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월 서울 한남동, 탄핵 절차에 들어간 윤석열 대통령 체포를 촉구하는 시위대가 구호를 외친다. 바로 근처에서 ‘대통령 사수’ ‘좌파 척결’을 요구하는 시위대의 확성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남성들의 목소리와 대비되는 ‘키세스 시위대’다. ‘이쪽’ 시위대에서 눈에 띄는 것은 형형색색 응원봉으로 한국은 물론 세계 언론에 보도된 젊은 여성들이다. 방한용 은박 비닐로 몸을 두른 모습이 키세스 초콜릿처럼 보인다 해서 그런 별명이 붙었다.
걸그룹 소녀시대의 ‘다만세(다시 만난 세계)’에 맞춰 몸을 흔들며 구호를 외치는 여성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회의 탄핵 표결을 끌어낸 여의도 대규모 시위에서도 유독 2030 여성들은 눈에 띄었다. 집회에 나온 모든 이들, 특히 중장년층 남성들이 이구동성으로 한 이야기는 “여성들이 정말 많구나”라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면 “젊은 남성들은 어디 갔을까”라는 질문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여성 혐오적 극우 발언을 일삼으며 “남성들의 대변인”을 자처한 어느 정치인은 “젊은 남성들은 군대에 가서 시위에 못 나온다”라고 주장했지만, 이를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25년 현재 19~34세 청년 인구는 1,025만명, 전체 인구의 약 25%다. 그중 절반인 513만명 정도가 남성이다. 반면 현역병 숫자는 30만명 수준이다. 그 정치인의 주장은 숫자로 따질 가치조차 없는 선동일 뿐이다.
“젊은 여성들은 탄핵에 찬성하는 반면에 젊은 남성들은 극우화되어 윤석열 지킴이로 나섰다”고 하면 지나친 단순화일 수 있다. 어떤 집단의 정체성에 대한 주장에는 늘 “다 그런 것은 아니다”라는 반론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특정 정당 혹은 정치인에 대한 지지율에서 젠더 간격 차가 10%만 나도 사회학적 분석 대상이다.
한국 젊은이들의 정치적 스펙트럼에서 젠더 격차는 너무나 명확하다. BBC 코리아 보도를 보면 2024년 12월 7일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범국민 집회에서 “20대 남성의 참여율은 전체의 약 3.3%로 과거에 비해 확연히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반면 “20대 여성의 경우 전체 참가자 20만 2,228명(추산)의 약 17.7%를 차지해 가장 높은 참여율”을 보였다.
‘왜 한국 남성들은 보수화되었나’를 얘기하면서 흔히들 군대 문제를 거론한다. 가치관이 굳어지기 시작하는 성인으로서의 출발점을 가장 보수적이고 억압적인 군대에서 보내야 하는 현실, 취업 경쟁에서 여성들과 결전을 치러야 하는 부담감이 ‘군대에 가지 않는 여성들’에 대한 분노로 이어지고 반여성적 정치인에 대한 선호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설명만으로 해소되지 않는 의문들이 있다.
젊은 남성들의 극우화는 지구적인 현상?
한국 남성들이 세계를 기준으로 봐도 ‘가장’ 극우화됐다고 볼 수 있을까. 사우디아라비아의 젊은 남성들, 아프가니스탄의 젊은 남성들, 혹은 독일의 젊은 남성들, 멕시코의 젊은 남성들보다 극우적이라고 볼 수 있을까.
저마다의 기준으로 그 사회들의 전반적인 시민의식을 평가하면서 비교할 수는 있겠지만 잘라 말할 근거는 없다. 젊은 남성들의 보수화는 한국에만 있는 현상이 아니다. 독일에선 이미 30여 년 전 냉전이 끝날 무렵부터, 아니, 그보다 더 전부터 스킨헤드로 대변되는 극우 청년들이 부상했다. 민주주의를 다른 세계보다 더 먼저 정착시킨 유럽에서 극우화는 여성들의 정치적 성장을 뒤로 후퇴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202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여성 의원 비중이 이전보다 오히려 줄어들었다면서 ‘여성의 후퇴’를 지적했다. 세계 수십억 명이 선거를 치러 ‘지상 최대의 선거의 해’로 꼽혔던 이 해는 국제의회연맹(IPU)에 따르면 20년 동안 여성 대표성 증가율이 가장 낮았던 해이기도 했다.
