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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하라, 자선은 필요없다!
연대하라, 자선은 필요없다!
  • 알랭 쉬피요
  • 승인 2014.12.04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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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하라, 자선은 필요없다!

 

연대란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에 대해 지는 의무로 해당 공동체의 결속력을 보여준다. 따라서 최근 프랑스 정부가 가족수당을 축소한 것처럼 사회보장제도를 약화시키면 국가적 단결도 영향을 받는다. 시민들의 평등한 존엄성을 바탕으로 삼은 법적 원칙인 연대는 인류발전의 초석이 되어왔다.

 

알랭 쉬피요 |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

 

‘연대’라는 개념은 사회·정치사상을 통해 인기를 얻게 되었지만 법률용어에 기원을 두고 있다. 1804년 프랑스 민법에 따르면 원래 연대란 동일한 의무에 대해 채권자(적극적 연대) 또는 채무자(소극적 연대)가 여럿일 경우에 사용되는 책임법상의 기술을 지칭했다. 그러다가 19세기 말에 이르러 새로운 법률적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산업기계화가 초래하는 위험에 대응하는 한편, 해당 위험을 유발한 자에게 불법성과 상관없이 객관적 책임을 지도록 하는 집단적 조직을 뜻하게 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각종 연대제도가 등장했는데, 장자크 뒤페루는 이를 “자신의 재산 형편에 따라 넣고 자신의 필요에 따라 꺼내 쓰는 공동의 단지”(1)라고 표현한다. 연대는 단순한 이해관계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기쁠 때나 힘들 때나 시장이라는 제국에 저항할 수 있도록 해주는 요인이다. 연대에 법적 효력이 부여되면 경제적 경쟁이 생활 전반에 확산되는 것을 제한할 수 있다.

연대의 개념은 국가적 차원에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프랑스 사회보장법(1945)을 보면 “사회보장 조직은 ‘국가적 연대’의 원칙을 토대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 원칙에 상응하는 것이 사회적 시민권이다. 이는 정치적 시민권과는 구별되는 것으로서, 사회보장, 공공서비스, 노동법에 보장된 집단적 자유(노조, 단체협상, 파업의 자유), 세 가지를 기반으로 한다. 사회적 시민권은 혈통법이나 속지법과는 달리 세금·분담금 납부를 통해 국가적 연대에 기여하고 이를 사회적 피보험자 또는 공공서비스 이용자의 자격으로 누리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개념이다. 국가적 연대는 배타적이지 않다. 국가적 연대는 보다 좁은 반경의 연대, 말하자면 ‘민간 연대’를 그 안에 수용한다. 민간 연대는 자발성을 기초로 형성되며 협회, 노조, 상호부조기관 등 비영리 기관의 관리를 받는다. 뿐만 아니라 가족 연대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러한 모든 연대가 국가적 연대의 보호 아래 이루어진다. 국가적 연대는 이들 연대를 조정하는 동시에 이들 연대가 국가적 연대를 연장하고 지지한다. 연대조직들은 수많은 연결고리로 서로 이어져 있다. 따라서 고리 하나를 건드리면 다른 고리들까지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가족 연대가 사라진다면 그 어떤 사회보장제도도 오래 유지되지 못할 것이다. 환자나 노인을 보살피는 가족의 보이지 않는 노동을 급여가 지급되는 근로시간으로 환산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부질없는 보험이나 자선행위

 

이처럼 정의되는 연대는 보험이나 자선과는 구별된다. 통계적 방식을 이용한 리스크 계산평가에 기반을 둔 민간보험과는 달리 연대는 국가, 직장, 가족 등 하나의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이 바탕이 된다. 해당 공동체의 구성원 가운데 재산이 많거나 리스크에 덜 노출된 이들이 재산이 적거나 리스크에 더 많이 노출된 이들보다 연대제도에 더 많은 기여를 하지만 구성원들 모두 동일한 권리를 누린다. 또한 연대는 자선(혹은 현대적 변형인 ‘케어(care)’)과도 다르다. 연대는 베푸는 사람과 받는 사람으로 세상을 양분하지 않는다. 모든 이가 자신의 역량에 따라 연대 제도에 기여하고, 모든 이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연대 제도의 혜택을 누린다. 모든 인간에게 동등한 존엄성의 표현인 연대 조직은 시장주의 논리가 인간 활동 전반으로 확산되는 것에 제동을 건다. 30년 전부터 신자유주의 정책이 연대를 저격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연대를 문제시하는 움직임은 국가적 연대의 쇠퇴를 통해 가장 잘 드러난다. 공공서비스에 대해 전면적 공격이 이루어지는 것과 달리 사회보장제도에 대해서는 그나마 공격이 덜 과격하기는 하다. 어쨌든 1994년 세계은행이 연금제도에 관한 새로운 지침을 제시하면서, 금융시장의 증권 쪽에 기여금을 적립하라고 권한 것은 국가적 연대의 약화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이다.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국민들의 애착이 큰 유럽에서는 세계은행의 프로그램을 간접적 방식으로 실현했다. 즉, 제도 자체를 뒤엎기보다 기여의 권리와 수급의 권리 사이의 관계를 단절시키며 제도의 재정적 근간을 뒤바꿔 놓았다. 또한 디디에 타뷔토 국가고문이 ‘살라미 정책’이라 표현한 방식도 사용됐다. “의무건강보험을 얇게 슬라이스로 잘라서 보조적 복지기관들이 이를 용인할 만한 방법으로 서서히 흡수”하도록 한 것이다.(2)

