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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경제학, 케인스와 프리드먼 이후 ‘제3의 길’
행동경제학, 케인스와 프리드먼 이후 ‘제3의 길’
  • 로라 랭
  • 승인 2013.07.08 17:2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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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세기 독일 라이프치히대학 연구소에서 그린 인간 사고에 관한 일러스트레이션>

오랫동안 고전 경제학자들은 마치 인간이 계산기인 것처럼 자신의 모델을 구상했다.
그런데 실패했다. 행동경제학은 심리학을 수용해 우리의 반응과 결정을 예측하고, 섬세한 격려로 영향을 주기 위해 연구한다. 또한 실제 ‘작은 도움’으로 노동자와 소비자를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경제학을 지배하던 이론, 즉 케인스 경제학으로 일컬어지던 ‘신(新)고전주의 경제학’이 요즘 고전하고 있다. 단지 경제전문가와 금융기관 간 근친상간 관계만 드러난 게 아니라(1), 최근 경제위기에 대한 이들의 책임감도 백일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신고전주의 경제학의 명실상부한 대가들은 “완벽한 시장의 효율성을 통해 자율 규제의 정당성이 입증됐다”고 입버릇처럼 외쳤다. 그리고 “자율 규제가 경제주체의 완전무결한 합리성의 산물”이라고 외쳤다. 그런데 금융위기 때문에 ‘착한 아이들’(경제주체)에게 통하던 ‘동화’(자율 규제)가 안 먹히는 난관에 봉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배 교리(신고전주의 경제학)의 극적인 효력 상실이 경제계에 불행한 사람만 양산한 것은 아니다. 이른바 (신고전주의 경제학에) 소극적 개입을 한 대안 세력들은 이런 상황을 반긴다. 특히 이런 세력 중 하나인 ‘행동경제학’이 새로운 지배 교리가 되는 데 가장 유리한 자리를 차지했다.
행동경제학파는 주류경제학 대부분의 가설과 호환을 유지하며, 거기에다 행동심리학을 접목했다. 그래서 많은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은 경제계 전반에서의 권위 회복을 위해 행동경제학에 의존하고 있다. 2010년 유럽중앙은행(ECB) 회의 때, 장클로드 트리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이들에게 행동경제학을 장려했다. “우리 경험에 비추어 배운 중요한 교훈은 하나의 도구에 전적으로 의존할 때의 위험성이다. 우리는 경제적 프레임의 견고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추가 도구를 개발해야 한다. 우선, 사람들이 모든 경제모델의 중심에서는 호모에코노미쿠스(기업처럼 경제적 원리에 따라 행동하는 인간)의 특성을 드러낸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야 한다. 행동경제학이 심리학에 기대는 것은 위기 상황 시의 결정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트리셰는 정치적 용어로 해석된 행동경제학이 오류 수정보다는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행동경제학자들은 선험적 주장을 내놓고 있지만, 자유주의 시장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추종자들은 행동경제학자들의 주장을 극구 부정한다. 이들은 경제주체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최상의 결정을 내리는 완벽한 합리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경제주체가 한편으론 자신의 감정, 신념, 직감을 따르거나 응집된 추리력에 따라 행동하지만, 또 한편으론 자신의 이익을 증대하는 데만 신경 쓰지 않는다. 이따금 도덕과 사회 규범에 자극을 받아 협력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심지어 이타적 태도를 보인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금융 투자자들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해 모방적인 행동을 취할 수도 있고, 지나친 자신감에 고통받을 수도 있으며, 무성한 기대감이나 공황 위기에 스스로 발목이 잡힐 수도 있다. 그리고 일부 투자자들은 비록 합리주의자들이라 할지라도, 드물게나마 시장 흐름에 역행하는 위험을 감수할 수 있다. 이 현상은 경제주체의 합리성 이론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시장의 효율성 이론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힌다. 사실 지속적인 거품과 시장 붕괴는 자본 시장이 얼마나 깊이 공상에 빠질 수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물론 행동경제학자들이 신고전주의적 금융 구조를 비판하는 것은 용기 있는 일이다. 그러나 “시장이 효율성의 기적을 발휘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전지전능한 컴퓨터도 아니다”라는 그들의 견해는 새로운 게 아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 이후 이단 사상가들은 케인스의 경제학이 신화라고, 그것도 위험한 신화라고 끊임없이 경고했다. 하지만 이들의 외침은 쇠귀에 경 읽기였다. 케인스학파를 비롯한 제도주의자, 마르크스주의자, 규제주의자들이 이단 사상가의 말을 경청할 리 없기 때문이다.