피터 랭새터와 칼 크누트센은 2024년 6월 국제정치학리뷰에 실린 논문에서 서유럽 14개국의 젠더 간 이념 격차를 분석했다. 2만3,000명을 대상으로 한 이들의 조사에서 “일반적으로 여성이 더 ‘진보적’이고 대부분 국가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좌파적 경제관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환경을 우선시하며, 이민을 더 지지하고, 성평등에 더 중점을 두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성별 격차는 젊은 세대에게서 더 두드러졌다. 저자들은 “개별 정책 분야에 대한 남녀의 태도 차이가 작더라도, 모든 분야에서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면 투표에서는 큰 성별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치 사회적 이슈에 대한 젊은 여성과 남성들의 격차는 글로벌한 현상이다. “모든 대륙의 나라들에서 젊은 남녀 사이에 이념적 차이가 벌어졌다. 같은 도시, 직장, 교실, 심지어 같은 집에 살고 있는 수천만 명이 더 이상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파이낸셜타임스>의 2024년 6월 기사다.
이 신문은 “새로운 글로벌 성별 격차가 나타나고 있다”라고 하며 흔히 Z세대를 한 덩어리로 묶었지만 실상 “Z세대는 하나의 세대가 아니라 두 개의 세대”라고 표현했다. 신문이 인용한 갤럽 데이터에 따르면 18~30세 여성은 세계적으로 봤을 때 같은 연령층 남성보다 ‘30% 더 진보적’이다.
독일은 점점 더 보수화되는 젊은 남성과 진보적인 동시대 여성 사이에 30%의 격차를 보이고 있으며, 영국에서도 그 격차가 25%에 달했다. 2023년 폴란드에서는 18~21세 남성의 거의 절반이 강경 우파 정당을 지지했지만, 같은 연령대 여성의 지지율은 6분의 1에 그쳤다.
신문에 인용된 학자 존 번-머독은 미국, 영국, 독일, 한국 4개국의 18~29세 데이터를 차트로 만들어 정치 이념의 차이를 분석한 뒤 “새로운 글로벌 젠더 격차의 징후”가 드러났다고 주장한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튀니지든, 젊은 층일수록 젠더 간 견해 차이가 더 큰 것으로 여러 조사에서 나타나고 있다.
젊은 남성들은 원래 보수적이었을까? 여성들의 사회 활동이 제한적이고 교육 수준도 상대적으로 낮았던 오랜 역사 동안 젊은 남성들은 여러 혁명의 주역이었다. 수십 년 전에는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여성들은 더 안정을 지향하며 보수적인 정치성향을 갖고 있다’는 담론이 통했다.
하지만 몇 년 만에 ‘글로벌 젠더 이념 격차’가 세계의 화두로 부상했다. <파이낸셜타임스>가 인용한 갤럽 조사에서 놀라운 것은 이처럼 격차가 벌어지는 데에 단 6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미투(#MeToo) 운동이 분열의 불쏘시개 역할을 했을 수 있다. 성희롱과 성범죄에 대한 보수와 진보 정치세력의 서로 다른 태도가 젊은 남성과 여성들을 보수-진보 진영으로 광범위하게 재편하는 데에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견해 차이는 이제 미투를 훨씬 넘어섰고, 이민이나 인종 문제, 혹은 성소수자 문제나 환경문제 등 모든 면에서 이념적 간극이 커지고 있다.
윤석열 집권 후 심화된 젊은 남성들의 반페미니즘 정서
젊은 층의 젠더 간 이념 격차는 보편적이지만 한국 젊은 남성의 극우화는 유독 두드러진다. 그래서 대표적인 사례로 한국을 거론한 보도나 연구가 많다. 미국 온라인 매체 <복스>는 한국이 “역사적으로 공공연한 성차별이 극심했으며 유난히 강력한 미투 운동이 벌어졌고,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에 남성 징집 제도를 가진 나라”라는 점을 지적했다.
