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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드런스 트레인(The Children's Train, 2024) : 이념을 넘어선 선한 제안
칠드런스 트레인(The Children's Train, 2024) : 이념을 넘어선 선한 제안
  • 김 경(영화평론가)
  • 승인 2025.04.21 1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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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의 여성-모성이 제시하는 유사 가족

 

포스터
<칠드런스 트레인> 포스터

 

1940년대 2차대전 후 이탈리아는 참혹한 가난에 내몰렸다. 나폴리를 비롯한 남부는 더 극심했다. 공산당원들은 나폴리의 가난한 아이들을 기차에 태워 그나마 입에 풀칠하는 북부로 보내 위탁 양육했다. 이탈리아 근대사에서 여성 공산주의자 테레사 노체의 주도하에 1946년부터 1952년까지 약 10만 명의 어린이를 빈곤한 남부 지역에서 더욱 풍요로운 북부 지역으로 이주시킨 제도가 실제로 있었다. 이에 기반하여 나폴리 출신의 여성 작가, 비올라 아르도네 (Viola Ardone)가  <칠드런스 트레인(The Children's Train(2019)>이라는 소설을 썼고, 이탈리아 여성 감독 크리스티나 코멘치니 (Cristina Comencini)가 이를 영화로 만들었다. 이 영화를 만들어낸 주역은 이들 여성이다. 이들은 여성이라는 공통점 외에 모성이라는 토양을 공유한다. 이들은 전쟁으로 인한 가난 때문에 궁지에 몰린 아이들을 구하고자 하는 모성을 바탕으로 유사 가족을 제안하게 된 것이다. 글씨를 읽을 수 없지만 노래를 잘하는 생모와 노래하려 하지 않지만, 책을 읽어주는 위탁 엄마의 사랑은 아메리고(크리스티앙 세르본)의 정체성이 되고 성장의 토대가 된다.

 

기차를 타고 밀밭으로, 레드 콤플렉스를 넘어서

 

1946년, 나폴리의 일곱 살 소년 아메리고는 철없는 개구쟁이다. 폭격 중에도 숨어서 장난치며 어머니 안토니에타(세레나 로시)의 속을 태운다. 생존을 위해 사투하는 어머니와 순진한 아이의 철없는 모습은 한국전쟁 후 궁핍했던 시대를 살았던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피골이 상접한 맨발의 아메리고가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거리에서 빵을 슬쩍하거나 쥐에 흰색 페인트를 칠해 비싸게 팔려다 들통나는 장면, 폐허로 변한 무너진 건물들 사이로 넝마를 주우러 다니는 모습은 비토리오 데 시카의 <자전거 도둑>에 대한 오마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설픈 이 어린 도둑은 훈방조차 되지만 생계형 도둑인지라 마치 흑백 영화처럼 톤다운된 색감과 롱테이크로 전하는 전후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진정성이 여전히 울림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기차에 오른 불안한 아이들

 

이런 소년·소녀들을 위해 이탈리아 공산당은 북부 도시의 위탁부모에 보내려고 노력하지만공산당을 혐오하는 이웃들은 공산당이 속이는 것이라면서 그들은 아이들의 “손목을 자른다.” 혹은 “잡아먹는다”고 흉흉한 소문을 전한다. 이탈리아 아낙들은 이런 소문을 근거로 서로 비방하고 수녀들도(공산당에 대한 가톨릭의 입장을 대변하는 아이콘) 아이를 ‘팔지’ 말라며 잔소리를 보탠다. 공산당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이렇게 숱한 괴담을 만들어내고 기차가 출발하는 순간까지 아이들은 공포에 떨지만, 기차에서 따뜻한 옷을 지급받고, 북부 도시 모데나에 도착하여 공산당 위탁 가정에 배치된 후 친절한 위탁 가족과 더불어 안정을 찾는다. 모데나에 도착하자 모데나 공산당원들은 이런 플래카드를 걸며 환영한다. “남북 이탈리아는 하나다.”

