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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문화톡톡] <논픽션 다이어리> - 사적 폭력에 대한 불관용과 공적 폭력에 대한 관용
[서곡숙의 문화톡톡] <논픽션 다이어리> - 사적 폭력에 대한 불관용과 공적 폭력에 대한 관용
  • 서곡숙(문화평론가)
  • 승인 2025.02.17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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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폭력: 지존파 연쇄살인 사건과 <논픽션 다이어리>
 

<논픽션 다이어리>(정윤석, 2014)는 지존파 연쇄살인 사건을 다루는 다큐멘터리영화이다. 지존파는 1990년대에 활동한 연쇄살인 조직이다. 일반적으로 연쇄살인은 단독 범행 혹은 2인조가 저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3명 이상의 다수가 집단을 결성하여 발생한 연쇄살인 사건은 극히 드문데 지존파는 구성원의 수가 무려 8명이었고 범행의 잔혹성과 지존파 검거 후 조직원들의 반사회적인 발언으로 당시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사건이다.[1] 이 영화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삼품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와 지존파 연쇄살인 사건을 연결하면서 폭력의 문제를 제기한다.

 

2. 부자/시민: 범행동기와 범행결과 사이의 간극
 

<논픽션 다이어리>의 전반부 플롯은 지존파 사건과 체포 과정을 설명하면서 이전과는 특이한 양상을 강조하며, 이렇게 특이한 사적 폭력과 공적 폭력이 닿아 있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지존파의 공간인 전라도 영광은 과거 급제로 유명한 지역이었으나 엽기적 사건의 무대가 된다. 지존파 연쇄살인 사건은 1993년 7월부터 1994년 9월까지 5명을 연쇄살인한 사건으로 조직원 6명을 검거한다. 지존파의 아지트는 지하실에 감금시설, 무기저장소, 화덕(시체소각장)이 있었다. 지존파에게 납치된 여성이 성폭행을 당한 후 강요에 의해 애인을 살해하고, 조직원이 되어 감시가 소홀한 틈에 도망쳐 서초경찰서에 신고함으로써, 지존파 조직원이 체포된다.

<논픽션 다이어리>는 자본주의 모순과 부자에 대한 증오라는 범행동기와 평범한 시민 살해라는 범행결과 사이의 간극을 지적하고, 지존파 연쇄살인 사건의 원인으로 경제발전과 상대적 박탈감과 자본주의의 모순을 드러내면서 공적 폭력과 사적 폭력의 연관성을 제기한다. 지존파 사건은 이전에는 1-2명이 연쇄살인을 저질렀다면 아예 조직을 만들어서 8명이 연쇄살인을 저질렀고, 자본주의의 모순을 범행동기로 주장한 한국 최초의 연쇄살인 집단이라는 점에서 특이하다. 범행동기는 빈부격차와 부자들에 대한 증오 등 자본주의의 모순이지만, 범행 결과 살해한 5명은 부유층이 아닌 평범한 시민들이었다는 사실이다. 10억을 갈취하기 위해 무차별 납치와 살인을 했지만, 이러한 동기와 결과의 불일치의 이유는 무엇인가?

아이러니하게도 ‘지존파’라는 명칭은 지존파를 검거한 서초경찰서 고병천 반장이 지어줬다는 사실이다. 고병천은 지존파의 조직명인 ‘마스칸’(야망)이 외국어여서 발음하기 불편하고, 조직원이 ‘지존’이라는 글씨를 적은 두건을 쓰고 훈련했고 두목 김기환이 ‘지존’이라고 불렸다는 점에서 ‘지존파’라는 조직명을 붙여줬다. 지존파의 행동강령은 3가지이다. 1. 조직을 배반한 자는 죽인다. 2. 목표액 10억원을 강취한다. 3. 돈 많은 자들을 저주한다.

