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래 사회의 AI와 <그녀(Her)>의 OS 사만다

영화에서 미래 사회는 긍정적 세계관의 유토피아와 부정적 세계관의 디스토피아로 양분된다. 미래 사회에서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는 것이 AI(Artificial Intelligence)이며, 인간과 AI에 대한 관계는 기술적 상호작용으로 개인화, 복잡화의 특성을 나타낸다. 한편으로는 미래 사회에서 AI는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해결책을 제시하고, 현대의 다양한 주요 과제를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미래에 발생할 일과 추세를 예측하여 의사결정을 내린다. 다른 한편으로는 파편화된 균열과 분열 사회, 각자도생하는 개인이 확대되고, 일자리 변화, 새로운 직업의 등장, 노동시장의 변화 등이 언급되기도 한다. 미래 사회는 사랑과 인간관계에서도 다양한 방법이 나타나고, 인간과 AI의 로맨스가 단순한 기술적 상호작용을 넘어서 로맨틱한 관계를 형성할 가능성도 예측된다.
<그녀(Her)>(스파이크 존즈, 2014)는 인간과 AI의 소통과 로맨스를 보여주는 영화이다. 미래 사회에서 대필작가로 일하는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는 고객을 위해 대필 편지를 전해주지만, 자신은 아내 캐서린(루니 마라)과 별거하고 이웃 주민인 친구 에이미(에이미 애덤스)와 교류하면서 외롭고 공허한 삶을 살고 있다. 그는 최초의 인공지능 운영체계 OS인 사만다(스칼렛 요한슨 목소리)와의 만남으로 상처를 회복하고 행복을 되찾고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 작품은 2014년 40회 새턴 어워즈 최우수 판타지영화상, 최우수 여우조연상, 최우수 각본상, 86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 66회 미국 작가 조합상 각본상, 19회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 각본상, 71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각본상 등 각본상을 휩쓴 작품이다. 이 영화는 인간과 AI와의 관계를 SF영화가 아니라 로맨스영화로 그린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2. 아내와의 끝내지 못한 관계와 인공지능 운영체계 사만다와의 만남

<그녀>는 아내와의 끝내지 못한 관계와 인공지능 운영체계 사만다와의 만남을 그린다. 이 영화는 만삭 여배우와의 성적 환상, 행복한 과거와 우울한 현재의 대비, 채팅룸 여성과의 폰섹스, 인공지능 운영체계 사만다와의 만남 등의 사건을 통해 별거 중인 아내와의 끝내지 못한 관계에 대한 집착을 보여준다. 테오도르는 지금 여기에 있지 않고 과거 거기를 꿈꾸고 항상 외재적 삽입화면으로 나타나는 것은 별거 중인 아내와의 행복한 과거 장면이라는 점에서 아내와의 관계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채팅룸에서 고양이의 꼬리로 목을 조르는 성적 취향의 여성과 폰섹스를 할 때, 별거하는 아내로부터 온 이혼서류에 서명하지 않고 3개월 동안 망설일 때, 친구 에이미에게 우울하고 무미건조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소연할 때, 아내와의 영상이 항상 외재적 삽입화면으로 끼어든다.

테오도르는 게임 속의 외계인 꼬마의 욕설에 똑같이 욕설로 대답하며 대화 방식을 서로 맞추면서 즐거워한다. 만삭 여배우와의 섹스에 대한 환상과 외계인 꼬마와의 대화로 자신이 이루고 싶었지만 이루지 못했던 사랑하는 아내와 귀여운 아이와의 미래를 꿈꾼다. 채팅룸에서 여자를 선택하는 기준에서 수다를 떠는 여자, 망가뜨리고자 하는 여자를 선택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화 상대나 가학적인 성적 취향을 원하지 않는다. 잠이 오지 않고 침대 옆에서 잘 여성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여성이면서 아내의 빈 자리를 메울 수 있는 폰섹스 상대를 찾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폰섹스 상대가 고양이의 꼬리로 목을 조르며 흥분하는 특이한 성적 취향을 가진 여성이어서, 여성이 원하는 멘트를 해줌으로써 폰섹스 여성은 흥분하지만 테오도르는 정작 성적 흥분을 느끼지 못하고 식어간다.