이러한 연대의 파괴는 유럽연합(EU) 차원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사실 연대를 법의 일반원칙으로 처음 인정한 것도 EU이다(1993년 유럽사법재판소, 2000년 유럽연합기본권헌장). 그러나 15년 전부터 유럽사법재판소는 EU 회원국들의 사회·조세 관련 법률을 마치 유럽 표준화 시장에서 경쟁하는 ‘상품’처럼 간주하고 있다. 유럽사법재판소는 대기업들이 가장 경제적인 법률을 선택하고 국가적 연대 원칙에 내재된 의무에서 벗어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EU 지침, 특히 근로자 파견과 관련된 지침(3)이 이러한 방향으로 제정되어 있다. 동시에 유럽사법재판소는 국가적 연대의 수혜자 범위를 재원 마련에 동참하지 않은 이들에게까지 확대하기 위해 통행의 자유를 구실로 내세운다. 유럽시민권에 의거해 노동자의 소재국 국민들은 다른 회원국 국민들과 “어느 정도의 재정적 연대”를 발휘해야 한다고 유럽사법재판소는 보고 있는 것이다. 유럽시민권이 진정한 사회적 시민권이라면, 다시 말해서 회원국들이 조세 경쟁을 벌이는 대신 유럽 차원의 연대제도를 공동으로 구축한다면 그러한 입장도 기꺼이 환영할 수 있다. 그러나 유럽연합 법률은 기여자들의 이탈을 부추기고 비기여자들까지 감당하도록 강요하면서 연대의 권리와 의무 간의 고리를 끊고 있다. 즉, 유럽연합 법률대로라면 앞으로 세상에는 보험과 원조, 시장과 자선만 남게 될 것이다. 이처럼 EU는 프리츠 샤르프가 말하는 ‘부정적 통합’ 프로세스, 즉 국가적 연대를 와해시켜 놓고 유럽 차원의 연대도 구축하지 못하는 상황에 빠져있다.(4)

 

연대의 고리를 끊는 신자유주의적 논리

 

민간 연대는 주로 노동권(노조·파업의 자유) 및 보조적 사회복지 영역(상호부조 및 비영리 노사동수기관)과 관련이 있는데 이 역시 점차 훼손되고 있다. 유럽사법재판소는 2007년부터 노동자들의 집단적 자유를 사사건건 제약하려 들고 있다.(5) 이러한 자유의 법적 가치는 인정하면서도 기업의 경제적 자유보다 한 단계 아래로 보는 것이다. 가령 기업이 생산시설을 이전하고, 선박을 편의치적(便宜置籍: 세금 혜택 등을 위해 선박소유자의 국가가 아닌 다른 나라에 등록)하고, 노동자의 소재국에서 사회분담금 의무를 회피할 수 있게끔 해외인력을 운용할 때에 노조는 “그 장점을 반감시키거나, 혹은 이를 어렵게 하는” 행위를 원칙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파업권까지 문제 삼는 이러한 판례는 많은 이들의 비난을 초래했다. 국제노동기구(ILO) 전문가위원회도 여기에 반발했다. 사용자 대표들이 파업권을 어떤 방식으로든 국제적 차원에서 인정하기를 거부하면서 ILO의 기준감독체제가 유례없는 위기에 빠진 것이다.

이러한 연대의 파괴 시도는 국가적 차원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프랑스에서 벌어지는 가족수당 변화가 대표적 사례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출산율이 증가하자 프랑스는 국가적 연대를 발휘해 아이가 있는 모든 가정에 소득수준과 상관없이 가족수당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최근 프랑스 정부가 중산층에게는 이러한 혜택을 삭감하거나 철폐하는 방안을 추진함으로써 빈민원조체제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또한 헌법재판소는 보조적 사회복지에 있어서 연대의 원칙을 폐지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고용보장법은 2013년 보조적 의료보험의 전면 시행을 결정하면서 노사가 직종별로 “높은 수준의 연대”를 구축하고 이러한 복지를 총괄할 단일 기구를 지정하도록 허용했다. 이 같은 ‘지정 조항’은 이미 2011년 유럽사법재판소의 승인을 받은 것이었다.(6) 그러나 프랑스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이 사업의 자유와 계약의 자유에 위배된다는 판결을 내렸고, 이 과정에서 ‘연대’라는 말은 벙긋도 하지 않는 재주를 발휘했다.(7) 이를 “끔찍한 판결”이라고 말하는 프랑스 수공업연맹 파트릭 리에뷔스 대표는 소기업들이 “보험업계를 비롯한 각계각층의 교섭과 압력”에 시달리며 불안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강조했다.(8)

