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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주목한 한 그릇의 밥상, ‘밥퍼’는 왜 나눔의 성지가 되었나
세계가 주목한 한 그릇의 밥상, ‘밥퍼’는 왜 나눔의 성지가 되었나
  • 최지연
  • 승인 2025.05.14 16: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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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 무료급식 실천, 50개국 자원봉사자들의 발걸음… “가난한 이웃 곁을 지킨 사랑의 공동체”

서울 청량리, 매일 아침 줄을 서는 이들이 있다. 허기진 이웃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내어주는 ‘밥퍼나눔운동본부’. 시작은 단출했지만, 37년이 흐른 지금, 이곳은 국경을 넘어 ‘K-나눔’을 경험하러 오는 세계인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연대의 공간이 되었다.

시간이 쌓이고, 실천이 단단해지며, 밥퍼는 오늘날 금속처럼 단단한 연대의 현장이자 현대 한국 사회가 만들어낸 가장 지속 가능한 돌봄 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다.

1988년, 최일도 목사는 당시 거리에서 쓰러진 한 노인의 “밥 좀 줘”라는 말에 응답하며 노숙인들을 위한 급식운동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30여 년. ‘밥퍼’는 더 이상 한국만의 현장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다일공동체는 캄보디아, 필리핀, 네팔, 베트남, 탄자니아, 우간다 등 11개국에서 굶주린 이들을 위해 밥을 짓고, 희망을 전하고 있다.

그 실천의 범위는 단순한 급식에서 의료, 교육, 주거, 재난 대응까지 확장되어 있으며, 이른바 종합 복지공동체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밥퍼 측에 따르면 지금까지 50여 개국에서 온 외국인들이 청량리 밥퍼의 봉사에 참여했다. 특히 최근 2~3년 사이에는 외국인 여행객, 교환학생, 국제학교 학생들의 참여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밥퍼의 무료급식 현장은 단순한 봉사 체험을 넘어, 한국 사회의 나눔 정신을 체감할 수 있는 ‘소셜 필드트립’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올해 여름에는 홍콩 ECF Saint Too Canaan College의 교사와 학생 44명이 함께 봉사에 나섰고, 미국 텍사스대학교에서 온 교환학생 25명은 직접 밥을 나르며 식판을 정리했다. 홍콩 성시화대학교는 사회공헌 수업의 일환으로 34명이 방문하여 100만 원을 기부했다. ‘봉사관광’을 연계한 여행사 ‘플래닛 주민센터’와 함께 온 유럽·아시아 지역의 매니저는 봉사 후 쌀 5포대를 기부하며 한국의 나눔문화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전했다.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외국인 봉사자들도 많다. 러시아 출신의 정치 난민이자 피아니스트였던 스타니 형제님(44세)은 “한국에서 받은 환대를 나눔으로 보답하고 싶다”며 한 달에 한 번 밥퍼를 찾는다. 영국 출신의 자원봉사자 폴라(62세)는 5주째 아침마다 청량리로 출근해 봉사 중이다. 밥퍼 관계자는 “그들의 헌신은 한국 사회를 더욱 따뜻하게 만들고 있으며, 어르신들과의 정겨운 교감도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현장은 한국 사회의 복지 모델이 단순히 제도와 예산에 국한되지 않고, 공감과 연대의 에너지로 구현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밥퍼는 제도 바깥의 공간에서 이루어진 시민사회의 자발적 돌봄이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그 현대적 가능성을 증명하고 있다.

이곳에서 쌓인 시간은 결국 하나의 ‘석(石)’이 되어 청량리 한복판에 뿌리내렸고, 외국인 자원봉사자들은 이곳을 “단지 밥을 나누는 곳이 아니라, 사람의 꿈(夢)이 태어나는 자리”라고 표현한다. 밥퍼는 도시 속 거대한 건물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겐 매일을 버티게 해주는 작지만 묵직한 몽(夢)의 장소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밥퍼는 현재 운영 공간 문제로 동대문구청과 행정 소송 중이다. 1심에서는 밥퍼 측이 승소했지만, 구청이 항소하면서 오는 2025년 5월 15일(목) 오후 3시, 서울고등법원 제1별관 311호에서 항소심 첫 변론기일이 열린다. 이번 소송은 비영리 급식시설의 존재 이유와 공공성을 묻는 상징적 사건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법무법인(유한) 태평양은 사회공헌 차원에서 이 사건의 법률 지원을 맡아 무료로 대응 중이다.

다일공동체의 창립자이자 밥퍼 설립자인 최일도 목사는 최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가는 복지의 손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시민의 자발적 연대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인정해야 합니다. 밥퍼는 밥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존재를 존중하는 일입니다.”

최 목사는 이어 “37년간 청량리를 지키며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해온 밥퍼가 이번 항소심에서도 승소해, 지역사회의 자랑이자 세계적인 나눔의 상징으로 그 사명을 계속 이어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편, 다일공동체의 ‘다일(多一)’은 “한 사람이 한 사람을 더 사랑하면 세상이 바뀐다”는 믿음을 담고 있다. '밥퍼'는 그 철학의 가장 구체적인 실천이자, 오늘날 세계인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행동하는 사랑의 종합 실천 모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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