첫째, 조직은 배반한 자를 죽인다고 했는데 실제로 1993년 8월 조직원 송봉우를 살해하고 암매장하였다. 둘째, 목표액 10억원을 강취하고자 했지만, 1년 동안 활동한 결과 모은 돈은 8백만원이었다. 조직원은 8백만원이 있었지만 감옥에 있는 두목 김기환이 출소할 때 주기 위해서 돈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는다는 점에서 충성조직의 면모를 보여준다. 셋째, 돈 많은 자들을 저주한다고 했는데, 실제로 살해당한 희생자는 직장인 20대 여성 최모양, 조직원 송봉우, 밴드마스터인 이모군, 자영업자 소씨와 박씨 부부였고, 이모양은 납치된 후 강간당하지만 도망쳐서 죽음을 면한다. 두목 김기환은 조직을 만든 후 11살 소녀를 강간치상한 죄로 교도소에 갇혔는데 조직원이 이렇게 충성한 이유는 무엇인가? 조직원들도 마찬가지로 자신들이 납치한 20대 최모양과 이모양을 모두 윤간한다는 점에서 두목과 마찬가지 행보를 보여준다. 지존파는 돈 많은 자들을 저주하고 죽이고자 했지만, 실제로 여자 등 약자와 평범한 시민을 죽였다. 이러한 간극의 이유는 무엇인가? 지존파는 체포 후 부자, 특히 압구정동의 오렌지족이나 야타족을 죽이지 못해 한이 된다고 밝혔으며, 죽일 사람이 따로 있는데 엉뚱한 사람을 죽여서 한이 된다고 말한다.

이모양이 서울의 여러 경찰서에 신고했지만, 대부분 사람을 납치하고 찢어 죽이고 인육을 먹고 태운다는 이모양의 진술을 듣고 만화나 소설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이모양이 마약을 했는지를 의심하고 신고를 받아주지 않는다. 서초경찰서 강력반은 이모양이 함께 납치되어 살해된 이모군에 대해 구체적으로 증언하여 그 진술을 믿고 출동하여 지존파의 아지트에서 조직원을 모두 검거한다. 지존파 전에는 연쇄살인 사건이 있었지만 조직을 구성한 경우는 처음이며, 사지를 찢고 인육을 먹는 잔인한 경우는 없었다는 점에서 한국사회에 충격을 준다. 지존파의 범죄행위 중 사지 찢기, 인육 먹기, 태우기 등은 증오의 표현이지만, 실제로 납치된 인물들이 부유한 사람들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증오의 표현보다는 스스로 잔인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게 잔인한 범죄행위로 스스로를 무장하기 위함이 아닐까?

조직원의 연쇄살인 동기에는 ‘부모님께 효도하기’라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10억을 강탈하여 돈을 나누어 가지면 그 돈으로 효도를 한다는 것인가? 그러면 납치·강도·살인보다는 강도가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혼자 있을 때는 주로 노래를 듣는다고 하며, 신성우의 ‘내일을 향해’를 좋아한다고 한다. 이들이 행한 잔인한 범죄와 평소의 생각(부모님께 효도, 노래 듣기) 사이의 간극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지존파 연쇄살인사건의 원인에 대해 보수 지식인과 인권변호사는 각각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당시 KBS ‘심야토론’에서 지식인들은 지존파 연쇄살인사건의 원인을 다각도로 분석한다. 악의 씨앗(근본)과 환경의 문제, 땅에 떨어진 인륜 도덕의 문제, 학생 데모로 인한 폭력의 정당화 문제 등을 제기하면서 문민정부 후 경찰 대응이 미약하다는 점에서 총기 등 국가권력의 무력 사용이 필요하다는 데 합의한다. 반면에, 김형태 인권변호사는 군부가 물러가고 자본주의가 성숙하고 고도화된 느낌이었지만, 문민정부가 형식적 민주주의에 머물렀다는 점을 지적한다. 고병천 서초경찰서 강력반 반장도 경제 성장과 발전을 이룬 한국사회에서 농촌의 상대적 박탈감, 특히 압구정동의 부유한 젊은이들의 문화를 접하는 농촌 청년의 상대적 박탈감에 주목한다. 정형복 서울구치소 교도관도 새마을운동으로 지역이 많이 개발되었지만, 전라도 청년은 여전히 힘든 상황에 처해 사회에 대한 불신, 불만, 분노가 쌓여 폭행, 살인으로 폭발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그는 지존파가 압구정동 오렌지족과 야타족을 증오하면서 왜 압구정동에 가서 범행을 저지러지는 않았다는 문제제기를 한다.

