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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의 시네마 크리티크] 밤의 영화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
[정우성의 시네마 크리티크] 밤의 영화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
  • 정우성(영화평론가)
  • 승인 2025.02.10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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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은 밤의 영화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시간대가 대부분 밤이기도 하면서 인도 최대 도시 뭄바이에 거주하는 두 여성의 삶을 자비 없이 냉정하게 사실적인 빛으로 내리쬐는 것이 아닌 솜과 같은 질감의 두툼한 어둠으로 감싸 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 감싸안음은, 우리가 볼 수 있는, 빛이 비치는 영역 바깥의 비가시적인 무언가를 불러들이는 어둠과 밤의 환영적 능력이기도 하면서, 밝은 빛 아래에서 볼 수 없었던 내면의 어둠이 물을 머금은 솜처럼 무겁게 누르는 밤의 무게감이다. 이러한 어둠의 무게감은 결혼 직후 독일로 떠난 남편과 만날 수도 연락할 수도 없는 프라바(카니 쿠스루티)와 남자 친구와 숨어서 연애하며 결혼할 수 없는 아누(디비야 프라바)의 고독과 고민으로 나타난다. 이들의 어둠은 개인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은,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것이다.

 

출처: 다음 영화
출처: 다음 영화

오프닝에서부터 인도 최대의 도시 뭄바이에 일자리를 찾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의 나래이션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뭄바이에서 20년을 넘게 살았지만, 고향과 같이 느껴지지 않으며 늘 떠나려는 마음이 있다고 말하거나, 프라바와 파르바티(차야 카담)가 돌을 던져 부수는 광고판의 문구인 ‘계급은 특권층을 위해 예약된 특권’을 통해 분명한 사회적 메시지를 드러내고 있다. 파르바트에 속한 서브플롯인 재개발과 관련된 에피소드에서 노동자의 단결을 촉구하는 연설을 듣는 장면은 그러한 영화의 방향성을 더욱 확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는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비판하는 것에 몰두하거나 그것을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묘사하려는 방식에는 거리를 둔다. 앞서 언급했듯이 무거운 사회의 어둠을 한낮의 강렬하고 사실적인 태양광이 아니라 밤의 어둠 속에서 명멸하는 인공 빛의 비현실적인 아름다움 속에서 부드럽게 나타낸다.

예컨대 다큐멘터리 같은 오프닝 장면만 보아도 단순히 현장감 있는 사실적인 이미지이기보다 아름다운 밤거리의 빛들과 그에 어울리는 몽환적인 사운드 디자인이 더 돋보이는 장면이다. 이미지와 분리된 사운드가 주는 어긋남의 감각이 최면적인 전자음악과 조화를 이루며 뭄바이에서의 삶에 관한 증언이 다큐멘터리적 이미지이자 꿈과 같은 이미지로 동시에 다가온다.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이 밤의 영화이고 비가시적인 것을 불러내는 꿈과 같은 밤의 어둠과, 한낮의 빛 아래서는 볼 수 없었던 내면의 어둠을 양면적으로 지니고 있다고 한 것처럼 말이다.

 

출처: 다음 영화
출처: 다음 영화

영화는 오프닝과 같은 양면적인 연출 스타일을 이후에도 일관되게 보여준다. 넓은 마스터 쇼트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인물에 가까이 다가간 화면 사이즈, 낮은 심도를 활용한 쇼트 위주로 씬을 구성하며,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인물과 인물을 둘러싼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 인물 그 자체에 집중한다. 노동하는 삶, 집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삶, 사랑할 자유를 잃어버린 삶에 관한 일상적이지만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이야기를 다룸에 있어서 그러한 상황이 전면에 나서기보다 뒤로 물러서 있으며, 그 상황 안에 놓인 한 인간의 감정이 전면에 나서는 것이다. 만날 수도 없고 목소리도 들을 수 없는 남편과 새로운 이성 사이에서 번민하는 프라바의 고독과 슬픔 그리고 아누가 느끼는 사랑에서 오는 충만감, 사회에서 금지된 행위를 하는 일탈의 감각과 결국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미래를 그릴 수 없다는 무력감은 인도 사회 구조의 부조리를, 직접적인 메시지나 갈등으로 부각하는 것보다, 효과적이고 자연스럽게 이해시키고 공감하게 만든다.

개인의 사적인 감정에 집중하는 것으로 사회 구조의 문제를 환기한 것처럼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은 양면적인 요소를 효과적으로 다룬다. 예컨대 밤에 집중하여 빛을 드러내거나 꿈을 통해 현실에 관해 말하고 현실에서 도피함으로써 현실을 마주한다. 파르바티가 집을 지키기를 포기하고 뭄바이를 떠나 고향으로 내려가는 후반부를 보자. 거대한 문제와 싸우기를 포기하고 도시를 떠나 시골로 내려온 세 여성은 각자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도피하여 이곳으로 왔다. 프라바는 독신이나 다름없지만, 결혼이라는 제도에 묶여 사랑하는 이의 고백을 거절했고 아누는 남자 친구와 사랑을 나누는 것에 실패했다. 그들은 도피함으로써 원하는 것을 얻는다. 노동이 없는 평온한 일상, 술과 음악에 취해 춤을 출 수 있는 삶, 자유롭게 사랑을 나눌 수 있고 보고 싶었지만, 볼 수 없던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순간까지 말이다.

 

출처: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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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모든 것은 꿈과 같은 것이다. 영원히 노동하지 않을 수 없고, 영원히 술과 음악에 취해 살 수 없다. 마찬가지로 자유롭게 사랑을 나누는 것은 순간에 지나지 않으며 일상으로 돌아간다면 여전히 현실의 벽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볼 수 없었던 이를 만난 순간이야말로 그저 밤과 어둠이 만들어낸 꿈이자 환영에 불과하다. 이를테면 아누는 동굴 벽 낙서를 보고 남자 친구에게 둘의 미래에 관해 묻고 불안에 떤다. 동굴 안 어둠 속에 묻혀있는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문구들은 영원함과 사랑이 불가능하거나 불가능에 가까운 것임을 방증하고 있음을 아누가 어렴풋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프라바가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경험하게 되는 남편과의 조우는 그녀 스스로가 다시는 당신을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함으로써 이러한 환영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고 다짐하거나 혹은 볼 수 없는 남편에 대한 미련을 끊어내겠다는 결심처럼 느껴지게 한다. 즉 어둠을 통해 빛을 말하고 꿈을 통해 현실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은 이처럼 양면적인 것으로 빚어낸 아름다운 영화이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란 대체로 밤의 요소에서 왔다. 밤이 되어서야 드러나는 개인적이고 내밀한 감정을 포착하여 인간의 고독과 슬픔에 관해 말하고, 꿈에서 비가시적인 것을 불러내어 환상적인 순간으로 이끌며, 어둠 속에 명멸하는 빛의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빚어내어 잔인하고 답답한 현실도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게 만든다.



 

글·정우성
2021년 영평상 신인평론상을 받았다. 현재 예술강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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