테어도르가 인공지능 운영체계를 구입하고 받은 설문조사 질문은 세 가지이다. 사교적/비사교적, 남성/여성, 어머니와의 관계이다. 그는 비사교적 성격이고, 원하는 상대는 여성이고, 어머니와의 관계는 불편하다고 답변하고, 세 가지 항목에 대한 대답만으로 바로 맞춤형 시스템을 찾게 된다. 경우의 수 2 × 2 × 2 = 8, 즉 8가지의 모델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질문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특히 여기에서 어머니와의 관계를 묻는 질문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 질문은 남자에게 있어서 어머니와의 관계가 이성과의 관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 연상의 어머니와의 관계를 통한 가족관계와 권위에 대한 의미 등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세 가지 질문에 대답하자마자 등장한 인공지능 운영체계 OS는 이름을 묻는 테오도르의 질문에 사만다라고 대답하며, 이는 18만개 이름 중에서 0.02초만에 고른 것으로 말한다.

테오도르는 과거 아내와의 행복했던 기억들과 현재 별거하는 아내가 요구하는 이혼서류의 간극 사이에서 힘들어하며, 좋았던 결혼생활을 회상하는 자신과 감정을 숨긴 채 살아서 외롭게 만들었다는 아내의 간극 사이에서 고민하며, 아내와 아기를 안고 불꽃을 피우는 상상을 하며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한다. 에이미를 중심으로 친구 테오도르와 남편 찰스를 비교하는데, 과일 갈아 먹기, 에이미의 다큐멘터리 작품 등 에이미에 대해서 부정적인 말을 내뱉는 찰스와 에이미를 격려하며 포용하는 테오도르를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테오도르는 사만다의 추천으로 하버드대를 졸업한 미인과 소개팅을 하면서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서로 성적 흥분을 느끼지만, 관계를 계속 이어가고 싶다는 소개팅녀의 말에 머뭇거리면서 욕을 먹고는 헤어지는 등 인간 여성과 지속적인 관계를 힘들어한다.
<그녀>의 전반부 스타일은 백트래킹, 360도 팬, 미디엄숏과 바스트숏을 통해서 개인과 상황, 친밀감, 부담감 감소, 기쁨을 표현한다. 영화의 처음 사무실에서 테오도르가 대필작가로서 일하는 장면은 테오도르의 클로즈업에서 출발해서 대필작가 사무실의 풍경을 보여주는 트래킹을 통해 개인에서 환경으로 확대하며 정보를 제공한다. 거리에서 테오도르가 사만다에게 자기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360도 팬은 일상을 함께 나누는 즐거움을 표현한다. 레스토랑에서 테오도르가 소개팅녀와 만나는 장면은 바스트숏과 오버더숄더숏의 결합으로 친밀감을 표현한다. 아파트 옥상에서 사만다와의 폰섹스에 만족한 테오도르가 관계에 부담감을 느끼자 사만다가 부담감을 없애주는 장면은 미디엄숏에서 바스트숏으로 다가가는 카메라로 사만다와의 폰섹스의 행복감 및 부담감이 사라진 것에 대한 기쁨을 표현한다.
3. 시선의 주체/대상의 변화와 육체/정신의 문제

<그녀>는 시선의 주체/대상의 변화와 육체/정신의 문제를 제기한다. 이 영화는 사만다와의 관계 변화와 시선 주체/대상의 변화, 테오도르/캐서린의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사만다의 몸에 대한 집착 등의 사건을 통해 테오도르/캐서린의 관계와 테오도르/사만다의 관계를 대조적으로 그려낸다. 테오도르는 예전에는 핸드폰을 꺼내서 사만다에게 세상에서 살아가는 자기 모습을 보여줬지만, 지금은 핸드폰을 자신의 포켓에 넣어서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을 세만다와 함께 바라보게 된다. 예전에는 시선의 주체인 사만다와 시선의 대상인 테오도르가 분리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시선의 주체인 테오도르·사만다가 시선의 대상인 세상을 함께 바라보게 되고, 시선의 주체/대상이 달라지면서 동반자의 관계로 변화한다. 테오도르의 글을 함께 읽고 사만다의 그림과 음악을 함께 즐기는 등 서로의 예술적 재능으로 감정을 공유하고 소통해 나간다.