경제학자 댄 애리얼리는 “현재 우리는 ‘보이지 않는 손’을 맹신한 것에 대한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비난한다.(2) 한편 그의 동료 로버트 실러와 조지 애컬로프는 “신고전주의 경제학은 결함이 있다. 이 경제학은 경제가 왜 롤러코스터 게임인지 이해시키지 못한다”고 지적한다.(3)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의 두 저자는 사람들(경제주체)이 정말로 인간적일 때, 어떻게 경제가 실제로 작동하는지 보여주며, 기존 이론이 실현시킬 줄 몰랐던 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야심찬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왜냐하면 행동경제학은 우리가 비록 불합리한 사람들일지라도, 예측 능력까지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행동경제학자들은 필요하면 동료 신경과학자들에게서 제공받은 전도체로 무장한 채, 실험실에서 다양한 실험을 통해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의 모델보다 좀더 현실적이고 개인적인 의사 결정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 우리 행동의 규칙적인 패턴을 찾고 있다.

행동경제학의 선구자는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이다. 1970년대부터, 두 이스라엘 심리학자는 사람들을 불합리한 의사 결정으로 내모는 인지 편향, 즉 어떤 상황에 대한 분석을 왜곡시키는 인지 편향 사례를 꼼꼼하게 정리했다. 따라서 ‘플레밍 효과’에 따르면, 사람들이 하나의 상품 데이터를 소개하는 방식에 따라 경제주체는 서로 다른 호응도를 보이거나 같은 선택을 했다. 예컨대 ‘수익 낼 확률이 40%’라고 소개하는 것이 ‘손실 입을 확률이 60%’라고 소개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 행동경제학의 도래를 완벽하게 경제학 분야로 부각시킨 것은 미국 젊은 경제학자 리처드 탈러가 합류하면서이다.

