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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동자의 제언: 청년과 지역 살리기 위한 새 정부의 4가지 키워드
어느 노동자의 제언: 청년과 지역 살리기 위한 새 정부의 4가지 키워드
  • 천현우 (용접공)
  • 승인 2025.06.02 1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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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담론을 위한 열린 공론장 '소설 코리아'의 제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국민의힘 김문수·민주노동당 권영국·개혁신당 이준석 대선후보가 2025년 5월 23일 서울 여의도 KBS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21대 대선 2차 후보자 토론회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더불어민주당

 

대통령이 바뀌겠구나. 2024년 12월 4일 수요일 오전 일곱 시. 알람에 깨어나 양치하며 뉴스를 보다 든 생각이었다. 일찍 자고 매우 일찍 출근하는 현장직 노동자에겐 새벽에 벌어진 계엄 선포와 해제가 모두 그저 몰래카메라처럼 느껴졌다. 잠들었던 다섯 시간 동안 나라를 37년 전으로 돌리고자 했던 세력과 37년 전 민주주의를 가져왔던 세력의 숨막히는 사투가 있었음은 낮쯤에서야 알게 됐다.

이후 쏟아지는 계엄 문건을 보자 그제야 오싹함이 들었다. 충동적으로 벌인 일이 아니라 구체적인 계획이 있었단 사실이 놀라웠다. 망상은 어디까지나 코웃음이 나올 수준이어야만 한다. 전제가 틀렸는데 구체성과 체계성만 갖춘 기획을 현실에 갖다 대면 기괴해진다. 음모론, 유사역사, 사이비 종교 등이 정상으로 보이진 않듯 말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기괴한 망상에 빠져 살았다. 전조는 있었다. 취임식 때부터 극우 유튜버들을 여럿 초대했다. 대선 이후에도 극우 유튜브를 많이 본다는 얘길 자주 들었다. 마음이 실제 세상과 멀어져가는데 현실을 제대로 돌볼 리 없었다.

3년 동안 한국 사회는 다양한 방식으로 부서졌다. 위기를 방기해서 수습할 기회까지 놓친 일이 수두룩하고,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개입해서 망가뜨린 일도 많다. 6월 대선은 대한민국을 정상궤도로 돌려놓는 대공사의 첫 삽을 뜨는 날이 될 듯하다.

건물을 막 짓기는 쉽다. 단지 보수나 수리가 어려울 뿐이다. 차기 정부는 이 엉망인 건물을 수리해야 하는데 동시에 왕창 무너뜨려선 안 된다. 정말 어려운 과제를 받았다. 알면서도 “이 부분도 좀 고쳐주십사”라며 도면을 들이밀기 참 송구스럽다. 그럼에도 이 과업을 해결할 의지가 있는 후보한테 내 한 표를 주려고 한다.

10년 넘게 일해도 최저임금 수준

나는 지방에 거주하는 남성이다. 처한 상황을 요약하면 이렇다. 전문대학을 졸업했고 현장 노동을 10년 넘게 하고 있다. 누구나 꺼리는 일을 하지만 최저임금에 준하는 시급을 받는다. 인근 지역들은 소멸 위기에 처했다. 새로운 창업은 없으며 큰 기업은 내려오지 않고 기존 사업체는 인건비 경쟁만 하고 있다. 네 개의 키워드로 압축하면 교육, 노동, 지역, 산업이다. 이 문제들은 따로 떨어져 사는 독립 개체가 아니라 내가 사는 한국을 망치고 있는 공범들이다. 어느 하나 제대로 바꾸지 않으면 한국은 지금 겪는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한국 사회는 왜 사교육에 미쳐 사는가? 인서울 대학이 가진 사회적 지위만으론 설명하기 어렵다. 어렵게 양반 감투 썼는데 밭이나 가는 신세라면 과거시험을 왜 치겠는가. 본질은 취업시장에서의 우위다. 이 우위는 뒤집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인서울 대학 나와서 대기업 들어가는 사례는 한가득하지만, 전문대 출신이나 고졸이 중소기업부터 시작해 대기업 들어가는 사례는 드물다. 이 탓에 교육이 사교육과 대학입시로만 수렴한다.