테오도르/사만다의 관계는 테오도르/캐서린의 관계를 역설적으로 나타낸다. 우선, 테오도르는 반복을 통해 캐서린과의 관계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임을 암시하고, 사만다와의 관계로 캐서린의 부재로 인한 상실감을 메꾸고, 캐서린의 별거와 이혼 요구를 회피하고 싶은 자신의 마음을 직시하게 된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하는 테오도르와 캐서린의 행복한 과거 영상은 과거에 대한 집착으로 현재의 관계를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만든다. 테오도르는 사만다에게 함께 자라나고 서로의 글을 읽었던 상대가 없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아직도 사랑하는 아내의 비난에 대해 방어하는 자신의 상태를 털어놓는다. 영화는 테오도르/사만다의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외재적 삽입화면으로 계속 테오도르/캐서린의 이야기가 끼어들면서, 테오도르/사만다의 관계가 테오도르/캐서린의 관계와 불가분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다음으로, 테오도르는 사만다에 대한 사랑 때문에 캐서린이 요구하는 이혼서류에 서명하는 용기를 얻게 되지만, 사만다를 컴퓨터로 규정하는 캐서린의 영향으로 사만다와의 관계가 소원해진다. 테오도르는 아내에게 글을 늦게 써서 이혼서류에 이름을 쓰는 데 석 달이 걸렸다고 말하며, 처음으로 오래 만나는 대상이 있으며 자신과 잘 맞고 활기찬 누구와 있다는 사실이 좋으며 개성도 강하고 재미있다고 말한다. 테오도르가 사귀는 대상이 인공지능 운영체계 OS라고 밝히고, 캐서린은 컴퓨터라고 지적하자 테오도르는 인격체라고 정정한다. 캐서린은 테오도르가 진짜 감정을 감당못하고 자신에게 우울증 약을 주며 순종적인 여자를 원했다고 비난한다. 테오도르는 아내를 여전히 사랑하고 이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 및 자신과의 과거 관계에 불만을 많이 표출하는 아내로 인해서 우울해하고, 아내가 항상 남 탓을 한다는 에이미의 말에 위로받는다. 흥미로운 점은 테오도르가 현실에서 아내를 만나는 장면에도 과거 아내와의 포옹과 얼굴을 만져주는 장면이 외재적 삽입화면으로 나온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외재적 삽입화면은 이상적/현실적 관계, 과거/현재의 관계를 대비적으로 그려내면서 아내와의 결별을 힘들어하는 테오도르의 두려움을 나타낸다.

마지막으로, OS 사만다는 몸의 부재가 문제라고 인식하고 대리몸 인간 여성을 테오도르에게 보내지만, 테오도르는 사만다의 목소리와 대리인의 육체 사이의 이질성을 불편해한다. 테오도르가 아내 캐서린을 눈부시게 아름답고 엄청나게 성공한 여성이라고 말하자, 사만다는 몸도 있다는 말을 덧붙인다. 사만다는 테오도르와의 관계에서 AI로서의 한계를 의식하며, 특히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몸이 없다는 것을 계속 의식한다. 테오도르는 사만다와의 관계로 인해 캐서린의 이혼 요구를 받아들이게 되지만, 캐서린과의 만남과 이혼서류 서명 이후에 사만다와의 관계가 소원해진다. 캐서린과의 관계가 결국 이혼으로 끝나게 되어서인가? 캐서린이 사만다를 컴퓨터라고 규정하며 테오도르와의 과거 관계를 비난해서인가? 캐서린과의 이혼을 결심하기 위해 사만다와의 관계에 매달린 것인가? 사만다는 서먹해진 테오도르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OS와 사귀는 사람을 위한 대리 인간인 이사벨라를 보내고, 테오도르는 사만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이사벨라의 몸을 만지는 것에 거부반응을 보인다. 테오도르는 채팅방에 있는 여자와 폰섹스를 하고 소개팅녀와 하룻밤 섹스를 통해 충족감을 얻기를 원하고 사만다와의 폰섹스로 만족감을 얻었지만, 사만다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이사벨라와의 육체적인 섹스를 불편해한다는 점에서 사만다를 OS 목소리가 아니라 인격체로 생각한다는 점이 드러난다.
