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 와인을 바꾼 사건, 파리의 심판
1976년 5월 24일 프랑스 파리에서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아니, 일이라기보다 사건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결과가 미친 파장이 너무나 컸으니 말이다. 모든 것은 파리에서 활동하던 영국인 와인 전문가 스티븐 스퍼리어(Steven Spurrier, 1941~2021)의 이벤트 하나에서 시작됐다. 바로 프랑스 와인과 캘리포니아 와인이 한판 승부를 겨루는 것. 지금으로서는 할 만한 행사라고 여겨질 수도 있지만 당시 캘리포니아 와인은 소위 ‘듣보잡’이었다. 품질을 인정받기는커녕 미국인들조차 와인 애호가라면 자국 와인보다 프랑스 와인을 선호하던 때였다.
20세기 초 나름 잘 성장하던 미국 와인은 금주령(1920~1933)이라는 철퇴를 맞고 급격한 쇠락을 맞이했다. 금주령이 철폐된 뒤에도 경제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 등을 겪느라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1950~60년대를 지나며 재기에 온 힘을 다하던 캘리포니아 와이너리들이 벤치마크 삼은 건 프랑스였다. 보르도나 부르고뉴 와인과 비슷하게 만드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다. 그러면서 품질이 점점 좋아졌고 이를 알게 된 스퍼리어가 프랑스의 명품 와인과 캘리포니아 와인을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비교하는 행사를 계획하게 된 것이다.

스퍼리어가 준비한 프랑스 와인은 카버네 소비뇽을 주 품종으로 한 보르도 레드 4종과 부르고뉴 화이트 4종이었고 캘리포니아 와인은 카버네 소비뇽 6종과 샤도네이 6종이었다. 초대된 심사위원 9명은 모두 프랑스 와인 전문가들이었다. 미디어도 초청했지만 프랑스 매체들은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프랑스 와인의 승리가 자명해서 기삿거리가 안 된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미국 매체 중에는 타임(Time)지의 조지 태버(George M. Taber)기자가 유일한 참석자였다. 그 역시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을 터. 하지만 그는 이 행사에서 인생 최고의 특종을 얻었다. 레드와 화이트 모두 캘리포니아 와인이 1위를 거머쥐는 대이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향을 조금 맡아 봐도 프랑스 와인을 바로 구분해 낼 수 있을 거라는 심사위원들의 자신감은 철저히 무너졌다. 레드 와인 부문에서 스택스 립 와인 셀라(Stag's Leap Wine Cellars) 1973년산이, 화이트 부문에서 샤또 몬텔레나(Chateau Montelena)의 샤도네이 1973년산이 1위를 차지하자 일부 심사위원은 당황한 나머지 자신의 채점표를 돌려달라거나 결과지에 서명하기를 거부했고 조작을 의심하며 스퍼리어를 고소한 사람도 있었다. 예상 밖의 결과를 목격한 태버 기자는 곧바로 이 낭보를 기사로 옮겼는데 이때 그가 붙인 제목이 바로 ‘파리의 심판(The judement of Paris)’이었다. 신화 속 파리스와 프랑스의 수도 파리가 절묘하게 겹치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여기서 잠시 신화 얘기를 좀 해보자.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한때 목동이었던 시절, 올림포스에서는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던지고 간 황금사과를 놓고 헤라, 아테네, 아프로디테가 서로 자기 것이라며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이유는 사과에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쓰여 있었기 때문. 난감해진 제우스는 인간 중에서 심판자를 고르자며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를 선택했다. 이에 세 여신은 곧바로 파리스를 회유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선택해 주는 대가로 헤라는 부와 권력을, 아테네는 지혜와 모든 전쟁에서의 승리를,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제시했다. 젊은 혈기에 미인이 끌렸던 걸까? 파리스는 아프로디테를 선택했다. 그런데 그 미인이 하필 유부녀인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였다. 스파르타에 갔다 헬레네를 보고 한눈에 반한 파리스는 그녀를 트로이로 데리고 와버렸고 격분한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는 대군을 이끌고 트로이를 공격했다. 트로이 전쟁의 시작이었다.
신화 속 파리스의 심판이 전쟁의 불씨가 된 것처럼 1976년 파리의 심판은 전 세계 와인 시장이 들썩일 정도의 파문을 불러왔다. 와인 업계는 그동안 무시하던 신대륙 와인을 다시 돌아보게 됐고 프랑스 와인을 ‘넘사벽’으로 여기던 신대륙 국가들은 ‘하면 된다’는 희망을 품게 됐다. 반면에 프랑스는 이 결과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숙성될수록 진가를 발휘하는 프랑스 와인을 어릴 때 즐기기 좋은 캘리포니아 와인과 경쟁시킨 것부터 잘못된 계획이라는 주장이 거셌다. 결국 10년 뒤인 1986년에 동일한 와인으로 재대결이 이뤄졌지만 역시나 캘리포니아의 승리였다. 화이트 와인은 절정이 지났을 수 있어 레드 와인만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치렀고 하이츠 셀라(Heitz Cellar)의 마르따스 빈야드(Martha’s Vineyard) 카버네 소비뇽이 1위를 차지했다. 결과와 상관없이 파리의 심판에 참여한 모든 와인들은 지금도 와인 애호가라면 누구나 마시고 싶어 하는 명품들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샤또 몬텔레나와 하이츠 셀라 그리고 샤또 몬텔레나 샤도네이를 만든 마이크 그르기치(Mike Grgich)의 그르기치 힐스(Grgich Hills) 와인들은 두터운 팬층을 자랑한다. 필자는 운 좋게도 세 곳 모두 방문했거나 취재한 경험이 있어 그때의 기억을 소환해 함께 나누고자 한다.
