상자(작)>

▲최우수 작품상: '괴인'▲감독상: 김성수('서울의 봄')▲여우주연상: 김재화('그녀에게')▲남우주연상: 이희준('핸섬가이즈')▲여우조연상: 염혜란('시민덕희')▲남우조연상: 현봉식('빅토리')▲신인감독상: 조현철('너와 나')▲신인여우상: 김형서('화란')▲신인남우상: 이도현('파묘')▲각본상: 김다민('막걸리가 알려줄거야')▲촬영상: 박 로드리고 세희('세기말의 사랑')▲음악상: 달파란('탈주')▲기술상(미술): 정이진('거미집')▲독립영화지원상: 정지혜(극영화 부문 '정순') / 선호빈, 나바루(다큐멘터리 부문 '수카바티-극락축구단')▲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상: 이미랑(국내 부문 '딸에 대하여') / 줄리 하, 이유진(국외 부문 '프리철수 리')▲공로영화인상: 문희(영화배우)▲신인 평론상: 이승희

 

제44회 영평상 남우조연상 수상자 현봉식 배우의 '빅토리'(네이버 영화)
제44회 영평상 남우조연상 수상자 현봉식 배우의 '빅토리'(네이버 영화)

최종 투표 결과가 화이트 보드 위에 하나 둘씩 정리되자 본심 현장은 다소 술렁이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예년과 달리 서로 겹치는 작품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한 쪽에서 "겹치는 게 어떻게 하나도 없네!"라는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로 본심 참석자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나눠주기식이라고 보기에는 작년 개봉 대작들을 포함하여 '외계+인 2부'(최동훈 감독), '댓글부대'(안국진 감독), '범죄도시 4'(허명행 감독), '하이재킹'(김성한 감독), '탈출'(김태곤 감독), '파일럿'(김한결 감독), '리볼버'(오승욱 감독), '행복의 나라'(추창민 감독), '베테랑 2'(류승완 감독) 등 올해 개봉한 대작들 또한 의외로 힘을 쓰지 못했다.

 

제44회 영평상 감독상 수상자 김성수 감독의 '서울의 봄' 포스터(네이버 영화)
제44회 영평상 감독상 수상자 김성수 감독의 '서울의 봄' 포스터(네이버 영화)

또한, 다양성과 실험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보기에는 '서바이벌 택틱스'(박근영 감독, 2024), '벗어날 탈'(서보형 감독, 2024), '모르는 이야기'(양근영 감독, 2024) 등과 같은 기존의 영화적 정형성을 거부한 수작들이 빠져 있고, '절해고도'(김미영 감독, 2023), '울산의 별'(정기혁 감독, 2024), '장손'(오정민 감독, 2024) 등 연기력과 서사, 촬영 기법 등에서 주목받은 작품들도 볼 수 없다. 이렇게 본다면 결국 제44회 영평상의 최종 투표 결과는 온전히 작품성과 예술적 성취에 주목한 결과로밖에 볼 수 없을 것 같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영평 자체가 지독스럽게 가난할지언정 독살스럽게 예리하고도 집요한 관점을 포기하지 않고자 하는 고집스러운 집념으로 조직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평상은 늘 자본의 논리에서 자유로이, 그 어떤 눈치도 볼 것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영화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다.

 

제44회 영평상 여우주연상 수상자 김재화 배우의 '그녀에게' 포스터(네이버 영화)
제44회 영평상 여우주연상 수상자 김재화 배우의 '그녀에게' 포스터(네이버 영화)

한편, 44년 동안 이루어진 영평상의 수상 목록에는 상업영화가 다수 포진한 가운데서도 늘 저예산 독립영화가 발굴되어 수상자(작)에 올라 왔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영평상은 저예산 독립영화에도 늘 주목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현상이 코로나19 감염병 사태 이후 더욱 강화되는 추세이다. 이와 관련하여, 일각에서는 코로나 사태와 그 사이 OTT에 잠식 당한 한국영화의 미래를 어둡게 바라보지만 코로나 감염병 사태 이후 개봉되고 있는 저예산 독립영화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 영화는 대부분 신인감독이 연출한 작품임에도 그동안 무수한 대작 감독들도 하기 꺼려 했던 이야기에 기꺼이 도전하며 새로운 영화 문법을 만들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 저예산 독립영화를 중심으로 하나의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제44회 영평상 신인남우상 수상자 이도현의 '파묘' 포스터(네이버 영화)
제44회 영평상 신인남우상 수상자 이도현의 '파묘' 포스터(네이버 영화)