반면 신흥국에서는 연대 제도를 발전의 걸림돌이 아니라 시급히 갖춰져야 할 하나의 조건으로 여긴다. 그 결과 브라질의 ‘보우사 파밀리아’(9)나 인도의 국민농촌고용보장법(10)과 같은 훌륭한 제도가 탄생했다. 이들 제도에도 단점이 없지는 않지만 연대 조직은 모든 사회에 제기되는 미래의 문제이지 철거 또는 현상 유지할 역사유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좀 더 넓게 보자면 세계화가 긴장과 불평등을 야기하면서 연대가 행동으로 표현되고 있다. 중국의 파업사태나 아랍권의 봉기가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종교·인종·부족적 정체성에 대한 망상적 회귀에 기반을 둔 소외의 연대도 더불어 등장하고 있다.(11)

전 세계적으로 연대는 책임법의 기술로 다시금 대두되고 있다. 다국적 기업들이 그물 모양의 조직을 구축하면서 경영진들은 자신들이 거느린 회사를 마치 방화벽처럼 이용해 어떤 소송도 피할 수 있게 됐다. 연대책임을 하나의 법적 수단으로 이용하면 법인의 차단막을 뚫고, 경제적 힘을 지닌 이들에게 자신의 결정에 따른 사회·환경적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할 수 있다. 불량품에 대한 기업의 책임이 도입되면서 함께 부각된 연대책임은 불법노동, 보건·안전수칙 위반, 경쟁규칙 미준수, 부패나 탈세, 해양오염(에리카호 사건 등), 산업현장 생태복원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문제에 적용될 수 있다. 경제 활동이 초래하는 피해에 대해 관리자가 원칙적으로 책임을 지도록 하자는 발상이 프랑스에서는 2005년부터 제기됐다. 하지만 관련 법안은 상원을 통과하지 못했고, 대신 2013년 라나플라자 붕괴 사고(12)가 계기가 되어 모기업과 원청업체의 관리감독 의무를 도입하는 법안 형태로 재등장했다. 프랑스 사회당(PS) 좌파가 새로운 의회 ‘다수파 협정’의 체결조건 중 하나로 제시한 이 개혁안은 정작 핵심내용은 쏙 빠진 채 2014년 7월 10일 ‘불공정 사회 거래 퇴치를 위한’ 법률로 제정됐다. 해당 법률은 원청업체들의 연대책임 원칙을 인정하기는커녕 근로감독위원회를 통해 위반 사실을 지적받은 경우 하청업체를 훈계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에는 원청업체들에게 연대책임 원칙을 부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떤 법체계도 마냥 무책임을 일반원칙으로 삼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마치 불사조처럼 연대는 언제든지 잿더미에서 되살아날 것이다.

 

글·알랭 쉬피요 Alain Supiot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 ‘사회국가와 세계화: 연대의 법률적 분석’ 강의

 

번역·최서연 qqndebien@naver.com

 

(1) Jean-Jacques Dupeyroux, ‘연대의 요구’, <Droit Social(사회법)>, 제741호, 파리, 1990년

(2) Didier Tabuteau, <보건 민주주의. 보건정책의 새로운 도전과제>, Odile Jacob, 파리, 2013년

(3) Gilles Balbastre, ‘사회적 덤핑과 싸우는 파견 노동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4년 4월호

(4) Fritz W. Scharpf, ‘The asymmetry of European integration or why the EU cannot be a “social market economy”’, <KFG Working Paper>, n° 6, Freie Universität Berlin, 2009년 9월

(5) 일명 바이킹(Viking) 판결(2007) 및 라발(Laval) 판결(2008)

(6) Jacques Barthélémy, ‘경쟁에 관한 EU 법률에 따른 지정·이주조항’, <사회법 판례> 제296호, Lamy 2011년

(7) Jean-Pierre Chauchard, ‘헌법재판소가 바라본 보완적 사회보험’, <보건·사회법 리뷰>, 제4호, 2014년

(8) ‘보조 의료보험: 헌법재판소, ‘지정 조항’ 부결’, 2013년 6월, www.batiactu.com

(9) 2003년 도입된 ‘보우사 파밀리아(Bolsa Familia)’ 프로그램을 통해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대신 재정 지원을 받은 가구는 1,300만 곳에 달한다.

Geisa Maria Rocha, ‘학교와 빈민가는 ‘룰라’를 지지한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0년 9월호

(10) 2005년 통과된 이 프로그램은 농촌가구 성인들이 연간 100일씩 최저임금을 받으며 공공근로를 할 수 있는 권리를 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11) 이러한 연대의 재부상을 전반적으로 조망하려면 2015년 파리 Odile Jacob 출간 예정인 <연대, 법적 원칙에 대한 연구>를 참고

(12) 방글라데시에 있는 방직공장으로 건물이 붕괴되면서 1,100명 이상이 희생됐다.

Olivier Cyran, ‘방글라데시, 기성복 제조업자들은 살인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3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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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쉬피요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