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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진의 문화톡톡]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학습극
[임형진의 문화톡톡]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학습극
  • 임형진 (문화평론가)
  • 승인 2025.04.28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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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어라, 세상은 그것을 필요로 한다."

 

 

연극 [동의에 관한 바덴의 학습극 – 무엇이 당신을 소진시키는가?] 작 브레히트/각색·연출 임형진, 2016), 대학로 소극장 혜화당 ©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
연극 [동의에 관한 바덴의 학습극 – 무엇이 당신을 소진시키는가?] 작 브레히트/각색·연출 임형진, 2016), 대학로 소극장 혜화당 ©최윤정/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

 

독일의 작가, 연출가, 연극이론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는 단순한 기존 연극의 형식을 넘어, 우리 일상에 깊은 통찰과 생각의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연극 모델을 구상하였다. 1920년대부터 1930년대 후반까지 브레히트가 집중한 이 실험적 형태의 연극은 바로 학습극(Lehrstück)이었다. 이 연극 방식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많은 사회적, 개인적 도전에 대응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로서 활용되고 있다. 학습극은 관객과 배우의 명확한 구분을 지양하고, 참여자의 능동적인 학습 과정을 통하여 우리 삶에 작동하는 수행적인 감각을 함께 공유하도록 안내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수동적 소비문화를 넘어서

우리는 매일 엄청난 양의 정보와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소셜 미디어부터 스트리밍 서비스까지, 그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관찰자의 위치에 머물게 된다. 학습극은 이러한 수동적 소비문화에 대한 강력한 대안을 제시한다. 학습극에서 모든 사람은 참여자가 되어 직접 경험을 통해 학습의 과정에 동참하게 된다. 이것은 단순히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체험하고 성찰하는 과정이 그 중심에 놓여 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가족 토론, 직장 회의, 또는 지역 사회 활동에서 적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정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모든 가족 구성원이 다양한 역할을 맡아보고 서로 다른 관점에서 상황을 이해해 보는 것은 더 나은 의사소통과 공감으로 이어지게 한다. 이러한 점에서 브레히트의 학습극은 인물 행동의 재현이 중요한 드라마의 구현보다는, 응용연극의 개념과 원리를 공유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분극화된 사회에서의 해법

동시대 우리는 종종 분극화되고 각자의 환경적 틀 속에 갇히는 경향이 있다. 브레히트의 학습극은 참여자들에게 다양한 역할과 관점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고정된 개별적 공간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게 한다. 브레히트가 1929년 바덴바덴 페스티벌에 선보인 <동의에 관한 바덴의 학습극>은 이러한 특징을 잘 담고 있는 대표적인 학습극 가운데 하나이다. 브레히트는 이 작품에서 비행기 추락 사고를 통해 인간의 도움, 폭력, 동의, 개인과 집단의 관계, 죽음 등의 주제를 탐구하는데, 특히 ‘동의’가 서로의 배려가 아닌 권력 관계가 작동하는 강압에 의해 이루어지는 과정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서로의 역할과 상황을 바꿔가며 재현하는 학습극의 작업 방식은 분극화된 사회에서 각자의 고정된 생각에서 벗어나 더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작용한다.

 

연극 [동의에 관한 바덴의 학습극 – 무엇이 당신을 소진시키는가?] 작 브레히트/각색·연출 임형진, 2016), 대학로 소극장 혜화당 ©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
연극 [동의에 관한 바덴의 학습극 – 무엇이 당신을 소진시키는가?] 작 브레히트/각색·연출 임형진, 2016), 대학로 소극장 혜화당 ©최윤정/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

 

공동체 구축과 집단적 문제 해결

브레히트의 학습극은 본질적으로 집단적이고 공동체적인 경험을 특징으로 한다. 참가자들은 개별적인 능력을 완성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모두와 함께 작업하면서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집단적 지성을 활용하여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따른다. 이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직면한 많은 문제에 실제로 대응할 수 있는 중요한 모델이 되기도 한다. 2022-24년에 뉴욕시의 아시아계 미국인 커뮤니티에서 브레히트의 학습극 형식을 활용하여 작업 계층이 직면한 문제들을 다루는 프로젝트가 진행된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러한 연극 방식은 단순히 사회 문제를 드라마로 재현하는 것을 넘어, 참가자들이 직접 경험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을 통해 성숙한 사회를 완성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세상을 바꾸어라, 세상은 그것을 필요로 한다."

브레히트의 학습극은 한 세기 전에 제시되었지만, 그 핵심 원리는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많은 도전에 대응하는 데 여전히 강력한 도구로서 자리잡고 있다. 능동적 참여와 학습, 비판적 사고, 관점의 전환, 공동체 구축, 자기성찰의 밀도와 그것의 가치 추구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브레히트가 그의 작품 <조처>(1930)에서 “세상을 바꾸어라, 세상은 그것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 것처럼, 우리는 학습극의 원리와 그 방식을 긍정적인 세상으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나 자신과 우리의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가능성은 단순히 극장의 무대에서만 목격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지금도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다.

 

 

·임형진
상명대학교 예술대학 연극전공 교수. 극단 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 대표 및 상임연출가. 독일문화와 예술, 수행성의 미학, 포스트드라마 연극에 대한 연구 및 예술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제5회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젊은비평가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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