영화는 김영삼 대통령, 미군 합동 폭격, 성수대교 붕괴, 전두환 대통령, 매스게임, 지존파, 군인과 시체들, 지존파, 전두환 대통령과 노태우 대통령, 지존파를 차례대로 보여주는 영상을 통해서 국가의 공적 폭력과 지존파의 사적 폭력을 연결한다. 감독은 자본주의 국가로 인해서 계급의 차이가 심해졌고 국가폭력으로 인해서 학생, 시민의 피해가 있었고 국가, 자본주의에 대한 증오가 생겨나서 지존파의 연쇄살인 사건이 생겼다는 주장을 내세운다는 점에서 보수 지식인과 원인-결과를 다르게 주장한다.

 

3. 법체계 처벌: 공적 폭력에 대한 관용과 사적 폭력에 대한 불관용
 

<논픽션 다이어리>의 중반부 플롯은 지존파의 잔인한 범죄행위를 강조한 전반부와 달리 지존파가 의외로 착한 심성을 가진 인물이며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랐음을 강조한다. 성수대교 붕괴(1994.10.21.), 삼풍백화점 붕괴(1994.6.29.),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의 구조, 실종자 처리, 난지도 유해 발굴을 열거하면서 지존파 사건과 연결한다. 성수대교 붕괴사건 피의자의 벌금형,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피의자의 업무과실치사죄 7년 6개월과 지존파 연쇄살인 사건의 6명 전원 사형을 대비시킨다. 지존파는 강동은, 김현양, 강문섭, 문상록, 백병옥이 강도살인 등의 범죄로, 김기환이 강간치상과 살인 등의 범죄로, 6명 모두 사형당한다. 지존파는 종교계에 관심을 받으며 김기환, 문상록이 천주교를 믿게 되고, 강동은, 김현양, 강문섭, 백병옥이 개신교를 믿게 된다.
 

<논픽션 다이어리>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성수대교 붕괴사건 등 공적 폭력과 지존파 살인사건이라는 사적 폭력에서 처벌의 차별성을 지적하며, 지존파의 범죄 원인으로 지역의 분열, 불우한 가정 형편, 농촌의 상대적 박탈감 등을 들고 있으며, 냉전 시대의 불안과 위기감으로 사적 폭력에 대해 가중한 처벌이 가해졌음을 밝힌다.