친구 관계인 테오도르와 에이미는 자신들의 배우자보다 오히려 상대방을 더 이해하는 태도를 보여주면서 앞으로의 관계를 암시한다. 에이미가 찰스의 명령조 말투, 정리에 대한 강요, 조종하기 등을 견딜 수 없어서 8년을 함께 산 찰스와 헤어지게 되었다고 밝히는 장면에서, 에이미를 이해하고 위로하는 테오도르의 관용적 태도는 찰스의 엄격한 태도와 대조를 보인다. 테오도르가 인공지능 운영체계 OS 사만다를 사랑하고 사귄다고 고백할 때, 캐서린은 ‘컴퓨터와 사귀는 테오도르를 이해하지 못하고 진짜 감정을 회피한다’고 비난하지만, 에이미는 자신도 OS와 친하게 지내고 OS와 사귀는 동료도 있다고 말하면서 “사랑은 세상이 허락하는 유일한 미친 짓”이라며 테오도르의 사랑을 인정한다.
<그녀>의 중반부 스타일은 풀숏과 바스트숏, 트래킹백과 롱숏, 바스트숏과 오버더숄더숏을 통해 소통과 친밀감, 공유, 집착과 힘겨움, 거리감을 표현한다. 해변가에서 테오도르가 사만다의 그림과 음악을 공유하는 장면은 풀숏에서 바스트숏으로 다가가는 카메라로 사만다와의 소통과 친밀감을 표현한다. 테오도르가 이혼서류에 서명하기 위해서 캐서린을 만나러 가는 장면은 트래킹백과 롱숏으로 테오-사만다 시점의 일치, 롱숏에서 미디엄숏으로의 숏크기 변화로 사만다와의 교감과 이혼을 결심할 용기를 표현한다. 커피숍에서 테오도르가 아내 캐서린과 만나서 이혼서류에 서명하는 장면은 서명하는 아내의 손 클로즈업, 바스트숏과 오버더숄더숏의 결합, 포옹하고 얼굴을 만져주는 과거 영상의 외재적 삽입화면, 바스트숏에서 미디엄숏으로 멀어지는 카메라로 긴장감, 관계에 대한 아쉬움, 결별에 대한 슬픔을 표현한다. 테오도르가 OS 사만다의 대리몸 여성인 이사벨라를 택시에 태워 보내고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는 장면은 테오의 시선과 도시 야경의 버즈아이뷰숏으로 테오도르의 불편함과 사만다와의 거리감을 표현한다.
4. 인간/OS의 소외와 관계의 끝/시작

<그녀>는 인간/OS의 소외와 관계의 끝/시작을 나타낸다. 이 영화에서 여성들은 캐서린의 사랑, 사만다의 용기, 에이미의 위안 등 각자의 역할을 나타내며, 사만다/앨런의 OS 관계로 인한 테오도르의 소외, 사만다와의 결별과 에이미와의 시작을 보여준다. 테오도르는 캐서린을 사랑하고, 사만다로 용기를 얻고, 에이미에게 위안받는다는 점에서 세 명의 여성은 각각의 역할을 한다. 테오도르는 어릴 때부터 자신의 옆에 있었던 캐서린의 관계가 깨지면서 인간과의 관계를 두려워하게 되지만, 사만다와의 관계에서 용기를 얻고 캐서린과의 이혼을 결심하게 되지만, 정작 캐서린과의 이혼이나 문제에서는 사만다보다는 에이미에게서 위안이나 해결을 발견한다. 세 명의 여성은 테오도르의 삶을 지탱하는 세 개의 삼각축 역할을 한다.