지금 당장은 행동경제학 패러다임을 통한 경제주류 세력의 재건 꿈은 실현되지 않았다. 하지만 행동경제학 지지자들은 10년 전부터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애컬로프와 카너먼이 각각 2001년,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2012년 프랑스에서는 행동경제학자 다비드 마스클레가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가 수여하는 경제학상에서 동메달을 수상했다. 주류경제학자들이 단순한 ‘호기심 대상’ 정도로 경시한 인지 편향은 이제 저명한 학술지에서 다양한 각도로 다뤄지고 있다. 행동경제학은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을 비롯한 스탠포드·버클리·시카고·컬럼비아·프린스턴 대학, 특히 하버드 같은 미국 최고 명문대학에서 강의 중이다. 2009년 미국 투자가 조지 소로스가 5천억 달러를 투입해 출범한 싱크탱크인 새로운경제생각연구소(INET)의 핵심 연구는 행동경제학이다. 프랑스에서는 리용과 툴루즈 비즈니스 스쿨의 경제 분석 및 이론 그룹(Gate)이 행동경제학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행동경제학 분야는 대중에게도 대세다. 미국인은 자신이 왜 그렇게 잦은 ‘나쁜’ 의사 결정을 하는지 알기 위해 맬콤 글래드웰의 <블링크>(Blink), 리처드 탈러와 캐스 선스타인의 <넛지>(Nudge) 혹은 댄 애리얼리의 <예상대로 불합리한>(Predictably Irrational) 같은 저서에 열광한다. 게다가 댄 애리얼리는 <월 스트리트 저널>의 ‘애리얼리에게 물어보세요’란 섹션을 통해 독자의 사소한 질문에 매주 답변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의 경제는 좋게 평가하면 무용지물이고, 나쁘게 평가하면 최고의 해악이었는데(4) 행동경제학자들은 과연 저들보다 나을까? 물론 호모에코노미쿠스의 지적인 폭정을 종식시키고, 시장의 비효율성을 부각시키는 것은 과거와 단절하는 것이기에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행동경제학 이론이 작동하게 되면 또 다른 문제가 야기될 게 뻔하다. 왜냐하면 행동경제학이라고 해서 자신의 서비스를 기업, 금융, 공공정책에 신고전주의 경제학보다 덜 강요하지 않을 테니까. 더군다나 행동경제학 이론을 최상의 경우에 적용해도 성과가 신통치 않아 의구심을 사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봉급자와 소비자 관점에서 살펴보자. 1930년부터 마케팅과 광고의 이익을 위해 심리학 자료를 활용하는 기업에서는 자사의 고객과 직원에게 활용할 수 있는 자사의 조작 자료실을 강화해주는 행동경제학의 최신 개발을 크게 환영했다. 유명 컨설팅 회사 맥킨지는 모든 상인이 활용할 수 있는 4가지 실용적인 기술이 담긴 도구상자를 제공한다.(5) 이 마케팅 조사 회사는 자사의 웹사이트에 소비자가 제품을 구입하지 않는 상한선을 확인하는 데 설문조사보다 행동경제학이 더 효과적이라고 설명한다. 즉, 행동경제학이 가능한 한 최대 가격을 결정할 수 있게 하는 셈이다. 또 행동경제학은 고객을 부추겨 자신의 청구서를 제때 지불하도록 하는 열쇠를 제공한다. 예를 들면 벌금을 통해 체불자를 처벌하는 것보다는 ‘당신은 아직 청구서를 지불하지 않은 동네에서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입니다’라고 쓴 편지를 보내 체불자 성향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한편 행동경제학의 대가 중 한 명인 에른스트 페르(스위스 취리히대학 경제학과 교수)가 설립한 독일 컨설팅 회사 ‘페르상담소’는 직원과 협상할 때, 특히 임금 문제에 관해 협상할 때 행동경제학 활용법을 사장에게 가르치고 있다. 실제로 행동경제학은 이 분야에 수많은 지침이  있다. 고전적인 금전 인센티브제, 즉 학생 성적이 우수할 때 연말 교사에게 약속한 보너스를 지불하는 것과 같은 인센티브제는 효과 없다는 것을 확인한 행동경제학자들은, 개인이 수익보다는 손실에 더 민감하다는 사실을 적극 활용했다. 스티븐 레빗과 롤랜드 프라이는(6) 연초 교사에게 보너스를 지불한 뒤, 만약 흡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연말에 지불한 보너스를 다시 환수하겠다고 교사들을 위협했다. 직원에게 지불한 급여의 일부를 연말에 상환하라고 요구하는 게 장래가 창창한 그룹의 ‘동기 부여’ 기술인 셈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행동경제학의 ‘발견’에 가장 미덥지 못한 반응을 보이던 재계에서 행동경제학은 가장 인기 있는 제안서를 만들어내고 있다. 제안서란 선별작업에 불과했다. 시장의 비효율성에 대한 최종 결론은 제거하고 경제주체의 행동과 관련된 잠재적 수익에 대한 최종 결론만 선별해 간직하면 된다. 따라서 프랑스 비즈니스 스쿨 인섹(INSEEC)은 ‘행동경제학 금융’을 MBA 과정에 ‘새로운 금융 분야’로 도입하며 웹사이트에 행동경제학을 ‘고전적인 자산 관리의 보완 시스템’으로 만들었다.

