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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의 문화톡톡] SF영화는 어떻게 휴머니즘을 말하는가?
[김소영의 문화톡톡] SF영화는 어떻게 휴머니즘을 말하는가?
  • 김소영(문화평론가)
  • 승인 2025.04.14 15: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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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양>과 <프리 가이>, 두 비인간 존재의 기억과 사랑

<애프터 양>, 평범한 일상 속 비인간 존재 ‘양’ 

영화 <애프터 양(After Yang)>(2021)은 <콜럼버스(Columbus)>(2017)로 데뷔한 한국계 미국인 코고나다(kogonada) 감독의 SF영화이다. 비디오 에세이스트로 활동했던 학구적 향취가 미장센에 가득 배인 <애프터 양>은 평범한 가정의 일상 속 안드로이드의 존재론적 정체성을 다룬다. 감독의 국적 정체성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영화는 다양한 나라와 인종의 인물들을 한 가족의 구성원으로 소환한다. 흑인 부인과 백인 남편의 부부가 입양한 중국 태생의 미카와 중국 제조품 안드로이드를 남매로 설정한 것 이외에도, 영화 속 등장인물은 여러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출연한다. 그들이 살아가는 곳은 더 이상 태어난 국가나 타고난 인종이 동일 집단을 형성하는 요인이 될 수 없다. 무엇보다 비인간 존재인 안드로이드를 가족의 구성원으로 설정한 것은 1인 가족이나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신가족제도가 어떻게 확장될지 예견케 한다.  

 

영화 '애프터 양'의 스틸 컷 @ 네이버 영화 포토
영화 '애프터 양'의 스틸 컷 @ 네이버 영화 포토

 

<프리 가이>, 게임의 가상세계 속 비인간 존재 ‘가이’

영화 <프리 가이(Free Guy)>(2021)는 숀 레비(Shawn Levy) 감독의 작품으로, 오픈 월드 게임 ‘프리 시티’의 NPC로 등장하는 ‘가이’의 영웅적 서사를 그린다. 오픈 월드 게임은 플레이어 캐릭터의 자유도가 높은 게임이지만, 이러한 자유도가 NPC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Non Player Character’를 의미하는 NPC는 프로그래밍된 대로만 움직이며, 같은 대사와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플레이어 캐릭터의 역동적 수행을 돕는다. NPC는 인간 플레이어가 조작하는 플레이어 캐릭터와 달리, 게임 내 프로그래밍된 인공지능이 조작하는 캐릭터인 것이다. 가상세계인 게임 속 캐릭터의 이러한 대비 이외에, 영화 속 현실세계에도 대조적인 인물들이 등장한다. 거대 게임 회사인 ‘수나미(Soonami)’의 수장 앤트완은 자본주의가 낳은 전형적 물질만능주의자를 대변한다. 반면 이 게임의 원천 소스를 개발한 키스와 밀리는 그들이 꿈꾸는 새로운 세계를 게임의 가상공간을 빌려 설계하고, 인공지능의 자가-생성으로 진화하는 게임 캐릭터를 만든 순수하고 열정적인 청년들이다. 그들이 창조한 비인간 존재인 가이는 결국 NPC의 역할을 뛰어넘어, 밀리의 게임 속 플레이어 캐릭터를 돕기 위해 앤트완이 훔친 비밀의 근거를 찾아낸다.

 

영화 '프리 가이'의 스틸 컷 @ 네이버 영화 포토
영화 '프리 가이'의 스틸 컷 @ 네이버 영화 포토

 

자가-생성하는 비인간 존재

두 영화는 SF영화라는 동일 장르에도 불구하고, 일상적 현실공간과 게임의 가상공간이라는 상반된 배경을 보여주며 각각 예술성과 상업성을 성취한다. 그러나 이러한 대조적 요소들 가운데, 주인공인 안드로이드와 NPC의 공통점이 존재한다. 그것은 비인간 존재의 정체성을 다룬 많은 SF영화들이 주목했던 공통의 지점, 바로 ‘기억’이다. 기억은 인간만이 지닌 능력이다. 그럼에도 두 영화 역시 비인간 존재가 기억이라는 능력을 소유할 수 있다는 가정을 제시한다. 그들이 기억을 가진 유기체적 존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근거는 비인간 존재의 자가-생성(auto-generation) 능력이다. 

