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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정치적인 이유로 무너뜨리는 트럼프 정부
과학을 정치적인 이유로 무너뜨리는 트럼프 정부
  • 성일권(<르몽드 디플로마티크>한국어판 발행인)
  • 승인 2025.05.07 08: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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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행정부의 과학 탄압을 보며 한국 사회가 마주해야 할 질문

트럼프는 대통령에 복귀하자마자 과학에 대한 보복을 꾸준히 계속하고 있다. 연방 자금으로 운영되던 두 학술지 '환경건강 전망'(Environmental Health Perspectives)과 <건강과 오염 저널'(Journal of Health and Pollution)은 원고 접수를 중단했다. 공공 자금이 끊긴 탓이다. 이 두 저널은 기후변화, 유해 화학물질, 내분비계 교란물질 등 트럼프의 ‘정치적 금기어’에 맞서는 과학적 증거들을 실어왔던 곳이다. 이제 이들은 국가로부터 사실상 폐간을 통보받은 셈이다.

그뿐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충복인 에드워드 마틴 연방검사는 미국의 주요 학술지 편집장들에게 서한을 보내 “정치적으로 편향된 과학”을 출판했다며 조사에 응하라고 통보했다. <뉴잉글랜드의학저널>, <Chest, Obstetrics & Gynecology> 등 권위 있는 저널들이 이른바 ‘이념 검열’ 대상이 된 것이다. “백신, 트랜스젠더, 낙태, 기후변화”처럼 트럼프의 지지층이 거부감을 갖는 주제들은 학문적 정당성보다 정치적 위협으로 취급되고 있다. 표현과 학문의 자유가 공격받는 지금, 미국 과학계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저항을 시도 중이다.

앞서 지난 3월말, 1,900명이 넘는 과학자들이 ‘미국 국민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가 과학을 조직적으로 파괴하고 있으며,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고 밝혔다. 미국 국립과학·공학·의학 아카데미 소속의 이 과학자들은 단순한 정부 비판을 넘어, 과학이라는 인간 공동체의 가장 정직한 축이 무너지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고 외쳤다. 그들의 표현대로라면, 지금 미국의 과학은 "파괴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미국만의 것이 아니다. 미국의 학술지, 연구소, 대학은 전 세계 지식 생태계의 축이다. 미국의 공공 데이터는 각국 연구자들이 분석하고 인용하며 발전시켜온 공동 자산이다. 미국에서 과학이 침묵하면, 전 세계의 지식 생산 역시 숨이 막힌다. 그 속에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의 환경 정책, 백신 연구, 기후 시뮬레이션, 인공지능 개발까지—우리는 미국 과학계의 성과에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이제 그 과학이 정권의 정치적 입맛에 따라 침묵하고, 자금이 끊기고, 논문이 사라지고 있다. 이 파장은 조용하지만 거대하다. 한국은 이 위기를 어떻게 감지하고 있는가?

한국의 과학은 과연 안전한가? 이 땅의 과학자들은, 학술지 편집자들은, 연구기관들은 정부와 권력의 영향으로부터 정말 자유로운가? 혹시 이곳에서도 권력이 싫어하는 단어는 ‘금기’가 되고, 정책에 도움이 되지 않는 연구는 ‘불필요’로 낙인찍히고 있지는 않은가? 

과학은 권력의 시녀가 아니다. 과학은 정권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향해 봉사한다. 과학의 독립성과 투명성, 반증 가능성은 우리가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공동의 삶을 개선해나갈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그런데 그 조건이 미국에서부터 흔들리고 있다.

한국 사회가 이 위기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학문과 표현의 자유를 다시 점검해야 한다. 연구자의 자율성과 학술지의 독립성, 공공 연구 예산의 정치적 중립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또 미국의 과학계와 연대해 국제적인 학문 공동체를 지지하는 선언에 동참해야 한다. 침묵은 공범이다.

트럼프가 과학을 향해 내민 것은 단순한 행정 조치가 아니다. 그것은 '사실'에 대한 억압이며, '진실'에 대한 폭력이다. 우리는 그것을 더 이상 타국의 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과학이 침묵당하는 사회에서, 다음으로 침묵당할 것은 시민이며, 그다음은 민주주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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