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그래도 로마인은 종교와 정치체제, 대외관계에서 도로에 이르기까지 진정한 의미에서 개방적인 민족이 아니었던가. 아테네도, 스파르타도, 에트루리아도, 로마도 모두 자유 시민을 국가의 기둥으로 삼는 도시국가로 탄생했다.~(중략)~.오직 로마만이 도시국가로 태어나, 도시국가의 범위를 넘어섰다.”
- 『로마인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김석희 옮김 -
계절의 순환과 호흡하며 경계가 무너진다. 무너진 경계에도 봄꽃은 피어난다. 봄꽃이 햇살과 바람을 만난다. 경계를 따라 같이 걸으며 담장을 쌓는다. 이웃 소나무와 내 사과밭은 담장을 싫어한다. 우리는 담장을 좋아하는 소가 없다. 좋은 담장은 좋은 이웃을 만든다. 좋은 이웃은 좋은 담장을 원할까? 만리장성~월스트리트~관세 장벽과 데이터월이 써가는 서사. 프로스트의 질문에 마그리트가 대답한다. 열린계를 향해 빛이 틈으로 흐르며 하늘로 향한다.
프로스트 / <담장을 고치며(Mending Wall)> / 경계(境界) 향한 / 사유의 장
주로 미국 동북부 뉴잉글랜드 자연 속 전원생활에 바탕을 두고 인간 존재에 대한 본질을 미시적으로 그려낸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1874년~1963년). 그의 두 번째 시집 《보스턴의 북쪽(North of Boston)》(1914년)에 발표된 시 <담장을 고치며(Mending Wall)>는 45행의 무운시(無韻詩, blank verse)다.

“담장을 싫어하는 뭔가가 있어,/담장 아래 언 땅을 부풀게 하고,/햇살 비치는 위쪽 돌들을 흩트리며, /두 사람도 나란히 지나갈 수 있는 틈을 만드네./~(중략)~./난 담장을 쌓기 전에,/무엇을 안으로 들이고, 무엇을 밖으로 내어 쌓을지,/그리고 누구 마음을 상하게 할지 알기를 원해요./담장을 싫어하는 뭔가가 있어,/그것이 담장을 허물길 원해요./~(중략)~./난 그가 양손에 돌 윗부분을 굳세게 잡고/오는 것을 보는데,/마치 무기를 든 석기시대 야만인처럼 보이네./그는 어둠 속에 움직이고 있는데, 내가 보기엔,/단지 숲과 나무 그늘 때문만은 아니네./그는 아버지의 말을 거스르지 않을 것이며,/그리고 자신이 이에 대해 숙고한 데 대해 만족하며,/다시 말하네, '좋은 담장은 좋은 이웃을 만들지요.'”
- <담장을 고치며(Mending Wall)>, 로버트 프로스트 -
이는 토속적 시골 풍경을 배경으로, 한 편의 짧은 드라마와 같은 형태의 대화체를 사용하여 현실을 소환한다. 이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인 경계를 세우려는 본능과 그것을 바라보는 이성을 탐구한다. 시는 겨우내 무너진 담장에 대한 자연의 섭리를 의인화하며 시작한다. 새로운 봄이 오고 무너진 담장을 함께 고치는 단순한 행위와 대비되며, 화자와 이웃이 나누는 대화에는 경계와 관계에 대한 깊은 삶의 사유가 흐른다.