명불허전 샤또 몬텔레나

샤또 몬텔레나는 파리의 심판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 ‘와인 미라클 (원제: Bottle Shock)’로 우리에게 친숙한 와이너리다. 1882년 나파 밸리 칼리스토가(Calistoga)에 설립됐지만 금주령을 이기지 못하고 문을 닫았던 이곳을 변호사 짐 배렛(Jim Barrett)이 1972년에 사들이면서 부활하기 시작했다. 2019년 짐의 아들 보 배렛(Bo Barrett)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아버지는 남의 불행을 계기로 돈을 버는 변호사보다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와인메이커가 되고 싶어 하셨습니다. 1976년 파리의 심판이 열렸던 당시 카버네 소비뇽은 심은 지 얼마 안 돼 너무 어렸어요. 그래서 샤도네이만 출품했는데 그게 우승을 한 겁니다. 덕분에 몬텔레나는 샤도네이로 유명한 와이너리가 됐지만 사실 저희는 카버네 소비뇽도 무척 잘 만듭니다. 샤도네이가 너무 주목을 받아서 카버네 소비뇽이 묻히는 것 같다고 말하면 행복한 푸념인가요? (웃음)’
보 배렛과 함께 테이스팅 했던 샤또 몬텔레나의 와인 맛은 그야말로 명불허전이었다. 그윽한 아로마, 탄탄한 질감, 산뜻한 신맛의 밸런스가 나파 밸리보다는 부르고뉴에 더 가까웠다. 비결을 물으니 보 배렛은 ‘아로마가 지나치게 강렬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포도의 일부를 전송이 압착합니다. 그러면 와인 향이 훨씬 은은해지거든요. 와인의 산화를 최소화하기 위해 앙금 젓기와 젖산 발효도 하지 않습니다. 모두 1976년 당시의 순수하고 아삭한 샤도네이의 맛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라고 답했다. 몬텔레나가 만든 에스테이트 카버네 소비뇽도 경쾌하고 우아했다. 일반적인 나파 밸리 와인에 비해 가벼운 바디감과 실크처럼 매끄러운 질감 속에 장미와 바이올렛 같은 꽃 향과 잘 익은 검은 베리류의 풍미가 정교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샤또 몬텔레나의 연간 생산량은 50만 병이 채 되지 않고 와인의 종류도 많지 않다. ‘여러 가지 와인을 많이 만들기보다 와인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 몬텔레나의 철학’임을 보 배렛은 강조했다.
샤도네이의 왕, 그르기치 힐스

그르기치 힐스는 2017년에 휴가로 나파 밸리를 갔을 때 방문한 적이 있다. 마이크 그르기치를 직접 만나지 못해 아쉬웠지만 그곳에서 맛본 와인 맛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르기치는 1923년 크로아티아에서 태어났다. 가족이 와이너리를 운영했고 본인도 와인 공부를 했지만 크로아티아가 공산화되면서 자신의 꿈을 펼치기 힘들게 되자 그르기치는 미국으로 이주했다. 나파 밸리에서 와인메이커로 일하던 그에게 파리의 심판은 인생 역전의 기회였다. 그의 주가는 급상승했고 여러 와이너리에서 러브콜이 왔지만 그는 모두 물리치고 커피 사업가 오스틴 힐스 함께 그르기치 힐스를 설립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르기치 힐스 샤도네이 1977년산이 국제 샤도네이 대회에서 전 세계 221개 와인을 꺾고 당당히 1위에 올랐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그를 ‘샤도네이의 왕’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르기치 힐스는 유기재배 인증과 바이오다이나믹 인증을 받은 친환경 와이너리다. 와인을 만들 때도 배양 효모 대신 포도 껍질에 붙어 있는 야생 효모만 사용한다. ‘와인은 머리와 손이 아닌 가슴으로 만든다. 포도알이 터지는 소리를 들으면 포도의 당도를 알 수 있다.’라고 말한 그르기치의 와인 철학에 충실하기 위해서다. 그르기치 힐스의 나파 밸리 샤도네이를 맛보면 레몬, 라임, 복숭아 등 과일향이 감미롭고 꽃 향이 우아하다. 상큼한 신맛이 풍부한 아로마와 밸런스를 이루고 와인에 경쾌함을 더한다. 이 와인은 어릴 때 마셔도 좋지만 숙성 잠재력도 탁월하다. 빈티지로부터 7~10년 사이에 와인의 풍미가 절정에 오르므로 마시고 싶어도 꾹 참고 와인셀라에 잘 보관하면 꿀과 견과 등 달콤하고 고소한 아로마가 한껏 발현된 최상의 복합미를 맛볼 수 있다. 그르기치는 2008년 미국 와인 생산자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그가 만든 샤또 몬텔레나 샤도네이 1973년산은 ‘미국을 만든 101가지’로 선정되어 링컨의 모자, 벨의 전화기, 암스트롱의 우주복과 함께 스미소니언 박물관의 한 켠을 장식하고 있다.
