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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클라베가 선택한 신임 교황 레오 14세- 첫 미국 출신의 교황이 등장하다
콘클라베가 선택한 신임 교황 레오 14세- 첫 미국 출신의 교황이 등장하다
  • 김진현 기자
  • 승인 2025.05.09 09: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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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14세가 8일(현지시간) 신임 교황으로 선출된 후 성 베드로 대성전 '강복의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내 손을 흔들고 있다.
레오 14세가 8일(현지시간) 신임 교황으로 선출된 후 성 베드로 대성전 '강복의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내 손을 흔들고 있다.

콘클라베(추기경 비밀회의)의 둘째날 회의가 끝난 8일 오후 6시, 바티칸의 하늘에 흰 연기가 피어오른 뒤 발코니에 나타난 인물은 놀랍게도 미국 시카고 태생의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69). 아메리카 대륙 출신으로는 두 번째, 미국 출신으로는 사상 최초의 교황, 그는 이제 전 세계 가톨릭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지난달 21일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이후 17일 만이었다.

“여러분 모두에게 평화가 있기를.”
레오 14세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자신을 알리며 던진 첫 한 마디였다.

이는 프란치스코와 베네딕토 16세의 선출 속도와 유사하다. 선출 직후, 시스티나 성당 내부에서는 다음과 같은 절차가 이어진다.

먼저 선임 추기경이 라틴어로 “교황으로 선출되신 것을 수락하십니까?”라고 묻는다. 수락의 응답이 이어지면 “어떤 이름으로 불리길 원하십니까?”라고 질문한다. 이후 교황청 전례 담당자가 입회한 가운데, 새로운 교황의 수락과 명칭이 공식 문서로 기록된다. 그 순간부터 모든 투표용지가 소각되며 하얀 연기가 피어나고, 새 교황은 ‘눈물의 방’이라 불리는 작은 방으로 들어가 첫 기도를 드린다. 그리고는, 전 세계를 향해 ‘우르비 에트 오르비(Urbi et Orbi)’ — 도시와 세계를 향한 첫 축복을 선포한다.

 

첫 미국출신 교황의 등장에 미국의 뜨거운 반응

역사적인 첫 미국 교황의 등장은 곧바로 각국 지도자들의 반응을 이끌어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오늘은 미국의 역사적인 날”이라 평가했고, 조지 W. 부시는 “전 세계 신자들에게 희망의 순간”이라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큰 영광”이라며, 교황과의 만남을 고대한다고 밝혔다.

반면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은 다른 시각에서 이 선출을 해석했다. 그는 “레오 14세는 단순한 미국인 그 이상”이며, “그의 조상은 라틴계이고, 그는 라틴아메리카의 삶을 살아왔다”고 강조했다. 특히 “미국으로부터 모욕받고 있는 라틴계 이민자들에게 희망의 지도자가 되어주길 바란다”고 말한 그의 언급은, 새로운 교황에게 기대하는 경계 없는 연대의 리더십을 잘 보여준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와 바티칸의 협력 관계가 더욱 공고해지길 기대한다”고 했고,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수백만 명의 신자들에게 역사적인 순간”이라며 교회의 보편성을 강조했다.

왜 ‘레오’인가 — 선택된 이름의 의미

그가 선택한 이름은 ‘레오 14세’. 이는 단순한 이름이 아니다. 19세기 말 재위했던 레오 13세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노동자의 교황, 현대 바티칸의 아버지라 불렸다. 당시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교회의 사회 참여를 이끌었고, “노동은 인간의 존엄”이라는 주장을 담은 회칙 『레룸 노바룸』을 발표했다. 프레보스트는 그런 교황의 길을 잇겠다는 의지를 담아 이 이름을 선택한 것이다.

이는 곧 가난한 이들과 함께 걷는 교회, 사회 정의와 생태 정의에 천착하는 교회, 대화와 연대의 교회를 표방하겠다는 선언으로 해석된다.

