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린 칸 지음·우진하 옮김/ 바오밥·1만5천원
세계적인 경제성장에도 전세계 30억 명 가까운 사람들이 여전히 빈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최소한의 건강도 지키지 못하고, 주거는 불안정하다. 깨끗한 물도 마실 수 없고, 위생은 말할 것도 없다.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끔찍한 굶주림에 시달려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것들조차 부족하다. 그들에게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기회조차 없다. 교육 기회의 박탈, 안정적 직업의 박탈이 모든 희망을 앗아가버렸다. 안전을 박탈당한 사람들은 계속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다. 빈곤은 사람들을 박탈과 불안, 소외와 침묵의 악순환에 빠뜨리고 가둬놓았다.
가난한 자들의 삶은 살아남기 위한 매일의 투쟁이다. 빈곤에는 매 순간 공포가 도사리고 있다. 질병과 굶주림만이 아니다. 강도와 흉기, 잔인한 경찰, 가정폭력과 무장충돌이라는 또 다른 모습의 공포가 도처에 널려 있다. 가난은 폭력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을 놀라울 정도로 끌어올리고, 정상적인 보호를 받을 가능성은 뚝 떨어뜨린다. 도심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지역은 쉽사리 범죄단체의 손아귀에 떨어진다. 특히 폭력에 노출된 여성의 공포는 상상을 초월한다. 불안과 공포는 빈곤을 더 깊게 만든다.
<들리지 않는 진실>은 빈곤을 지구상 최악의 인권 위기로 규정한다. 지은이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 아이린 칸은 “가난한 사람들은 자유와 정의로부터도 외면당하고 있다”며 “인권 존중을 통해서만 빈곤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고, 빈곤을 없애려면 인권을 중심에 둬야 한다”고 말한다.
슬럼, 산모, 국가의 인권유린

산모 사망률은 차별과 소외가 불안전과 무력감으로 이어져 빈곤을 만들어내고 영속시키는 인권유린의 악순환을 가장 잘 나타내는 실례다. 산모 사망의 99% 이상이 개발도상국에서 일어난다. 사망률이 가장 높은 상위 10개국 중 9개국은 사하라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국가들이다. 시에라리온에서는 출산하던 여성 6명 중 1명이 사망한다. 스웨덴의 경우 1만7400명 중 1명에게 벌어지는 일이다. 높은 산모 사망률은 불평등이라는 죽음의 교차점에서 의료 지원의 불균형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부자 여성과 가난한 여성 사이에 존재하는 불평등이다. 이런 비극 뒤에는 더 깊고 근원적인 문제가 숨어 있다. 인권을 박탈당한 가난한 여성의 무력함이다.
막대한 천연자원을 보유한 국가의 국민이 여전히 절대빈곤 속에서 인권을 유린당하며 살고 있다. 처음부터 빈곤율이 높고 소득격차가 컸던 나라일수록 자원개발이 시작되면 상황이 더욱 악화될 확률이 높다. ‘천연자원의 저주’, ‘풍요의 역설’로 알려진 이런 이상 현상은 석유나 주요 광물 등 천연자원의 축복을 받은 개발도상국에서 자주 일어난다. 콩고 내전의 처참한 현장 한복판에는 바로 천연자원을 둘러싼 독재정권과 주변 국가, 다국적기업들의 ‘욕망’이 숨어 있다. 이익에 눈먼 그들은 인권유린과 그에 따른 끔찍한 결과들을 외면한다. 이것은 통제 불가능한 ‘시장’이며, 그 결과는 콩고 국민의 불행이다.
경제학자들은 풀 수 없는 난관

인권에 대한 총체적 접근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대부분 그것이 너무 정치적이라는 이유에서다. 냉전시대에는 인권에 대한 미사여구가 서로의 이념을 공격하는 무기가 됐다. 인권은 미국과 동맹국들이 시민적·정치적 권리를, 소련과 동맹국들이 경제적·사회적 권리를 주장하는 데 아주 유용했다. 하지만 정치적·이념적·위선적 본질만 확연히 드러낸 채 자신들이 속한 진영이 강조했던 인권의 모습을 존중하는 데는 실패했다. 중국과 미국, 이 두 나라는 전세계 2대 경제대국이다. 인권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은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데 또 다른 장애물이다.
빈자에게 합법적인 ‘창’과 ‘방패’를

가난한 사람들의 주택, 의료, 일자리, 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단순히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의미를 넘어 존엄성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이는 결코 분리해 생각할 수 없는 인권의 한 부분이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서도 안 되고, 점진적이거나 순차적인 접근도 거부해야 한다. 그런 해결 방법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 아이린 칸은 “빈곤 문제를 왜곡하는 문제들, 인권의 시행과 보호를 가로막고 있는 이런 문제점들은 인권의 네 가지 측면인 박탈·차별·불안·폭력을 한꺼번에 다룸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빈곤은 차별받고 소외당한 사람들이 쉽사리 빠져나올 수 없는 하나의 거대한 늪이다. 인권 존중은 사람들을 감싸안고, 제 목소리를 내게 만들어주며, 권력자들에게 가난한 사람이 직면한 위협에서 그들을 보호해줄 것을 요구한다. 식량·의료·교육·주거 같은 기본적 권리와 그에 대한 보호는 그들을 둘러싼 불평등을 바꿀 수 있는 최소한의 도구이자 힘이다. 인간 해방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몇몇 결정적인 순간들이 있었다. 각각의 투쟁은 고유한 역사와 동력을 가지고 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하며 평등하다.” 세계인권선언문 제1조다. 전세계에서 고통받고 있는 ‘잊혀진 빈곤’의 인권은 존중받아야 한다.
글·이충신 기획위원 editor4@ilemon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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