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파트 아파트 Uh, uh huh uh huh
10월 18일 발매된 블랙핑크 로제(ROSÉ)와 브루노 마스(Bruno Mars)가 부른 노래 ‘APT.’는 한국의 보편적인 주거 공간인 아파트를 이용한 술 게임을 노래의 소재로 활용한다.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멜로디와 가사는 중독성 있게 흥얼거릴 수 있게 하고, 외국인들에게는 낯설고 신선하게 다가오게 만든다. 높게 솟은 고층 건물, 획일화된 형태, 분리된 것처럼 보이지만 집단성이 뚜렷한 아파트는 한국의 자본주의 시스템과 함께 성장해온 대표적인 주거 공간 중 하나다.
강유가람 감독의 영화 <럭키, 아파트>(2024)는 보편적인 공간인 아파트 바깥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주목한다. <이태원>(2019), <우리는 매일매일>(2021), <애프터 미투>(2022) 등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오던 강유가람 감독은 첫 번째 장편 극영화 <럭키, 아파트>로 실체 없는 공포가 가시화되고 마주하는 과정을 차분히 들여다본다. 9년차 레즈비언 커플인 선우(손수현)와 희서(박가영)는 자신들이 마련한 보금자리(복도형 아파트)에 점차 현실적인 돈 문제와 어디서 풍겨오는지 모르는 악취로 인해서 안락함을 빼앗기고야 만다. 아파트라는 은밀하고 내밀하지만, 집단성이 강한 공간에서 두 사람은 관계마저 뭉뚱그려 숨긴 채 살아가야 한다.
영화의 오프닝은 푸른빛이 감도는 새벽녘, 차 안에서 의견 다툼을 벌이는 선우와 희서의 모습이다. 실직한 선우가 무리하게 배달 일을 하다가 한 쪽 다리에 깁스를 하게 되면서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금이 생기기 시작한다. 선우가 한쪽 다리를 다친, 즉 노동을 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은 <럭키, 아파트>의 주요 쟁점 중에 하나다. 자신의 의지대로 이동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선우는 부득이하게 오랜 시간 집에서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그 순간부터 선우는 실체가 없는 악취를 맡게 된다. 집 안에 있던 쓰레기봉투에서 냄새가 나는 것이라고 생각해 그것을 바깥에 내다놓지만, 그것은 잠시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버려둔 느낌이다.
악취의 기원을 찾기 위해서 선우는 집 안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킁킁대는데, 냄새가 올라오는 곳이 아래층인 1310호 할머니(전소현)의 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집에 찾아가 봐도 아무런 대꾸가 없는 상황에 관리실로 달려가 민원을 내보지만, 자신의 바람과는 다르게 그들은 관심조차 없다. ‘도대체 어디서 냄새가 올라오냐’며 선우를 예민한 사람 취급할 뿐이다. 신체적 제한이 있는 선우가 영화 내에서 제일 먼저 악취를 알아차리는 인물이라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같은 공간에 거주하지만, 오랜 시간 머무르지 않는 희서는 한참 뒤에야 악취를 맡기 때문이다. 희서에서는 내부의 보이지 않는 문제보다, 승진 누락과 같은 외부의 보이는 문제가 더 시급하다.
“냄새는 분자 같은 거래. 그 사람 일부가 우리 집을 떠다녔던 거지” 그렇다면, 강유가람 감독은 왜 시각적인 형태가 아닌 후각적인 부분에 집중한 것일까? 이는 관객들과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한 카테고리에 두고 선우, 희서와 분리하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악취에 반응하는 두 사람과 달리 관객과 아파트 거주민들은 냄새를 직접적으로 맡을 수 없다. 선우는 1310호에 살던 할머니의 집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결국 그녀가 고독사를 했다는 사실까지 밝혀지게 된다. 방치되었던 탓에 시신의 냄새들이 통로를 타고 올라왔던 것. 그만큼 아파트는 각각의 방들이 분리되어 있는 형태지만, 서로가 연결된 기이한 구조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1310호 할머니의 유족들이 나타나지 않는 탓에 선우는 악취의 실체를 알면서도 그저 내버려 둘 수밖에 없다. 아파트 거주민들에게 청소 동의서라도 구해보려고 하지만, 집값이 떨어질까 봐 쉬쉬하는 사람들만 있을 뿐이다. 그 와중에 선우와 희서가 커플이라는 것이 노출되는 지경에 이른다. 희서는 “제발 조용히 살자”라고 소리치지만, 1310호 할머니 집에서 어떤 사진을 보게 된 선우는 “남일 같지 않아서 그래”라며 대꾸한다. 어쩌면 남들이 보기에 답답할 정도로 강건한 선우는 유족들을 찾기 위해 아픈 다리를 이끌고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그러다가 할머니의 사진 속에 같이 찍힌 한 여성의 존재를 발견하고는 연락처를 찾아 그녀를 만나러 간다.
