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레오폴드-로엡 사건’으로 알려진 이 사건에서, 명문대생 네이던 레오폴드와 리처드 로엡은 뛰어난 지능을 입증하려고 알고 있던 청년을 납치, 살해했다. 동성애 관계였던 두 사람은 ‘니체의 초인사상’에 집착하며 완전범죄를 꿈꿨으나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른 끝에 체포되어 종신형을 받았다. 악명높은 이 사건은 연극으로 제작되었는데, 그것을 관람한 앨프리드 히치콕의 마음에 들어 영화로도 만들어지게 되었다. <로프>(1948)는 그 결과물이다.

영화는 브랜든과 필립이 친구인 데이비드 켄틀리를 목 졸라 살해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들의 범죄 이유는 레오폴드와 로엡처럼, 자신들이 우월한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켄틀리의 부모와 연인 그리고 지인들을 초대해 파티를 열기로 한 공간인 거실에서 파티가 열리기 직전에 살인을 저질렀다. 그런 다음 거실에 있는 서랍장에 시체를 넣고 그 위에는 커다란 촛대 두 개와 파티를 위한 음식을 가져다 놓는다.

그들은 왜 이렇게까지 한 것일까? 두 사람 가운데 범행을 주도한 인물은 브랜든이다. 브랜든은 다소 들뜬 마음으로 파티에 도착한 지인들을 맞는다. 그들 가운데 켄틀리의 부모와 연인은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켄틀리가 나타나지 않자 의아해한다. 잔인하기 짝이 없는 브랜든은 켄틀리의 시체가 있는 공간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켄틀리를 애타게 기다리는 이들에게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해가며 자신의 우월감을 한껏 만끽한다. 마음속으로는 그들을 열등한 존재로 비하하고 조롱하며 즐거워한다. 파티 참석자들 가운데 브랜든의 최대 관심 인물은 고등학교 때 니체의 초인사상을 가르쳐준 선생 루퍼트 캐들(제임스 스튜어트)이다. 브랜든은 영민한 루퍼트가 살인을 눈치채고 전모를 알아낼 수 있을지, 내기하는 심정으로 루퍼트를 주시한다.

브랜든과 필립의 행동거지에서 뭔가 이상한 점을 감지한 루퍼트는 결국 켄틀리의 시체까지 찾아내게 된다. 궁지에 몰린 브랜든은 “루퍼트가 선과 악, 옳음과 그름에 대한 윤리성은 우수한 지식인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가르쳤다며,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한다. 이러한 브랜든의 상태는 병적 나르시시즘이라고 할 수 있다. 근거 없이 자신은 옳다, 선하다, 정당하다는 의식에 사로잡힌 브랜든은 자신을 과신하고 과대 포장한 나머지 원하는 건 모두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열등한 인간들은 쓸모없다”는 브랜든의 주장은 사실 니체의 초인사상이 아니라 파시즘에 가깝다. 2차 대전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시기에 제작된 이 영화에서 히치콕은 브랜든을 통해 히틀러와 나치의 사악함을 환기하며 비판을 가한다.

미국 영화의 목록에서 브랜든 같은 극단적인 나르시시스트이자 망상증 환자의 사례로는 데이비드 핀처가 연출한 <세븐>(1995)의 존 도우를 들 수 있다. 존 도우는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타락한 세상을 정화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았다고 주장하며 연쇄살인을 저지른다. 그는 교만, 탐욕, 분노, 시기, 음욕, 폭식, 나태 등 기독교에서 규정한 ‘7가지 죄악’을 저지른 자들을 제거했기 때문에 죄책감은커녕 자신을 희생적인 순교자라고 믿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로프>에 대한 평가는 이 영화에서 다루는 주제보다 히치콕이 구사한 연출 스타일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영화에서 사실주의 이론을 주장한 앙드레 바쟁은 시간의 연속성과 사실적 재현으로서 롱테이크 스타일을 매우 선호했다. 히치콕은 이에 대한 응답처럼 <로프> 전체를 롱테이크로 연출하기로 결심했는데, 목적은 롱테이크를 구사하든 편집을 사용하든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었다. 히치콕은 카메라와 인물들을 이리저리 이동하면서, 때로는 바퀴가 달린 가구를 옮겨가면서, 롱 쇼트에서 클로즈업까지 편집을 한 것처럼 쇼트의 크기를 자유롭게 연출했다. 그 결과 11개의 쇼트로 80분 정도 길이의 영화를 완성하게 되었다. 지금 같은 디지털 시대였다면 아마도 히치콕은 영화 <1917>(2019)에서처럼 ‘원 컨티뉴어스 쇼트’ 촬영으로 영화 전체를 하나의 쇼트로 연출했을 것이다. 그러나 <로프>를 찍을 당시에는 한 번에 찍을 수 있는 필름 길이의 한계로 인해 11개의 쇼트로 연출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히치콕은 장면 전환을 할 때 커트를 알아채지 못하게 하는 수법을 통해 영화 전체를 하나의 쇼트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이는 ‘로프’라는 영화제목과 부합하는 것으로, 그것은 브랜든과 필립이 켄틀리를 목 졸라 죽이는데 사용한 도구이기도 하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카메라는 건물 밖에서 이동해 커튼이 쳐진 창문 앞에서 멈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켄틀리의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다음 쇼트에서 카메라는 살인사건의 현장으로 이동한다. 이후 영화가 끝날 때까지 카메라는 줄곧 실내 공간에 머문다. 보통 감독이었다면, 한 편의 영화를 한 공간에서 찍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히치콕의 연출의 훌륭함이란!
글·김경욱
영화평론가. 세종대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면서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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