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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과제로 떠오른 노동시간 단축, 현실이 되려면
시대적 과제로 떠오른 노동시간 단축, 현실이 되려면
  • 김종진(유니온센터 이사장)
  • 승인 2025.05.28 14: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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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담론을 위한 열린 공론장 소셜 코리아'의 6.3 대선 '의제'
-노사정대화 필수···노동시간 양극화 해소 위한 입법도

 

노동 이슈가 부각되지 않을 것 같았던 2025년 대선에서 노동정책이 화두가 되고 있다. 사실 지난 20년 동안 비정규직 문제와 최저임금은 선거 시기마다 등장했다. 특히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최저임금 1만 원 요구는 노동계에서도 빠지지 않았다.

그러나 21대 대선에서 핵심은 민주·진보정당의 노동시간 단축과 보수정당의 노동시간 규제 완화로 요약된다. 이번 선거에서 노동시간 공약은 각 정당의 이념적 성향에 따라 차이가 두드러진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은 ‘노동존중과 노동기본권 확대’를,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기업 자율과 규제 완화’를 제시하고 있다.

노동이 ‘상품’이 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노동시간 단축은 산업혁명 전후부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국제노동기구(ILO) 설립 이후 1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노동시간은 노사관계에서 빠지지 않고 다룬다. 노동시간 단축은 그만큼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받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이라 할 수 있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고 제도·정책 추진이 복잡한 노동시간 단축 문제가 대선에서 관심과 논쟁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주요 정당은 어떤 노동시간 공약을 제시하고 있고 각기 어떤 특징과 차이점이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민주·진보정당의 노동시간 단축 정책

이번 21대 대선에서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은 장시간 노동 해소와 실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공약을 제시했다. 민주노동당의 권영국 후보는 주4일제(주32시간)와 여러 정책을 발표했다. 우선 하루 11시간 노동시간 상한제와 24시간 내 11시간 연속휴식제도, 심야노동의 금지와 규제를 발표했다. 또한 법정 연차휴가 확대, 노동안식월제 도입이 눈에 띈다. 더불어 1주 15시간 이상 최소생활노동시간 보장, 돌봄 노동시간 자유선택제 및 전일제 복귀 청구권, 퇴근 후 연결되지 않을 권리 법제화가 포함되어 있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주 4.5일제(주36시간)와 실근로시간 단축 및 연차휴가 확대가 핵심 공약으로 제시되어 있다. 노동시간을 2030년까지 OECD 평균 노동시간대 이하로 단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용자의 실근로시간 측정·기록 의무화, 포괄임금 폐지가 핵심 공약이다. 더불어 과로 예방 법률 제정과 연차휴가 확대 및 3년 미사용 연차휴가 적립·활용, 초단시간 노동자의 연차휴가 비례 도입도 포함되어 있다. 주4.5제 도입 기업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지원을 추진하고 장기적으로 주4일제 방향이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민주·진보정당들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노동자 삶의 질 개선에 정책 중점을 두고 있다.

 

보수정당의 노동시간 규제 완화 정책

반면 보수정당들은 전혀 다른 접근을 보인다. 국민의 힘 김문수 후보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표방하면서 연장근로 완화(주52시간)와 탄력근로제 확대 및 지역별 노동시간 특례를 발표했다. 또한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도 연장근로 완화 의견을 갖고 있고, 주4.5일제는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김문수 후보가 언급한 고소득 연장근로 예외 규정은 박근혜 정부와 윤석열 정부 시기 지속적으로 제기된 자본의 요구였다. 이른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이다. 이 제도는 전 세계적으로 미국과 일본에서만 시행하고 있는데, 일정 수준 이상 연봉을 받는 사무관리 및 전문직 종사자에 대해 노동시간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다.

노동시간 규제완화는 자본과 기업의 오래된 숙원 사업이다. 2012년 10월 경총은 “근로시간 단축, 노사 자율결정에 맡겨야 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한 이래 매년 지속적으로 동일한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고소득 대상자의 노동시간 예외 규정은 윤석열 정부 공약에도 있었다.