시의 제목인 <담장을 고치며(Mending Wall)>는 물리적인 담장과 사회적인 담장을 내포한다. 단순히 담장을 고치는 물리적인 과정뿐만 아니라, 인간 존재의 심리적이며 사회적인 장벽으로 확대된다. 담장이 무너지는 것은 겨우내 얼었던 햇살과 바람이 녹으며 일어나는 자연 현상이므로, 인간이 만든 담장으로 상징되는 경계는 자연의 순환 흐름에 어긋나는 것으로 다가온다. 담장을 고치려는 행위에서 화자와 이웃이 따르려고 하는 가치관을 통해, 인간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화자는 담장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왜 좋은 이웃을 만들기 위해 담장을 세우는가? (Why do they make good neighbors?)" 라고 묻는다. 그는 담장을 고치는 행위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며, 담장이 오히려 사람들 사이의 소통을 차단하고 인간적 관계를 약화한다고 한다. 화자는 담장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이웃은 전통적인 관습에 따라 담장을 고쳐야 한다고 주장하며, "좋은 울타리는 좋은 이웃을 만든다. (Good fences make good neighbors)"는 말을 반복한다. 이는 상징적으로 인간관계에서 개인의 경계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듯이, 이웃은 사람들 간의 거리를 두는 것이 갈등을 예방하고 서로의 사생활을 존중할 방법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화자는 이 관점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담장이 실제로 인간관계를 제한하는 장벽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자연은 이 시에서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한다. 담장이 무너지는 이유는 자연의 변화에 의한 것인데, 이는 인간이 만든 경계가 자연의 흐름을 막을 수 없다는 암묵적 전언이다. 시에서 화자는 "담장을 싫어하는 뭔가가 있어(Something there is that doesn’t love a wall)"라고 말하며, 담장을 파괴하는 자연의 본능적인 힘을 표현한다. 이는 인간이 만든 경계가 궁극적으로 자연의 순환 법칙 앞에서는 무력하다는 암시이다. 자연은 화자가 추구하는 방향으로 담장을 허물지만, 이웃은 여전히 담장을 고수하려 한다. 이러한 대립적 시각은 인간 사회의 규범과 전통이 자연의 본질적 흐름을 거스르는 방식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상징한다. 또한 화자와 이웃의 가치관 차이는 단순히 담장이라는 경계의 필요성에 대한 논쟁을 넘어, 전통과 혁신의 갈등을 드러낸다. 이웃은 "Good fences make good neighbors"라는 말을 반복하며 전통적인 방식이 관계를 원활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그러나 화자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이 현대 사회에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며, 소통과 상호 이해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시는 그 자체로 경계에서 출발한 사회적 갈등을 반영하며, 특히 인간관계에서의 규범과 개방성 사이의 균형을 묻고 있다. 화자는 담장을 허물자고 제안하는 혁신적 입장, 이웃은 경계를 존중하는 보수적 입장을 대변한다. 이 두 입장의 간극은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규범 사이의 끊임없는 긴장으로 나타난다.
담장은 경계(境界)와 안전을 상징하지만, 고립과 폐쇄를 뜻하기도 한다. <담장을 고치며(Mending Wall)>는 담장의 기능에 대해 이중적 시선으로 다가온다. 담장이 없을 때 우리는 더 많이 연결될 수도 있고, 반대로 침범받는 위협이나 갈등을 느낄 수도 있다. 시는 우리에게 “우리는 스스로의 삶에서 어떤 담장을 쌓고 있으며, 그 담장은 정말 필요한가?”를 묻는다. 담장이 과연 인간 존재에 대해 상호 더 나은 이웃으로 만들 수 있는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에 대해 중요한 사유의 장으로 향하게 한다.
‘만리장성’ / 중국형 / 로마의 길 / 일대일로(一带一路) 진화
프로스트의 뉴잉글랜드 담장은 세상의 담장(벽, Wall)으로 향한다. 그 첫 번째는 만리장성(Great Wall of China). 만리장성은 중국 진나라 때 흉노족 등 유목 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든 인류 최대의 성곽으로서, 중국을 상징하는 대표적 유적이자 건축물이다.

만리장성의 담장으로서 의미를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만난다. 첫째, 정치적 관점에서 고대 중국의 정치적 힘과 국가 영토의 보호 의지에서 출발한다. 이는 현대에 와서 중국의 국가 주권과 자주성을 강조하는 상징으로 확대된다. 특히 중국이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현재 상황에서, 만리장성은 외세의 침입과 내정 간섭을 막는 방어적 측면과 더불어 패권적 글로벌 경쟁에서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개방성과 폐쇄성의 이중성으로 연결된다. 둘째, 경제적 관점에서 만리장성은 중국의 경제적 자립과 연결된다. 기존의 국가 자원과 무역을 보호하려는 목적과 함께 오늘날의 글로벌화된 경제에서 경쟁과 협력 및 경제적 주권(디지털 주권 포함)의 유지·확장을 위한 역사적 표지이다. 셋째,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공존하는 중국에서 민족적 정체성과 사회적 통합의 수단으로 뻗어있다. 동아시아 문명과 북방 유목 문명의 경계로서, 사회·문화 간의 차이와 충돌을 설명하는 하나의 기제로 작용한다. 이는 사회·문화적 담장의 필요성과 담장의 해소라는 두 가지 상반된 관점을 동시에 드러낸다. 또한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1987년)되며, 국가의 자산이 아니라 인류의 공동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한다. 이처럼 만리장성이라는 담장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중요한 상징적인 역할을 하며, 시공간적 상호작용과 변화 속에서 그 의미가 지속적으로 재구성된다. 담장 밖 국가에 대한 단순한 물리적인 담장으로부터 탈피한다. 국가를 보호하려는 보호와 경계 측면의 방어적 폐쇄를 상징하던 만리장성은 화학적인 담장으로 진화한다. 전설 속 ‘죽의 장막(Bamboo Curtain)’이 세계의 길을 만들어간다. 글로벌 교역과 협력을 통해 국가 간의 연결을 확대하는 생태계인 '일대일로(一带一路)'는, 담장 안에 편입된 국가들과의 확대를 추구한다. 담장은 만리장성과 같은 고정된 대상물로서의 단순한 방어선이 아닌, 외부와의 연결을 촉진하는 거대한 담론을 향한 유기체적 네트워크로 확장된다.