지존파 사건(1993.7.-1994.9)은 5명을 연쇄 살인하였다. 5·18 광주민주화운동(1980.5.18.)의 사망자는 193명(군인 23명, 경찰 4명, 시민 166명)이고, 부상자는 2,870명(군인 115명, 경찰 138명, 시민 2,617명)이고 실종자는 179명(시민)이다. 삼풍백화점 붕괴(1994.6.29.)의 사망자는 502명이고, 부상자는 939명 부상이고, 실종자는 6명이다. 성수대교(1994.10.21.)의 사망자는 31명이고, 부상자는 17명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피의자인 전두환 대통령은 사형, 무기징역, 사면의 순서로 판결받았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의 피의자는 업무과실치사죄 7년 6개월을 판결받았고, 성수대교 붕괴사건의 피의자는 벌금형을 판결받았다. 지존파 연쇄살인사건의 피의자 6명은 전원 사형을 판결받았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의 원인은 부실공사와 부실관리이고, 성수대교 붕괴사건의 원인은 동아건설의 부실공사와 서울시와 유지관리 미흡이다. 516 광주민주화운동의 희생은 국가폭력의 결과물이고, 삼풍백화점 붕괴는 자본주의의 결과물이고, 성수대교의 붕괴는 자본주의와 국가의 합작품이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건과 성수대교 붕괴사건이 잇따라 일어나면서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이 영화는 지존파 연쇄살인사건(5명 사망), 5·18 광주민주화운동(193명), 성수대교 붕괴사건(31명 사망), 삼풍백화점 붕괴사건(502명 사망)을 나열하면서 사적 폭력과 공적 폭력을 연결한다. 고병천 반장도 삼풍백화점 붕괴사건과 지존파 살인사건을 모두 겪은 인물로서 두 사건 모두 돈을 벌고자 하는 동일한 목표에서 일어난 사건이며 그로 인해 사고와 살인으로 죽음이 발생했따는 점에서 유사성을 지적한다. 하지만, 두 사건의 가해자에 대한 공권력의 판결은 간접적인 업무과실치사와 직접적인 살인으로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징역 7년 6개월, 지존파 살인사건 사형으로 너무나 차별적인 처벌을 보여준다. 김형태 인권변호사도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IMF로 죽은 사람이 훨씬 많고 지존파의 살인사건보다 더 큰 범죄이지만 처벌이 가볍다는 점에서 이해하기 힘들다는 견해를 밝힌다. 자본주의의 속성상 적은 투자로 많은 이윤을 얻고자 한다는 점에서 건설비, 안전 등의 비용이 드는 부분에서 소홀하게 됨으로써 벌어진 삼풍백화점 붕괴사건과 성수대교 붕괴사건도 많은 사망자를 냄으로써 마찬가지로 엄격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존파의 행위에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지존파는 체포 후 “가진 자들의 횡포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지만, 희생자는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잡고 보니 착한 사람이었습니다.”라고 밝힌다. 잡고 보니 평범하고 착한 사람들이었는데 왜 사지를 절단하고 인육을 먹고 불에 태웠는지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다. 이런 잔혹한 행위는 범죄행위를 연습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정신무장을 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서인지 알 수 없다. 사적으로 지존파를 접한 인물들은 그들의 순진하고 착한 면모를 강조한다. 고병천 반장은 자장면이 아니라 잡탕밥을 시켜주니까 처음 먹어본 음식이라며 좋아한 모습, 돈을 쌓아놓고도 쓰지 않고 두목에게 바치겠다는 충성 조직을 기억한다. 정형복 교도관은 처음에는 동정심이 없었으나 지존파가 의외로 순진한 면모를 보여주었고, 김현양이 특히 인기가 좋았다고 회고한다. 중반부에서 지존파의 인간적인 부분이 부각되면서, 충성스럽고 순진한 인물들이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이유에 대해서 더욱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지존파의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농촌지역, 가정환경, 문민정부 등 다양한 원인이 제시된다. 오영록 영광경찰서 강력반 반장은 농촌 청년들인 지존파의 범죄행위에 대해서 지역적 환경을 원인으로 제시한다. 영광은 ‘찬란한 빛’이라는 뜻을 담은 고장으로서 소금과 옥답이 많은 곳이며 전형적인 농촌지역이다. 조선 후기에는 천주교와 기독교 박해로 신도 백여명이 한꺼번에 바다에 빠져 죽었고, 6·25 때 인민군이 들어와서 민간이 3만 명이 죽는 등 종교와 이념으로 분열이 심한 지역이었다. 조성애 서울구치소 상담수녀는 가정환경을 원인으로 제시한다. 두목 김기환은 어린 시절 가난한 환경으로 학교에 물품을 가져오지 않아 교사로부터 매질을 당했으나, 다른 학생의 물품을 훔쳐서 가져가서 칭찬을 받았다면서, 이후 부자의 돈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자고 생각하여 범죄를 저질렀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고 한다. 한완상 문민정부 통일부총리는 김영삼 문민정부가 한미군사훈련을 시작하고 북한의 비상사태가 선포되면서, 개혁정부에 대한 불안으로 보수세력이 다시 주도권을 잡기 시작하게 되고, 그 결과 불안과 위기감이 사회에 팽배하게 되어 사적 폭력에 대해 강력한 대처를 하게 되었다고 밝힌다. 냉전 시대의 불안과 위기감이 사적 폭력에 대해 가중한 처벌이 내려지게 되면서 지존파에 대해서 이례적으로 빠른 사형 집행이 지시되었다는 주장이다.

