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홍 감독의 영화 ‘괴인’은 2023년 한국 독립영화계에서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독특한 서사 구조와 인물의 고립된 심리를 정교하게 표현하며, 사건이 아닌 순간과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인물들이 겪는 고립과 내면의 불안을 그려낸다. 사건 전개보다 감정적 순간의 형상화에 집중한 이 영화는 현대 사회에서 고립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상징적 자화상을 담아냈다. 영화 ‘괴인’이 어떻게 현대인의 내면을 그려내는지, 그리고 그 미학적 의미를 살펴보자.

1. 사건이 아닌 순간에 집중한 서사 구조: 전형성을 벗어나다
이정홍 감독은 ‘괴인’을 통해 전통적인 서사 구조와 결별한다. 인터뷰에서 그는 “사건이 중요한 영화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최초의 목표가 있었다”라고 밝혔다. 이는 사건 중심으로 전개되는 일반적인 서사 구조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이다. 대신 이 영화는 인물들이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순간과 감정에 주목하며, 특정 사건의 해결이나 결과를 기대하지 않고, 인물들의 미묘한 관계와 심리적 변화를 따라가도록 유도한다.

주인공 기홍은 퇴사 후 건축 현장에서 일하며 피아노 학원 공사를 맡은 목수다. 그는 친구 경준과 함께 작업을 마친 후 술에 취해 공사 현장으로 몰래 들어가 잠을 자게 된다. 이후 기홍의 차 지붕이 찌그러져 있고, 기홍은 누군가 건물에서 뛰어내린 것으로 추정한다. 여기서 보통의 영화라면 '누가 뛰어내렸는가?'라는 추적의 과정을 밟겠지만, ‘괴인’은 이 사건에 대한 직접적 해결을 목표로 이야기를 쌓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기홍은 주변 인물들인 친구 경준, 집주인 정환과 그의 아내 현정, 홈리스 여성 하나와의 관계 속에서 점차 자기 내면을 드러낸다. 이들은 모두 어떤 사건을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각자의 이유로 불쑥 기홍의 인생에 나타났다 사라지며, 그와 얽힌 미묘한 관계를 통해 각자의 고립감을 드러낸다. 이는 사건이 아닌 순간의 포착에 중점을 둔 감독의 의도를 반영한 것으로, 이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특정 사건의 해결을 기대하게 하지 않고, 대신 각 인물이 겪는 불안과 고독에 집중하게 한다.

2. 고립과 관계의 형상화: 공간을 통한 감정의 확장
영화 괴인은 물리적 공간을 심리적 공간과 결합하여 인물들이 느끼는 고립과 소외감을 형상화한다. 기홍이 머무는 집과 주변의 좁은 골목, 피아노 학원, 동네 목욕탕 등은 현대인이 일상에서 느끼는 고립감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며, 인물들이 처한 고독을 더욱 강조한다. 특히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좁은 공간과 수직적 움직임은 감정의 억눌림과 고립을 상징한다.
기홍이 머무는 방은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그의 내면을 드러내는 상징적 공간이다. 이 공간은 그가 느끼는 고립감을 반영하며, 영화의 첫 장면에서 기홍이 놀라 비명을 지른 후 크게 웃는 모습은 고립된 공간 속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숨기려는 태도를 나타낸다.
이후 기홍은 주인집 건물과 분리되었지만, 연결도 되어 있는 집에 입주하게 된다. 기홍이 머무는 방은 집주인 정환이 사소한 사건을 크게 부풀리며 기홍을 이리저리 휘두르는 공간으로, 영화는 이 방을 통해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인 연결과 고립의 상징을 시각화한다.
그곳에서 부부 정환과 현정, 그리고 홈리스 여성 하나가 등장하면서 그의 삶에 점차 얽히지만, 그 누구도 기홍의 진정한 고립을 풀어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얽힌 관계로 연결되지만, 그 연결은 서로를 깊이 이해하기보다는 상호 간의 소외감을 더욱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3. 3040세대의 고립과 불안: 사회적 공허의 시각적 은유
영화 괴인은 특히 3040세대가 처한 사회적 고립과 불안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기홍이 겪는 고립은 단순히 개인적 문제에 그치지 않고, 현대 사회에서 중견 세대-자타의 기대와 달리 자아 성취와 삶의 만족에서 그 어느 것도 안정되지 않은 불안한 세대-로서 느끼는 외로움과 불안감을 상징한다. 집주인 정환은 자신이 처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기홍을 집에 세 들게 하지만, 결국 이 관계 역시 서로의 공허를 채워주지는 못한다.
정환은 기홍에게 일종의 소외감을 주는 인물이다. 정환이 집을 유지하기 위해 기홍을 세 들게 하며 만들어낸 관계는 기홍에게 일종의 심리적 부담감을 주며, 이러한 관계는 현실에서 느끼는 고립감과 연결된다. 영화는 이를 통해 이들 세대가 관계 속에서 갈등하고, 불안과 공허에 휩싸인 모습을 보여준다. 기홍의 방과 그의 주변 공간들은 그가 속해 있는 사회적 상황을 반영하는 상징적 공간으로, 관객들에게 세대 고립의 감각을 전달한다.

4. 결말: 순환적 고독과 삶의 무상함
영화는 결말에서 특정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기홍이 마지막에 다시 방으로 돌아가 잠들며 영화는 막을 내리지만, 그의 고립과 불안은 여전히 남아 있다. 결말 부분에서 기홍은 모든 상황을 수용하듯 방에 혼자 남아 잠드는 모습을 보이며, 이는 곧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느끼는 고독의 순환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결말은 단순히 사건 해결을 넘어서 고독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사건을 해결하는 대신 그 순간을 받아들이고 삶을 지속하는 3040세대의 삶의 태도를 보여준다. 이 장면은 삶 속의 무상함과 불확실성을 표현하며, 관객에게도 사건에 대한 해답보다 고독과 고립을 받아들이는 의미를 상기시키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5. 괴인의 영화적 의의와 독립영화의 새로운 지평
괴인은 사건 중심의 상업영화와 달리, 사건이 아닌 순간을 통해 현대인의 내면적 갈등을 조명한다. 이 영화는 일상의 고립과 불안을 섬세하게 묘사하며, 관객에게 특정 사건의 해결보다는 그 순간의 감정을 체험하게 만든다. 괴인은 이를 통해 한국 독립영화가 가진 실험적 가능성과 이전 세대의 형식과 다른 방식으로 3040세대의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을 선보였다.
특히, 이정홍 감독은 좁은 공간과 상징적 이미지를 통해 고립된 현대인의 심리를 탁월하게 형상화한다. ‘괴인’은 사건이 아닌 순간과 인물의 내면을 통해 불안과 고립감을 형상화한 영화로, 독립영화가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인간의 내면을 탐구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탐색한 작품이다.
*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괴인' 포토
글·서성희
영화평론가ㆍ영화학박사.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 전 이사장으로,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대표와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센터장을 역임했다. 현재 영화에 관한 글쓰기와 강연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며, 영화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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