“~(전략)~.어느 날 우리는 서로 만나 담 경계를 따라 걸으며,/우리 사이에 다시 한번 담장을 쌓네./그러는 동안에도 우리는 서로 간에 경계를 지키네./자기 쪽으로 떨어진 돌들을 각자 떠맡네./어떤 것은 네모난 빵 같고, 어떤 것은 둥근 공과 같으니,/그들이 균형을 잃지 않도록 주문을 걸곤 하네./'제발 우리가 돌아설 때까지 무너지지 않기를!‘/~(후략)~.”
- <담장을 고치며(Mending Wall)> 13행~19행, 로버트 프로스트 -
같은 방향을 향해 걸어가는 국가 간 경계를 지킨다. 상호 간 추구하는 네모난 빵이나 둥근 공의 가치를 인정하며 이해관계를 축으로 하는 시소 놀이를 한다.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한 무너지지 않길 바라는 프로스트를 소환하며, 중국형 로마의 길을 만들어간다.
금융월(Wall) / ’월스트리트‘ /소유욕과 / 탐욕 담장
만리장성을 떠난 담장은 금융의 길을 찾는다. 미국 뉴욕시 맨해튼 남부에 위치한 미국 금융시장의 중심이자 세계 금융시장의 핵심, 월스트리트(Wall Street, 월가). 17세기 초 네덜란드의 식민지로서, 아메리카 원주민과 영국인(영란전쟁)을 막기 위한 보호 차원의 긴 목책을 세운 것으로부터 '벽(Wall, 월)'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월스트리트의 담장으로서 의미를 찾아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 관점을 향해 걷는다. 첫째, 정치적 관점에서 월스트리트는 미국 정치와 결합재의 관계이다. 금융 자본의 영향력은 정치 결정 과정에서 공생의 역할을 하며, 정치적 로비 활동을 통해 정책에 영향을 미친다. 월스트리트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변동은 정치적 논쟁과 정부의 대응에 큰 영향을 미친다. 둘째, 경제적 관점에서 월스트리트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금융 시장 중 하나인 뉴욕 증권거래소(NYSE)와 나스닥(NASDAQ) 등이 위치한 곳이다. 이곳에서 거래되는 주식, 채권, 외환 및 다양한 금융 상품은 글로벌 경제의 흐름을 좌우한다. 월스트리트의 움직임은 단순히 미국 경제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제에도 소용돌이 장과 같은 영향을 미친다. 셋째,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월스트리트라는 용어는 경제적 불평등, 자본주의의 상징, 또는 기업들의 이익 추구를 비판하는 상징처럼 사용된다. 월스트리트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화적 아이콘으로서 자주 등장하며, 대체로 경제적 성공과 실패, 무한 경쟁과 도전, 그리고 탐욕과 부패를 나타내는 장소로 대변된다.
