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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글픈 남극 남획의 역사
서글픈 남극 남획의 역사
  • 박지현|남극보호연합 활동가
  • 승인 2009.12.03 17: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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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écial] 카밀라 연례회의 참가기


남극은 만년빙으로 덮인 남극대륙과 그 주변을 둘러싼 남빙양을 모두 포함하는 이름이다. 남극대륙의 넓이는 1360만㎢ 이상으로 지구 육지 면적의 약 9.2%를 차지한다. 쉽게 비교하면 유럽이나 호주 대륙보다도 넓고 아프리카 대륙의 반이 넘을 정도로 거대하다. 남극의 연평균 온도는 영하 23도로, 아예 비가 내릴 수 없는 기후 조건이다. 땅이라고는 하지만 남극대륙은 평균 2160m의 만년빙으로 덮여 있다. 생명체가 살기 힘들 것 같은 극한의 환경이지만 놀랍게도 박테리아부터 미세조류, 식물, 50여 종의 새와 펭귄, 물개·고래 등 포유류 동물까지 다양한 생물들이 살고 있다.

남극은 17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멀리 외떨어진 지리적 조건과 극한의 기후 및 환경 조건 덕분에 인간의 손을 타지 않은 유일한 원시 자연이었다. 물론 남극의 존재 가능성은 오래전부터 인식됐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기하학적 관점에서 지구의 균형을 위해선 북반구와 마찬가지로 남반구에도 거대한 대륙이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이 가설은 ‘Terra Australis Incognita’, 즉 ‘미지의 남쪽 땅’으로 상징화되며 유럽인들의 호기심과 탐험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15세기부터 유럽 제국주의의 맹목적인 탐험과 식민지 경쟁이 시작됐는데, 탐사 항해 동기에는 왕국의 번영을 위해 자원을 약취하는 것도 포함돼 있었다.

18세기 들어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대영제국이 번영하면서 더 많은 식민지와 자원이 필요해지자 영국은 미지의 남극 대륙을 찾기 위한 항해에 나섰다. 제임스 쿡 선장이 이끄는 영국 남극 탐사단은 여러 차례 항해 끝에 1775년 남극권의 섬 사우스조지아를 발견한다. 그러나 쿡 선장의 위대한 발견은 남극 생물종 남획의 시발점이었다. 쿡 선장은 사우스조지아에 발 디딜 틈 없이 많던 물개들과 고래들에 대해 상세히 기록했고, 이 기록은 곧 물개 사냥꾼들을 불러들였다. 당시 물개의 털가죽은 중국이 많이 수입해가는 품목이었다. 영국과 미국에서 돈에 눈이 먼 물개 사냥꾼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사냥꾼들은 물개들을 사정없이 둔기로 내려치고 심장을 찔러 죽인 뒤 가죽을 벗겼다. 기록으로는 어떤 이는 1시간에 60마리를 죽이기도 했고, 단 5주 만에 약 1만4천 마리의 털가죽물개를 잡아 죽였다고도 한다. 그렇게 1822년까지 최저 120만 마리 이상의 물개들이 살육됐다.

그 많던 물개들이 거의 사라지자 다음 희생물은 코끼리바다표범이었다. 바다표범은 불을 밝히기 위한 기름을 얻을 수 있는 자원이었다. 마찬가지로 잔혹한 살육이 자행됐다. 사우스조지아에서는 금세 물개와 바다표범이 자취를 감추었다. 물개 사냥꾼들의 배는 새로운 사냥터를 찾기 위해 남극의 다른 섬들을 찾아나섰다. 그런 와중에 1819년 윌리엄 스미스라는 영국인이 남극반도의 끝자락인 사우스셰틀랜드 군도를 우연히 발견했다. 인류의 공식적인 첫 남극 발견이었다. 이 섬도 사우스조지아처럼 발견되자마자 도살장으로 변해버렸고, 수십만 마리의 물개와 해표가 죽었다.

산업혁명과 과학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인류는 불가능할 것 같던 남극대륙 정복에 나섰다. 유럽 각국과 미국에서 탐험가들뿐 아니라 수많은 고래잡이 배들이 몰려왔다. 남획으로 인해 북극해에서 고래가 자취를 감추자 사람들은 남극의 바다로 관심을 돌렸다. 20세기 들어 갑판에 장착하는 작살포를 개발하고 고래를 잡아 바로 배 위에서 가공할 수 있는 공장형 모선을 도입하는 등 첨단 기술로 무장하고 신나게 남극 고래 사냥에 나섰다. 1904년부터 사우스조지아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남극 고래 사냥은 지금까지의 고래잡이 역사에서 가장 잔혹한 살육이었다. 1930년대까지 약 10만여 마리의 혹등고래가 죽었다. 혹등고래의 씨가 마르자 다음은 흰수염고래의 살육이 이어졌다. 흰수염고래는 지금까지 지구에서 산 생물체 중 가장 크다. 20세기 중반 즈음에는 기존 유럽 국가들뿐 아니라 아르헨티나, 일본, 소비에트연방, 미국 등 새로운 나라들이 포경업에 가담하면서 남극해의 포경 산업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흰수염고래도 4만 마리 넘게 잡히던 것이 1960년대 들어 한 어기에 겨우 20마리가 잡힐 정도로 거의 멸종됐다. 그러자 다음으로 큰 종류인 긴수염고래, 뒤이어 보리고래, 향유고래, 그리고 밍크고래가 차례로 인간들의 탐욕에 희생되었다.

1950년 영국의 공장 모선에 주치의로 탑승했던 로버트슨은 고래 사냥의 현장에서 본 인간들의 혐오스러운 행동을 개탄하며, 이 광경을 쿡 선장이 보았다면 눈물을 쏟았을 것이라고 적고 있다. 생기 넘치는 아름다운 고래들로 가득하던 남극 바다는 고래의 시체가 널린, 피비린내와 악취가 진동하는 지옥의 바다로 변했다. 1982년이 되어서야 국제포경위원회(IWC)는 지구 전체에서 상업포경을 중지하는 조처를 내렸다. 그러나 이미 너무 늦은 뒤였다. 근 80여 년간 남빙양에서 잡혀 죽은 고래는 모두 150만 마리가 넘는다. 이제 남극해든 어디든 지구 어느 바다에서도 혹등고래나 흰수염고래 같은 큰 고래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이들이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남극 바다에 그렇게 많이 살았다는 사실은 이제 전설로만 남았다. 그러나 지금도 일본은 ‘과학 연구’를 핑계로 매년 몇백 마리의 고래를 잡고, 우리나라도 일부 몰상식한 지방자치단체와 정치인들이 일본과 함께 포경 재개를 로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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