안드로이드 양은 가족 댄스 경연대회에서 고장이 나고, 이후 수리 과정에서 기억 장치가 발견된다. 그런데 그곳에는 알파, 베타, 감마라는 세 층위의 기억들이 저장되어 있다. 중요한 사실은 그 기억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안드로이드는 재활용될 때마다 새로운 존재로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기억을 저장하는 유기체적 존재인 것이다. 한편 NPC로 프로그래밍된 가이도 인공지능을 통해 자가-생성하고 있었으며, 그렇기에 재부팅된 후에도 이전의 기억을 다시 소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영화 '애프터 양'의 스틸 컷 @ 네이버 영화 포토
영화 '애프터 양'의 스틸 컷 @ 네이버 영화 포토

 

기억, 존재자를 존재하게 하는 것

기억이란 무엇인가? 기실 기억은 철학이나 심리학으로 접근하기에도 무척 난해한 주제이다. 흔히 기억은 과거에 관한 것으로 여기기 쉽다. 그러나 기억은 과거이자 현재이며, 현재이자 미래이기도 하다. 기억은 지속적 시간이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과거에 발생한 일이지만, 그 기억을 소환하는 시점은 현재이다. 그리고 그 현재에서 불러낸 과거의 기억은 다시 현재에서 미래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인간이 지금-여기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기억한다는 사실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애프터 양>과 <프리 가이>의 두 비인간 존재 역시 기억을 통해 유기체적 존재로 재존재화된다. 자가-생성하는 유기체적 존재로 매개하는 기억은 여기서 나아가 그들을 nobody에서 somebody로 만든다. 안드로이드 양이 미카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도구적 존재에서 그 가족을 사랑하는 기억을 간직한 인격적 존재가 된다면, NPC 가이는 연인을 향한 기억을 통해 플레이어 캐릭터들보다도 더 영웅적인 존재가 된다. 재활용되는 안드로이드 양과 재부팅된 NPC 가이는 프로그래밍된 코드를 스스로 진화시키며 고유한 기억을 간직한 존재자가 된 것이다. 

 

영화 '프리 가이'의 스틸 컷 @ 네이버 영화 포토
영화 '프리 가이'의 스틸 컷 @ 네이버 영화 포토

 

그리고 기억은 사랑이다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비인간 존재인 양과 가이의 기억들이 모두 인간을 향해 있다는 사실이다. 안드로이드 양은 에이미라는 안드로이드와 미카에 대한 애정을, NPC 가이는 플레이어인 밀리의 게임 캐릭터에 대한 사랑을 기억으로 간직한다. 결국 SF영화는 비인간 존재의 유기체적 능력을 통해 휴머니즘의 아름다움을 말한다. 사랑에 관한 기억을 통해 말이다. 사물이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사랑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공식이 성립한다면 그것은 인간에게도 동일할 터인데, 진정한 인간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 역시 사랑이 아니겠는가? “인간은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도록 운명 지어진 존재”라는 앙리 베르그손(Henri Bergson)의 그 따스한 천명을,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속 비인간 존재들이 우리 인간에게 말하는 것만 같다. ‘기억은 바로 사랑이라고’. 

 

 

글·김소영
문화평론가 겸 한국외국어대학교 학술연구교수. 한국영화학회 국제학술상임이사와 글로벌문화콘텐츠학회 학술이사를 역임하였으며, 현재 한국브레히트학회 공연이사 및 『영화연구』 편집위원과 『스토리콘텐츠』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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