<복스>는 “한국이 특별한 사례인지, 아니면 민주주의 세계의 미래를 내다보는 창인지 현재로서는 말하기 어렵다”고 말하며 “세계에서 젠더 간 격차가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래가 결정돼 있다고 볼 수는 없다”며 결론을 유보한다.
2024년 4월 미국 시사잡지 <타임>은 유독 낮은 출산율, 반페미니즘 정치 전략으로 당선된 윤석열 대통령, 젊은 남성과 여성 간 엄청난 정치적 분열을 “한국을 보여주는 세 가지 사실들”로 꼽았다.
<타임>은 “이 세 요인은 불가분의 관계”라면서 “한국이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다른 나라들도 뒤따를 수 있다”고 보도했다. <타임>은 미국에서도 젊은 남성들의 페미니즘에 대한 적대감이 커지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젠더에 대한 제로섬 사고”를 우려했다. 미국에서 공화당을 지지하는 남성의 40% 가까이가 “여성의 사회적 성취는 남성의 희생으로 이뤄졌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며, 이 같은 제로섬 견해는 젠더뿐 아니라 인종 문제, 이민 문제에서도 똑같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남성들의 정치적 참여도다. 이슈별로 봤을 때 젊은 남성이 젊은 여성보다 더 참여하는 주된 이슈는 없었고, 젊은 남성들은 오른쪽으로 돌아서는 것을 넘어 정치에서 등을 돌리고 있었다.
젠더 간 이념 격차는 이제 가족의 구성을 막는 수준으로 향하고 있다. <타임>의 표현을 빌리자면, “누가 적과 동침하고 싶어 하겠는가?” 결국은 인구 구조를 왜곡하고 모두의 복지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한국에서 이미 시작된 현상이고, 같은 걱정을 하는 세계가 한국을 주목하는 이유다.
2024년 6월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아시아의 인셀(incel)’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인셀은 ‘비자발적 독신자(involuntary celibate)’의 줄임말로, 1990년대 후반 북미에서 등장한 용어다. 인셀 문화는 “극단적인 분노, 적대감, 성적 대상화, 여성 혐오, 인간 혐오, 자기 연민 및 자기혐오, 인종차별, 여성과 성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비난, 허무주의, 강간 문화”를 특징으로 삼는다.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이나 일본에서 저출생-고령화를 부추기는 한 요인이 된 젊은 층의 결혼 기피 현상을 다루면서 젠더 간 적대감에 주목한다. 눈부신 경제 성장을 했던 두 나라 모두에서 젊은 남성들은 ‘아버지 세대보다 경제적으로 덜 낙관적인’ 시대에 살고 있고, 고용은 불안정해졌다. 결혼을 하는 사람은 줄고 있다. 연애를 하지 않거나 성관계를 해본 적 없는 젊은 층이 많다. 온라인에는 ‘여성에 대한 분노’가 넘쳐난다.
젊은 남성들의 우파 포퓰리즘을 자극하는 정치권
런던 킹스칼리지의 이수현 교수는 「반젠더 정치학, 경제적 불안정과 우익 정치」라는 논문에서 2022년 대통령 선거 때 특히 두드러졌던 젠더 분열을 분석하면서 ‘현대적 성차별주의(Modern Sexism)’가 계층에 상관없이 한국 젊은 남성들에게 만연해 있다고 지적한다. 이 교수는 이런 현상이 “결혼과 가족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제적 불안정”에서 출발한다고 주장한다.
치열한 일자리 다툼 속에 남성들은 여성들을 동료가 아닌 경쟁자로 여기고 있으며, 동시에 ‘남성 가장 모델’로 대표되는 결혼 규범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결과, 결혼과 취업 모두에서 장애물을 만나게 되는 남성들이 반여성적 우파 포퓰리즘으로 향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은 세계 어느 나라나 비슷하다.