 

4. 사형 집행: 국가폭력의 은폐와 사적 폭력에 대한 과도한 처벌
 

<논픽션 다이어리>의 후반부 플롯은 지존파의 사형 집행과 관련하여 사형제도에 대한 찬성/반대와 문민정부의 과도한 사형 집행을 밝히고 있다. 지존파의 사형 집행은 판결 이후 이례적으로 빠르게 집행되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전두환 대통령은 불기소, 사형, 무기징역으로 형이 차례대로 감형되었고,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합의에 의해 특별사면으로 풀려나게 된다.

<논픽션 다이어리>는 공적 폭력에 대한 관용의 원칙과 사적 처벌에 대한 불관용의 원칙을 대비시키며 법체계의 형평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지존파에 대한 세 가지 측면을 다층적으로 밝히면서 문민정부의 과도한 사형 집행을 지적한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가해자 전두환 대통령에 대해서 법체계는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1995.7.-불기소), ‘진정한 국민화합을 위해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1995.8.-사형), ‘항복한 장수는 죽일 수 없다’(1996.12.-무기징역), ‘국민대통합을 이뤄 국난을 극복하자’(1997.12.-특별사면) 등 차례대로 입장을 바꾸는 등 관용의 원칙을 보여준다. 또한 마침내 특별사면으로 풀려날 수 있도록 사형 집행을 최대한 지연시키고, 나름의 정당화 논리로 공적 폭력에 대해 점차적으로 처벌을 약화시킨다. 반면에, 지존파는 체포(1994.9.19.), 사형 판결(1994.10.31.), 사형 집행(1995.11.2.) 등 이례적으로 1년만에 사형이 집행되는 등 불관용의 원칙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전반부에서 지존파의 잔혹한 범죄를 강조하고, 중반부에서 지존파의 순진한 면모를 강조하고, 후반부에서 지존파의 선악의 공존을 강조한다. “절대 선인도 절대 악인도 없다. 우리 마음 속에 선악이 공존한다.”는 정형복 교도관의 말에 동의한다. 지존파가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지만 법의 체계와 원리에 맞게 집행해야 하는데 여론을 의식해서 사형 집행을 조속하게 처리한 점이 지적된다. 지존파가 전두환 대통령이 가벼운 벌을 받은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핀하자 여론에 민감한 김영삼 대통령이 이에 부담감을 느끼고 조속한 사형 집행을 지시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적 폭력에 대해서 가볍게 처벌한 것을 은폐하기 위해서 사적 폭력에 대해서 무겁게 처벌한 것이다. 사적 폭력의 가해자에 대해서는 양가성을 인정하지만, 공적 폭력의 가해자에 대해서는 거대한 비극을 발생시켰기 때문에 결코 가볍게 처벌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공적 폭력에 대한 느린 법 집행과 사적 폭력에 대한 빠른 법 집행이 대조된다. 김수환 추기경이 사형 집행을 자제할 것을 요청하지만, 김영삼 대통령은 다음 날 바로 23명의 사형 집행을 지시하였고 이는 단일한 사형 집행 최고 기록이었다. 이 영화는 지존파의 사형 집행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가해자의 사형 집행에서 드러나는 차별성과 이례적으로 빠른 사형 집행 등을 대조하며, 문민정부의 과도한 사형 집행에 대해 지적한다. 김영삼 대통령은 김수환 추기경이 사형집행 자제를 요청한 다음 날 바로 23명에 대한 사형집행을 지시해서 가장 많은 사형수를 죽인 단일집행이 된다. 김수환 추기경이 요청한 다음 날 바로 사형 집행을 지시한 것은 종교계의 요청을 간섭으로 여기고 국가권력을 행사한 것이다. 문민정부는 3회에 걸쳐 57명의 사형을 집행하였다. 군부독재의 국가폭력에 의한 살인과 문민정부의 법체계에 의한 살인이 유사하게 닮아 있는 것은 우연의 일치인가?

