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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과 아파트, 그 이후의 세계
중산층과 아파트, 그 이후의 세계
  • 박해천<동양대 교양학부 교수>
  • 승인 2014.04.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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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으로 아파트에 대한 인식은 두 갈래이다. 하나는 전체 주택의 60%에 가까운 비중을 차지한 지배적인 주거 형식이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입지 조건만 맞아 떨어지면 사용할수록 몸값이 올라가는 놀라운 중고 상품이라는 것이다. 특히 고도성장기의 아파트는 주거 공간과 중고 상품,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라는 이중적 특성을 결합시켜 중산층이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계층 상승의 도약대 구실을 해왔다.

약간 도식화하자면, 70년대의 강남, 80년대의 목동, 상계‧중계동, 과천, 90년대의 수도권 신도시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솟아올랐고, 그 아파트들은 당시 막 내 집 마련에 나섰던 4‧19세대, 유신 세대, 386세대 중 일부의 몫으로 돌아갔다. 이들 대다수는 분양가 상한제 덕분에 80년대의 서울에선 130만원대 이하 평당 분양가로, 90년대 초반의 수도권에선 200만원 초반대 평당 분양가로 아파트를 구입할 수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입주 이후였다. 그들 상당수는 ‘근로소득자’로서의 정체성을 청산하고, 아파트 시세 상승이 가져다준 경제적 여유를 바탕으로 ‘중산층 소비자’의 일상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대규모 단지 주변의 교회, 쇼핑시설, 학원가 등이 입주 첫 세대의 생애주기에 맞춰 세를 확장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이 시기의 아파트는 예비 중산층과 중산층 위주로 물질적 부를 분배하는 사회적 시스템이나 다름없었다. 사실상 복지 제도를 대신했던 이 시스템의 에너지원은 연간 10%를 넘나들던 특정 시기의 경제 성장률이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960년대 이후 “조국 근대화”의 흐름을 타고 서울에 당도한 개별 세대의 청춘들은 4‧19 혁명, 유신 헌법 공포, 5‧18 광주 등 10년 주기의 정치적 격변을 통해 사회문화적 동질의식을 공유하면서도, 고학력이라는 상징 자본의 습득을 통해 10년 주기의 경제 호황의 흐름을 타고 사회적 이동성의 경로를 확보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가정을 이룬 뒤에는 10년 주기로 건설된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 입주함으로써 중산층이라는 계층적 지위를 획득할 수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라면, 4‧19 세대, 유신세대, 386세대 등 10년 주기의 세대론은 고도성장기에 중산층의 지위를 확보한 이들의 계층적 이데올로기라고 볼 수도 있다.

고학력과 아파트를 통한 중산층 진입 경로가 변모하기 시작한 것은 IMF 외환위기 이후였다. 경제 성장률은 과거의 영광을 되풀이하지 못한 채 맥없이 주춤거렸고, 분양가 상한제를 비롯한 각종 규제를 폐지되었다. 이전까지 정부, 건설업체, 중산층이 삼각편대를 구성해 수도권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 상공을 활강했던 반면, 이제는 은행, 건설업체, 중산층이 아파트와 맺고 있는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위해 삼위일체의 신성동맹을 구축했다. 은행은 정부의 빈자리를 재빨리 낚아챈 뒤, 건설업체와 중산층 사이에서 자금 흐름의 가교 역할을 떠맡았다. 이런 변화로 인해 가장 큰 손해를 본 것은 중산층이었다.

강남 노후 아파트 재건축과 강북 뉴타운 건설을 통해 분양가는 가파르게 상승했고, 중산층은 가격을 따라잡기 위해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반면 그들에게 실질적으로 돌아갈 자본 이윤의 총량은 빠르게 감소하고 있었다. 이런 변화와 함께 대학 진학률은 80%에 육박했으며, 대학 등록금 역시 천정부지로 올랐다. 자녀 교육에 대한 가계의 부담이 그만큼 증가했다.

이 모든 변화의 의미가 분명해진 것은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후였다. 사회적 이동을 위한 진입 경로마다 드높은 장벽에 세워졌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시점에 두 종족이 ‘세대론’의 형식을 빌려 언론 지면에 등장했다. ‘88만원 세대’와 ‘베이비부머’가 바로 그 종족이었다. 이후에 ‘에코 세대’, ‘삼포 세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게 될 88만원 세대는 1990년대 중반 이후 본격적으로 산업화된 사교육 시스템을 경유해 높은 진학률을 기록하며 대학에 입학했다.

그리고 당시 막 기업화되기 시작하던 대학 교육 제도 안에서 별다른 자율권을 행사하지 못한 채 교육 소비자로서 자기 계발과 스펙 경쟁에 열중하며 취업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중이었다. 이들은 IMF 직후인 1999년을 제외하곤 철이 든 이후 단 한번도 10% 이상의 경제 성장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세대다. 그러니까 OECD 가입 국가의 품 안에서 성장했지만 고도성장의 단맛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해방 이후의 첫 세대였다.