그들의 논리는 2004년 주5일제 시행과 2018년 1주 52시간 연장근로 상한제가 도입될 때와 변함이 없다. 경제성장률 둔화와 국가경쟁력 저하,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부담 가중, 근로시간 경직화로 인한 고용 위축, 세금 부담 증가와 재정 악화 등 변함없는 레토릭이다.


주4일제·노동시간 단축의 냉소와 반대를 넘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국민의힘 김문수·민주노동당 권영국·개혁신당 이준석 대선후보가 23일 서울 여의도 KBS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21대 대선 2차 후보자 토론회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더불어민주당
더불어민주당 이재명·국민의힘 김문수·민주노동당 권영국·개혁신당 이준석 대선후보가 23일 서울 여의도 KBS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21대 대선 2차 후보자 토론회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더불어민주당

 

이와 같은 정책적 대립은 노동을 바라보는 근본적 시각 차이에서 비롯된다. 그렇지만 노동시간 단축은 산재·병가 감소로 인한 기업의 비용효과, 이·퇴직 감소로 인한 실업급여 지출 감소 등 사회경제적 효과도 적지 않다. 지난 2005년 주5일제 도입 이후의 효과성을 분석한 연구결과(KDI, 2017년)에서도 10인 이상 제조업 종사자의 실질 부가가치가 1.5% 향상한 것으로 확인된다.

노동시간 단축의 철학과 지향점은 여러 측면을 포괄한다. 무엇보다 일하는 방식에 대한 변화와 사회경제적 필요성이 존재한다. 노동자 건강과 생명, 일과 삶의 균형 그리고 돌봄노동 분담 같은 성평등 정책 등이 그것이다.

시간 당 생산성 향상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시간 빈곤 사회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마도 여가시간 증가로 인한 소비 촉진과 같은 경제적 합리성도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다. 더불어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과 인공지능(AI) 도입에 따른 노동시간 재조정은 이제 필수불가결한 조건이 되었다. 게다가 기후위기에 대응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 주4일제는 미래사회의 핵심 의제다.

프랑스는 1982년 주39시간 도입 이후 주35시간 전면 도입(2002년)까지 20년이 걸렸다. 프랑스 노동시간 단축 과정에서는 사회적 합의와 산업 특성을 고려한 세부 협약이 핵심이었다. 그리고 중소기업 적용을 위한 2년의 준비와 지원 정책이 있었다.

최근 몇 년간 노사 합의로 주4일제 시범사업을 했던 독일 베를린 적십자병원, 프랑스 파리 교통공단은 올해부터 전면 시행을 하고 있다. 지난 3월 영국 노동당은 주4일제 실행을 위한 근로시간위원회 설치 법안을 발의했다. 또한 스페인은 주 37.5시간 법안이 의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여러 논쟁이 있지만 과로 및 장시간 노동 해소와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한 노동시간 단축에는 큰 이견이 없다. 물론 주4일제나 4.5일제와 같은 정책이 향후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할 수 없다. 그렇기에 두 가지 과제가 요구된다. 첫째,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노사정 사회적 대화가 필수적이다. 이 과정에서 시범사업과 생산성 향상 지원 등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둘째, 노동시간 양극화 해소를 위해 국회에서 입법과제를 추진해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은 단순한 제도 변경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일이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경제성장의 새로운 동력을 찾는 것도 노사정 모두의 과제다.

 

김종진 / 유니온센터 이사장

김종진은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 및 유니온센터 이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노동사회학을 전공하고 노동정책과 노사관계를 주로 연구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플랫폼노동, 프리랜서, 노동시간, 청년노동, 감정노동 등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로 <노동자의 시간은 저절로 흐르지 않는다>, <주4일제 시대가 온다> 등이 있고, 노동·시민사회단체와 함께 노동의제를 현실화하는 데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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