강유가람 감독은 할머니와 여성의 관계에 대해 은밀한 뉘앙스를 풍길 뿐, 관계를 규정짓지는 않는다. 하지만 선우의 시선을 통해서 자신들과 동일한 관계일 것이라는 단서만 제공한다. 그 여성은 자신이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싶다고 말하지만, 이내 가족들이 나타나면서 그마저도(무연고자 장례) 불발된다. 장례 역시 가족이라는 사회가 정해놓은 제도와 카테고리 안에 포함되어야만 가능한 일로, 화분 할머니의 연인이었을 여성은 그 관계에 들어갈 수 없다. 아마 그것은 선우와 희서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파트라는 보편적인 공간 안에 진입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서로의 관계를 ‘친구’라는 단어 안에 숨겨야 하며 제도권이 인정하는 서로의 가족이 되어줄 수 없다.
지독한 악취처럼 두 사람의 본질은 그 아래에 숨겨진다. 가족들과 절연을 하면서까지 자신을 드러낸 선우와 다르게 희서는 가족들에게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숨긴다. 그나마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동생은 “쉽게 살 수 없냐”며 타박을 한다. 이는 “이렇게까지 해서 더 숨기고 싶어?”라는 선우의 말과 호응하면서 묘한 아이러니를 만든다. 타인에게 비치는 희서는 결혼이나 연애에 관심이 없는 비혼 여성이기 때문이다.
선우가 희서의 만류에도 1310호 화분 할머니의 삶을 파헤치려던 것은 실체 없던 악취가 만들어낸 두려움과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른다. 과거 거주하던 빌라에서 두 사람의 관계가 드러나서 고초를 겪었기에 본질을 익명성이 보장되는 안락한 테두리 안에 숨겨두지만, 사실 그것은 언제든 드러날 수 있는 상태였다. 아파트의 특성처럼 악취가 되어 흘러 들어올 수도, 쉬이 노출될 수도 있다. 결국 두 사람의 관계는 아파트 동대표에 의해서 단톡방 안에서 가시화된다. 사람들의 혐오와 차별에 계속해서 서로를 숨기기 급급했던 선우와 희서는 오히려 드러냄으로 인해 공포를 극복한다. 본질적인 두려움을 들여다보지 않았던 선우와 희서는 계속해서 붕괴되고 와해될 수밖에 없었지만, 문 너머에 있는 존재를 확인하고 실체 없는 두려움을 확인 했을 때 두 사람은 다시 결합될 수 있었다.
때문에 영화의 엔딩은 두 사람이 변화된 관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면서도 약간의 씁쓸함을 남기기도 한다. 엔딩에서 그려지는 배경은 넓고 탁 트인 아파트 외부의 공간이며 햇살이 내리쬐고 있는데, 이는 오프닝에서의 아파트 단지에 주차되었던 차 안의 공간과는 상반된다. 두 사람은 아파트 근처의 뒷 산에서 땅을 파고는 할머니의 사진과 함께 해바라기를 심는다. 아마도 햇빛이 지속적으로 내리쬐는 한, 해바라기는 시들지 않고 자랄 것이다. 오프닝과 엔딩 모두 아파트의 내부가 아닌 바깥에서 극이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그들의 관계가 아파트와 완전히 결합될 수 없다는 느낌이 들지만, 본질을 마주하고 서로를 드러내면서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다. 선우의 다쳤던 다리가 영화의 엔딩에 다다라 회복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글·이하늘
영화평론가
- 정기구독을 하시면, 유료 독자님에게만 서비스되는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잡지를 받아보실 수 있고, 모든 온라인 기사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전용 유료독자님에게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모든 온라인 기사들이 제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