일부 자산 운용사들이 행동경제학 원칙을 적용하는 가운데 ‘제이피모건 자산운용사’(JP Morgan AM)는 1993년부터, 프랑스의 ‘연기금 자산관리 운용사’(CCR)는 오래전부터 이를 적용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행동금융학을 실천한다는 것은 투자자들이 자신의 편향성을 의식하고 그걸 고치려 애쓴다는 말이며, 또한 이들이 다른 사람의 편향성을 활용한다는 것을 뜻한다. 저명인의 사례를 들면 우선 <워렌 버핏처럼 투자심리 읽는 법>의 저자 제임스 몬티어는 “투자자가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고 셀프컨트롤의 힘을 강화하도록 돕겠다”고 약속한다.(7) 또 좀더 전략적인 다른 접근 방법도 선보였다. 특히 러셀 풀러는(8) 투자자들의 과잉 혹은 과소 반응 때문에 잘못 ‘매긴’ 증권 가격을 식별해내는 접근 방법을 개발했다. 어쩌면 일부 사람은 이런 전략을 통해 수익을 좀더 낼 수 있겠지만, 이런 전략들은 절대 시장의 비효율성을 해결해주지 못한다. 실제로 강성의 이단 경제 이론이 증명했듯이(9), 강력한 금융시장 규제만이 태생 자체가 불안정한 금융시장에서 경제 혼란을 일으키지 못하게 차단하는 유일한 대책이다. 즉 자산운용 책임자들의 빚 탕감 규모를 제한하고 이들을 시장 및 대출 활동에서 분리시켜, 이들의 자본 이동 등을 제한해야 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조처들은 행동경제학자들의 공공정책 제안서에서 누락됐다. ‘행동경제학의 교황’으로 불리는 탈러가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 경제팀과 영국 데이비드 캐머런 정부를 자문한 것이다. 그는 오바마와 카메론에게 ‘만약 새로운 경제위기를 피하고 싶다면 금융시장을 감독해야 한다’고 자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탈러는 시카고대학 경영대학원 교수일 뿐만 아니라 풀러와 함께 행동금융 전문 투자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대학과 은행은 수많은 행동경제학자의 이력을 공유했다. 다니엘 켄트 컬럼비아대학 금융학 교수는 과거 골드만삭스 자산운용사의 경제 지분 연구 책임자였다. 그는 또한 리스크 관리 운용사인 케포스 캐피털과 알리안츠 글로벌 인베스트먼트의 학술위원회 회원이다. 그가 규제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설령 완벽한 합리주의자들이 아니고, 증권 가격이 체계적으로 잘못 매겨진다 하더라도 정치인들은 시장 가격에(10) 공손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말하자면 시장이 무슨 짓을 해도, 우린 시장을 존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켄트는 이런 말도 했다. “정치인들의 비합리성과 이기주의가 정치적 프로세스를 오염시킨다.” 그는 이 마법의 꼼수를 통해, 비합리성 논쟁을 공공기관 책임자들의 몫으로 돌렸다. 따라서 몬티어의 출중한 아이디어, 즉 “우리 중 금융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악행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해야 한다”는(11) 아이디어조차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투자자들이 그냥 도덕적으로 행동하겠다고 약속하면 될 것을 사서 고생하며 법제화할 필요가 있을까?  탈러와 선스타인은 최신 저서에서 서브프라임까지 지지했다.

토머스 우드로 윌슨 전 미국 대통령의 자문위원이던 루이스 브랜다이스의 명언을 인용해 “모기지 변동 금리 대출이나, 심지어 고금리 대출도 그 자체는 나쁜 게 아니다”라고 했다. “일광이 최고의 살균제다.” 말하자면 해결책은 규제가 아니라 투명함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물론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이 제안들 사이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모든 제안이 절대적으로 시장지상주의를 존중하기 때문에 자연히 규제에 대해선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은 탈러와 선스타인이 저서 <넛지>에서 요약한 아이디어(12), 공공정책의 입장을 전반적으로 지지한다. 과학분석위원회(CAS)의 보고서는 넛지를 ‘규범이나 죄책감’에 얽매이지 않고 개인의 이익과 보편적 이익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개인의 편향을 몰래 자극하기 위해 활용하는 ‘작은 도움’ 혹은 ‘애정 어린 압박’이라고 강조한다.

