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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에선 모든 게 단순해 보이지만
가자에선 모든 게 단순해 보이지만
  • 세르주 알리미
  • 승인 2012.12.10 17: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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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창(窓)

"국경 밖에서 발사된 미사일이 국민의 머리 위에 떨어진다면, 세상의 어떤 국가도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미합중국 대통령은 이런 상식적인 사실을 언급하면서, 미제 F16이나 아파치 헬기에서 발사된 이스라엘군의 폭탄과 미사일로 인해 무기력한 희생자가 되고 있는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오랫동안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진 사건들은 살을 찌르는 고통을 규칙적으로 안겨주며 똑같은 식으로 전개돼왔다. 먼저, 한쪽에서 포위된 자들의 테러리즘이 포위한 자들의 반격을 불가피하게 정당화해준다는 앞뒤 안 맞는 얘기를 계속 해댄다. 그다음, 그들은 희생자인 양 군사적으로 압도적 우위를 가진 교전 일방에 면책권을 부여한 뒤 군대를 동원해 새로운 확전에 돌입한다. 결국 이스라엘의 민주주의적 성격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이스라엘 정부에선 극우 인종주의자가 버젓이 현직 외무장관으로 내각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2011년 '아랍의 봄'이 중동 지역에 거의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기 때문에, 이스라엘군의 '가자 학살'(1)로부터 4년이 지난 뒤에도 가자에서는 똑같은 시나리오가 반복될 것인가? 2011년 이후 이 지역의 상황 변화를 분석해온 후세인 아그하와 로버트 말리는 최근 종래의 통상적인 분석 틀이 적합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이라크의 동맹국이 됐고, 이라크는 미국이 전복하려는 시리아 정권을 지지하는 이란과 동맹국이 됐다. 또한 미국은 카타르와 사우디아라비아와도 동맹국이다. 카타르는 가자지구의 무장세력인 하마스에 자금을 대고 있고,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인들을 상대로 지하드(성전)를 고취해온 살라피스트(초기의 엄격한 이슬람으로 돌아가자는 복고주의자들)에게 재정 지원을 해주고 있다."(2)

적어도 가자지구에서는 전후 사정이 더 단순해 보인다. 미 공화당 대선 후보인 밋 롬니를 지지해 정치적 투자에 실패한 베냐민 네타냐후가 팔레스타인을 짓밟고 선거 분위기를 일신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네타냐후는 이스라엘 마을에 대한 팔레스타인의 로켓 공격 때문에 하마스를 다시 한번 응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생각했다. 그에 따르면, 하마스가 로켓 공격을 막지 않는다는 것이다. 로켓 공격이 가자지구에서 처음 벌어진 것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여전히 점령하고 있던 시절인 2002년 2월10일이었다는 사실을 네타냐후는 까맣게 잊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유럽은 이스라엘의 외교적 전달자처럼 행동해왔다. 프랑스도 유럽의 이런 노선에 기여했다. 11월 초 네타냐후 총리와 회동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협상으로 얻을 수 없는 것들을 유엔총회 회의장에서 얻어내려고"(3) 애쓰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대해 엄한 단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올랑드는 정확히 무슨 협상을 얘기했던 것일까? 며칠 뒤 로랑 파비위스 외무장관은 가자지구 위기의 서막이 될 만한 말을 내뱉었다. "지난 주말 내내 이스라엘에 대한 로켓 공격이 있었다. 그 때문에 이스라엘이 보복에 나섰다."(4) 미국의 공식 발표문을 표절하는 일이 프랑스 외교의 운명이 되어버리다니…

 

/ 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 발행인.

번역 / 류재훈 hoonie@hani.co.kr <한겨레> 온라인 국제판 에디터.

(1) 세르주 알리미, ‘미·EU, 이스라엘 가자 만행 공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9년 2월호 참조.
(2) ‘이것은 혁명이 아니다’(This is not a revolution), <뉴욕 북리뷰>(The New York Review of Books), 2012년 11월8일.
(3) Alain Gresh, ‘팔레스타인: 사르코지에 비해 한발 물러선 올랑드’, <Nouvelles d’Orient>, 2012년 11월2일, blog.mondediplo.net, 이번호의 레일라 파르사크의 글 참조.
(4) <RTL>, 2012년 11월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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