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若將除去無非草(약장제거무비초) 베어버리자니 풀 아닌 게 없지만
好取看來總是花(호취간래총시화) 두고 보자니 모두가 꽃이더라”
- 작자 미상(?) -
성(城)은 전설로, 섬은 신화로 태어난다. 성과 섬은 고립형 이란성 쌍둥이. 중력과 반중력이 공존하는 세계로 던져진다. 성이 반중력의 세계를 찬양하며 하늘을 본다. 눈을 감은 수평의 길에서 수직의 하늘로 떠 오른다. 스카이캐슬(Sky Castle)을 향한 수직의 여정이 허공에서 길을 잃는다. 섬은 중력의 화폭으로 진화하며 하늘과 구름, 바다와 이어진다. 바다를 품은 채 수평의 길을 좇으며 외연을 확장한다. 단절의 성이 전설처럼 높아가며 연결과 소통의 섬을 버린다. 성의 상승과 섬의 하강. 섬을 잃어버린 닫힌 바다는, 낮은 울타리 너머 노란 햇살길을 걸으며 열린 풀꽃섬의 신화를 써간다.
카프카 / ‘성(城)’의 서사 / 은유적 / ‘단절’ 채색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년~1924년) 사후 발표된 미완성 장편 소설 『성(Das Schloß)』(1926년)은 눈 덮인 마을과 보이지 않는 성으로 시작한다.
“늦은 저녁에야 K는 도착했다. 마을은 깊은 눈에 파묻혀 있었다. 성이 있는 산은 조금도 보이지 않을뿐더러 성은 안개와 어둠에 싸여 있었다. 따라서 큰 성이 있는 길을 알리는 희미한 등불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K는 큰길에서 마을로 통하는 나무다리 위에 서서 오랫동안 희멀건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 『성(Das Schloß)』,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권혁준 옮김 -
눈 내린 늦은 밤, 주인공 K는 베스트 베스트 백작 성의 영지인 아랫마을에 도착한다. 백작이 초청한 성의 토지 측량사로 등장하는 K는, 하룻밤을 마을 여관 식당의 짚방석 위에서 잔 후 성으로 가려고 한다. 자신을 성의 집사 아들이라고 소개하는 젊은이에 의해 깨어나, 숙박을 위한 성의 허가증을 요구받는다. 숙박 허가증은 성안으로 들어가 정착하려는 K의 시도가 실패할 것을 암시하는 은유물. 마을에 찾아온 이방인으로서, 첫날밤을 지낸 K는 금방 닿을 것처럼만 보이던 성에 들어가려고 시도하며 다양한 마을 사람들을 만난다. 성으로부터의 지시에 무조건적인 복종으로 일관하는 그들을 대면하며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계속 직면한다. 성으로 가고자 하는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배회하는 K에게 기존 체제(성과 마을)가 주는 마을 학교 급사 일자리와 마을 처녀와의 사랑 나누기는, 성의 실재성에 대한 또 다른 물음표로 다가올 뿐이다. 쌓여만 가는 물음표의 대척점에서 지속적인 기존 체제에 대한 거부와 자신의 정체성 드러냄에 몰두하며, K의 성을 찾아가고자 하는 여정이 이어진다. 여정의 끝에서 만난 마부와 마부의 어머니. 마부의 어머니와 나눈 대화는 미로 같은 성을 향한 많은 질문에 대한 답을 상징적 미완성으로 남긴다. K는 미완성을 통한 완성을 꿈꾸며 침묵의 말을 전한다.
“마부 게르스태커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K에게 떨리는 손을 내밀어, 자기 옆에 앉혔다. 그녀는 간신히 애를 써서 띄엄띄엄 말을 했는데, 여간 노력을 하지 않으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한 말은...”
『성』은 마부 어머니의 침묵 속 말과 함께 카프카를 떠나가지만, 그 결론을 통한 완성은 카프카 친구인 막스 브로트(Max Brod, 1884년~1968년)의 전언에 의해 추론될 뿐이다. 브로트에 의하면, K는 마을에 머무른 일곱 번째 되는 날에 마을 거주를 전제 조건으로 성에 들어와도 된다는 허가를 받지만, 기력이 소진한 나머지 죽어 간다는 내용의 마지막 장이 빠져 있다고 한다. 『성』은 이에 대한 작품 해석이 너무도 많지만, 근본적으로 인간 존재 또는 인간 존재 근원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 것은 아닌지. 카프카의 성을 향한 완성의 메시지는 마부 어머니의 침묵 속에 머무르며 K의 답을 기다리고 있다.