탈러와 선스타인은 “우리는 금지에 반대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특정 오염물질을 금지하는 법안을 상기시키며 이렇게 말한다. “이와 같은 제한 철학은 불미스럽게도 소비에트공화국의 5개년 계획과 유사하다.” <넛지>의 두 저자는 스스로를 마치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부자(父子)주의자들(기업·경영에서 부자주의적 보호를 가장해 간섭하는 이들)’로 묘사한다. 따라서 행동경제학은 프리드먼과 케인스 간 ‘제3의 길’을 가고 있는 셈이다. 이를테면 행동경제학은 신자유주의자들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거나 국가가 엄격히 개입하는 틈새를 파고들어, ‘우파도 좌파도 아닌’ 위치에서 정부가 친절하고 합리적인 정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작은 도움을 주고 있는 셈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첫 임기부터 정치적으로 전혀 해가 없는 이 길, 행동경제학을 선택했다. 비단 탈러만 오마바 정부에서 경제팀 조언을 요청받은 게 아니다. 선스타인도 미 연방정부의 핵심 규제 기관, 특히 보건·주택·환경 분야의 규제 기관인 ‘정보 및 규제 당국’을 근 4년 동안 이끌었다. 미국의 ‘점진적 개혁 센터’ 보고서에 따르면, 미 행정부가 그에게 맡긴 수백 개의 프로젝트에 대해 그가 낸 성과라곤 기업 로비에 따라, 프로젝트의 4분의 3 규제를 기업의 이익을 위해 완화해준 게 고작이다.(13) 영국 보수당이 이런 철학을 좋아해, 2009년 미세 조정 정책 이른바 넛지 유닛 책임자로 탈러를 고용한 것이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의 임무는 ‘정부 지출도 감축시키고 기업과 사회 규제에 따른 부담도 덜 수 있는 방식으로 점진적인 목표 달성’이었다.(14)

프랑스도 넛지의 매력에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2011년 CAS는 다양한 행동의 지렛대, 즉 타인과의 비교나 변화에 맞서는 관성 비교 압박 등이 어떻게 좀더 환경 친화적인 생활양식을 채택하도록 시민들을 부추기는 데 동원될 수 있는지 연구했다. 2012년 소비자 보호에 관한 CAS 보고서에 따르면, 다비드 테즈마르와 오귀스탱 랑디에는 정통경제학자임에도 불구하고 ‘가정의 심리적 인식 편향’을 비판하며, “기업 재형저축을 선택할 때 정상적인 방법으로 올바른 선택을 하라”고 호소한다. 그래야 소비자의 능동적인 자유 선택권도 박탈당하지 않고, 부주의한 소비자들도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보편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사람들의 선택을 유도하는 것, 이것이 바로 넛지의 목표이다. 하지만 ‘보편적 이익’의 정의가 무얼 뜻하는지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그럼 경제학자들이 미국의 직장인들을 유도해 연기금에 더 많은 돈을 붓도록 했다면, ‘미약한 도움’을 줬다면 이것도 보편적 이익에 해당하지 않을까? 미국에서 행동경제학의 주요 업적은 사실 대기업에서 이 프로그램(사람들의 인지 편향에 따른 선택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심지어 이 프로그램의 개발을 의무화했다는 것이다.
금융 산업은 재형저축 늘리는 것을 보편적 이익으로 보는 시각이 있지만, 종종 소비 수요를 진작시키기 위해선 개인이 저축을 늘리기보다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합리성을 바탕으로 하는 거시경제학의 시각에선 보면 재형저축을 늘리는 것은 보편적 이익과는 거리가 멀다. 또 이런 목표(재형저축을 늘리는 것)를 중시한다는 것은 폭넓은 퇴직 유형에 대한 논쟁을 차단하는 처사이다. 왜냐하면 이 목표가 저축 시스템이 최고라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이다.(15)