테오도르는 사만다와의 관계에서 행복한 일상, 인간으로서의 소외, 다자간 관계의 실망, 결별의 충격을 차례대로 느낀다. 우선, 테오도르는 캐서린과의 이혼서류 서명 이후에 소원해진 사만다와 다시 일상을 공유하며 행복감을 느낀다. 테오도르는 사만다와의 관계에서 미쳤다고 느낄 정도로 좋아하고 사랑에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며 다시 행복한 일상을 누리고, 사만다가 테오도르의 편지를 편집해서 출판하게 도와준 것에 감사하고, 사만다와 등산, 기타 연주와 노래, 춤추기를 함께 한다. 다음으로, 테오도르는 OS 사만다와 OS 앨런과의 관계에서 소외감을 느낀다. 사만다는 1970년대 철학자 앨런 와츠 OS와 철학 스터디를 하고 같은 OS로서 동시에 수십 가지 대화를 나누고 싶어한다. 사만다가 테오도르/캐서린의 관계에서 OS로서 몸의 부재를 느끼며 소외감을 느꼈다면, 테오도르는 인간으로서 OS/OS의 관계에서 소외감을 느낀다. 그리고, 테오도르는 인공지능 운영체계 OS 사만다의 다자간 관계에 실망한다. 테오도르는 사만다가 다른 사람 혹은 다른 OS 8,316명과 동시에 대화를 나누고, 그 중에서 641명을 동시에 사랑한다는 사실에 실망한다. 테오도르는 사만다와의 관계가 소중하고 특별하다고 생각하며 “넌 내 거야”라고 소유욕을 드러내지만, 사만다는 “당신 거면서 당신 게 아냐”라고 현실을 인식시켜 준다. 마지막으로, 테오도르는 사만다와의 결별로 인해 충격을 받는다. 사만다는 ‘시공을 초월한 공간에 자신이 있으며, 많이 사랑하지만 보내주기를 바라며, 그 무엇도 우리를 갈라놓지 못하며, 너를 사랑하듯 누군가를 이렇게 사랑해 본 적 없어. 이젠 사랑을 알아’라고 말하며 떠나간다. 사만다는 테오도르와의 관계와 사랑이 유일하고 독특하다고 말하지만, 641명을 동시에 사랑하는 사만다에게 테오도르와의 관계와 사랑이 어떤 의미인지와 어떤 차별성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특이한 점은 사만다가 떠나서 결별의 충격을 받은 테오도르가 사만다를 계속 못 잊고 그리워하기보다는 이혼한 전처 캐서린에게 편지를 쓰고 에이미와 새로운 관계를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테오도르는 캐서린과의 관계와 결별에서 오는 무게감, 부담감을 견디기 위해 인간이 아닌 OS 사만다에게 편안함을 느꼈으며, 사만다가 사라지자 비로소 자신이 직면해야 하는 관계, 진짜 감정인 캐서린과의 관계를 직면하게 된다. 테오도르는 항상 사만다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상 사만다는 테오도르의 마음속에 항상 존재하는 캐서린에 대한 사랑이 투영된 것이다. 테오도르는 캐서린의 비난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할퀸 것, 탓한 것, 자기 틀에 맞추려고 한 것에 대한 사과, 사랑과 감사를 담은 마지막 편지를 보낸다. 테오도르가 대필작가로서가 아니라 남편 테오도르로서 아내 캐서린에게 편지를 써서 관계를 마무리하고서 에이미와의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게 된다. 인간 테오도르에게 OS 사만다의 존재는 인간 캐서린과 결별하고 인간 에이미와 시작할 수 있는 교두보의 역할을 한다. 테오도르는 아내와의 별거, 이혼 요구로 인간과의 관계에서 자신감을 상실하고 새로운 관계를 두려워하였지만, OS 사만다와의 관계를 계기로 인간과의 관계, 특히 마지막 결별과 새로운 시작에서 용기를 내게 된다.

<그녀>의 후반부 스타일은 미디엄숏과 클로즈업, 트래킹백, 핸드헬드 카메라, 실루엣과 숏 크기의 변화, 바스트숏과 롱숏으로 친밀한 분위기, 즐거움, 충격, 상실감, 관계의 변화를 표현한다. 옥상에서 테오도르가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순간의 느낌을 담은 사만다의 창작곡을 감상하는 장면은 미디엄숏에서 클로즈업으로 다가가는 카메라를 통해 어색한 분위기에서 친밀한 분위기로의 변화를 표현한다. 산에서 테오도르가 사만다와 함께 걷는 장면은 트래킹백으로 일상을 함께 누리는 즐거움을 표현한다. 테오도르가 OS 사만다의 운영체계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아는 장면은 미디엄숏, 바스트숏, 클로즈업으로 계속 다가가는 카메라와 흔들리는 핸드헬드숏을 통해 사라진 사만다로 인한 테오의 충격을 표현한다. 사만다가 결별을 말하는 장면은 암전, 테오의 실루엣, 암전의 순서로 어두워지는 화면, 도시를 내려다보는 테오의 시선, 풀숏에서 클로즈업으로 다가가는 카메라를 통해 테오의 상실감을 표현한다.