 

5. 지존파: 반인륜적 살인마이자 자본주의의 모순
 

지존파의 범행동기는 돈 많은 자들을 저주하고, 부자의 돈을 뺏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려고 했지만, 범행결과는 평범한 시민들을 납치하고 강간하고 사지를 자르고 인육을 먹고 불태워 죽였다. 동기와 결과의 간극이 왜 벌어지게 되었는가? 정형복 교도관의 지적처럼 압구정동의 오렌지족과 야타족을 죽이고 싶었다면 서울 압구정동에 가야 하는데 가지 않고 전라도 영광에서 범죄를 저지른 이유는 무엇인가? 이 영화는 계속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대답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말해주지 않고 다양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이 영화가 5·18 광주민주화운동, 지존파 연쇄살인사건,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성수대교 붕괴사건을 계속 연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적 폭력과 공적 폭력을 계속 연결하면서 살인과 죽음에서 유사성을 밝히면서, 동시에 사적 폭력과 공적 폭력이 판결과 사형 집행에서 드러나는 차별성을 지적한다. 사적 폭력에 대한 가혹한 처벌은 공적 폭력의 가벼운 처벌을 가리기 위한 은폐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지존파의 연쇄살인은 자본주의의 차별에 대한 복수로 인한 살인, 죽음이고, 재해참사는 자본주의의 이익 추구를 위한 불공정하고 무책임한 행위로 인한 참사, 살인, 죽음이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희생은 정권 찬탈의 부당성을 은폐하기 위한 국가의 폭력, 살인, 죽음이다.

지존파의 죄명은 강도살인, 살인, 특수강간,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 범죄단체조직, 범죄단체가입, 총포·도검·화약류등단속법위반, 시체은닉, 시체유기, 시체손괴, 강간치상이다. 이 영화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지존파의 죄가 무겁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사적 폭력과 공적 폭력에 대한 차별성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몇 명을 죽인 사적 폭력에 대해 일반적 경우보다 더 빨리 사형을 집행함으로써 수백 명을 죽게 만든 자본주의적 폭력(삼풍백화점 붕괴사건), 자본주의와 공권력의 폭력(성수대교 붕괴사건), 공권력의 폭력 혹은 국가 폭력(5·18 광주민주화운동)의 가해자에게는 관대한 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사적 폭력에 대한 과도한 처벌로 공적 폭력에 대한 느슨한 처벌을 은폐하고자 하는 법체계와 공권력에 대해 문제제기한다. <논픽션 다이어리>의 시작 부분에 감독은 연출 의도를 밝히는데 이것이 이 영화의 핵심이 아닐까 한다. ‘이 영화는 지존파를 반인륜적 살인마로 규정하는 동시에 자본주의의 모순을 범행동기로 주장한 한국 최초의 연쇄살인집단임에 주목한다.’

<논픽션 다이어리>의 스타일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편집이다. 영화 전체에 걸쳐서 지존파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성수대교 붕괴사건의 이미지들을 계속 연결시킨다. 이러한 연결과 배치를 통해 사적 폭력과 공적 폭력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지적한다. 또한 지존파의 살인 무대인 영광이라는 농촌 지역을 보여주는 장면은 어두운 화면, 동영상의 멈춤을 통해 영상의 비연속성으로 농촌 청년과 연쇄살인조직이라는 간극과 아이러니를 표현한다. 그리고 영화의 장면과 장면 사이에 계속 등장하는 암전은 어두운 농촌길과 함께 암흑으로 표현되는 세상을 이미지화함으로써 농촌 지역의 상대적 박탈감과 인물의 불우한 가정환경을 표현한다.

 

[참고문헌]
[1] 「지존파」, 《나무위키》, 2025년 2월 9일.
https://namu.wiki/w/%EC%A7%80%EC%A1%B4%ED%8C%8C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논픽션 다이어리> 포토
 

글·서곡숙
문화평론가. 현재 청주대 영화영상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한국영화교육학회 부회장, 한국영화학회 학문후속세대양성위원회 위원장, 계간지 『크리티크 M』 편집위원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부천국제영화제, 대종상 등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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