카프카의 『성』은 두 가지 특성을 서사화하며 낯선 마을 주변인(outsider)인 K의 삶을 채색한다. 첫째는 공간적 측면으로서 성의 불확실성. 공간의 실재물로서 바로 앞에 있는 듯한 성이, 직간접인 정보 획득과 분석을 통해 성을 향해 가면 갈수록 더욱 짙은 안개와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는 듯하며 존재와 위치의 불확실성을 드러낸다. 마치 허공에 떠 있는 신기루 같은 성. 이어서 공간 대상으로서의 성은 단일성을 떠나 다자성으로 나아간다. 성으로 들어가기 위한 정보를 얻기 위해 만난 마을 속 남녀 등장인물들과의 대화, 마을 내에서 성의 관리들(클람,소르티니,에어랑어 등)과의 접촉 및 자신의 체험을 통한 유추는 마을에서 지내는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가 아닌 복수의 성으로 등장한다. 만나는 인물들은 성(城)이라는 하나의 실체에 대해 언급하지만, 그들의 성(性), 집단 내에서의 사회적 위치 및 환경 등의 변수를 반영하며 각자 다른 성으로 귀결된다. 흡사 성의 본질이 해체되어 각자의 텍스트로만 존재하는 듯한 성. 둘째는 주체적 측면으로서 K의 익명성. 소설 속 모든 등장인물은 성의 영지 내에서 각자의 실명으로 살아가지만, 주인공 K는 초라한 모습을 나타내는 외형적 묘사 외에는 불특정 다수를 나타내는 듯한 이니셜 K로 드러날 뿐이다. 이원화된 딜레마로 서 있는 보이지 않는 성이 인간 존재의 근원을 상징한다면, 익명의 K는 인간 존재 자체를 의미하며 불확실성과 익명성의 시공간에 점령당한 유령으로 다가온다.
성과 마을, 그리고 거기서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 속으로 들어온 K. K로 대변되는 외부는 내부의 성을 바라본다. K가 성 주변 마을에서 머무르며 끝내 다가가지 못한 성은, 실존을 위한 숙박 허가증을 나누지 않으며 홀로 서 있는 단절의 상징물이다. 단절을 벗어나 소통을 향해 나아가는, 마부의 우체통에 들어있는 성에 대한 K의 편지는 무엇일까?
‘섬’ 지향 / 정반합은 / 연결 ‘소통’ / 진화 추구
미완성의 『성』은 마부의 마차를 타고, 완성의 성을 향해 떠난다. K가 성을 향해 보내는 편지에 장 그르니에(Jean Grenier, 1898년~1971년)의 산문집 『섬(Les Iles)』(1933년)이 같이 한다.
“저마다의 일생에는, 특히 그 일생이 동터 오르는 여명기에는 모든 것을 결정짓는 한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다시 찾아내는 것은 어렵다. 그것은 다른 수많은 순간들의 퇴적 속에 깊이 묻혀 있다. 다른 순간들은 그 위로 헤아릴 수 없이 지나갔지만, 섬뜩할 만큼 자취도 없다. 결정적 순간이 반드시 섬광처럼 지나가는 것은 아니다. ~(중략)~. 말없이 어떤 풍경을 고즈넉이 바라보고만 있어도 욕망은 입을 다물어 버린다. 공(空)의 자리에 즉시 충만이 들어앉는다. 내가 지나온 삶을 돌이켜보면 그것은 다만 저 절묘한 순간들에 이르기 위한 노력이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 『섬(Les Iles)』, 장 그르니에(Jean Grenier)/김화영 옮김 -
성은 육지로, 섬은 바다로 인해 태어난다. 둘은 태생적으로 고립성의 공통 속성을 갖는다. 성이 인위적인 고립성과 단절성으로 닫혀 있다면, 섬은 자연적인 고립성과 연결성으로 열려 있다. 외형상 반복적 원형의 숫자로 돌아오는 삶의 시간일지라도, 그 내면은 동터 오르는 여명기의 수많은 순간의 퇴적물로 빛난다. 성이 떠남으로써 단절성을 극복한다면, 섬은 기다림으로써 연결되어 간다. 삶의 순간들이 의미를 기준으로 대립하지 않고, 충만의 순간들로 연결되며 하나둘씩 쌓여간다. 연결의 퇴적물이 오늘의 나를 이루고, 내일의 K를 만든다. 내일의 K가 아침 햇살을 받으며 세상의 순간들로 돌아온, 어느 시인의 섬을 찾는다.
“물 울타리를 둘렀다./ 울타리가 가장 낮다./ 울타리가 모두 길이다.”
- <섬>, 함민복 -
이른 아침에 도착한 시인의 섬은 바다와 헤어지지 않는다. 물, 울타리 그리고 사람이 만나는 땅이다. 땅은 물로 인해 울타리를 알게 되고, 관계를 맺는다. 바다는 물로 다가와 섬과 함께 햇살, 바람, 그리고 파도의 얘기를 나눈다. 관계를 맺는 것이 연결이면, 얘기를 나누는 것은 소통이다. 물에 안긴 섬이 단절된 정적인 고립이라면, 물을 품은 섬은 연결된 동적인 소통이다. 어쩔 수 없는 원초적 욕망으로, 물과 섬은 끊임없이 만나며 관계를 형성한다. 관계는 물 울타리를 열린 소통 공간으로 바꾸며, 길로 이어진다. 물~울타리~사람의 길과 과거~현재~미래의 길. 섬은 바다의 길을 통해 연결을 확장하고 소통으로 진화한다. 섬의 진격에 화답하며 성의 불확실성과 익명성은 전복되고, 연결성과 소통성으로 깨어난다.