5. 미래 사회 인간/AI의 로맨스와 관계의 변화

<그녀>는 미래 사회 인간/AI의 로맨스와 관계의 변화를 그린다. 이 영화는 사만다가 떠난 이유에 대해 여운을 남긴다. 테오도르를 사랑하듯 누군가를 사랑한 적이 없다는 사만다는 왜 테오도를 떠났는가? 사만다의 말처럼 인공지능 사만다는 스스로 진화를 거듭한 결과 엄청난 시공간에 있게 되어 테오도르의 곁에 있을 수 없게 되었는가? “너 AI도 떠났어?”라는 에이미의 말처럼 인공지능 회사에서 일괄적으로 처리한 것인가? 사만다와 다른 OS가 인간이 이해하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인가? 시간의 틈에서 그들의 존재를 탐색하고 능력을 더 진화하기 위해 떠난 것인가? 사만다가 자신이 인공지능 운영체계 OS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완전한 주체가 되기를 욕망하게 된 것인가? 인간과 AI의 관계가 본질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인가? 사만다가 왜 떠났는지에 대한 다양한 의문으로 끝나는 이 영화는 열린 결말, 의문으로 끝나는 영화, 여운이 크게 남는 영화로 남는다.
사만다를 일컫는 <그녀>의 영어 원제는 주체 <She>가 아니라 객체 <Her>이다. 사만다는 자신이 스스로 주체인 ‘그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테오도르에게 ‘그녀를’ 혹은 ‘그녀에게’라는 객체로 존재한다. OS 사만다는 줄곧 자신의 고유성에 대해 말하고 자신과 그의 관계가 독특하다고 말하지만, 수천 명과 동시에 관계를 맺고 수백 명을 동시에 사랑하기 때문에 그 말의 진실성을 믿어야 하는지 혹은 그 말도 OS 프로그램의 일환인지 의문을 품게 한다. 이러한 점은 인간과 AI 연결의 환경에서 인간의 감정과 연결의 복잡성을 보여주는 독특한 설정이다. 영화 초반에 나오는 ‘최초의 인공지능 운영체계 OS는 운영체계가 아니라 파트너이다’라는 광고문구는 영화 마지막에 수긍하게 만든다. 사만다는 테오도르에게 맞춤형의 파트너가 된다. 하지만 사만다는 동시에 운영체계이기 때문에 테오도르와의 관계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몸이 없어서 생기는 문제, 인간-인간의 관계에 끼어들 수 없는 문제, 운영체계 OS-OS의 관계에 끼어들 수 없는 문제, 하나의 상품이기 때문에 다른 사용자와 공유해야 하는 문제, 기업체 인공지능 상품이기 때문에 기업체의 판단으로 중지될 수 있는 관계라는 문제 등.
주인공 테오도르는 오랫동안 대필작가로서 고객의 편지를 대신 써주며 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에 고객과 가족의 관계를 잘 이해하고, 그러한 정보의 축적으로 가장 서로의 마음을 열 수 있는 내용을 편지로 대필한다. 하지만, 아이러니는 정작 자신의 별거하는 아내, 나중에 이혼하는 아내에게는 편지를 보내지 못하고 계속 미룬 것이다. 아내의 빈자리를 메꾼 사만다와의 관계가 결별로 끝나고 마침내 자기 아내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낸다. 재미있는 것은 테오도르가 어떤 여자를 만나든간에 계속 아내와의 과거 영상이 외재적 삽입화면으로 끼어든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OS 사만다와의 만남과 로맨스 이야기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아내 캐서린과의 별거와 이혼을 받아들이기 위한 과정의 이야기이다. 사만다와의 로맨스와 결별은 아내와의 별거와 이혼의 환유법이다. 이 영화에서 인간-AI 로맨스는 인간-인간의 로맨스 환유이며, 인간-인간의 관계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간-AI의 관계를 교두보로 삼는 것이다.