금융 주체 중 기업은 거래되는 주식 가격으로 평가된다. 주가는 시장이 예측하는 이익에 근거해 이미 형성되어 있으므로, 시장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다면 주가는 내려간다. 국가는 국가 간 기준금리 차에 의해 자본의 이동을 수반한다. 이때 자본 이동의 핵심 매개 역할을 하는 곳이 월가의 금융 기관들이다. 이들은 제1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와 정교하게 설계된 금융 상품을 담장으로 삼아 개인과 글로벌 국가 경제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전략)~.봄기운에 장난삼아, 난 그의 머릿속에/이치를 따질 수 있을까 생각해 보네,/'왜 담을 쌓아야 좋은 이웃이 되나요?/그건 소를 키울 때 그러지 않나요? 하지만 여긴 소가 없어요./난 담장을 쌓기 전에, 무엇을 안으로 들이고, 무엇을 밖으로 내몰지,/그리고 누구 마음을 상하게 하는지 알기를 원해요./담장을 싫어하는 뭔가가 있어,/그것이 담장을 허물길 원해요.' 난 그에게 '요정들'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정확히 말하면 요정은 아니기 때문에,/난 그가 스스로 말해 주길 원했네.~(후략)~.”
- <담장을 고치며(Mending Wall)> 28행~38행, 로버트 프로스트 -
세계 경제를 이끄는 주주자본주의와 금융자본주의. 경제 주체의 탐욕을 부추기며 이를 동력으로 움직이는 시스템으로서, 담장의 형태 다양성과 높이를 선호한다. 월가의 금융 기관들이 봄기운에 강세장(Bull market)을 외치며 담장을 쌓는다. 소가 없는 곳에도 강세장의 담장을 만든다. 무분별한 소유욕과 전염된 탐욕을 멀리하며, 소가 없는 강세장의 담장을 허물 수 있어야 하는 이유이다.
무역월(Wall) / ’관세 장벽‘ /패권욕과 / 두려움 담장
월스트리트의 담장은 관세 장벽으로 인해 뜨겁다. 블룸버그 통신 보도(4월 5일, 현지시간)로는 트럼프 정부의 광범위한 상호 관세 계획 발표(4월 2일) 후, 월가 금융회사 고위 경영진들이 스콧 베선트(Scott Bessent) 재무장관을 향해 트럼프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설득하는 도움을 요청했으나, 베선트 장관이 관세 정책 수립의 핵심 라인이 아니라는 평가가 나오면서 월가가 충격에 빠졌다고 한다. 관세 장벽(Tariff Barrier/Wall)은 특정 국가가 자국 산업을 보호하거나 무역 수지를 조정하기 위해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관세의 담장으로서 의미에 대해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들여다본다. 첫째, 정치적 관점에서 자국 산업을 보호하거나 외교적 압력을 행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국가 주권의 상징이며, 전통적으로 개발도상국은 자국의 경제 자립을 위해 관세 장벽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는 강대국의 무한 패권을 좇는 무역 전쟁에서 자주 등장한다. 현재 미국 트럼프 정부는 중국을 위시한 글로벌 경제와 무역 질서 재편 과정에서, 강력한 정치적 메시지이자 압박 수단으로 사용하며 지정학적 갈등을 심화하고 있다. 둘째, 경제적 관점에서 가격 경쟁에서 불리한 자국 기업을 보호하여 일자리 유지 및 산업 성장 유도를 통한 자국 산업 보호를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부과되는 관세를 반영하여 수입품 가격이 상승하면, 소비자 선택의 폭이 줄고 물가가 오를 가능성이 높아 소비자 부담 증가로 이어진다. 또한 상대국도 보복 관세를 부과하면 양측 모두 손해를 입게 되고, 글로벌 공급망 교란으로 세계 경제에 악순환의 영향을 미치며 스태그플레이션 발생 가능성을 높인다. 셋째, 사회·문화적 관점에서는 기업 유치 및 일자리 보호를 통해 일부 산업 노동자에게는 긍정적일 수 있지만, 물가 상승 따른 저소득층의 상대적 부담 증가로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또한 문화 및 서비스 산업의 교류 저해로 세계화를 위한 상대적 자유도 감소를 초래할 수 있다.
“~(전략)~.난 그가 양손에 돌 윗부분을 굳세게 잡고/오는 것을 보는데,/마치 무기를 든 석기시대 야만인처럼 보이네./그는 어둠 속에 움직이고 있는데, 내가 보기엔,/단지 숲과 나무 그늘 때문만은 아니네./그는 아버지의 말을 거스르지 않을 것이며,/그리고 자신이 이에 대해 숙고한 데 대해 만족하며,/다시 말하네, '좋은 담장은 좋은 이웃을 만들지요.'”