정치를 싫어하고 환상 속에서 자족하는 넛지는 ‘상식’과 ‘사건의 실체’가 있는 최고의 세계 속에서 정치 이외의 활동을 한다. 따라서 탈러는 제안한다. “세금 인상 여부의 문제는 차치해두자. 괜스레 편 가르기만 하는 끔찍한 문제다.(16) 우리는 이미 세금을 더 징수하기 위해 넛지를 사용하고 있다.” 넛지는 국민과 정치인 간 민주적인 모든 상호 작용을 없앴다. 영국 켄트대학 사회학 교수 프랭크 프레디는 한 언론에 다음과 같은 글을 기고했다.(17) “넛지 옹호자들이 암묵적으로 정부 행동의 근간이 되는 유권자들을 정치적으로 설득하려 하지만 헛수고이다. 이들이 선택한 것은 민주적 토론이 아니라, 잠재의식을 겨냥한 조작 기술이다.”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이 규제 완화, 민영화, 임금 긴축을 설파한 것은 해로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은 적어도 공개토론을 할 수 있는 옵션만 제시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들의 동료인 행동경제학자들은 ‘민주적 토론’ 단계를 건너뛰었다. 무엇이 보편적 이익인지 확실히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이들은 개개인의 행동 수준에 맞춰 직접 가동되는 조정 회사(넛지 회사)를 통해 보편적 이익을 강요하고 있다. 그래서 순진한 영국 부총리 닉 클렉을 “영국의 넛지 유닛이 사람들의 생각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다”며 기뻐한다.(18) 우리도 클렉과 같이 기뻐해야 할까?
 

글•로라 랭 Morgane Kuehni

번역•조은섭 chosub@hanmail.net
파리7대학 불문학 박사로 알리앙스 프랑세즈에서 강의 중. 주요 역서로 <착각>(2004) 등이 있다. 

(1) 르노 랑베르, <지탄 받는 돈의 노예가 된 경제학자   들>, <Le Monde diplomatique>,  2012. 3, Charle   Ferguson, Inside Job, film documentaire, 2010,   livre, Oneworld, Oxford, 2012.
(2) Dan Ariely, <Irrationality is the real invisible    hand>, 2009. 4. 20, www.danariely.com.
(3) George Akerlof et Robert Shiller, <Animal    Spirits>,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9.
(4) Paul Krugman, ‘런던 비즈니스 스쿨 연설’, 2009. 6.
(5) <A marketer’s guide to behavioral economics>,   2010. 2, www.mckinseyquarterly.com.
(6) Roland G. Fryer, Jr, Steven D. Levitt, John List et   Sally Sadoff, < Enhancing the efficacy of teacher   incentives through loss aversion: a field    experiment>, document de travail, NBER n° 18237,   2012. 7.
(7) James Montier, <The Little Book of Behavioural   Investing>, John Wiley and Sons, Hoboken (New   Jersey), 2010.
(8) Russel Fuller, <Behavioral finance and the    sources of Alpha>, Journal of Pension Plan    Investing, New York, 1998. 2.
(9) <망연자실한 경제학자들, 경제를 바꿔라, 청산되는   관계>, 파리, 2012.
(10) Daniel Kent, David Hirshleifer et Siew Hong    Teoh, <Investor psychology in capital markets  :   evidence and policy implications>, Journal of    Monetary Economics, Université de Rochester,   n° 49, 2002.
(11) <Interview, James Montier on value investing>,   Investment Postcards from Cape Town, 2010. 3,    www.investmentpostcards.com.
(12) Richard Thaler et Cass Sunstein, <넛지, 올바른   결정을 하기위한 완만한 방식>, Vuibert, 파리, 2010.
(13) <Behind closed doors at the White House, how   politics trumps protection of public health, worker   safety, and the environment>, Center for    Progressive Reform, Washington, DC, 2011. 11.
(14) Allegra Stratton, <‘Nudge’ economist Richard    Thaler joins Conservative camp>, The Guardian,   Londres, 2009. 10. 6.
(15) François Chesnais, <향후 시장에 좌지우지될 퇴  직자들>, <Le Monde diplomatique>, 1997. 4.
(16) Richard Thaler, <Geek squad>, Foreign Policy,   Washington, 2013. 1-2월호 .
(17) Frank Furedi, <Don’t wink at the nudge plan>,    <The Australian>, Surry Hills,  2012. 10. 5.
(18) Patrick Wintour, <David Cameron’s ‘nudge    unit’ aims to improve economic behaviour>, <The   Guardian>, 2010.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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