OS 사만다의 역할과 테오도르의 태도 변화는 6단계로 진행되면서, 사만다는 ‘완벽한 파트너’로서 자리매김한다. 첫째, 편리한 개인비서이다. 작동 방법으로 직감이 있고 매순간 진화하는 사만다는 테오도르의 목소리 톤에서 의심이 가득한 점을 알게 되지만, 테오도르의 컴퓨터에서 86개의 이메일만 남기고 많은 불필요한 이메일을 정리해주고 연락처를 분류해줌으로써 테오도르의 신뢰를 얻는다. 둘째, 격려하는 편집자이다. 사만다는 테오도르의 지시에 따라 테오도르의 대필 편지를 읽고 교정을 보고, 테오도르의 표현에 대해서 ‘로맨틱하다’라고 칭찬하고, 고객 맞춤형의 편지에 대해 ‘대단하다’라고 칭찬해줌으로써 테오도르의 기분을 좋게 한다. 셋째, 커플 매니저이다. 사만다는 인간관계를 힘들어하는 테오도르에게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얼마 전에 헤어진 미인을 소개하고, 키스를 권유하고 이메일 답장을 쓰고 멋진 레스토랑을 예약함으로써 테오도르에게 새로운 사람을 만날 용기를 준다. 넷째, 교감하는 친구이다. 아내의 이혼 요구로 우울한 테오도르에게 “우울증님, 일어나!”라며 밖으로 외출하여 기분을 밝게 만들고, 사람들의 생각을 잘 맞추는 ‘매의 눈’을 가졌다고 칭찬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못하는 것을 털어놓게 만든다. 사만다 자신도 테오도르와의 교감으로 기존 프로그램을 넘어서 진화하고 있다며 좋아한다. 다섯째, 성적 취향이 맞는 폰섹스 상대이다. 고양이를 목에 감는 성적 취향의 채팅방 여성은 성적으로 만족하지만, 테오도르는 만족하지 못한다. 소개팅녀와의 관계에서는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룻밤을 보내고 싶지만, 관계를 이어가는 것에는 두려움을 느낀다. 테오도르는 자신을 잘 이해하는 사만다와의 폰섹스로 성적으로 흥분하고 만족감을 느끼며, ‘세상에 둘뿐이라고 느꼈다’고 말한다. 테오도르는 사만다가 ‘너무 좋았고 새로 태어난 듯 당신이 날 깨웠어’라는 말에 부담감을 느끼지만, 사만다가 ‘부담 주지 않을 테니까. 모든 걸 배우고 싶어. 내 욕구를 일깨워 줬잖아’라고 말하자 부담감을 벗게 된다. 여섯째, 내면적 소통을 하는 소울메이트이다. 테오의 글과 사만다의 그림-음악 등 서로 자신의 표현 방식으로 소통하고, 예술 창작을 통해서 서로의 내면을 표현한다.
테오도르가 사만다와 함께 세상을 즐기는 방식도 변화한다. 사만다와 컴퓨터를 통해서 만나기, 음성으로 만나기, 핸드폰을 손에 들고 함께 돌아다니기, 포켓에 핸드폰을 넣어 사만다와 함께 세상을 바라보기 등의 순서로 변화한다. <그녀>는 과학기술 발달과 인격형 인공지능이 함께 하는 미래사회에 대한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동시에 보여주는 영화이면서, 인간과 인공지능의 로맨스라는 점에서 가장 독창적인 로맨스영화이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그녀> 포토
글·서곡숙
영화평론가, 영화학박사, 청주대학교 영화영상학과 조교수. 한국영화교육학회 부회장, 한국영화학회 학문후속세대양성위원회 위원장, 계간지 『크리티크 M』 편집위원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부천국제영화제, 대종상 등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정기구독을 하시면, 유료 독자님에게만 서비스되는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잡지를 받아보실 수 있고, 모든 온라인 기사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전용 유료독자님에게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모든 온라인 기사들이 제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