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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화두로 묻는 시대의 길
시와 화두로 묻는 시대의 길
  • 이충신 | 기획위원
  • 승인 2009.11.06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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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시인과 스님, 삶을 말하다

시인과 스님, 삶을 말하다 - 도법 스님과 김용택 시인이 말하고 정용선이 적다

김용택·도법 지음, 정영선 정리, 메디치, 1만6천원

김용택 시인과 도법 스님. 두 사람의 삶은 대조적이다. 시인이 자연과 공동체 속에서 살 때, 스님은 선방에서 죽음이라는 화두를 붙잡고 살았다. 시인이 아이들과 함께 해맑게 웃을 때, 스님은 ‘선재 동자’처럼 길을 걷고 또 걸으며 ‘삶의 길’을 물었다. 시인이 사람들 속에서 시작해 사람들 속에 있었다면, 스님은 고독한 수행을 통해 사람들 속으로 돌아왔다.

시인이 자란 마을은 고된 농사도 공동의 놀이로, 돼지를 잡는 도살판도 ‘축제’로 바꾸어놓는 ‘놀라운 지혜’를 보여주는 곳이었다. 시인에게 어머니는 시의 원천이다. 나무를 벤 뒤 옆에 살아 있는 나무와 베어낸 나무의 밑동을 새끼줄로 서로 이어주는 ‘목숨 건네기’를 보고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생명의 부활, 살아 있는 것에 대한 사랑과 존중이다.

스님에게 어머니는 화두의 시작이다. 출가한 지 2년 되던 해,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해듣고도 출가승은 속세와 인연을 끊고 사는 것이라 여겨 돌아보지 않았다. ‘아무리 중이지만 그럴 수 있느냐’는 주위의 쑥덕거림이 들렸다. 순간, 죽음이 무엇이기에 사람들이 이렇게 쩔쩔매는 것인가. 스님은 10년 동안 죽음의 화두에 매달렸다.

지난해 38년 동안 함께한 아이들에게 ‘얘들아 나를 용서해라’라는 말을 남기고 교단을 떠났던 시인은 이제 녹색혁명을 말한다. 시인이 어린 시절부터 함께했던 자연과 대지, ‘옛것들’에서 되살려야 하는 가치다. 스님 눈에는 사람이 곧 똥이고, 똥이 곧 사람이다. 화엄경에 나오는 연기법의 진리에서 보면, 이 세계는 본래부터 공동체 사회고 존재 자체도 공동체적 존재다. 시인과 스님은 서로 다른 삶을 걸어왔지만, 이제 같은 길을 걷는다. 시인은 ‘오래된 미래’로, 스님은 공동체와 연대로 제대로 된 삶과 시대의 길을 묻는다.

글·이충신 기획위원 editor3@ilemon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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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신 | 기획위원 editor4@ilemon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