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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문화톡톡] <장 보러 가는 날> ― 빡빡한 서울과 헐벗은 퇴촌의 여정
[서곡숙의 문화톡톡] <장 보러 가는 날> ― 빡빡한 서울과 헐벗은 퇴촌의 여정
  • 서곡숙(문화평론가)
  • 승인 2025.05.19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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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 보러 가는 날>과 서울-퇴촌의 여정
 

<장 보러 가는 날>(원태웅, 2011)은 서울집과 퇴촌집 사이의 여정을 그려낸다. 아들 원태웅은 아버지 원성희와 어머니 윤태령이 한 달에 두 번 가게에서 사용할 식자재를 구입하기 위해서 퇴촌집에서 서울집으로 올라오고, 3년 전 중고자동차를 구입한 후 부모와 장을 보러 다니게 되면서 서울집과 퇴촌집을 오고가는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이 영화는 서울집과 퇴촌집을 중심으로 세 가지 주제, 즉 장보기의 여정, 서울과 퇴촌의 대비, 가족의 일상을 그려낸다.
 


2. 장보기의 여정: 대형마트와 재래시장의 반복


<장 보러 가는 날>에서 장보기는 대형마트와 재래시장의 반복을 그려낸다. 부모가 퇴촌에 연 가게 때문에 물건을 사러 서울에 와서 대형마트와 재래시장에 가서 장을 본다. 장보기 물품의 대부분은 채소인데, 시골 퇴촌이 채소로 풍부한데 왜 채소를 많이 구매하는가? 대형마트와 재래시장을 번갈아가며 계속 보여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시골이지만 모든 채소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인가? 영화는 대형마트와 재래시장을 모두 돌아다니며 물건을 구매하는 부모를 보여주며, 대형마트와 재래시장 혹은 대형마트의 주차장과 재래시장의 주차장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이러한 교차편집은 대형마트와 재래시장을 대비시키며 장보기의 힘겨운 과정을 표현한다. 대형마트의 깔끔한 진열대와 넓은 주차장은 재래시장의 노점상과 좁은 주차빌딩과 확연하게 대비된다.

장 보러 가는 여정에 가족의 옷차림은 부조화를 이룬다. 대형마트와 재래시장에 갈 때 어머니와 아들은 캐주얼한 복장인 반면, 아버지는 양복을 입어 이질적인 느낌을 준다. 장 보러 가는데 왜 양복을 입는 것인가? 어머니와 아들은 ‘장보기’라는 행위에 집중하는 반면, 아버지는 장보기의 ‘여정’이라는 행위에 집중한 것이 아닐까? 아버지에게 장 보러 가는 여정은 퇴촌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퇴촌으로 가는 여정 혹은 나들이라는 점에서 격식을 차린 양복을 입는 것이 아닐까? 여기에서 더 흥미로운 것은 영화 내내 가족의 옷차림이 부조화를 이루지만 거기에 대해서 잔소리하는 장면이 없다는 점이다. 서로 이질적인 개성을 그대로 수용하고 받아주는 느낌이 색다르다. 대화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불협화음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 독특하다.

이 영화에서 전반부는 대형마트와 재래시장을 오고가며 장을 보는 구체적인 행위와 국도의 여정을 상세하게 그려내고, 중반부는 이러한 장보기 행위를 오버랩 등으로 빨리 처리하며 반복을 강조하며, 후반부는 부모가 퇴촌 가게의 문을 닫게 되면서 장 보러 가는 길이 바다 보러 가는 길로 바뀐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바다 보러 가는 길도 장 보러 가는 길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캐주얼 복장을 입은 모자와 양복을 입은 아버지, 대부분의 침묵과 대화의 부재, 국도길과 조는 부모 등. 전반부, 중반부, 후반부로 이어지면서 장보기의 힘겨움, 반복, 사라짐을 차례대로 그려낸다.

