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6월호 구매하기
[임형진의 문화톡톡] 연극과 경계
[임형진의 문화톡톡] 연극과 경계
  • 임형진(문화평론가)
  • 승인 2025.05.26 11: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계를 침투하고 관통하는 연극의 운동성

 

사운드-영상 [경계선상의 아리아 : B-Y-M] 작/설치/사운드 임형진, 2024), 대안공간 루프 ©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
가변 설치, 사운드-영상 [경계선상의 아리아 : 콜로이드 B-Y-M], 작/사운드/영상 임형진, 2024, 대안공간 루프 ©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

 

연극은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의 삶과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자, 시대의 변화에 따라 스스로의 경계를 끊임없이 재정의해 온 예술이다. 오늘날 연극은 단순히 무대와 객석, 배우와 관객, 극장 안과 밖의 구분을 넘어, 연극이 무엇을 담아내고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연극의 주변에는 다양한 경계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단절과 폐쇄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연극의 관계 속에서 생산과 진보의 원리로서 작동하고 있다.

 

연극의 새로운 공간성

전통적으로 연극은 극장이라는 물리적 공간 안에서, 무대와 객석이라는 명확한 구분 속에 존재해왔다. 그러나 동시대 연극은 이러한 공간적 경계의 전통적 문법을 적극적으로 해체한다. 예상치 못한 사건은 사회적 변화를 불러오기도 한다. 팬데믹의 발생은 대부분의 극장들의 문을 닫게 했다. 이러한 현실은 연극이 극장이라는 특정 장소에서만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또다시 던지게 하였다. 연극은 거리, 광장, 온라인 등의 다양한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으며, 그곳의 사람들과 새로운 만남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연극이 수행되는 공간의 변화는 연극이 지닌 현장성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동일한 텍스트와 연출이더라도, 매번 다른 배우와 관객, 그리고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단 한 번의 유일한 경험이 바로 연극의 수행적 본질임을 깨달을 수 있다.

 

관객과 배우, 주체의 경계

연극의 또 다른 중요한 경계는 배우와 관객, 즉 ‘보는 자’와 ‘보이는 자’ 사이의 구분이다. 최근 연극은 관객을 단순한 수동적 존재가 아닌, 공연의 공동주체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를 적극적으로 보인다. 관객이 무대 위로 직접 올라가거나, 연극 일부에 참여하는 이머시브 시어터와 렉처 퍼포먼스 등은 이러한 경계의 해체적 경향을 그대로 공유하고 있다. 때로 관객은 배우와 그 인물을 공유하기도 하고, 자신의 선택과 반응을 통해 공연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처럼 연극은 관객과 배우, 그리고 작품 사이의 경계를 유동적으로 변화시키며 예술 경험의 주체를 확장하고 있다.

 

장르와 형식의 경계

연극은 뮤지컬, 음악극, 다큐멘터리 연극,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와 형식으로 분화되고 있다. 각각의 연극적 형식은 고유의 미학적 특성과 규칙이 내재되어 있지만, 동시대 연극은 이들 사이의 경계를 횡단하며 새로운 그 무엇을 시도하기도 한다. 연극은 음악, 무용, 영상, 미술 등과 같은 타 예술 분야와의 융합을 통하여 표현 영역을 넓히고, 관객에게 더욱 다층적인 경험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처럼 연극이 보이는 다양한 경계의 확장 또는 그것으로의 침투는 연극이 시대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예술로서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포스트드라마 연극 [당신의 만찬] 작/연출 임형진 (2019 일민미술관) @최윤정, 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
포스트드라마 연극 [당신의 만찬], 작/연출 임형진, 2019, 일민미술관 ©최윤정/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

 

현실과 허구의 경계

연극은 사회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한다. 현실의 문제를 무대로 끌어올리고, 관객과 함께 고민하며, 때로는 대안을 제시한다. 다큐멘터리 연극이나 사회 참여적인 연극은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관객에게 예술이 사회적 실천의 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성적으로 인식시킨다. 이러한 연극은 단순히 오락이나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적 비평과 성찰, 그리고 공동체적 경험의 장을 형성하고, 또한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한다. 이때 관객은 해석과 향유의 대상으로만 머물지 않고, 사회적 주체로서의 행동과 그 계기를 갖게 된다.

 

경계의 확장과 재위치

연극에서 경계는 시대와 사회, 기술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확장되고 재위치된다. 연극은 경계를 응시하고 침투하는 과정에서 바로 지금, 여기에 살아 숨 쉬고 있는, 관객과 배우 그리고 사회가 함께 만들어내는, 공동의 경험을 생산해 낸다. 우리 사회의 경계와 그 강도와 크기의 무게감은 모순적이게도 연극이 더욱 적극적이고 본질적인 태도를 지니게 하는 하나의 동기가 된다. 이것은 연극이 왜 존재하는지를, 그리고 연극이 사회적 실재를 발생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그 가능성을 ‘희망’이라는 단어와 함께 떠올리게 한다.

 

연극은 경계를 단순히 물리적, 형식적 구분의 문제로서만 이해하지 않는다. 경계의 존재는 연극이 시대와 사회, 그리고 인간의 삶과 어떻게 호흡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존재들 사이의 경계는 현장성, 공동주체성, 그리고 사회적 성찰의 힘을 추동하는 연극의 수행적 특성을 드러나게 한다. 그리고 이것은 단절의 관계를 포기하도록 요구한다. 연극은 경계들 사이에서 틈을 찾고 그곳을 비집고 들어가 그대로 관통함으로써 그곳에 내재된 전통적 문법과 이에 따른 단절과 분리의 정서적 발생을 지양시키는 예술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임형진
상명대학교 예술대학 연극전공 교수. 극단 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 대표 및 상임연출가. 독일문화와 예술, 수행성의 미학, 포스트드라마 연극에 대한 연구 및 예술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제5회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젊은비평가상을 수상하였다.

  • 정기구독을 하시면, 유료 독자님에게만 서비스되는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잡지를 받아보실 수 있고, 모든 온라인 기사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전용 유료독자님에게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모든 온라인 기사들이 제공됩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