학벌의 위상을 줄여야 한다. 줄이려면 인서울 대학 말고 다른 곳에서 배운 이들이 높은 실적을 내도록 해야 한다. 인서울 대학 졸업 안 한 이들이 충분히 일을 잘하고, 인서울 대학 출신들이 생각보다 일을 못 하면, 학벌의 지위는 알아서 줄어든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해답이 아니다. 본질은 학생의 역량이지 대학 졸업장이 아니지 않은가. 일찍 취업에 뛰어든 학생들, 대학에 뜻이 없는 학생들도 직업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직업교육 강화가 절실하다. 한국 사회는 현재 제대로 된 직업교육 체계가 없다. 대학 이외 대안교육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추진하길 바란다.

구직자의 역량 강화만 이루어진다고 끝이 아니다. 열심히 공부한들 최저임금 주는 일자리만 가득하면 배움의 동기가 없다. 부모들이 자식을 인서울 대학 못 보내 안달난 이유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내가 일하는 조선소 현장엔 이쪽 말로 ‘A급’이라 칭하는 선배들이 많다. 수십 년 일하면서 쌓인 직관과 절정에 다다른 기능을 모두 갖춘 이들이다. 이들이 받는 임금은 대기업 원청 사원들과 비교가 안 된다. 30년 가까운 경력의 베테랑 임금이 2년차 원청 사원과 비슷하다고 한다. 반면 처음부터 대기업에 취직한 사람은 연공급 구조의 수혜를 받아 직무 능력과 관계없이 고임금을 받는다. 업무강도며 복지 등의 우위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이는 상식적인 사회가 아니다. 하청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들한테 더 많은 몫이 돌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재벌 대기업과 대기업 노동조합의 양보를 이끌 협상가가 필요하다.

노동격차만 해결해선 사람들이 지방으로 오지 않는다. 지역은 각개격파당하고 있다. 작은 곳부터 순차대로 맥없이 쓰러지고 있다. 하나로 합치고 연결해야만 한다. 행정을 통합하고 교통망을 확충했으면 한다. 그 어떤 이도 자동차가 필수품인 도시를 편하게 느끼지 않는다.

추락이냐 재도약이냐 기로에

이 모든 조건을 갖췄다면 이제 산업을 끌어와야 한다. 지역이 죽어가는 이유는 결국 일자리 때문이다. 대기업 본사는 죄다 수도권에 몰려 있다. 그나마 공장은 지방에 두었던 시절마저 이제 끝났다. 새로운 시설은 이천, 평택, 인천 등 몽땅 수도권 외곽지에 짓고 있다. 기업은 지방에 설비 투자할 이유가 전혀 없다. 세금혜택 좀 해준답시고 허허벌판에 공장 지으라고 하면 무슨 이익이 있나.

지방을 기업이 올 수 있는 장소로 만들어야 한다. 아울러 창업이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도 조성해야 한다. 20세기처럼 값싼 인건비로 연명하는 기업들을 인수합병하거나 청산하고 그 자리에 새 회사가 들어서도록 하자. 적극적으로 창업을 장려해 일자리를 만들자.

정리하면 대학이 아니어도 배움을 이어나갈 수 있는 대안 교육기관, 대기업 원청기업을 가지 않아도 능력에 따라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노동구조, 뿔뿔이 흩어진 지방을 뭉칠 행정과 교통망, 그리고 양질의 일자리를 가져오고 또 만들어내야만 한다. 어려운 주문임을 안다. 이 어려운 일을 해내야만 지역이 살아나고, 수도권에서 버티느라 결혼과 출산을 다 포기한 미래 세대들의 숨통이 트일 수 있다.

이번 대선은 1990년 10월 5일생인 내가 법적으로 청년일 때 치르는 마지막 선거다. 가난 때문에 성장통을 크게 앓았지만 그만큼 단단한 중년이 될 준비가 됐다. 대한민국은 지금 선진국을 잠깐 경험했다가 빠르게 하강하는 시기를 지나고 있다. 이대로 추락할지 아니면 다시 재도약할지가 다음 정부에 달렸다. 지금의 이 시간이 잠깐 지나가는 대한민국의 성장통이었으면 한다. 부디 이번 선거가 더 단단한 대한민국으로 거듭난 시작일로 기록되길 바란다.

천현우는 경남의 여러 제조업체를 돌며 용접공으로 일하고 있다. 전 청년정책조정위원회 민간위원 신분으로 정부에 지역 청년의 목소리를 전달했다. <주간경향>에 지방 청년의 삶과 제조업 경험을 바탕으로 쓴 칼럼을 모아 단행본 <쇳밥일지>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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