- <담장을 고치며(Mending Wall)> 38행~45행, 로버트 프로스트 -
지금의 관세 장벽은 자국 이기주의인 패권욕과 상대국 성장에 대한 두려움을 당위라고 착각하며 권리화하는 데서 출발한다. 관세 담장은 시대를 역행하며 마치 석기시대 야만인이 무기를 든 것처럼 보인다. 석기시대 야만인은 어둠 속에서 움직이며, 자신의 의지를 절대적 소명(召命, Vocation)으로 여기며 담장을 쌓아간다. 담장의 형태와 높이로 세상은 소극적 침묵과 함께 단절되며 닫혀간다.
담장의 / ’뭔가(Something)‘ / 열린계(界) 빛으로 / 피어나네
프로스트의 뉴잉글랜드 담장은 데이터 담장(Data Wall)으로 이어진다. 데이터 담장은 정보 불균형으로 인해 사용자는 데이터를 생산하지만, 그 흐름과 결과를 조정·통제하지 못하고 빅테크의 데이터 독점에 종속되어 가는 현실을 의미한다. 빅테크 내부에는 실제로 대형 데이터를 수집·분석하는 담장(도구나 시스템 등)이 있으나, 기업 내부만이 데이터를 보고 해석할 수 있으며 외부에는 담장으로 닫혀있는 그들만의 리그를 자랑한다. 개인이나 집단의 데이터 주권(Data sovereignty) 상실은 대형 데이터(Big Data)를 소유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힘과 가치 차이를 기하급수적으로 벌려간다. 신흥 양극화.
“~(전략)~.담장을 싫어하는 뭔가가 있어,/담장 아래 언 땅을 부풀게 하고,/햇살 비치는 위쪽 돌들을 흩트리며, /두 사람도 나란히 지나갈 수 있는 틈을 만드네./~(후략)”
- <담장을 고치며(Mending Wall)> 1행~4행, 로버트 프로스트 -
<담장을 고치며(Mending Wall)>는 인간 존재의 본질 측면에서 역설(逆說)적 대화체 형태의 질문을 던진다. 화자는 1행과 35행에서 반복적으로 ’담장을 싫어하는 뭔가(Something there is that doesn't love a wall)‘를 통해 담장 허물기를 시도한다. 그러나 세상은 관계 속에 살아가는 것. 시 속 이웃은 27행과 45행에서 거듭 ’좋은 담장은 좋은 이웃을 만든다(Good fences make good neighbors)‘는 속담을 통해 담장 복구를 강조한다. 화자의 겨울철 순환 논리인 자연 현상을 수용하려는 열린 세계는 이웃의 사회화 가치 추구인 닫힌 세계와 충돌한다. 하지만 담장은 중의적 의미로 쌓이며 충돌의 파편은 재창조된다. 우선 담장은 물리적 측면에서 담장 안의 대상에게는 보호와 안전을 위한 경계를 상징화하며 담장 밖과의 단절과 구분을 나타낸다. 반면 화학적 측면에서 화자와 이웃과의 만남을 통한 소통과 연결의 통로로 작용한다. 이는 인간 존재의 본질에서 틈으로 작용하며 좋은 관계를 만드는 디딤돌이 된다.
자연은 경계를 허물지만, 인간은 세운다. 전통적 담장인 만리장성(Great Wall of China), 월스트리트(Wall Street), 관세 장벽(Tariff Wall)과 새로운 담장인 데이터월(Data Wall). 그들은 모두 소유욕과 탐욕을 자양분 삼아 쌓아져 가는 닫힘의 상징물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공간도 닫혀가는 거대 담론의 담장으로 전염되어 간다. 슈퍼리치 담장 안 맞선 모임, 아파트 초고층 수직화, 스몸비(Smombie)형 디지털 반려화 등. 닫힌계를 떠나 열린계를 향해 가는 길에 르네 마그리트(René François Ghislain Magritte, 1898년~1967년)의 동명 유화 연작 17점 중 하나인 빛의 제국(The Empire of Light, 1954년)을 만난다.

빛이 틈으로 흐르며 하늘로 향한다. 무너진 담장 너머에 핀 꽃을 잔인한 4월이 바라본다. 담장의 다양성과 함께 높이가 점차 낮아지며 4월이 피어난다. 뭔가(Something)를 향한 길에 봄꽃이 높아간다.
글·최양국
격파트너스 대표 겸 경제산업기업 연구 협동조합 이사장.
전통과 예술 바탕하에 점-선-면과 과거-현재-미래의 조합을 통한 가치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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