<장 보러 가는 날>에서 장보기의 여정은 핸드헬드, 팬, 오버랩, 교차편집, 정지화면을 통해 피곤함, 여유로움, 반복, 대비, 여행을 표현한다. 대형마트와 재래시장에서 장 보는 장면은 핸드헬드의 흔들리는 영상으로 반복되는 장보기의 피곤한 행위를 표현한다. 재래시장에서 비둘기가 돌아다니는 장면은 비둘기를 따라 움직이는 팬으로 피곤한 장보기 속의 여유로움을 그려낸다. 차에 가득 실린 장보기 물건 장면은 오버랩으로 다른 장보기 물건으로 바뀌면서 장보기의 반복되는 여정으로 표현한다. 국도와 세차장 장면은 교차편집으로 비가 내리는 국도를 계속 달리는 자동차와 물로 검은 때가 씻겨 내려가는 세차장의 자동차를 번갈아 보여주면서, 자동차-물의 이미지 반복과 국도/세차장 이미지 대조로 장 보기의 긴 여정을 그려낸다.

 

3. 서울과 퇴촌의 대비: 빡빡한 도시와 헐벗은 시골
 

<장 보러 가는 날>은 서울과 퇴촌의 대비로 빡빡한 도시와 헐벗은 시골의 대비를 그려낸다. 이 영화는 왜 서울의 연립주택과 상가가 빽빽하게 밀집된 장면을 계속 보여주는가?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담아내는 빡빡한 도시풍경이 지나칠 정도로 반복되면서 그 이유가 궁금해질 때쯤 퇴촌이 나타나면서 감독의 의도가 이해된다.

전반부는 연립주택의 옥상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도시풍경과 옥상 지붕 위로 보이는 하늘을 보여주면서 빈틈없이 채워진 주택과 상가를 그려낸다. 중반부는 주거공간과 업무공간으로 빡빡하게 채워져 숨 쉴 틈이 없는 서울을 보여준 후, 시골의 고요함과 개발 현장으로 벌거벗은 민둥산이 있는 퇴촌을 보여주면서 빡빡한 도시와 헐벗은 시골을 대비시킨다. 후반부는 부모가 사는 퇴촌집을 중심으로 조용한 퇴촌 정경, 건물과 건물 사이에 흘러가는 밤하늘을 그려낸다. 전반부에서 서울의 도시풍경을 계속 보여주는 이유는 중반부에서 퇴촌의 시골풍경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오면서 갑자기 이해된다. 전반부의 빡빡한 도시풍경과 중반부의 조용한 시골풍경 혹은 헐벗은 민둥산이 극단적으로 대비를 이룬다. 서울에서 퇴촌으로 오면서 숨이 트이는 기분을 느끼게 되다가 갑자기 헐벗은 민둥산을 보게 될 때 서글픔과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특이한 것은 흘러가는 구름과 어슬렁거리는 동물이 계속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서울의 빼곡한 연립 사이로 흘러가는 구름과 퇴촌 마을의 주거공간 사이로 흘러가는 구름은 유사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카메라는 서울의 재래시장을 돌아다니는 비둘기, 퇴촌의 동네를 돌아다니는 강아지, 담벼락 위의 고양이를 따라다니면서 인간과 공존하는 동물을 담아낸다. 또 특이한 점은 서울, 퇴촌과는 다른 제3의 공간을 통해 액자구성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후반부에서 영화 속 영화가 펼쳐지면서, 해변가의 인물, 모습을 드러내는 달과 풀벌레 소리, 거리의 풍경, 주차장이 되어버린 연립주택 등을 보여주면서 또 다른 공간을 그려낸다.

<장 보러 가는 날>에서 서울/퇴촌의 스타일은 줌인, 틸트, 팬, 패스트모션, 시선, 달리숏, 고정된 카메라, 롱숏과 익스트림롱숏, 핸드헬드 등 다양한 카메라 기법으로 도시의 빡빡한 정경과 시골의 헐벗은 정경을 대비시킨다. 서울은 옥상 지붕 위로 보이는 하늘의 패스트모션 장면, 장 보러 떠나는 가족을 베란다 그물망의 시선 장면, 서울의 거리를 가로지르는 달리숏 장면, 담 위의 고양이를 지켜보는 고정된 카메라, 서울집의 흐릿한 풍경을 담아내는 포커스 아웃 등을 통해서 빡빡한 도시의 정경을 표현한다. 퇴촌은 건물과 건물 사이를 오가며 장 본 물건을 나르는 모습을 지켜보는 고정된 시선, 조용한 시골길을 걸어가는 아들의 롱숏에서 익스트림롱숏으로의 변화, 파헤쳐진 민둥산을 훑는 카메라, 시골 동네 강아지를 따라다니는 핸드헬드 카메라, 건물 사이를 지나가는 밤하늘의 구름의 패스트모션 등을 통해서 조용한 시골과 헐벗은 민둥산의 정경을 표현한다.