그런데 한국을 특히 젠더 갈등의 극단으로 몰고 가는 것은 정치다. 유럽에서 정치적 우경화가 반이민 정서와 맞물려 증폭되는 반면, 이주민 비율이 여전히 낮은 한국에서는 포퓰리스트적 선동의 초점이 젠더 문제에 맞춰져왔다. 이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동북아시아에는 강력한 반이민 담론이나 운동, 이주에 초점을 맞춘 주요 정당이 존재하지 않는다. 보수적인 정치세력이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고 진보적 의제에 대한 젊은 남성들의 지지가 분열된 한국에서는 반여성주의가 유혹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
젊은 남성들의 반여성 감정이 경제적 불안감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은 이중의 의미를 지닌다. 그들은 진심으로 차별을 원하고, 복지에 반대하고, 환경을 파괴하고 싶어 하고, 가부장제를 복원하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거기에 희망을 걸 수 있을까? 극우 정치인들이 아무리 이용하려 한들, 젊은 남성들 또한 동료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쿠데타 시도와 비상계엄에 대체로 반대하며 민주적 가치를 부인하지 않는다.
젊은 남성들, 나쁜 정치・거짓 선동에 대한 거부에 연대해야
그럼에도 그들이 정치적 행동에 무관심할 수 있는 것은 여성과 비교해서 여전히 기득권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약자라 주장하지만, 사회를 더 진보시킬 필요를 여성들보다 덜 절박하게 느낀다.
젊은 남성들에게 한국의 밤거리는 ‘충분히’ 안전하며, 남성 급여의 60%에 불과한 한국 여성들의 평균 급여는 ‘충분히’ 많으며, 유리천장은 ‘충분히’ 깨졌고, 가사 분담도 ‘충분히’ 되고 있다. 20대 한국 남성들이 유일하게 목소리를 높이는 이슈는 징병 문제이고, 2022년 대선은 이를 적절히 공략하면 권력을 거머쥘 수 있다는 교훈을 우파에게 안겨줬다.
2024년 12월 비상계엄령 사태 이후로 한국을 지키는 것은 군대에 있는 젊은 남성들이 아니라 거리로 나서서 민주주의를 수호한 젊은 여성들이다. 반면 극우화된 젊은 남성들은 동년배 여성들과 더욱 멀어졌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 세대의 남성과 여성들로부터 더 심하게 고립돼버렸다.
21세기의 지구에서 모든 이슈는 글로벌한 동시에 로컬하다. 젊은 남성의 보수화는 세계적인 현상이고 한국 역시 그 안에 놓여 있다. 하지만 한국의 젠더 간 이념 격차는 유독 크며, ‘나쁜 정치’가 이를 부추긴다. 수십 년 동안 진전시켜온 민주주의를 어느 겨울밤 잃어버릴 뻔한 많은 한국인에게, 미래 세대의 한 축인 남성 청년들의 정치적 견해는 우려스럽게 다가온다.
기성세대의 한 명으로서 말하자면, 거리로 나선 소녀들에게 모두가 빚을 지고 있다. 2014년 박근혜 탄핵의 출발점이 돼줬던 것도 ‘다만세’를 부르던 젊은 여성들이었다. 하지만 사회는 그들을 배신했다. 더 안전하고 더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주기는커녕, 더욱 심한 차별과 혐오로 대했기 때문이다.
기성세대와 남성 권력이 아무리 배신을 할지라도 소녀들은 계속해서 세상을 바꿔나간다. 한남동의 아스팔트 위에서, 먼저 집회장을 뜨는 젊은 여성들은 은박 비닐을 남아있는 이들에게 둘러주고 떠난다. 젊은 남성들이 나쁜 정치와 거짓 선동에 휘둘리길 거부하고 그 작은 연대의 손짓이 가진 힘과 의미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글·구정은
국제 전문 저널리스트. 신문사에서 오래 일하면서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취재했다. 현재는 독립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 『사라진 버려진 남겨진』, 『10년 후 세계사』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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