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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자가포식자의 점액화된 신체: 영화 <서브스턴스>
[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자가포식자의 점액화된 신체: 영화 <서브스턴스>
  • 지승학(영화평론가)
  • 승인 2025.04.07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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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애벌레와 젊은 성충

영화 <서브스턴스>(2024)는 호러(horror)의 외양을 갖고 있지만, 몸에 관한 영화다. IMDB에서 분류해 놓은 장르 키워드가 “Body Horror”인 것만 보더라도 그렇다. 그런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이 영화는 “Monster Horror”가 될 수도 있다. 말하자면 몸과 괴물이 한 영화에 같이 나오는 영화란 의미다.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인간과 괴물의 싸움을 그리는 영화로 오해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이 영화는 몸이 괴물로 변하는 과정을 추적한다. 여기에 쇼 비지니스 드라마가 개입하면서 이 영화는 몸이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의 쇼라거나 몸이 괴물이 된 쇼로 바뀐다. 어쨌든 여기서 몸은 괴물과 하나다.

 

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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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눈에 띄는 것은 몸의 주체가 중년의 여성과 젊은 여성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면 육체의 문제를 세대의 갈등으로 변주한 이 영화가 몸을 괴물로 그려내려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어쩌면 몸의 변화를 통해 인간의 내면을 구현하려는 전략 때문일지 모른다. 그러고 보니 이 영화의 감독 코랄리 파르쟈는 의학적 몸보다는 의지적인 몸에 더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파르쟈 감독의 전작 <리벤지>(2020)의 젠(마틸다 안나 잉그리드 루츠)만 보더라도 그렇다. 절벽에서 떨어진 것으로도 모자라 거기에 있던 나뭇가지에 몸이 관통당한 채 젠이 살아남는다는 상황도 의아하지만, 그 깊은 상처를 입고도 물가를 가로질러 전력 질주를 한다거나 절개하여 펼친 맥주 캔을 뜨겁게 달군 후 그것으로 상처 부위를 지지고 나서 이내 초월적인 신체로 변하는 과정도 황당하다.(물론 여기에는 신비한 환각식물을 이용한다는 설정이 추가되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를 끈질기게 담아내는 영화적 뚝심은 의지적 신체의 의미를 더 명확하게 보여준다. 파르쟈 감독의 영화는 의학적 신체를 무시하기 때문에 허구적이라기보다는 의학적 신체를 무시함으로써 더 부각 될 수 있는 의지적 신체 표현에 그런 식으로 몰두한다. 단지 몸은 훌륭한 스펙터클이긴 하지만 여기에는 어떤 ‘의지’에 대한 주목이 있는 것이다.

 

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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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스파클(데미 무어)은 프로그램 하차를 통보 받은 순간 ‘서브스턴스’에 가입한 후 어떤 ‘물질’(서브스턴스)을 제공받게 된다. 이 과정은 첩보 스릴러물을 방불케 하는데 그 과정은 어떻게 가입하는지를 긴장감 있게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루틴의 정확성을 의미심장하게 각인하려는 것이다. 스파클은 마치 나비가 변태 할 때처럼 애벌레의 몸을 찢고 나와 성충이 되는 과정을 실행한 후, ‘늙은 애벌레’(스텔라, 데미 무어)의 신체가 되는 동시에 ‘젊은 성충’(수, 마거릿 퀄리)이 된다. 모순적인 두 존재는 정확한 루틴을 반복할 때 공존할 수 있으며 그 상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늙음과 젊음을 변주한다. <서브스턴스>의 신체는 외관이 아니라 어쩌면 존재의 증명을 위해 찢기고 터진 것일지 모른다. 그 안에서 몸은 욕망적 착취의 대상이 되고 불가피한 혐오의 대상이 되며 괴물적 진실의 대상이 된다.

 

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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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스텔라는 ‘서브스턴스’로 자기 안의 젊은 타자(他者) 수를 깨우고, 수는 더 나은 성공을 위해 스텔라의 체액을 먹어치운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몸이 도대체 누구의 것인지를 잊는다. 몸에 대한 망각은 자가포식으로 이어진다. 이 영화는 자가포식을 가장 체계적이고 반복적인 과정 안에 가둬두고는 주입, 분열, 흡수의 반복으로써 괴물을 완성한다. 그렇게 자기를 겨냥한 나의 착취, 즉 자가포식은 마침내 흘러내린 스파클(데미 무어)의 점액화 된 얼굴과 신체가 되어 파국의 종점을 찍는다. 이때 스텔라의 얼굴은 점액화의 저주를 끝까지 버텨내는데 이로 미루어 보건대, 어쩌면 감독은 얼굴과 신체의 의미적, 존재적 가치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의식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영화 <서브스턴스>는 편향된 아름다움에 휩쓸린 가치관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과도한 이상향 추구와 맹목적인 완벽성 그리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자존감 하락과 주체성의 침하를 끝내 과도한 자가 포식적 은유로 상정하여 이런 파국의 흔적을 정밀하게, 잔혹하게 그리고 허무하게 영화적으로 말끔하게 지워버린다. Body-Monster Horror 장르인 영화 <서브스턴스>는 달걀처럼 점액화 된 신체로써 우리 실존의 허무를 그런 식으로 잔인하게 건드린다. 

 

글·지승학
영화평론가. 문학박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홍보이사,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으로 등단. 현재 고려대 응용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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