 

그가 가야 할 길 — 개혁의 연속과 새로운 책임

레오 14세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 노선을 충실히 계승할 인물로 평가받는다. 프란치스코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을 바탕으로 교회의 개방성과 실천성을 강조했다면, 레오 14세 역시 해방신학에서 비롯된 정제된 공동체 신학의 실천자다.

그는 온화하지만 단호한 리더로 알려져 있으며, 라틴아메리카의 빈민들과 함께해 온 삶을 바탕으로 이민자, 난민, 저소득층, 환경 문제에 깊은 감수성을 지닌 인물이다.

그러나 앞길은 쉽지 않다. 교회는 여전히 성직자 성학대 사건, 여성의 참여 문제, 성소수자에 대한 교리적 태도, 기후 위기와 전쟁에 대한 입장, 보수 세력과의 긴장 등 복잡한 내부 과제를 안고 있다.
프란치스코는 이러한 문제를 피하지 않았지만, 그가 걸어온 길은 교황청 내부에서조차 ‘논쟁의 여정’이었다. 레오 14세는 이 유산을 이어받아 더 넓은 공감과 실천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

 

그리고, 아시아 — 왜 한국인은 교황이 될 수 없었는가

한편, 이번 콘클라베를 주목하던 한국과 아시아계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서는 아쉬움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번 콘클라베에는 총 133명의 추기경이 참여했다. 비교적 빠른 결정이었다. 둘째 날 저녁, 과반수의 지지를 얻은 프레보스트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전 세계가 숨죽여 지켜보던 시스티나 성당 굴뚝 위로, 흰 연기가 다시금 피어올랐다. 대다수의 콘클라베가 그랬듯, 이번에도 둘째 날 결론이 났다. 정해진 각본처럼 흘러간 전통 속에서, 그러나 결과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콘클라베 직전, 전 세계의 베팅 시장과 전문가들은 차기 교황의 윤곽을 이렇게 그리고 있었다:  피에르트로 파올린 추기경(이탈리아) – 28%,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필리핀)– 20%, 블레이즈 주피치 추기경(미국, 이탈리아계– 10%, 피에르바티스타 피바빌라 추기경(이탈리아) – 9%. 상위 4명 중 3명이 이탈리아계라는 점에서, 이번에는 아시아계 교황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희망 섞인 예측이 나왔다. 특히 타글레 추기경은 최초의 아시아 출신 교황 가능성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완전히 달랐다. 사전 예측에 거의 오르지 않았던 인물,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미국 시카고 출신의 아우구스티누스회 수도자이자 페루 시민권자, 라틴아메리카 선교 경험자, 행정가, 그리고 평생 라틴어권 남반구에서 살아온 인물이 제267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프란치스코는 생전 한국을 세 차례 이상 언급하며 깊은 애정을 보였고, 2014년 방한 당시에는 “한국은 아시아 교회의 미래”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 가톨릭은 아시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교회 중 하나이며, 민주주의 투쟁의 한복판에서 교회가 사회적 역할을 해온 드문 사례로서 세계 주교단에서도 주목받아 왔다.

이번 콘클라베에서는 한국, 일본, 필리핀, 인도 출신의 유력한 추기경들도 주목받았지만, 결국 선출의 무게는 남미와 북미를 잇는 가교적 인물에게로 돌아갔다.
이는 교회의 지정학적 중심이 여전히 유럽과 라틴아메리카, 북미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드러내는 일면이기도 하다.

아시아계 교황의 탄생은 이번에도 ‘먼 미래’로 미뤄졌다. 세계 인구의 절반이 사는 아시아에서, 교회는 여전히 ‘선교의 대상’으로만 여겨지는가? 한국 천주교회의 자생적 역사, 박해의 순교 전통, 사회 참여의 모델성은 충분히 자격이 있다.
하지만 교황직은 단순한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와 전통, 관료 조직과 세력 균형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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