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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미의 문화톡톡] 책 읽는 사람에게만 주는 자격
[장윤미의 문화톡톡] 책 읽는 사람에게만 주는 자격
  • 장윤미(문화평론가)
  • 승인 2025.05.19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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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 읽으면 뭐, 돼?


독서 인구 비율은 매해 낮아지고 있고, 그 수치는 형편없을 만큼 초라하다. 미디어와 콘텐츠 가 넘치는 사회에서 당연한 거 아니냐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안타까운 마음은 숨길 수가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독서 형태나 방식 또한 다양해지면서 전자책이나 오디오북을 이용하는 이용자 증가로 인해 독서 인구가 겨우 유지되고 있다는 건 다행스럽긴 하지만, 전체 이용자 수는 여전히 소수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씁쓸하기는 마찬가지다.

책을 읽지 않는 이유를 대라면 너무 많아 굳이 나열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하나를 꼽자면 자발적 또는 비자발적으로 ‘단절’된 독서 습관을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 ‘단절’은 개인적인 선택에서 비롯된 것도 있지만, 단절하도록 만든 사회적인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에서 곰곰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습관이 환경과 반복의 결과물이라면, 독서 습관은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과 꾸준히 읽는 행위가 반복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봤을 때 독서는 일부러 시간을 내서 해야 하는 다소 부담되는 것, 아니면 실용을 목적으로 소비하는 행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나마도 내용이 어렵거나 페이지가 많아 두꺼운 책은 제외되는 1순위다. 어렵고 두껍고 지루한 책에 시간과 노력을 들일 여유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나 숏폼 릴스 같은 짧은 영상, 빨리 감기, 오 분 줄거리 요약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책은 그저 따분하고 어려운 문자모음집에 다름 아니다. 읽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가 이해하려면 뇌를 쉬지 않고 움직여야 하는 것도 그들에겐 굉장히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다. 이들에게 책 읽기는 여러모로 비효율적인 행위다. 책 한 권 읽을 시간이면 수십 개의 영상을 볼 수 있고 거기서 얻는 정보나 지식이 훨씬 많으니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시각적 미디어로 정보를 습득하는 아이들은 그 속력과 속도 때문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거나 비판하지 못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럴 틈이 없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왜 선택했는지, 어떤 느낌을 얻었는지 타인에게 설득력 있게 표현하지 못한다. 오로지 무비판적으로 지식을 습득하고, 수동적으로 반응한다. 하지만 불편하지 않다. 판단하지 않아도 되니까, 설명하지 않아도 되니까. 당연히 정보에 대한 책임에서도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비롯된다.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일에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이 논리는 책 읽기가 무용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대는 이유이자 변명이다. 그렇다면 책 읽기를 두고 아이들에게 자격과 권위를 준다면 어떨까. 수많은 책 사이에서 가치 있는 책을 선택할 자격을 부여하고 그 행위에 지위를 부여하는 환경이 조성되면,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 내가 선택한 책이 타인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이라는 결과물에 도달하게 되면 아이들에게 책 읽기의 의미와 가치는 완전히 달라지지 않을까. 이것을 증명하는 책이 여기 있다.

2. 책을 읽으면 생기는 ‘자격’

쓰지 유미의 아이들은 어떻게 베스트 셀러를 만들었을까는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공쿠르상의 권위에 비견되는 ‘고등학생 공쿠르상’의 탄생 배경과 그 의미를 설명한 책이다. 독서 인구가 비교적 풍부한 프랑스에서 권위 있는 문학상이 존재한다는 건 크게 놀랍지 않다. 하지만 그 권위 있는 문학상의 심사 주체가 문학 전문가나 관계자가 아닌 평범한 고등학생들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당황스러움을 좀체 감추기 어렵지 싶다.

쓰지 유미, [아이들은 어떻게 베스트세럴를 만들었을까], 유유 출판사.
쓰지 유미, 아이들은 어떻게 베스트셀러를 만들었을까, 유유 출판사

대부분 상이 그렇지만 특히나 문학상의 경우 그것을 부여하는 주체의 지위에 좌우된다. 누가 그 상을 주느냐에 따라 상의 가치은 물론이고 그것을 받는 작가의 명예 역시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고등학생들이 심사하여 수여하는 ‘고등학생 공쿠르상’은 사회적으로 별 영향력이 없을 것 같지만, 큰 오해다. 이 상에 선정되기만 하면 책의 판매량 급상승은 기본이고 TV, 신문, 잡지 등 각종 매체의 주목을 받으며 상업적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기 때문이다. 즉, 고등학생들이 심사․수여하는 ‘고등학생 공쿠르상’의 지위는 공쿠르 아카데미에서 심사․수여하는 ‘공쿠르상’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심사위원의 위치에 선 아이들의 태도는 제법 진지하다. 지극히 사적인 독자 입장에서 책을 읽을 때와 비평하고 평가해야 하는 심사위원 입장에서 책을 읽을 때 마음가짐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로 인한 책임은 오롯이 나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심사위원의 자격을 부여받은 아이들은 능동적인 태도로, 더 날카로운 관점으로 책을 읽으려고 노력한다. 게다가 자신의 평가와 선택이 좋든 나쁘든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신중해야 하는 건 말할 것도 없다.