한편, 2010년을 기점으로 은퇴를 시작한 베이비부머는 1,000조원의 가계 부채 중 상당 부분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었고, 가처분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121.6%로 전 연령층에서 가장 높은 상태였다. 돌이켜 보면 이 세대의 당사자로서는 기구한 운명처럼 느껴질 법도 했다. 대학 졸업자 비중이 10%대 초반에 불과했던 이 세대는 두 차례의 오일쇼크와 유신정권의 긴급조치로 20대 청춘을 소진해 버렸고, 4‧19 세대와 386세대 사이의 ‘낀 세대’로 별다른 목소리도 내보지 못한 채, 90년대 후반에는 구조조정의 대상으로, 그리고 2000년대 후반에는 은퇴를 앞둔 하우스푸어로, 두 차례의 경제위기에서 희생양의 역할을 떠맡아야 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각종 언론이 극화한 ‘88만원 세대’와 ‘베이비부머’의 세대론적 서사가 사실상 그 세대 전반에 대한 것이 아니라, 중산층의 자리에서 이탈하기 시작한 그 세대의 하위 종족에 대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 두 종족이 연령대로 보자면 부모와 자녀의 관계로 엮여져 하나의 ‘가구’를 구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사실상 ‘88만원 세대’와 ‘베이비부머’의 서사란, IMF 외환위기 이후 10여 년이 지난 후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중산층 가족의 몰락에 대한 것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몰락의 서사 앞에서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을 찾아볼 수는 없을까? 일단 지난 대선에서 드러났듯이 ‘베이비부머’의 정치적 보수화는 그런 변화의 부정적 양상 중 하나일 것이다. 사실 현상 유지를 원하는 특정 연령대 유권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정치적 선택은 나름의 합리적인 행위일 수 있다. 왜냐면 현 상황에서 보수 정당은 고도성장기로 회귀할 역량은 없지만 그래도 시스템의 현상 유지에는 총력을 기울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들의 자녀들인 ‘88만원 세대’는 어떠한가? 과연 이들은 가족, 주거, 교육, 소비의 측면에서 기존의 중산층과는 다른 새로운 일상 문화의 모델을 발명해낼 수 있을까? 지나친 기대가 아니냐고?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그들의 부모 세대와는 달리 이들은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문제가 되는 상황에 몰리고 있다.

먼저 가족 문제를 살펴보자. 경제적 이유로 인해 이들 상당수는 한국 사회의 근간이나 다름없는 유교적 가족주의에서 벗어나야만 하는 형편이다. 이들은 유년기부터 이미 자신의 부모가 1920~30년대생 조부모와 어떤 갈등 관계를 맺으며 농경문화의 대가족 제도에서 벗어났는지 목격했으며, 부모 공양이라는 효의 습속이 자신의 부모 양자에게 어떻게 불평등하게 분배하는지도 직접 들여다본 바 있다. 따라서 이들이 ‘결혼’을 자유연애의 최종 종착지가 아니라 전 생애에 걸친 복잡다단한 교환 과정의 출발점으로 간주한다고 해도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결혼을 거부하거나 2인 가구를 선택할 수도

  물론 몰락의 서사의 주인공이 아니라면, 여전히 ‘낭만적 사랑’을 알리바이로 삼아 이 교환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도 있다. 시부모 공양, 출산, 자녀 교육의 책임 상당 부분을 감당해야 할 중산층 출신의 여성이 자신의 결혼 상대자가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적 능력 및 자산과 상징 자본 등을 갖추고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 혹은 그 반대 방향으로 기대하는 것은 이 교환의 기본 대칭 관계이다. 그들은 별다른 고민 없이 중산층 이상의 가족 모델과 소비 활동을 유지시켜 줄 배우자를 선택할 것이다.

문제는 이런 교환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이들, 바로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이들의 상황이다. 이들은 이 교환에 내놓을 상징 자본과 경제 자산의 부족으로 인해, 혹은 배우자 가족에 대한 책임으로 그 부족분을 메우라는 식의 요구를 피하기 위해, 결혼 자체에 거부권을 행사할 공산이 높다. 특히 부모의 안정적 자산을 밑천 삼아 결혼 시장에 뛰어들 수 있는 또래 남녀의 총량이 감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1인 가구의 증가는 당연해 보인다.

이런 선택이 약간 극단적으로 보인다면, 이들이 취할 수 있는 현실적인 선택지도 존재한다. 그것은 유사 계층 출신의 배우자를 선택해 부모 공양과는 거리를 두면서 자녀 출산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것, 즉 2인 가구의 삶을 꾸리는 것이다. 어느 쪽이 되었든, 이들은 잠정적으로, 중산층의 4인 가족과는 다른 형태의 가족 모델을 택하는 셈이다.

한편, ‘가족’ 문제는 ‘주거’ 문제와 곧바로 연결된다. 주지하다시피 1~2인 가구 증가에 대한 예측과 맞물려 2008년 이후 소형 오피스텔과 도시형 생활 주택도 서울 곳곳에 급증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주거 형태의 소유자 상당수가 그 거주자들의 부모 세대 중 중산층 이상의 위치에 안착한 이들에 속한다는 점이며, 또한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듯이, 그 소유자의 자녀는 앞서 언급했듯이 중산층 이상의 가족 모델과 소비 활동을 유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 지점에서 기이한 빨대가 등장한다. 바로 1~2인 가구 주택 소유주의 자녀들이 가족을 꾸린 다음 그 또래의 평균치 근로 소득으로는 더 이상 쉽지 않은 중산층의 소비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1~2인 가구 세입자들의 임대료가 그들 부모의 통장을 거쳐 그들의 호주머니로 흘러든 덕분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이들이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까? 그들이 1~2년마다 이주해야 하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조직화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아파트와 사교육으로 집약되는 기존의 중산층 모델에서 탈피해 저성장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가족 및 주거 모델을 발명할 수 있을까? 지나친 기대를 담고 있는 질문임이 분명하지만, 희망의 출구는 그만큼 비좁기 마련이다.

  글·박해천

  디자인 연구자로서 <인터페이스 연대기>, <콘크리트 유토피아>, <아파트 게임>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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