 

4. 가족의 일상: 대화의 부재와 익숙한 편안함
 

<장 보러 가는 날>은 가족의 평범한 일상을 통해 대화의 부재와 묘한 어울림을 그려낸다. 전반부는 요리하는 어머니, 밥을 먹는 가족, TV를 보는 가족, 마늘을 까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여준다. 중반부는 TV를 보는 아버지와 밤을 까먹는 어머니, 영어교실에서 영어를 배우는 어머니, 컵 안에 든 틀니, 낮잠을 자는 가족을 보여준다. 후반부는 밥을 먹는 가족, TV를 보는 가족, 작별 인사를 하는 가족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계속 반복되는 것은 밥을 먹는 장면과 TV를 보는 장면이다.

영화는 가족의 평범한 일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이때 특이한 것은 가족이 대화를 거의 나누지 않는 것이다. 영화 전체적으로 대사는 몇 마디 나오지 않는다. 가족은 대화를 거의 나누지 않지만, 함께 밥을 먹고 함께 TV를 보고 함께 낮잠을 자는 등 행위를 함께 한다. 그래서 대화의 부재가 처음에는 어색하고 불편한 가족으로 느껴지다가 나중에는 서로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가족으로 느껴지게 된다.

<장 보러 가는 날>에서 가족의 일상은 클로즈업, 미장센, 풀숏과 바스트숏, 영상과 사운드의 대비로 대화의 부재와 익숙한 친밀성을 표현한다. 서울집 장면은 집 안의 사물들과 장식품에 대한 클로즈업으로 표현내고, 가족이 밥 먹는 모습은 왼쪽 화면의 밥 먹는 가족과 오른쪽 화면의 물건이 빼곡한 방을 함께 보여주는 미장센이 나타나고, TV를 보는 장면은 TV를 보는 아버지 옆에서 밤을 까먹는 어머니를 풀숏에서 바스트숏으로 카메라가 다가가고, 영어 공부 장면은 어머니의 손글씨 공책과 수강생들의 영어를 읽는 목소리를 결합시킨다.

 

5. 반복되는 이미지와 공간의 대비
 

<장 보러 가는 날>은 수미상관식의 구성을 보여준다. 전반부는 ‘부모님은 한 달에 두 번에 가게에서 사용할 식자재를 구입하기 위해 퇴촌에서 서울집으로 올라오신다. 3년 전 중고 자동차를 구입한 후로 나는 부모님과 함께 장을 보러 다니게 되었고, 덕분에서 서울에서 퇴촌으로 퇴촌에서 서울로의 반복되어 쌓여가는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로 시작한다. 후반부는 ‘장 보러 다니는 일이 익숙할 때쯤 가게가 문을 닫았다. 퇴촌에 가거나 트렁크 가득 식자재를 싣거나 정오의 노곤함과 헐벗은 산. 돌아오는 길목의 헛헛함. 그 익숙함은 이미 몸에 배어 뱉어낼 수 없었다. 새겨지는 것이 이것뿐만 일까. 원하든 원치 않든 그저 새겨질 뿐이다. 곧지 않은 타인의 가간사 아랑곳 없이 흘러간다.’로 마무리한다.

전반부는 서울에서 퇴촌으로, 퇴촌에서 서울로의 반복되어 쌓여가는 여행의 피곤함이 느껴지는 반면, 후반부는 서울과 퇴촌을 오고가는 장 보기의 여정이 익숙할 때쯤 가게가 문을 닫아 그 익숙함이 중단되었을 때의 아쉬움을 느끼게 만든다. 이 영화는 반복에 의한 이미지로 가족의 장 보기, 서울집과 퇴촌집의 대비, 가족의 평범한 일상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장 보러 가는 날>은 대형마트와 재래시장의 대비, 빡빡한 도시와 헐벗은 시골의 대비, 대화의 부재와 익숙한 친밀성의 대비 등 공간과 인물을 대조적으로 그려낸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장 보러 가는 날> 포토

 

글·서곡숙
문화평론가. 현재 청주대 영화영상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한국영화교육학회 부회장, 한국영화학회 학문후속세대양성위원회 위원장, 계간지 『크리티크 M』 편집위원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부천국제영화제, 대종상 등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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