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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호의 시네마 크리티크] <소영의 노력>, 그 무용수의 손에 들린 카메라
[송상호의 시네마 크리티크] <소영의 노력>, 그 무용수의 손에 들린 카메라
  • 송상호(영화평론가)
  • 승인 2024.11.18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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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영의 노력' 스틸컷.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제공
'소영의 노력' 스틸컷.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제공

제16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한국경쟁작 중 하나였던 <소영의 노력>은 단순한 기록 내지는 관찰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꿈을 위해 연습에 집중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마음 가는 대로 살고 싶은 뇌성마비 무용수 소영의 일상과 무대의 삶을 교차하고 있다. 이때 주목해야 하는 지점은 바로 공연장과 연습실을 구분하는 일이 무용하다는 것. 연습실에서 스스로에게 몰두한 그의 모습이 한 편의 공연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무대 위 소영의 모습이 실제 상황인지 연습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출발해 보자.

그렇기에 영화를 보고 나면 자연스레 피어나는 궁금증이 있다. 과연 어느 지점이 연출된 장면이고, 어디까지가 연출에서 벗어나 있는 것인가? 이건 극 중 무용수 소영이 실제로 연기를 하고 있는지 아니면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것인지 사실 파악할 길이 없다는 데에서 비롯된 고민이다.

가령 감정에 사로잡혀 독백을 이어가는 소영의 안무 연습 장면을 떠올려 본다. 마음속 생각을 여과 없이 끄집어내는 그의 모습은 시종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그가 연습하면서 내뱉는 말들이나 감정과 몸짓을 하나하나 떠올려 본다. 소영은 자기만의 서사를 안무 연습에 녹여낸다. 엄마는 몸이 불편한 딸에게 안 될 거 뻔하다며 포기하라고 재촉할 때가 있었다. 그저 춤을 추고 싶었던 소영은 그럴 때마다 고통스러워했다. 자신의 한계로 인해 버거움을 느낄 때면 “나도 말귀를 알아듣고 싶은데”라며 자책했다. 그러니까 그의 공연 프로그램 안무 연습은 어쩌면 삶이 예술로 승화되는 순간이다. 문제는 관객들이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과연 이 구간이 몇 차례의 촬영 끝에 최종 상영본에 포함됐을지는 도통 알 길이 없는 것 아닌가. 또 이 과정에서 소영이 읊었던 표현들이 소영 스스로가 만들어낸 말인지 감독이나 주변 사람들이 보조해 줘서 나오게 된 말인지도 역시 구분해낼 방도는 없다.

 

'소영의 노력' 스틸컷.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제공
'소영의 노력' 스틸컷.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제공

그렇기에 더더욱 이 다큐멘터리가 카메라를 운용하는 방식에 신경써야 한다. <소영의 노력>에서 중요한 건 포착 자체가 아니라, 그 포착에 동반되는 경위를 함께 살펴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즉 이 영화의 카메라는 포착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소영의 노력을 관객과 엮어주는 연결고리에 가깝다는 점에 주목해 보자. 어떤 대상을 따라가는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창작자가 고민하는 지점 중 하나는 바로 그 대상과 관객을 어떻게 이어주느냐를 고민하는 작업일 테다. <소영의 노력>에서 엿볼 수 있는 그 흔적의 두께는 꽤나 두터워 보인다.

전반부의 카메라가 대화 장면을 어떻게 담아내고 있는가. 소영의 발화나 몸짓 자체도 중요하지만, 영화가 그걸 수용하는 대상의 리액션에 항상 눈길을 두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소영이가 뭔가를 전달하면 그걸 받는 이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포착한다는 말이다. 즉 카메라는 ‘소영의 노력’을 관객과 이어주려는 매개자처럼 보인다.

 

'소영의 노력' 스틸컷.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제공
'소영의 노력' 스틸컷.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제공

사실 소영이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표상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테다. 이 영화에서 오재형 감독은 소영의 사연 자체를 서사화하는 접근 대신, 소영 스스로가 서사를 구축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섰다. 그게 바로 소영에게 직접 카메라를 건네주는 결단에서 비롯된다. <소영의 노력>의 편집본을 편의상 거칠게 나누자면 전반부와 후반부로 분리할 수 있다. 전반부의 카메라는 세상 사람들이 소영을 대하는 시선이고, 후반부의 카메라는 소영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무대를 마친 소영은 다음 날부터 스스로 카메라를 들고 일상을 기록한다. 뇌성마비를 앓는 그의 신체에 깃든 한계로 인해 카메라는 당연히 고정되거나 지지될 수 없고, 구도 역시 엉망이 되어버린다. 쓰러지는 카메라와 갈 곳 잃은 앵글은 바로 소영이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공연만 무사히 올리면 다 끝난 줄 알았지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여전히 삶은 반복된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순간마다 늘 고민과 역경의 연속이다.

