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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의 문화톡톡] '국가애도기간'에 대한 고찰(2): 애도는 기간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이지혜의 문화톡톡] '국가애도기간'에 대한 고찰(2): 애도는 기간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 이지혜(문화평론가)
  • 승인 2024.12.31 1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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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애도와 사적애도에 관한 짧은 견해(2) 영화 <너와 나>(조현철, 2023)

최근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로 인해 국가 애도 기간이 선포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애도의 물결에 동참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애도 기간이라는 제도가 과연 적절한 방식인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애도 기간이 공적으로 선포되는 것은 공동체적 상실을 함께 나누는 의미에서 중요한 일이지만, 그만큼 개인의 애도 방식과 속도가 배제될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일 수 있다.

애도는 감정이다. 감정은 명확하게 시작과 끝을 구분할 수 없고, 누군가는 오래도록 슬픔을 안고 살아가지만, 또 누군가는 고통을 빠르게 떨쳐내기 위해 바쁘게 살아간다. 그렇기에 ‘애도 기간’이라는 개념은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짧고 가혹하게 느껴질 수 있다.

 

 

상실은 누군가에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국가적 차원의 애도는 공동체가 하나의 목소리로 슬픔을 표출하고,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연대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러한 공적인 애도는 사건의 무게를 함께 나누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문제는 애도 기간이 종료되었을 때 발생한다. 애도 기간이 끝나면 사회는 다시 ‘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신호를 보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실은 누군가에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에게 애도 기간은 단순한 숫자에 불과하다. 그들의 애도는 그 이후에도 지속되며, 때로는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 속에서 되살아난다. 공적인 애도와 사적인(개인적인) 애도는 이렇게 충돌하며,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이 간극이 깊은 상처로 남는다.

 

 

한국 사회에서 반복된 애도의 역사

한국은 지난 10여 년간 수많은 애도가 필요한 사건들을 겪어왔다. 2014년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는 단순한 감정을 넘어 사회적 운동으로 이어졌으며,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현재진행형’의 아픔으로 남아 있다. 2022년 이태원 참사는 젊은 세대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애도의 방식과 기간을 둘러싼 논쟁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나아가 이번 제주항공 사고까지, 한국 사회는 반복적으로 집단적 상실을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사건들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애도는 단순히 한 번의 기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흘러도 우리의 기억 속에서 지속된다는 점이다. 세월호 10주기를 맞이한 현재도 희생자들을 기리는 행사가 열리고,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는 지금까지도 추모의 메시지가 남아 있다.

 

세월호를 소재로 삼은 영화 '너와 나'(조현철, 2023) ⓒ네이버 영화
세월호를 소재로 삼은 영화 '너와 나'(조현철, 2023) ⓒ네이버 영화

애도의 영화적 형상화: <너와 나> (조현철, 2023)

조현철 감독의 <너와 나>는 애도에 대한 문제를 섬세한 시선하게 담은 영화다. 세월호를 소재로 삼았지만,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사건 직전까지 학생들이 보냈던 일상이다. 즉, <너와 나> 속의 인물들은 상황을 통해서, 대사를 통해서 세월호라는 사건을 보여주지도, 감정을 표출하지도 않는다. 대신 관객이 카메라에 맺힌 일상의 대화와 우정의 풍경을, 나아가 등장인물이 나누는 사랑에 이입하고 공감하며 응원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영화 말미에 이들을 갑작스럽게 부재하게 함으로써, 영화가 끝난 직후부터 관객이 이들의 흔적을 유추하도록 의도한다. 이는 롤랑 바르트가 『애도 일기』에서 말한 “애도는 일상의 순간들 속에서 되살아난다”는 개념과 맞닿아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화를 보며 느끼는 감정의 일부분은 애도를 지속하는 과정일 수 있다. 상실은 결코 끝나지 않고, 남겨진 사람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애도는 지속된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시간과 함께 살아간다.”

– 롤랑 바르트, 『애도 일기』 중에서

일상에서 피어나는 슬픔의 기억: 롤랑 바르트의 애도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애도 일기』(2012)를 통해 애도의 본질에 대해 깊이 고찰했다. 바르트는 “애도는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그는 어머니를 잃은 후, 일상 속 사소한 사물과 풍경에서 어머니의 부재를 느끼며 애도가 지속된다고 말한다. 바르트의 애도는 한국 사회가 겪어온 반복된 상실의 기억과 맞닿아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여전히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이태원 참사 현장을 찾는 이들이 있는 것처럼, 애도는 우리가 떠나보낸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또 다른 방식이다.

 

 

애도의 피로, 그리고 빠른 일상 복귀

반면 애도 기간이 길어질수록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슬픔은 강렬한 감정이며, 이를 오래 지속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심리적 부담이 된다. 일상으로 빨리 돌아가고자 하는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애도를 짧게 마무리하자는 의견 역시 어떤면에서는 타당하다. 그러므로 두 가지 입장은 모두 일리가 있다. 애도는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속도에 맞게 이루어져야 한다. 문제는 애도 기간이라는 제도가 이 다양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영화 '너와 나'(조현철, 2023) 스틸 ⓒ네이버 영화
영화 '너와 나'(조현철, 2023) 스틸 ⓒ네이버 영화

애도는 특정한 시간에 갇히지 않는다

애도 기간이 끝났다고 해서 우리의 애도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애도 기간 이후에도 우리가 어떻게 이 사건을 기억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애도의 기간이 아닌, 기억의 지속성이 더 중요한 가치일 수 있다.

이번 애도 기간이 끝나도, 우리는 계속해서 기억하고 애도하며, 그들을 마음속에 남겨둘 것이다. 그리고 그 애도는, 시간이 지나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기억이 될 것이다. 애도는 특정한 시간에 갇히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안에서 조용히 이어지는 시간이다.

 

글·이지혜(이해이)
문화평론가. 2022년 문화전문지 《쿨투라》 제16회 영화평론 신인상으로 등단.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글쓰기를 강의하며 한국문화콘텐츠와 문화현상을 연구한다. 월간 《쿨투라》에 영화평론을, 서울책보고 웹진 <e-책보고>에 에세이를 연재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문화톡톡에 문화평론을 기고중이다.

· 인스타: @leehey_cine · 이메일: leehey@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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