이는 분명 기존에 소수의 걸출한 신인감독 몇몇을 중심으로 한국영화계가 이동하고 발전해 왔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다. 아마도 영화평론가들은 이 부분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단순히 저예산 독립영화라서가 아니라 그 범주에 속한 일련의 작품들이, 막강한 자본력으로 탄생한 이른바 대작들의 작품성과 예술성을 능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현재 한국영화계에서는 저예산 독립영화를 중심으로 '창발적 진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매년 영평상의 일환으로 선정하고 발표하는 '영평10선' 부문에 잘 녹아들어 있는데, '영평10선'은 영평 회원 평론가들이 작품성과 미학적 성취 등에 주목하여 작년 8월과 올해 9월 사이에 개봉한 영화를 대상으로 무작위로 투표한 결과이다. 그러한 투표에는 개인의 주관적 취향이나 선호도가 반영될 수밖에 없고, 10편만 선정하기에는 한해 동안 제작/개봉되는 한국영화의 수가 적지 않으므로, 그중에서 순위권에 오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영평 회원 평론가 개개인의 주관적 의견이 일정 수 이상의 득표로 이어져야 최종적인 10선에 오를 수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영평상 주요 부문 수상자(작) 만큼이나 경쟁이 치열한 부문인 것이다. 2024년의 영평 회원 평론가들은 무기명, 무작위 투표를 통해 다음과 같은 작품들에 큰 주목을 했고 그 결과 '영평10선' 리스트가 확정되었다.

 

제44회 영평상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 및 영평10선 선정작 이미랑 감독의 '딸에 대하여'(네이버 영화)
제44회 영평상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 및 영평10선 선정작 이미랑 감독의 '딸에 대하여'(네이버 영화)

▲영평 10선(가나다 순)

'거미집'(김지운 감독, 2024)

'괴인'(이정홍 감독, 2023)

'딸에 대하여'(이미랑 감독, 2024)

'막걸리가 알려줄거야'(김다민 감독, 2024)

'서울의 봄'(김성수 감독, 2023)

'세기말의 사랑'(임선애 감독, 2024)

'잠'(유재선 감독, 2023)

'장손'(오정민 감독, 2024)

'파묘'(장재현 감독, 2024)

'핸섬가이즈'(남동협 감독, 2024)

 

글을 마무리하며, 개인적으로 제44회 영평상은 저예산 독립영화를 기반으로 나타나고 있는 한국영화의 창발적 진화와 그것이 이끌 한국영화의 희망 찬 미래에 주목했다고 본다. 한국의 영화산업이 성장 동력을 상실한 사이 갈 길을 잃은 한국영화는 여전히 이곳저곳을 방황 중이며, 그 결과는 점차 처참한 결과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저예산 독립영화계의 신인 감독들과 스태프들 그리고 배우들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영화적 실험과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고, 거듭되는 시도 안에서 나름의 성취를 이룩하며 새로운 영화 문법의 작품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는 정부의 계속되는 영화 관련 예산 삭감과 그로 인한 지역/예술극장 폐관, 그에 따라 연쇄적으로 나타나는 극장 상영 횟수 등과 같은, 그야말로 황무지처럼 절대적으로 불리한 환경에서 저예산 독립영화계의 신인 감독들과 스태프들 그리고 배우들이 꽃을 피운 기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문자 그대로 로또 맞은 행운인 것이다.

 

제44회 영평상 촬영상 수상작 '세기말의 사랑'
제44회 영평상 촬영상 수상작 '세기말의 사랑'

이러한 현상을 목도하며 평론가의 한 사람으로 한국영화의 미래를 그저 비관할 필요가 없다고 느낀다. 오히려 기대되고 기다려 진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저예산 독립영화 제작에 관여하는 개개인들의 힘만으로 버텨 보라고 하기에는 냉혹하고, 그 수준은 잔혹하기까지 하다. 이러한 변화의 기로에서 정부적인 지원이 절실하며, 평단에서는 지속적으로 영화 발굴에 힘써야 할 것으로 본다. 불행 중 다행으로 영평에서는 한국영화계의 이 미묘한 변화를 감지하고 올해 제44회 영평상의 결과로 적절히 반응했다. 그러나 더 큰 변화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이를 위해 영평은 앞으로도 한국영화계와 이를 둘러싼 각계각층의 시선과 반응을 공정하게 지켜볼 것이다. 물론 그 누가 뭐라 한들 가난할지언정 관점을 포기하지 않는 영평의 작품 선정 전통은 지금처럼 앞으로도 쭈~욱 지속될 것이고 ......

 

제44회 영평상 여우조연상 수상자 염혜란 배우의 '시민덕희' 포스터(네이버 영화)
제44회 영평상 여우조연상 수상자 염혜란 배우의 '시민덕희' 포스터(네이버 영화)

 

글·윤필립
영화평론가, 응용언어학자. 한국어교육학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강의하며 담화분석과 대중문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교육원을 수료했으며, 무궁화 스토리텔링 공모전 동화 입선, 서울국제사랑영화제에서 기독교 영화 비평 대상 수상,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 당선 등을 했다. 만화평론상, 대종상,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심사위원 및 영평상 집행부 등을 역임했으며, 반석산 시네마 콘서트 등에서 진행과 영화 큐레이션을 담당하고 있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정회원으로, 르몽드 코리아, 영화의 전당, 경기일보 등에 글을 기고하고 있으며, 세종사이버대학교 초빙교수 및 한국어교육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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