또 하나 흥미로운 지점은 고등학생 심사위원들의 ‘스펙’이다. 문학에 문외한이 이과 전공생, 기술을 배우는 학생, 프랑스 문화에 적응 중이거나 프랑스어에 능통하지 못한 이민자들로, 말 그대로 ‘랜덤 스펙’ 소유자가 대부분이다. 보통의 문학상 심사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스펙이지만 ‘고등학생 공쿠르상’에는 신선한 동시에 지극히 자연스러운 심사 풍경이다. 좋은 작품을 선정하는 데 이들의 랜덤한 스펙은 방해물이 아니라 오히려 다양하고 풍부한 관점을 제공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다양한 시선을 통한 인간의 보편성 탐구가 문학의 존재 이유라고 했을 때 이들의 스펙은 아주 적절한 조건인 셈이다.

고등학생 심사위원들은 일 년에 총 열세 권의 책을 읽고 국어 수업 시간을 이용해 심사 기준을 정하고, 그에 따라 토론하고 비평하며 그 결과물을 글로 남긴다. 그 과정에서 서로의 낯선 경험을 공유하고 관점을 공감하며 조건을 초월하는 인간의 보편성을 발견한다. 이과생이라 문학적 소양이 없을 것이라고, 이민자라 언어 표현 능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오해고 유감이다. 심사위원들의 놀랍고 뛰어난 통찰력과 날카로운 비평은 전문가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라고 평가받는다.

위 두 가지가 ‘고등학생 공쿠르상’의 특징이라면, 이 상이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배경에도 두 가지 요소가 있다. 하나는 아이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 단절 없이 이어지는 독서 습관이고 다른 하나는 심사 자격의 무(無) 성역화이다. 학교 교과수업의 연장선에서 진행되는 독서 활동, 책을 중심으로 펼치는 치열한 토론과 비평이 엄청난 영향력을 줄 수 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평범한 학생들에게 심사위원 자격을 부여하여 문학상을 수여하는 방식은 그들이 성인이 된 이후에도 책을 외면하지 않게 하는 강력한 동력이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책 읽기는 어린아이들에게는 그나마 강조되는 편이지만 십 대 이후부터는 입시에 밀려 점차 등한시되고, 성인이 되어서는 지극히 사적인 취미로 취급받는다. 독서가 중요하다는 건 모두가 다 알지만 순위에 밀리고, 선택에 밀리고, 재미에 밀려 습관으로 만들 기회를 좀체 만들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여기에 독서가 실생활에 쓰이거나 빛을 발하는 경험을 좀체 할 수 없는 사회 분위기도 한몫한다.

때때로 어떤 행동을 습관화하기 위해 노력할 때가 있다. 그건 습관 그 자체에 보다 그로 인해 달라질 ‘그다음’의 변화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그다음’의 영향력이 클수록 습관을 향한 노력은 간절하고 또 지속적일 수밖에 없다. 만약 책 읽기가 개인은 물론이고 사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행위라면, 가장 강력하고 반드시 해야 하는 습관으로 자리 잡지 않을까.

3. 많이 읽어야 보인다, 책이 그렇다

책을 읽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책을 읽는 사람은 좀체 찾아보기 어렵다. 인생에서 가장 책을 많이 읽었던 시절을 꼽으라면 기억을 한참 더듬을지도 모르겠다.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너무 어린 시절이거나 아니면 정말로 그런 경험을 하지 않아 기억에 없을 테니까.

아이러니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출판 홍수의 시대를 사는 요즘이다. 읽는 사람은 없어도 쓰는 사람은 많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인식이다. 물론 책 읽기 문화 확산의 측면에서 보자면 이러한 분위기 역시 필요하지만, 마냥 고무적이라고 반가워할 수만은 없다. 늘어난 양만큼 책의 질도 좋아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럴수록 보통의 평범한 독자에게 필요한 것은 비판적으로 읽어 낼 수 있는 시선, 좋은 책과 아닌 책을 구별할 줄 아는 판단력이다.

습관을 들이면 좋다지만 모든 습관이 좋은 것은 아니듯, 책이 좋은 건 맞지만 모든 책이 좋은 것은 아니다. 또한 책을 많이 읽는 것거ㅣ 책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별개의 것이다. 그러기에 가장 먼저는 많이 ‘읽기’가 필요하고, 그다음은 ‘꾸준히 읽기’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내가 읽은 것을 말하고 나눌 수 있는 독서 공론장이 있어야 한다. 세 가지가 잘만 작동된다면 책 읽는 사람이 없어 걱정이라는 걱정은 아주 조금 줄지 않을까.

 

 

글·장윤미
소설가 겸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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