후반부 소영의 카메라로 찍힌 촬영본을 유심히 따라가다 보면 역시 피어나는 의문이 있다. 아무리 감독의 주문이 있었다지만, 소영은 자신의 일상을 왜 찍으려고 들었던 걸까? 사실 그는 제 한 몸을 건사하기도 힘들다. 온전히 일상을 누리고 버텨내는 일조차도 그에게 사치라는 말이다. 그런 그가 자신에게 불리한 조건을 추가해 가면서까지 카메라를 들게 된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소영의 노력>을 곱씹고 싶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관객이 작품을 능동적으로 뜯어볼 수 있게 만들고 있지 않나.

 

'소영의 노력' 스틸컷.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제공
'소영의 노력' 스틸컷.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제공

카메라를 들고 마냥 아이처럼 좋아하는 소영은 그렇게 일상을 기록한다. 감독이 그에게 카메라를 맡기면서 어떤 말을 건넸을지 관객들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사실 알 수도 없다. 감독이 그저 건넬 수 있는 말이라고는 “찍고 싶은 대로 아무거나 찍어보자”고 조심스레 제안하는 게 전부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촬영된 영상이 감독의 디렉팅을 제대로 이해하고 수용해서 나온 결과물일지 우연의 산물일지 파악할 수도 없다.

소영은 공연 다음 날 집에서 카메라에 대고 “어젠 좋았고 오늘은 힘들고 내일은 모르겠다”고읊조린다.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말이지만, 이 표현에 깃든 삶의 본질은 깊고 풍부한 감칠맛을 자아낸다. 생각한다고 저렇게 말할 수도 없고, 누가 각본을 써준다고 해도 저런 말이 나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혹시나 감독이 이 장면을 촬영하기 전 소영에게 연락해서 ‘이 내용의 대사를 이런 느낌으로 살려줬으면 좋겠다’고 신신당부를 했을 수도 있겠다. 아니면 순전히 소영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일 수도 있다.

결국 스크린에 드러나는 정보로만 봤을 때는 어떤 게 진실인지 가려낼 수 없다. 문제는 이처럼 발언의 진정성을 측정하거나 진실 여부를 가리는 작업이 애초에 유효할 수 있느냐는 것. 우리가 살아가면서 때때로 무단횡단을 했는데도, 나는 그런 적이 없다고 스스로를 속일 때도 있지 않나. 즉 삶은 언제나 순도 100%의 진실과 사실로만 지탱되지 않고 언제나 연출이라든가 연기나 거짓의 영역에 발을 담글 수밖에 없는 셈이다. 그렇기에 <소영의 노력>은 그러한 삶의 아이러니를 오히려 제대로 짚어낸 영화가 된다. 그 난장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눈에 드러난 지점뿐 아니라 드러나지 않은 지점들을 함께 고려 해보는 일이다. <소영의 노력>이 의미가 있다면 바로 그 지점을 염두에 뒀기 때문일 테다. 관찰하는 대상을 그저 대상으로만 내버려두지 않고, 카메라를 든 주체로 바꿔 준 그 선택 말이다. 이 선택에는 흘러가는 삶에 대한 존중과 배려 그리고 의지가 담겨 있다.

눈 내리는 어느 날, 차량 안에 앉아 창밖을 찍던 소영이 나지막이 내뱉었던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시설을 찍는 게 아니라 풍경을 찍는 거예요 나는, 알고 계세요” 난 소영이 아무 생각 없이 건물을 바라보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차창 밖 우두커니 서 있는 무미건조한 시설의 외관이 소영에겐 아름다운 풍경으로 비쳤던 게 아닌가. 바깥을 바라보던 소영을 따로 불러내 인터뷰 형식으로만 이 장면을 담아냈다면, 과연 우리가 소영이 세상을 독해하는 방법에 가까워질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 그 무용수의 손에 들린 카메라에 바로 <소영의 노력>이 닿고자 하는 그들 또 우리의 삶이 있다.

 

'소영의 노력' 스틸컷.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제공
'소영의 노력' 스틸컷.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제공

 

글‧송상호
영화평론가, 경기일보 기자로 활동하며 글을 쓰고 있다. 2021년 박인환상 영화평론 부문 수상. 2023년 영평상 신인평론상 우수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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