미국 최초의 싱글 빈야드 와인, 하이츠 셀라

하이츠 셀라의 와인들을 제대로 맛본 건 2019년이었다. 당시 하이츠의 세일즈 매니저가 한국을 방문했었는데 1997년과 2014년산 나파 밸리 카버네 소비뇽을 비교 시음하며 놀라움과 감동을 느꼈었다. 무려 22년이나 숙성된 와인임에도 1997년산에서는 여전히 과일향이 감미로웠고 담배, 코코아, 가죽, 정향, 후추 등의 아로마가 우아했다. 반면에 2014년산에서는 다채로운 검은 베리류와 꽃, 흙, 먼지, 향신료, 패트롤 등 응축된 아로마에서 뛰어난 숙성잠재력이 느껴졌다. 17년의 빈티지 차이를 넘어 두 와인이 공통적으로 보여준 점은 날카로운 산미가 와인을 경쾌하고 깔끔하게 만들어준다는 것. 하이츠 셀라는 포도를 조기 수확하고 젖산 발효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이 만든 와인은 나파 밸리의 화려함보다는 프랑스 오-메독의 기품을 더 많이 담고 있었다.
마르따스 빈야드 카버네 소비뇽은 하이츠의 아이콘급 와인이자 미국 최초의 싱글 빈야드 와인이며 파리의 심판 10주년 재대결에서 우승을 차지한 와인이다. 2019년 당시 맛본 2013 빈티지는 한 마디로 아름다움과 조화로움 그 자체였다. 온갖 과일과 꽃이 뒤섞인 듯 아로마가 향긋하고 우아했으며 민트와 후추 같은 향신료 향이 와인을 신선하게 장식하고 있었다. 아로마, 바디감, 산도, 타닌 등 모든 요소가 최상의 밸런스를 이룬 완벽한 와인이었다. 마르따스 빈야드 카버네 소비뇽 1974년산은 와인 스펙테이터가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와인 12선’에 이름을 올린 와인이기도 하다. 12개 와인 중 미국 와인이 단 2종뿐이니 마르따스 빈야드는 미국 최고의 레드 와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와인을 만드는 하이츠 셀라의 저력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비결은 포도의 품질과 긴 숙성이다. 아무도 유기농에 관심을 두지 않던 1960년대부터 하이츠는 유기농으로 포도를 재배했고 지금은 지속가능과 바이오다이나믹 농법까지 결합해 유기농 인증은 물론 Napa Green, Fish Friendly Farming 등 친환경 인증을 획득했다. 하이츠는 다른 품종을 블렌드 하지 않고 100% 카버네 소비뇽으로만 와인을 만든다. 오크에서 4년, 병입해서 추가 1년까지 숙성 기간이 5년이나 된다. 하이츠의 와인이 어릴 때 마셔도 맛있지만 숙성잠재력도 우수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파리의 심판 이후 투자가 줄을 이으면서 신대륙의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 기술 발전에는 가속도가 붙었고 이는 곧 품질 향상으로 이어졌다. 캘리포니아 와인의 고급화도 빨라졌고 미국의 자국 와인 소비도 증가했다. 샤또 몬텔레나의 보 배렛은 ‘1990년대에 들어서며 캘리포니아의 와인 스타일이 정착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내수 시장이 활발해지면서 미국의 와이너리들이 더 이상 프랑스 와인을 따라 하지 않고 자국민의 입맛을 좇으며 개성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제 파리의 심판 같은 이벤트는 열리지 않는다. 누가 맛을 보더라도 미국 와인과 프랑스 와인의 스타일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파리의 심판이 없었어도 신대륙 와인은 나름 성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행사가 전 세계 와인 발전에 촉매제가 된 것만은 사실이다. 덕분에 우리는 지금 굳이 프랑스 와인을 고집하지 않고 다양한 나라의 와인을 즐길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캘리포니아 와인을 즐길 때면 파리의 심판이라는 역사적인 에피소드를 안주 삼기도 한다. 자연이 와인을 만들고 인간의 역사가 와인을 성장시킨다.
글·김상미
WSA와인아카데미 원장으로 재직 중이며 와인21 기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2019년부터는 이코노미조선에 와인 칼럼 '원스 어폰 어 와인'을 연재 중이다. 영국 옥스포드 대학에서 'Food, Wine & Culture'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WEST(Wine&Spirit Education Trust)의 디플로마를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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