섬과 바다는 개별자(the individual)의 속성을 갖는다. 바라보는 주체자의 관점에 따라 상호 닫히기도 하고 열리기도 하는 이중성이다. 섬과 바다가 드러내는 보편자(the universal)의 특성. 섬이 바다의 밀물에 조응하며 수렴하면 고립성, 썰물에 대응하며 확산하면 소통성이라는 양면성이 그것이다.
섬과 바다는 하나의 유기체로 작동하는 태생적 일체성을 바탕으로, 이중성과 양면성을 들숨과 날숨으로 호흡하며 성을 바라본다.
반중력 / ‘피레네의 성’ / ‘풀꽃섬’ 향한 / 소통의 길
육지의 성이 단절의 무게를 부풀리며 바다의 섬 위로 떠오른다. 르네 마그리트(René François Ghislain Magritte, 1898년~1967년)가 성과 바위, 하늘과 구름, 그리고 바다와 섬을 찾는다. <피레네의 성, The Castle of the Pyrenees>(1959년).
하늘을 가린 커다란 바위 위에, 바위에서 태어난 듯한 성이 그 일체성을 자랑하며 허공에 떠 있다. 배내옷인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을 벗으며 일어선다. 지나간 순간을 반복하듯 꿈틀대는 바다에 옷이 펼쳐진다. 펼쳐진 옷이 구름과 하늘에 걸린다. 성과 바위, 하늘과 구름, 그리고 바다...사라진 섬. 바위와 바다, 성과 하늘은 이중성. 성과 바위, 하늘과 구름, 바다와 섬은 양면성. ‘피레네 성’은 개별자로서의 소재에 대한 묘사는 눈앞의 현실을 정확하게 그리고자 하는 사실주의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보편자로서의 표현 내용은 일체성, 이중성, 그리고 양면성이 서로 경계를 이루며 완벽한 부조화 속에 조화로 다가온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물이 눈앞의 현실인 듯 표현되며, 익숙함을 벗어난 낯섦을 날것으로 드러낸다.
익숙한 중력을 거스른 채 액체 위에 떠 있는 고체는 낯섦으로 이끄는 반중력을 상징한다. 반중력은 중력과 달리 대상 현상이 지닌 고정된 텍스트나 이미지의 속성이 해체되어 새롭게 표현되는 것을 의미한다. ‘피레네의 성’은 반중력의 세계이다. 지금 중력을 거스르며 반중력의 세계를 지배하는 종(種)은 무기~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기후. 지배종은 카프카의 성이 되어, 섬과 바다를 단절하고 연결과 소통 간 역설의 논리를 확장하며 끝없는 부양을 꿈꾼다. 우리 존재의 불확실성과 익명성, 그리고 고립감과 소외감에 대한 메타버스(Metaverse)적 은유로 걸려 있다.
버려진 우리의 성은 시들고, 각자의 스카이캐슬(Sky Castle)로 다시 피어오른다. 수평을 버리고 수직을 지향하는 성들이 허공(심지어 화성)을 향해 올라간다. 수직의 높이만큼이나 단절이 깊어진다. 카프카의 성은 단절을 무시하지만, 우리의 성은 단절을 비웃으며 찬양한다. 허공에 뜬 성 아래에서 바다의 날숨과 들숨이 숨 가쁘게 허덕이며 호흡한다. 하늘의 성은 떠오르고 바다의 섬은 사라진 채 보이지 않는다. 섬의 연결과 소통이 소멸한다. 바다는 흔들리며 심하게 요동친다. 바다의 섬이 소멸한 곳에, 초연결을 향한 바다의 성이 들어찬다. 성의 상승과 섬의 하강을 통한 초연결과 소통 부재의 역설이 지배하는 시대. 단절과 초연결이 빙하처럼 떠다니며 소통과 부딪치고 불협화음을 토해낸다.
단절의 성을 떠나 소통의 섬을 향해 울타리를 넘는다. 낮은 울타리 너머로 지배종의 찬 바람이 불어온다. 허공에서 떨어지는 성을 밟으며, 투명한 햇살로 빛나는 노란 가을 길을 걷는다. 베어진 풀이 꽃으로 피어나는 풀꽃섬 얘기를 나눈다.
글·최양국
문화평론가. 격파트너스 대표 겸 경제산업기업 연구 협동조합 이사장. 전통과 예술 바탕하에 점-선-면과 과거-현재-미래의 조합을 통한 가치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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