아메리고는 데르나(바바라 론치)라는 젊은 여성 공산당원에게 맡겨진다. 데르나의 집에서 잠든 첫날 밤, 아메리고는 악몽에서 깨어나 데르나에 노래를 불러달라고 하지만 그녀는 거절한다. 아메리고는 할 수 없이 가까이 있던 두꺼운 책이라도 읽어 달라고 한다. 동화책이 아니라고 해도 막무가내. “후회할걸? “그녀가 들고 읽기 시작한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탈리아 노조의 짧은 역사…” 에 관한 딱딱한 이야기를 한참 읽는다. 이 장면은 마치 고다르의 <중국 여인>(1967)에서 마오쩌둥의 붉은 책을 읽어 나가는 것처럼 ‘의도’가 보인다. 아메리고는 다시 잠이 든다. 엄마 노릇에 서투른 공산당원 여성과 아메리고의 어색한 첫날은 그렇게 지나간다.

 다음 날 방문한 데르나 오빠 가족 역시 모두 공산당원이다. 아메리고가 입은 옷을 보고 자기 것을 입었다고 볼멘소리하는 루치오에게 아버지가 이렇게 따끔하게 혼낸다. “우리가 파시스트를 키우고 있구나.” “우리 집에는 네것 내것이 없다. 누구 것? 필요한 사람 것.” 학교에서도 마찬가지. 모든 공산당원 어린이 사이에서 ‘파시스트 같다’는 큰 질책이다.

 빨갱이와 파시스트라는 단어가 지금, 이곳 2025년 한국에서도 날 선 비늘처럼 펄떡이는 현실에서 1940년대 후반 이탈리아의 공산당을 바라보는 것은 낯설지 않다. 레드 콤플렉스를 비롯한 이데올로기보다 중요한 이슈는 궁핍하고 지난한 세월을 견뎌낼 수 있는 선한 의도와 정책이다. 이것이야말로 아이들의 인생을 바꾼다.

 

노란 밀밭과 반짝이는 구두 그리고 바이올린

데르나가 남부의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아메리고에게 보여준 밀밭, 밀이 노랗게 익을 때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해준 그 밀밭은 아메리고의 성장과 모데나에서 보낸 시간을 장면화한 것이다. 전쟁 후 상처를 안고 살던 데르나와 가난에 시달리던 천덕꾸러기 아메리고는 서로를 이해하고 의지하며 밀이 익는 시간을 함께 보낸다. 그리고 이 특별한 시간 동안 아메리고는 자신이 바이올린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행과 성장은 모든 성장 신화의 공식이다. 다시 귀환하여 어머니를 만난 아메리고를 기다리는 건 다시 가난한 현실이다. 아메리고는 바이올린이 용납되지 않는 현실, 바이올린이 아니라 망치를 들어야 하는 압박, 어머니와 데르나 사이에서 갈등하고 인생의 전환점이 될 결단을 내린다. 아메리고는 데르나에 돌아갔고, 바이올린을 전당포에 팔아버린 어머니를 용서하지 않는다. 그는 수십 년이 지나고서야 어머니의 진심을 알게 된다. “놓아주는 게 붙잡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일 수 있어.”

 

마에스트로 아메리고

 

1994년, 중년의 마에스트로 아메리고가 어머니의 부음을 듣고 어린 아메리고 시절로 플래시백 하는 도입부에 이미 우리가 잡을 수 있는 아리아드네의 실이 놓여있다. 공연을 위해 가지런히 놓여있는 반짝이는 구두,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을 연주하며 웅장한 극장의 무대에 선 마에스트로 아메리고. 구두는 맨발로 뛰어다니던 천둥벌거숭이 소년의 신발에 대한 열망과 욕망 그리고 성공을 압축하여 보여준다. “새 신발만 준다면 공산당원한테 갈래,”라며 기차를 탔던 남루한 말라깽이 아메리고의 용기도 구두 때문이었다. 그는 밥이 아니라 구두를 원했다. 가난했던 그가 망치가 아니라 바이올린을 들었던 것처럼. 영화 내내 잔잔히 울리는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은 <인생은 아름다워 >(1997) 로 아카데미 최우수 오리지널 드라마 음악상을 받았던 니콜라 피오바니 작품이다.

 

 

글·김 경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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